[인터뷰] 17년을 민변과 함께해온 사무처의 원로, 정은경 간사 인터뷰.
곧 있을 민변 정기총회를 마지막으로 민변 사무실을 떠나시는 분이 계십니다.
민변의 창립 초기부터 지금까지 17년을 민변과 함께하신 ‘민변의 산 증인’ 정은경 간사님이
바로 그 주인공인데요. 이번 인터뷰에서는 민변을 떠나시는 정은경 간사님을 만나 소회를 들어보았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그만둔다는 인사를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한택근 총장님이 미뤄주신 덕분에(웃음) 뉴스레터를 통해 인사를 하게 되어서,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떠나는 걸 좋아하실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지만,
남아계신 분들께, 그만두게 되어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다시 돌아왔을 때 반가워해주셨던 오래된 회원 분들, 3년 정도 만에 다시 가게 되어서 죄송합니다.
– 민변 창립멤버이시라고 들었습니다.
창립멤버는 창립을 준비한 멤버가 창립멤버니까, 그건 아니고요.
1988년 5월 28일에 민변이 창립되었고, 저는 7월 20일경 들어왔어요.
2002년 2월에 아이들 때문에 그만뒀다가,
(2006년 5월에 회장이 되신) 백승헌 변호사님이 2006년 말에 다시 오라고 하셔서 다시 온 후
지금에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초등학교 저학년생인 아이를 내버려둘 수가 없어 그만두게 되네요.
– 민변에 거의 17년을 계셨습니다. 상당한 ‘커리어’인데, 아쉽지 않으세요?
시원섭섭하죠. 워낙 오래 있었기 때문에 나가 있을 때도 계속 생각이 나요.
가끔 신문에서 보게 되면 다들 잘 있는지 궁금하고, 그래서 다시 오라고 하셨을 때 냉큼 왔던 거죠. (웃음)
저 자신을 위해서는 일을 계속 하는 게, 집에 있는 것보다 나은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어떤 게 더 중요한가, 더 시급한가를 생각해보면,
곧 사춘기에 접어들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민변으로 다시 돌아오셨을 당시에, 마음을 움직인 것은 무엇이었나요?
일도 필요했고, 예전에 민변에서 일을 할 때 재밌게 했으니까, 또 그렇게 재밌게 일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리고 백 변호사님이 불렀으니까.
– 17년 동안 계셨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
힘들 게 일하고 나면, 그게 기억에 많이 남는 것 같아요.
96년인가 건대사태가 터졌는데, 한 달 내내 하루 종일 변론배당 업무를 했어요.
그 상황에서, 제가 여기에 있으면서 그 사건들의 변호사 선임을 처리했다는 것이 기억에 남고요.
또 재작년에 ‘민변 20주년’을 준비할 때, 정말 힘들었지만 그 행사를 잘 치러냈다는 게 기억에 남습니다.
– 재작년에 촛불사태를 겪을 때는 어떠셨어요?
죽을 맛이었죠. 건대사태 때보다 훨씬 일이 많았어요. (웃음)
그때 간사들도 상근 변호사님들도, 모두 고생 많이 했어요.
– 사무처는 정 간사님이 처음 들어오셨을 때에 함께 발족한 건가요?
그때는 사무실에 저 혼자 있었어요.
그 당시에는 회원수도 51명 정도고, 아직 사무국 틀이 잡히지 않은 때라 일도 많지 않아서,
한 2년 정도 혼자 있으면서 사무실 지키고, 전화 받고, 간단한 사무들을 처리하고 그랬어요.
그러다가 1~2년 지나고 1명, 또 1~2년 지나고 1명, 이런 식으로 가다가 지금의 6명이 되었네요.
지금은 민변의 회원 수도 640명가량으로 늘어났고요.
– ‘사무처의 원로’이신데요. 사무처의 역할에 대해 바라는 점을 말씀해주세요.
사무처가, 사무처의 역할이 조금 더 강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상근자들과 회원들의 접촉면’이 다양한 방면으로 조금 더 많아져야 할 것 같고,
사무처가 민변의 정책과 방향성을 정립하고 회원 전체를 코디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도 많고 힘든데 혼자 빠져나가서 미안해요.
– 민변에 몸담고 계시면서 보람을 느끼실 때는 언제이셨나요?
전문가 단체로서 민변이, 참 많은 일을 해왔습니다. 민변이 더 많이 발전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민변이 그렇게 많은 일을 할 때, 제가 이곳에 있으며 얼마나 일조를 했는지는 몰라도
조금은 뭔가 기여를 했을 거라는 생각을 할 때 보람을 느껴요.
또 개인적으로, 결혼하기 전까지는 현장으로 직접 나가서 뛰었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긴 후로는 이런저런 일들을 잘 쫓아다니지 못하는데요.
민변에 있으면서 사회에 그래도 일정 부분은 일조를 하고 있다는 위안을 삼았습니다.
– 민변이라는 단체가 앞으로 ‘어땠으면 좋겠다’라고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현재 상근 인력에 비해 지금도 많은 일을 하고 있는데 뭘 더 바라겠어요. (웃음)
다만 민변이, 좀 더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돈이랑 연결이 되니까, 재정이 부족하면 힘든 게 많거든요.
물론 돈만갖고 되는 것은 아니지만, 돈이 좀 더 많으면 좀 더 쉽게 많은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요.
상근 인력도 더 많았으면 좋겠고, 내부 행사들을 소화할 수 있을 만큼 사무실도 더 커졌으면 좋겠어요.
– 일을 그만두신 후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5월 말에 일을 정리하고 나면, 대안교육과 공교육 사이에서 내 아이를 어떻게 교육해야 할지,
그것을 고민하고 결정하는 게 저의 올해 과제입니다.
총회에서 떠나는 인사를 드리려고 합니다.
가급적 총회에 많이 오셨으면 좋겠어요! 총회 때 마지막으로 얼굴 뵙고 갈 수 있도록.
2007년 부산 총회에서는 회원만 100명이 넘었는데, 이번 총회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회원 100명 이상이 참석한 총회를 보고, 그만두면 좋겠습니다! (웃음)
– 글·사진 / 홍보출판팀 김란아 인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