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 3월 월례회 <이지상, 사람을 노래하다> 후기
민변 3월 월례회 ‘이지상, 사람을 노래하다’ – 후기
작은 콘서트와 이야기들을 통해, 전하고자 하셨던 메시지가 대략 세 가지 정도 기억납니다.
첫 번째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예요.
경제위기나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세계화 속에서 갈수록 경쟁과 효율성 혹은 경제성이 강조되고 구성원들에게는 그를 충족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음이 요구되는 것이 현실인데, 이런 흐름에서 가장 고통 받고 공동화되고 있는 이들은 가장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이거든요. 이지상 선생님은 그런 무한 경쟁 속에서도 타인을 다치게 하거나 위해를 가하지 않는 존재인 가난하고 약한 이들을 존중하고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하셨고, 그에 깊게 공감했어요. 사실 사회가 요구하는 경쟁 구조 속에 파묻혀 우리가 쉽게 잊거나 외면하던 존재들과 가치잖아요. 민변에서 도시 철거민이나 빈민 문제 혹은 민생경제 문제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대응하는 것은 그런 측면에서 매우 의미 있는 역할들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두 번째는 ‘한국 가요사에 서려있는 친일의 역사’였어요.
안익태가 만들었다고 알려진 ‘애국가’의 출처에 관한 미스터리나 정말 널리 알려진 서정적인 국민 동요인 ’섬집아기‘의 원작자가 박정희의 ’멸사봉공, 진충보국‘을 연상케 하는 친일 의지를 담뿍 담은 곡들을 만든 이라는 사실은 신기하기도 하고 충격적이기도 했어요. 미당 서정주를 비롯한 당시의 숱한 문인들과 예술인들이 일본 천황의 황군을 찬양하고 조선 민중들의 충성과 참여를 독려하며 읊었던 시와 노래들을 실제로 짚어보니 정말 서글프더군요. 그에 대한 진중한 반성과 재평가 없이 그들의 예술적인 업적만 인정하기에는 그들의 반역사성이 너무 거대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외압과 시대적 요구에 의한 것으로 한정지을 수는 없는 수준이거든요. 그에 대한 지향과 동의, 본인의 목표의식과 의지가 확고해야만 만들어지고 실행에 옮겨질 수 있는 적극적 행위였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이 우리 사회에서 갖는 의미에 다시금 공감하기도 했고, 이런 원작자의 친일 행위나 권력 찬양행태들을 다 따지다보면 특히 동요나 트로트, 가곡 등에 있어서는 마음 편히 부를 노래가 별로 없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재일조선인 문제와 조선학교에 대한 관심’이었어요.
저 개인적으로 제대한 직후에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일하면서 ‘2008 일본평화기행’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그 때 직접 오사카의 쯔루하시 한인타운과 조선학교인 ‘오사카제4초급학교’, 우토로마을 등을 다녀온 적이 있거든요, 재일조선인들을 만나보기도 했고요. 김명준 감독님의 ‘우리학교’나 양영희 감독님의 ‘디어, 평양’을 감동 깊게 봤던 터라 그 분들을 만났던 경험이 더욱 특별하게 가슴에 와 닿았죠.
한반도 남쪽에 갇혀 갈등하고 부대끼며 살아가는 우리는 까맣게 잊고 있지만, 그들은 하나된 조선 민족에 대한 애정과 우리말 지키기의 소중함, 그리고 통일에 대한 열망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더군요. 주류 일본인의 인간형으로 동화되는 것을 거부하고 그런 ‘조선인’의 정체성을 간직하기 위해, 그들은 여전히 현실적으로 많은 고통과 위협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실제 조선학교만 국한해서 보더라도 숱한 피해와 일상적인 고통을 받고 있어요. 아이들이 등하교 하는 길에 일본 아이들로부터 위협을 받기 때문에 부모님들이 직접 아이들을 학교에 데리고 오고 데리고 가는 모습, 남학생들은 그렇지 않지만 여학생들은 학교에서 흰 저고리와 검은 치마로 상징되는 한복을 입고 공부하는데 저고리를 찢어버리는 일본인들의 폭력과 위협 때문에 학교 밖에서는 일상복을 입고 학교에 와서야 한복으로 옷을 갈아입는 현실, 조선학교 출신은 일본 국립대 지원 자격 제한을 하려 했던 일이나 에다가와 조선학교가 도쿄도로부터 반환 소송에 휘말렸던 사례, 최근 하토야마 정권의 전국 고교 무상교육화 과정에서도 우익의 반대로 조선학교는 제외하고 후일 논의하기로 한 것 등은,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그들 일상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이지상 선생님은 실제로 에다가와 조선학교 문제가 촉발되기 이전부터 조선학교에 대한 관심과 문제의식을 갖고 관련된 노래를 만들기도 하셨고, 반환 소송 당시에는 모금 콘서트를 비롯하여 활발히 활동을 하셨다고 합니다. 조선학교 문제에 대한 관심의 환기 차원에서, 이런 이야기들을 다른 인턴들과도 공유할 수 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가장 크게 다가왔던 순간이었죠. 또한 민변 통일위원회 위원장이신 심재환 변호사님께서 에다가와 조선학교 후원 발기인으로 참여하시고 대책회의에서 활동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민변이 우리 사회 안팎의 문제들에 참여하고 있는 폭이 정말 넓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강연 후에는 변호사님들의 자발적인 요구로 이지상 선생님의 음반과 이번에 새로 출간된 책 <이지상, 사람을 노래하다>의 즉석 사인회가 이루어졌는데, 책과 CD에 사인 받으며 좋아하시는 변호사님들의 모습에서 사춘기적 감수성이 엿보여서 재미있기도 했어요.
예정 시간을 훌쩍 넘어 밤 10시가 되어서야 끝난 이야기 콘서트를 보고 듣는 내내 들었던 생각은, 행동하는 노래꾼인 이지상 선생님께서 노래로 사회에 기여하고자 하시는 역할과 민변의 변호사님들이 법정에서의 싸움을 통해 수행하고자 하시는 역할이 궁극적으로는 크게 맞닿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자본권력과 정치권력에 의해 침해받는 약한 이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그들도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열정이 바로 그것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이의 연장선상에서 그런 열정은, 한 두 집단의 노력보다는 뜻과 의지의 실현을 꿈꾸는 이들이 문화예술계·법조계·학계·교육계·언론을 비롯한 사회 곳곳에서 나름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더욱 지속가능하고 강력한 동인을 얻을 수 있을 것이고 너른 폭의 가치들을 함유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다시금 해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 글 / 미군·통일위 인턴 안승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