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인, 그가 왔다.
2003년, 37년 만에 송두율은 부인과 함께 귀국한다. 군사 독재 시기, 독일에서 유학하던 그는 해외에서 민주화운동에 앞장서다가 반체제인사로 낙인찍혀 귀국하지 못했다. 이후, 남과 북의 화해를 위해, 민족을 위해 ‘경계인’으로 살겠다고 다짐한다. 민주화를 말했던 그로서는 적대적 공범인 박정희와 김일성 둘 중 어느 것이든 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경계인을 남에서는 받아주지 않았지만 북에서는 받아주었다. 그래서 한, 두 차례 북한에 방문한다. 이 사실이 소위 민주사회라는 대한민국에서 그렇게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을 줄이야.
근 40년 만에 귀국을 결정한 그에게, 법원은 체포영장을 발부했고, 많은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 그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해방 이후 최대 거물간첩’이 한국에 왔다며 정치인, 언론 할 것 없이 포문을 열었다. 그가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고, 남과 북의 평화를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는 모두 잊어버리고 ‘노동당 정치국 후보 김철수’라는 것에 집착하며 그를 절벽 끝으로 밀어갔다.
강요되었던, 경계인의 무너짐
애당초, 송두율의 귀국을 추진했던 것은 국내 민주화 운동 세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수사와 언론의 압박, 여론의 악화라는 상황 속에서 그들은 송두율을 또 다른 방향에서 압박했다. ‘대국을 위해 한발 물러서자. 진정으로 물러서는 것이 아니라 (‘테크니컬’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전술적인 측면으로 이해하자. 수비를 하다가도 공격으로 치고나갈 수 있는 것 아니냐.‘라는 말에서부터, 선거 국면이라는 측면을 이해해달라며 마치 송두율이 사과하지 않고, 전향선언하지 않기 때문에 소위 ’진보 진영‘의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다는 뉘앙스로 까지 이야기한다. 심지어는 ’어떻게 대오를 생각하지 않고 개인만 생각하느냐.‘라며 화를 내기도 한다. 송두율은 결국 자신이 살아온 ’경계인‘으로서의 삶을 정면에서 부인하는 기자회견을 한다. 그를 켜켜이 둘러싸고 있던 이들(언론, 정치인, 소위 ’그의 친구들‘)에게 백기투항한 것이다. ’전체‘ 앞에 ’개인‘이 항복한 것이다.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
송두율이 사실상의 전향선언을 하기 전날 그의 숙소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와 기자회견 장면까지, 즉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 부분을 보며 나는 불편하고 불쾌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엠마 골드만이 말했고, 한국에서 출판된 책의 제목으로도 사용되었던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혁명도 운동도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내가 살아온 모든 과정, 나의 역사를 부정하고, 나를 부정한 뒤에 얻어진 공간, 그곳에서 무슨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이미 나를 버렸는데 말이다.
죽지 않은 국가보안법
또 하나, 이 영화가 다시 한 번 제기하는 것은 국가보안법에 대한 이야기이다. 수년 전 국가보안법 철폐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했을 때, 국가보안법을 없애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 중 하나는 이것이었다. ‘이미 사문화된 법안을 끌어안고 갈 필요가 없다.’ 하지만 ‘경계도시 2’에서 보듯, 국가보안법은 죽지 않았다. 여전히 국가보안법 상 찬양고무, 이적단체 구성 등의 이유로 수사를 받고 처벌받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우리 속의 레드 컴플렉스는 살아있다. 동계올림픽에서 보듯, 국가주의도 우리 속에 버젓이 살아있다. 이미 죽은 법이기 때문에 없애야 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살아있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국가보안법을 반드시 치워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