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간의 진실이 몹시 그립습니다. (한명숙 전 총리의 진실과 승리를 믿으며)

2010-03-22 111

 


한 인간의 진실이 몹시 그립습니다
 

– 한명숙 전 총리의 진실과 승리를 믿으며 –
                                                                                                       박 연 철



 한 전 총리의 재판이 시작되던 날이었다. 가슴속에서 뭉클하게 그 여성에게는 믿음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지펴 올랐다. 그래서 나는 나의 사무실 직원에게 「(나는) 한명숙 님의 진실과 승리를 믿고 있습니다」라는 피켓을 만들어 줄 것을 부탁하였다. ‘정말 피케팅을 할 셈이에요?’ 하고 약간 놀란 듯 반문을 하고서도 직원은 피켓을 A4용지 위에 잘 만들어 놓았다.

나의 피케팅은 법조인다운 자세는 아니다.

 어떤 간의 진실을 ‘믿음’에 의해서 가려내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더욱이 정치인의 정직성과 청렴성에 대하여 ‘믿음’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너무나 순진한 접근이다. 한 전 총리에 대하여는 대한민국 검찰이 수사하고 기소한 것이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정치적 탄압의 목적으로 전(前)총리를 기소하기는 어렵지 않은가? 국민들은 아무런 근거 없이 기소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나 또한 정치인의 수뢰사건에 관하여 몇몇이 무죄선고를 받았으나, 그것이 법률적인 재판상의 무죄인지, 실제로 전혀 뇌물을 받지 않은 무고한 자로서 무죄를 받은 것인지 알 수 없어 지금까지 의혹을 품고 있는 경우도 있다. 한 전 총리에 대하여도 돈을 받기는 받았는데, 그녀를 에워싼 진영(陣營)에서 극구 안 받았다고 부인하도록 만류하여 부인하는 입장을 고수하기로 했다는 풍문도 들려왔다. 만약 실체적 진실이 그러하다면, 노무현 정권하에서 한 전 총리마저도 뇌물을 수수한 배신적인 인물이고, 노무현 정권의 상징적 도덕성은 더 이상 말할 여지도 없게 되고 만다. 노무현 정권을 지지했던 이들의 최소한의 도덕적 경계마저도 무참히 무너져 내리고 마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한 전 총리마저 재야시절의 도덕적 일관성을 찾지 못하면 그 마음의 허망함을 어찌 감당할 수 있을는지 눈앞이 어두워지는 일이다.

 나도 나 스스로의 정직성과 청렴성, 진실과 정의에 관하여 한발 물러서는 경우가 많다. 위와 같은 가치적 용어의 완전성을 생각하고 내 자신을 되돌아 볼 때, 그에 부합되지 않는 점이 많기 때문이다. 공직자로서 뇌물을 받지 않았다는 것을 내세우는 것은 매우 당연한 덕목을 앞세우는 것과 같이 민망스런 일이다. 청렴한 공직자로서 그 청렴성이 고리가 되어, 세상을 바르게 펴고, 그가 제안한 사업과 제도에 관하여 주변의 사람들이 신뢰를 하고 진실하게 협력하여 발전적 단계로 나아갔다고 했을 때 비로소 밝은 등불로서의 청렴성이 가치를 발휘할 것이다.

 만약 한 전총리가 뇌물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한 진영이 붕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정치적인 대응을 하는 것이라면, 얼마나 맥빠지는 일인가? 죄와 허물을 바로 하는 집단의 움직임이 모두 허깨비 같을 뿐이다.

 그러나 그녀는 믿을 수 있는 인물이 아닐까? 그 믿음을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큰 격려가 될 것인가? 생각해 보았다. 만약 사실이 그와 다르다면 평상시에 그녀를 막연히 신뢰하였기에 지금도 ‘바보처럼’ 신뢰한다는 말을 하는 꼴이 되는 것일까? 그녀가 뇌물을 받은 것이 사실이라면, 나의 ‘믿음’의 기반도 없어지는 것인데, 우리는 그렇게 뒤숭숭한 울타리 안에서 살고 있는 것일까?

 어쨌든, 그날 오후 1시 30분경 ‘(나는) 한명숙 님의 진실과 승리를 믿고 있습니다’라고 쓴 A4용지를 품에 안고 법원에 갔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동문 앞에는 백합을 든 이들이 모여서 있었다. ‘도착하셨나요?’ 하고 물으니 ‘아직 도착은 안하셨다’고 한다. 이 정도의 열띤 분위기라면 피케팅을 하여도 좋을 것 같았다. 법원 내부에 들어가 보니 서쪽 출입구에 카메라맨들이 포진하고 있어서 나는 그곳 2층에서 기다리면서 지켜보았다. 이윽고, 여러 인사들과 함께 한 전총리가 들어서면서 카메라 플래시들이 쉴새없이 터졌다. 한 전 총리는 1층에서 기다리던 몇몇 인사와 인사를 나누고, 내가 서 있는 2층은 쳐다볼 새도 없는 듯하였다. 그날 피켓은 「MB독재반대」하나 정도였다. 나는 한 전 총리의 입장을 묵묵히 바라보았고, 피케팅은 하지 못하고 그대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제는 피케팅을 해도 좋지 않을까?

 법정에는 가보지 못하였으나, 어느 날 곽영욱 사장의 법정진술 내용이 한겨레신문에 보도되었다. 검찰에서 그와 같은 진술을 하게 된 배경이 드러나고 그의 진술이 일관되지 못하다는 것이다. 한겨레신문의 보도 수준은 곽영욱의 진술이 그 정도라면 바로 그 자리에서 재판을 종료하고 한 전 총리의 무죄를 선고하여야 할 정도였으나, 다른 신문을 보았더니, 그 보도수준이 곽영욱의 진술이 일관되지 않고 있으나, 여전히 5만 불의 뇌물을 전한 것은 맞다고 검찰이 주장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재판부에서 ‘검찰에 대하여 공소장의 변경을 검토해 보라는 요청이 있었다’고 하였다.

 이런 보도를 접하면서, 한 전 총리의 인간적 진실에 대한 믿음이 되살아나오며, 마음이 가벼워지고,
즐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이제는 피케팅이 가능하지 않을까?

 지난 금요일 친구네 결혼식에 참석하였을 때, 검사를 지낸 어느 변호사에게, 한 전 총리의 사건은 어떻게 되어 갈 것 같으냐고 의견을 물어보았더니, ‘뻔한 것 아니야? 뇌물을 받지 않으려면, 공관에 민간인은 왜 불러들여? 공관이 민간인 불러들이라고 있는 곳이야?’라고 반응한다. 그도 변호사가 된지 수년이 흘렀으나, 여전히 검사와 같은 수리매의 시각을 가졌고, 어느 한 진영에 속해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나는 그에게 곽영욱의 오락가락하는 진술에 비추어 볼 때 판결이 어떻게 날 것인지 그의 심증에 대하여 알고 싶었던 것인데, 거기에 대해서도, 돈을 ‘주었다’와 ‘놓고 왔다’는 같은 표현이라고 말하였다. 그의 견해를 듣고 공관에 민간인을 불러서는 안 된다는 것은, 독단적인 견해인 것으로 생각되었으나, 공관에 민간인을 초청하는 데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그만 허물도 남겨서는 안 될 터이니까…

 어찌하였든, 나는 곽영욱의 진술을 전해 듣고, 이 사건에 관한 한 전 총리의 진실을 믿기 시작하였다. 내 스스로 검증도 하지 않은 채 ‘믿음’이라는 말을 사용하려 하면서 주저했던 때와 달리. ‘믿음’이 검증을 받으면서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진실에 대한 믿음… 얼마나 그리운 말인가. 인간에 대한 믿음…얼마나 절실한 소망인가. 현 정권이 전 정권의 총리를 무덤으로 내려 보내기 위하여 화형대 위에 세운 것과도 같은 이 재판에서 그녀의 진실이 ‘샛별’처럼 빛난다는 것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이 될 것인가?


                   한명숙 님. 한 인간의 진실이 몹시 그립습니다.
                                              한 사건에서만 무고한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의 모든 것에서 진실의 향기가 흘러나오는 인간이 더욱 그립습니다.


 곽영욱 사장의 이기심과 거짓됨이 이와 같은 사건을 야기하였고, 검찰에서도 이만하면 기소할 수 있겠다고 판단하였을지 모르나, 검찰의 기소는 결국 곽영욱의 거짓됨과 검찰의 정치 지향적 속단이 빚은 우화(寓話)로서, 검찰이 깊이 自省하여야 할 사건이 될 것 같다. 이 상황에서 재판부의 현명한 판단이 기대되지만, ‘공소장변경’을 요청한 취지가 무엇일지, 공소장을 변경하면 유죄선고를 할 수 있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으니, 변호인들이 더욱 발분하여, 우리 국민들이 더 이상 의심하지 않을 정도로 파사현정(破邪顯正)하는 명백한 무죄의 증거를 현출할 수 있으면 좋겠다. 물론 검찰에서 유죄의 증거를 현출시키지 못하면 무죄를 선고해야 하는 것이지만, 이 사건은 법정다툼에서 결론을 내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국민 앞에서 공의(公義)가 하수(河水)같이 흘러 내려야 할 사건이기 때문이다.

 전 고검장(심재륜)은, 어떤 정치적 사건은, 검찰이 청와대의 눈치를 살펴 알아서 앞장선 일이 없지 않았음을 고백한 일이 있었다. 이 사건도 그와 같은 정치적 사건 중의 하나로 생각된다. 그리고 정치적 사건에서 대체로 집권층은 소기의 목적은 달성해 왔다. 독재시대에, 너무나도 명백하고 엄연한 무죄의 증거가 눈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죄판결을 선고한 경우도 있었다. 오늘날 독재시대에 대한 향수를 지닌 듯한 인사들의 발언이 잦아 상당히 염려는 되지만, 이 사건의 재판부는 공정하고 명쾌한 사법부의 길을 유지하여 주시기를 바란다. 그러나 순수함에 대한 정치적 공격은 민주주의적 반전(反轉)의 기회를 주고, 정치집단 사이의 대등성을 회복하여 준다. 대립하는 상대 당을 박살내려는 음모나 치기가 수치스럽게 되고, 정치계의 평형과 건전성이 회복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정치적 음모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가는 것이다.

이 사건이 바로 그러한 사건이 되었으면,
그리고 한 인간의 진실이 우리 가슴에 生水처럼 흘러내리는 사건이 되었으면 정말 좋겠다.

진실이 우리의 출발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당일 같은 좌석에 있었던 정세균 현 민주당 대표도, 그날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하여 기꺼이 법정의 증인으로 출석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결국 진실을 넘어서는 정당은 없으니까.

마음속의 피케팅은 이미 시작되었고,

실제로 피케팅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어느 한 여성정치인에 대한 행동이라는 것이 쑥스럽고, 다른 많은 믿을만한 여성정치인들이 많다는 것도 생각하고, 또한 나의 피케팅이 어느 한 진영의 행동일 뿐으로 평가되는 것도 마뜩잖아 계속 망설이게 되겠지만) 3월 21일 춘분에는, 그 전날의 종잡을 수 없는 우울한 황사의 날이 완전히 가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