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 X파일과 노회찬 전 의원 무죄판결
3기 인턴 이승주
홍 : 추석에는 뭐 좀 인사들 하세요? / 이 : 할만한 데는 해야죠
홍 : 검찰은 내가 좀 하고 싶어요. K1(경기고출신을 뜻하는 은어)들도 검사 안하시는 데는 합니까? (중략)
홍 : 김XX 들어 있어요? 그럼 김XX는 조금만 해서 성의로써, 조금 주시면 엑스트라로 하고. 그 담에 이XX는 그렇고, 줬고 김XX 전 총장은 한 둘 정도는 줘야 될 거에요. 김XX는 2천 정도 김XX는 거기 들어있으면 5백정도 주시면은 같이 만나거든요… 석조(홍석현 사장 친동생)한테 한 2천정도 줘서 아주 주니어들, 회장께서 전에 지시하신 거니까. 작년에 3천 했는데, 올해는 2천만 하죠. 우리 이름 모르는 애들좀 주라고 하고. 그 다음 생각한 게 최XX.
이 : 들어 있어요.
홍 : 들어 있으면 놔두세요. 한XX도 들어 있을 거고. 이번에 제2차장된 부산에서 올라온 내 1년 선배인 서울 온 2차장, 연말에나 하고 지검장은 들어 있을 테니까 연말에 또 하고. 석조하고 주니어들하고. 김XX 들어 있더라도 내가 만나니까 5백정도 따로 엑스트라로. 혹시 안 들어간 사람 있을 테니까, 홍석조하가 만들어 있는 게 있을 수 있으니까. 합치면 4천 5백이니까 5천으로..
안기부 X파일과 삼성공화국
2005년 여름 MBC 뉴스데스크의 특종보도는 전 국민을 경악케 했다. 뉴스데스크는 이상호 기자가 입수한 소위 ‘안기부 X파일’의 내용을 보도했는데, 그 내용은 1997년 경 삼성 이학수 부회장과 중앙일보 홍석현 사장이 검찰떡값과 관련해 대화를 나눈 것이었다. MBC의 보도 이후 다른 언론들도 뒤이어 안기부 X파일 사건을 계속 보도하였고, 이에 대하여 특별 수사가 필요하다는 국민적 여론은 높아져만 갔다. 그러나 ‘가재는 게편’이라는 말 그대로 검찰은 고위직 검사들의 의혹에 대하여 ‘독수독과 이론’ 등을 내세우며 수사를 하지 않았다.
이에 2005. 8. 18. 노회찬 의원은 “대한민국은 사실상 삼성공화국”임을 일갈하며, 사태의 심각성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특검의 필요성을 역설하고자 X파일에 담긴 내용을 실명처리해서 “삼성 명절 때마다 검사들에게 떡값 돌려, X파일에 등장하는 떡값 검사 7명 실명공개”라는 제목으로 기자들에게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동일한 내용을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재하였다.
7인 명단에 들어있던 전 서울지검장 안강민은 이에 크게 반발하였고, 검찰은 안강민 전 지검장을 피해자로 규정하여 노회찬 의원에 대한 수사를 시작하였다. X파일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에 대한 수사는 올스톱된 상태에서-심지어 이학수 부회장은 사실상 X파일 내용을 시인하는 듯한 발언을 했음에도 수사하지 않았다-노회찬 의원에 대해서만 수사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검찰은 2007년 노회찬 의원을 통신비밀보호법 제16조 위반, 형법상 명예훼손죄의 혐의로 기소하기에 이르렀고, 2009년 1심법원은 노회찬 전 의원에게 유죄를 선고하였다. 노회찬 전 의원과 변호인단은 즉각 항소하여 2009. 12. 4. 항소심 법원은 무죄판결을 선고하였다.
만약 노회찬 전 의원이 유죄판결, 특히 자유형을 선고 받는다면 2010년 예정된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할 수 없을 뿐 아니라, 2012년의 총선에도 출마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점에서도 이번 판결은 큰 의미를 가진다. 이하에서는 이번 소송에서의 주된 쟁점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검찰의 기소와 변호인의 변론요지
검찰의 공소사실은 2가지이다. 첫째는 통신비밀보호법 제16조 위반이다. 통비법 제16조는 감청 등을 통해 지득한 통신 또는 대화의 내용을 공개하거나 누설한 자를 처벌하도록 하고 있는데, 노회찬 전 의원은 안기부가 불법적으로 도청한 X파일 내용을 공개해 본조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둘째는 허위사실을 적시하여 안강민의 명예를 훼손하였으므로 형법상 명예훼손죄가 성립한다는 것이다(제307조 제2항).
변호인단은 검찰에 공소사실에 대응하여 ① 통신비밀보호법 제16조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통신의 비밀을 누설한 경우에도 예외 없이 처벌하도록 규정하여 그자체로 위헌적인 규정이다 ② 이 사건에서 노회찬 전 의원은 사실의 적시를 한 적이 없고, 설령 사실의 적시라 하더라도 허위사실임을 모르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X파일을 공개한 것이므로 위법성조각사유에 해당한다 ③ 형법 제20조의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는 정당행위에 해당한다 ④ 국회의원의 면책특권 범위 내의 행위이다 ⑤ 설령 유죄라 하더라도 선고유예 판결을 내려야 한다(MBC의 이상호 기자는 X파일 사건으로 항소심에서 선고유예 결정을 선고받았음) 는 주장을 하였다.
1심법원의 유죄판결 – 검찰의 기소의견과 유사한 판결
2009. 2. 9. 1심법원은 노회찬 전 의원에게 징역 6월, 자격정지 1년, 집행유예 2년의 유죄판결을 선고하였다. 그러면서 변호인단의 의견을 조목조목 반박하였는데, 사실상 검찰 측 의견을 대부분 받아들인 판결이었다.
① 1심법원은 “통신비밀보호법이 아무런 위법성조각사유를 규정하고 있지 않더라도, 일반법인 형법과의 관계에 비추어 일반법인 위법성조각사유의 적용이 있고, 이러한 해석에 따라 변호인단이 주장하는 헌법상의 제가치에 대한 침해는 충분히 방지된다” 라면서 통비법 규정이 위헌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1심법원은 통비법 규정의 적용문제도 형법 제310조가 적용되는지의 문제로 치환한 것이다.
② 명예훼손죄와 관련해서는 “피해자 등 고위직 공무원이 금품을 수수했다는 강한 표현은 단순한 수사적 과장에 지나지 않고, 사실을 적시한 것”이라면서, “녹취록에는 금품전달 계획만이 나와 있을 뿐, 실제 금품을 받았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음에도 피고인은 녹취록의 내용이 실행되었는지 아무런 확인절차도 거치지 않았다”면서 이 사실이 허위사실임을 단정하였다. 그리고는 “피고인은 X파일 내용이 진실인지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면서 형법 제310조의 위법성조각사유도 인정하지 아니하였다.
1심법원의 판결은 전혀 납득할 수 없는 것이다.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르면 공소사실은 당연히 검사가 입증하여야 한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X파일의 내용이 허위사실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전혀 입증이 되지 않았음에도 법원은 유죄판결을 선고하였다. 경험칙상 X파일의 내용을 본다면 누구나 그 내용이 진실일 가능성이 크다고 믿게 마련인데, 노회찬 전 의원이 허위사실임을 인식했다고 판단한 법원의 태도도 이해하기 힘들다. 더욱이 1심판결이 설시하는 대로 “이상호 기자가 조작여부를 가리기 위한 성문분석을 의뢰하여 음성이 일치하는 것을 확인한 상태였고, 이미 여러 언론기관에서 보도가 있었으며, 관련자들이 자해하거나 미국에 망명을 신청하는 등의 행동이 있었고, 검찰은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등의 상황이 있음”에도 이것을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황’이 아니라 ‘법률상의 책임문제를 벗어나기 위한 것일 뿐 안기부 X파일의 내용이 사실임을 전제로 한 행동들은 아니었다’ 고 판단한 1심법원의 논리는 그야말로 견강부회고 억지였다.
③ 1심법원은 위의 논리와 마찬가지로 X파일에 등장하는 검사 명단을 공개한 것은 수단과 방법에서의 상당성을 상실하였고, 보충성을 갖추었다고 보기도 어렵다면서 정당행위도 인정하지 않았다. ④ 인터넷 홈페이지는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의 범위 밖에 있음이 명백하고, 국회 내에서의 보도자료 배포행위도 “피고인에게 이 사건 보도자료의 내용이 허위라는 인식이 없었다고 보기 어려운 상태에서 그 내용을 적시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였던 것이므로 이러한 피고인의 행위가 면책특권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고 판시하였다.
⑤ 1심법원은 양형이유에서 “피고인은 국회 내 소수 정당의 국회의원으로서 그 동안 충실하게 공무를 수행해 왔고, 앞으로도 국회의원으로서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피고인에게 국정활동에 참여할 기회를 다시 부여할 필요가 있다” 면서 선처의 가능성을 보이다가 “피고인에게는 1990. 6. 23. 국가보안법위반죄로 징역 2년 6월, 자격정지 3년의 형을 선고받은 범죄경력이 있어 형법 제59조 제1항 단문에 의하여 형의 선고를 유예할 수도 없는 상황인 점을 고려” 하면서 유죄판결을 선고하였다. 그러나 사면, 복권된 사건, 게다가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법률>에 의거하여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받은 과거 형선고의 효력 때문에 선고유예를 할 수 없다고 해석하여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항소심법원의 반전 – 완전한 무죄판결
2009. 12. 4. 항소심법원은 1심판결을 완전히 뒤짚어서 노회찬 전 의원에게 완전한 무죄판결을 선고하였다. 사실상 변호인단의 항소이유를 거의 다 받아들여 1심법원이 사실오인과 법리오해가 있었음을 인정한 것이다.
① 통신비밀보호법과 관련해서는 아래에서 보듯 기자들에게 보도자료를 배포한 것에 대해서는 면책특권의 범위 내에 해당하여 공소기각의 판결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그 내용을 게재한 행위에 대해서는 형법상 정당행위에 해당하여 무죄판결을 선고하였다.
② 명예훼손의 점과 관련해서는 “홍석현이 이건희 회장의 처남이고, 이학수가 삼성그룹의 최고위 간부라는 점, 그 대화 내용이 된 진술들이 실제 금품전달이 위 대화 전에도 이루어졌고 또 그 후에도 이루어질 것이라는 점에 대한 합리적이고 근거 있는 추정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 녹취록에는 당시 검찰 간부들의 실명 또는 실명을 알 수 있는 표현이 게재되어 있다는 점을 종합할 때, 이 사건 녹취록대로 검사들에게 금품을 지급하였을 것이라고 매우 강한 추정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면서, “반면 검사는 안강민이 실제로 삼성그룹으로부터 금품을 받지 아니하였다는 사실에 대한 수사와 입증을 해태하였다고, 이 사건 당사자인 홍석현과 이학수도 안강민에게 금품을 지급하지 않았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하여 “명예훼손의 부분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하여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의하여 무죄를 선고하여야 할 것” 이라고 판시하였다.
③ 통신비밀보호법 제16조 위반 행위에 대해서는 우선 기자들에게 보도자료를 배포한 행위는 국회의원의 직무행위에 해당한다고 보아 공소기각의 판결을 선고하였다. 다만, 인터넷에 그 내용을 게재한 행위에 대해서는 “국회의원이 국회 내에서 행한 행위를 언론이 보도하는 것과, 국회의원이 직접 자신이 국회 내에서 발언할 내용을 외부에 전달하는 행위는 구별되어야 한다” 면서, 이는 면책특권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라고 하였다.
④ 대신 인터넷에 그 내용을 게재한 행위가 형법 제20조의 정당행위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였는데, 항소심법원은 “국회의원 신분인 피고인이 X파일 내용을 공개한 것은 수사 촉구 등의 정당한 목적에 따른 것으로, 이미 언론을 통해 이 사건 내용이 대략 공개되어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수뢰죄의 공소시효는 5년이라서 이미 그 기간이 도과되었다고 볼 수도 있으나, 이 사건 녹취록의 대화내용은 삼성그룹의 검사들에 대한 조직적인 금품제공이 그 대화 전에도 이루어졌고 그 후에도 이루어질 것이라는 강한 추정을 가능하게 하는바, 만약 그 대화 후에 금품전달이 이루어졌다면 공소시효가 도과되지 않은 부분이 있을 수도 있으므로 국회의원인 피고인이 수사를 촉구하는 최선이자 유일한 방법은 신속하게 여론을 환기시키는 것이었다”라고 하여 정당성, 긴급성, 보충성 등 요건을 모두 충족하였다고 판시하였다.
판결 그 이후 –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
아직 이 사건을 끝나지 않았다. 항소심 법원의 무죄판결이 나오자마자 검찰이 대법원에 상고하였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단순한 명예훼손 사건이 아니다. 국민의 알권리, 그리고 그 실현을 위한 표현의 자유에 재갈을 물리고자 하는 권력과의 싸움이다. 또한 삼성공화국과의 지리멸렬한 싸움의 일환이기도 하다. 대법원도 헌법과 민주주의 정신에 입각한 현명한 판결을 내리기를 기대한다. 한 가지 더하여 삼성그룹이 하루빨리 떡값, 부정부패와 손을 끊고 명실상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