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함. 잘맞는 검은 수트를 걸친 이영기 변호사의 첫인상은 그 것이었다. 틈이 없어보이는 눈빛이 더욱 그랬다. 패기와 신중함이 함께 묻어나는 한마디, 한마디. ‘아, 쉽지 않은 인터뷰겠구나’, 퍼뜩 드는 생각이었다.
말이라도 더 보태볼까 하는 생각으로 “인상이 아주 강하십니다” 말을 건넸다. “뭐, 약하진 않습니다” 하며 숨겨두었던, ‘좋은 사람’ 특유의 소탈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많지 않아서 기분 좋은 웃음. 이영기 변호사는 딱 그 정도를 아는 사람이었다.
안녕하세요, 이영기 변호사님. 민변 뉴스레터 독자들에게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환경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여러 환경단체들과 연대 활동을 하고 있으며, 지난 3년동안 자동차배기가스에 의한 건강권 침해에 문제제기한 서울 대기오염소송에 매진해왔다. (내년 1월 20일경 판결이 나올 예정이다)
지난달 26일에 제출한 4대강 사업에 대한 행정소송과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이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습니다. 3주 가량이 지났는데, 현재의 경과가 어떻습니까?
11월26일자로 모든 문건의 제출을 완료했다. 한강에 관련한 첫 번째 일정이 의외로 일찍 잡혔다. 다가오는 18일에 있을 예정이며, 현재 그에 대한 준비 중에 있다. 다른 강에 대해선 아직 답이 없다.
‘4대강 사업 위헌/위법 심판을 위한 국민 소송단’에서 4대강 사업에 대해 사법적으로 문제시하는 부분이 어떤 것입니까?
여러 가지 문제가 연루되어 있지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절차의 위법성 부분이다. 4대강 사업의 구체적인 내용을 떠나 이 부분에 대한 문제제기만으로도 4대강 사업은 충분히 제지 될 수 있다고 본다. 언론을 통해 많이 보도되었듯, 500억 이상의 예산이 소요되는 국가 사업에 대해선 예비타당성 조사를 시행하도록 되어있는데 지난 3월 이에 대한 법안이 통과되었다. 국가재정법상의 문제를 들어 절차의 위법성을 밝힐 생각이다.
환경영향평가 상의 문제도 발견되었다. 이미 환경부의 문제제기로 문제가 있음이 기정사실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업이 강행되고 있다. 졸속으로 3개월만에 마무리된 환경영향평가는 한국 고유의 사계를 반영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문화재 관리법 상으로도 육상과 수중의 지표조사가 실시되어야하는데 2개월만에 졸속으로 마무리되었다. 200여 곳을 조사했다고 발표하였으나 하천사업임에도 정작 몇 곳만이 수중조사였다는 점이 이번 조사가 얼마나 형식적이었는지를 방증한다. 그밖에도 하천법에 관련해 관리위의 심의를 가결시킨 조건에 대한 이행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다.
법의 영역에서 4대강 사업의 위법성을 밝히고자 한다는 것이 무척 고무적으로 느껴집니다. 소송을 진행하는데 있어 난항이 예상되거나, 첨예할 것으로 예상되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워낙 방대한 사업이다보니 자료조사와 분석에 엄청난 노력이 소요된다. 여러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고 있지만 역시나 쉽지 않은 과정이 될 것이다. 절차의 위법성을 들어 문제제기하면 승소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만 재판부에서 어떤 반응을 내놓을지 예측할 수 없다. 재판은 뚜껑을 열어보아야 알 수 있을 것같다.
모쪼록 꼭 승소하셔서 국민의 혈세가 더 이상 낭비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뉴스레터의 구독자들에게 동참을 호소하는 말씀 부탁드려도 될까요?
이미 설문조사를 통해 국민의 70% 이상이 4대강 사업에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많은 국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4대강 사업을 저지코자 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참여방법을 모르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홍보사업을 하고 있지만 아직 이러한 부분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듯하다.
국민들이 4대강 사업 저지를 위해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두가지다. 소송의 원고가 되어주거나 모금을 통해 후원하는 방법이다. 원고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긴하지만 사실상 크게 도움이 되는 사람은 4대강 유역의 주거민이다. 그들의 실제적인 피해 사례를 증언한다면 재판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 밖에는 재정적인 후원을 해주는 것이다. 많은 후원이 있었지만 장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이번 재판에는 국민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후원이 필요하다.
이영기 변호사님이 걸어오신 길에 대해 더 질문드리고자 합니다. 학생시절에는 어떤 분이셨나요? 민변 변호사로 활동하기까지 어떤 길을 걸어오셨는지 궁금합니다.
76학번으로 대학에 입학해 84년에 졸업했다. 그 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다. 당시의 많은 대학생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전역 이후 노동운동에 투신하여 한동안 그렇게 살았었다. 사회적 분위기가 지금의 대학생들이 느끼는 그것들과는 많이 달랐을거라 생각한다.
90년대 초, 국제 정세의 변화에 따라 이념적, 사상적인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노동 현장을 벗어나 한동안 먹고사는 일에 몰두하다가, 그간의 생각과 고민들을 포기할 수 없어 느즈막하게 변호사의 길에 뛰어들게 되었다. 노력만 하면 될 수 있는 것이니, 그 길이 차라리 가장 쉽겠다 싶더라.
민변변호사로 활동하시면서, 인생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있었다면 들려주실 수 있나요?
‘정의’다. 정의에 대한 각자의 생각이 다르지만 나는 그 ‘정의’라는 것이 반드시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정의가 없이는 아무 것도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문화 자체가 ‘대충’, ‘두루뭉술’ 위주다 보니 모든 것을 잊고 같이 가자기에 문제가 생겨난다 생각한다. 용서도 좋지만 과거든, 미래든, 정의가 바로서야 하는 법이다.
2009년 한해가 저물어 갑니다. 올 한해 가장 좋았던 일과 아쉬웠던 일 한가지씩 말씀해주세요.
변호사로서는 좋았던 일도, 아쉬웠던 일도 3년간 매달려온 서울 대기오염 소송에 있다. 어찌되었건 3년간 끌어온 소송을 마무리 짓고 결과를 기다리게 되어 기분이 좋다. 내가 해낸 일들에 대한 보람도 느끼고, 나름 그 문제에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직 결과를 기다리는 시점이지만, 좀더 잘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들에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개인적으로는 되풀이되는 변호사의 일상 가운데 새로운 돌파구에 대한 생각을 가질 시간이 없었던 것이 아쉽다. 좀 더 자기 성찰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으면 한다.
더불어 다가오는 2010년, 꼭 성사시키고 싶은 소망이 있으시다면요?
변호사로선 당연히 4대강 사업의 위법 소송이 잘 진척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이왕 시작한 일이니 최선을 다하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좀 더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있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아직 구체적이진 않고 ‘그 일’이 무엇일지 고민 중에 있다.
꼭 뜻하신바 이루시는 한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민변 뉴스레터 독자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리겠습니다.
어렵고 복잡한 사회다. 무수히 일어나는 변화 가운데에서 ‘정의’를 위한 희망의 씨앗을 뿌렸으면 한다. 희망을 믿고 노력하는 가운데 변화의 동력이 일어나리라 믿는다. 함께 노력해 나가자.
글_오대양 (3기 인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