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표현의 자유에 관한 유엔특별보고관 초청 국제심포지엄 후기

2009-10-26 104

 

“의사표현의 자유에 관한 유엔특별보고관 초청 국제심포지엄


사이버상 의사표현의 자유: 동아시아 지역의 실태와 과제“를 다녀와서


민변 김나영 인턴




들어가며






사진1. 인사말을 하고 있는 국제민주연대 공동대표 곽노현 교수




10월 의사표현의 자유에 관한 유엔특별보고관(이하 특별보고관) 프랭크 라 루 씨가 인권단체들의 초청으로 국제심포지엄 참석차 한국을 방문했다. 나는 지난 13일 고려대학교에서 있었던 사이버상 의사표현의 자유에 관한 심포지엄(이하 심포지엄)에 참석하였다.


심포지엄은 아침부터 진행되었으나, 사정상 12시부터 참석할 수 있었다. 오전에는 특별보고관의 기조연설과 태국의 사이버상 의사표현의 자유 현황에 관한 발제가 있었다. 오후 프로그램은 인권 관련 행사에서 자주 뵐 수 있는 박경신 교수님의 사회로 말레시아, 한국, 싱가포르의 현황 발제와 지정토론, 그리고 특별보고관의 코멘트를 끝으로 마무리되었다.




국가별 현황 발제



1. 태국







사진 2. 태국 발표자 Ms. Chiranuch




태국의 상황을 자료집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나마 접할 수 있었다. 태국은 세계에서 가장 긴 헌법을 가지고 있는 국가이고, 당연히 의사표현의 자유에 관한 조항도 있다. 그러나 국가안보라는 이름 아래 국가권력과 상충하는 의견을 게시한 수많은 웹사이트들이 폐쇄되었으며, 웹사이트들에 대한 검열과 누리꾼에 대한 탄압도 은밀히 행해지고 있다. 각종 절차는 무시되기 마련이다. 또한 컴퓨터 범죄법은 컴퓨터를 이용한 전자기기를 이용한 범죄를 막는다는 당초 취지와는 달리 사이버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용도로 쓰이고 있다.




2. 말레이시아


 




사진 3. 말레이시아 발표자 Mr. Kabilan




말레이시아 최고 구독률의 인터넷 언론 말레이시아키니(Malaysiakini)의 편집국장 케이 카빌란 씨는 말레이시아의 의사표현의 자유 침해 사례를 소개했다. 말레이시아에도 인터넷에 특별히 적용되는 법으로 통신 및 멀티미디어 법이 존재한다. 이 법에 근거하여 말레이시아키니는 조사를 받고 있다. 이것은 정부로부터 ‘남에게 공격적인 불쾌감을 주는’ 영상을 삭제할 것을 명령받았으나, 이를 거부하였기 때문이다. 그러자 사무실에 대한 정부의 수색과 관련자들에 대한 신문이 수차례 이루어졌다.


정부가 영상의 삭제를 요구한 두 영상의 내용은 무슬림 동네에 힌두 사원을 이전하기로 한 정부의 결정에 반대하는 시위대의 모습과 내무부 장관이 시위자들을 두둔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 영상들은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으며, 불쾌감은커녕 단 한 건의 항의를 받은 적도 없다. 유독 정부에 “밝힐 수 없는 출처의” 항의가 접수되었을 뿐이다. 반면 구독자, 시민단체들과 국제기구들의 지지선언들이 이어지고 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모든 매체를 정부가 관리한다. 모든 출판업자들은 일간 신문을 발행하려면 매년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나, 그 결정에 대한 사법적 심사는 불가능하다. 또한 우리나라의 방송통신위원회와 비슷한 말레이시아 통신 멀티미디어 위원회가 있어, 광범위한 통신 및 멀티미디어 활동을 규제하고 있다.


말레이이시아키니에 대한 위원회의 행위들은 인터넷 검열을 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태도와는 달리 인터넷에 대한 검열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3. 한국




 




사진 4. 한국 장여경 진보네트워크 활동가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장여경 씨가 한국 정부의 인터넷 규제에 대해 발제하였다.


한국은 인터넷이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나라 중 하나이다. 작년 촛불시위의 확산에 인터넷이 크게 기여한 것을 계기로, 정부의 인터넷 표현물에 대한 법적 규제는 강화되고 있다.


한국의 인터넷상의 의사표현의 자유 침해는 방송통신위원회에 의한 행정조치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건전한 통신윤리’를 함양하기 위한 방송통신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인터넷상의 게시물이 삭제되는 경우가 빈번한데, 적절한 구제책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게다가 방송통신위원회의 삭제 권고 게시물 중에는 대통령에 대한 비판 게시물, 조중동에 광고를 게재한 기업의 목록이 포함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촛불시위 당시 동맹휴업을 제한한 문자메시지나 정부․언론을 비판한 게시물 때문에 누리꾼들이 형사소추를 당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특히 허위의 통신, 명예훼손을 이유로 한 경우가 많다.


이외에 국내외에 유명한 인터넷 실명제(선거기간 중의 전면적 실명제는 청소년과 성소수자의 참여 가능성을 크게 제약한다), 수사기관에 의한 빈번한 이용자 추적이 사이버 공간에서의 의사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 게다가 정부는 사이버모욕죄의 신설하고 인터넷 사업자로 하여금 감청설비의 구비와 모니터링을 의무화할 예정이어서 앞으로 누리꾼들의 의사표현의 자유는 더욱 심각하게 침해될 것으로 보인다.




4. 싱가포르









 


사진 5. 싱가포르 발표자 Mr. Martyn




그 자신이 정부비판적 영화를 찍었다는 이유로 탄압받은 경험이 있는 마틴 씨 씨가 싱가포르의 현황을 소개했다. 그는 싱가포르의 검열을 법률에 의한 1단계, 정보기관에 의한 2단계, 그리고 자기검열의 단계인 3단계로 나누었다.


1단계 검열로는 국내안보법, 신문 및 인쇄물 법, 방송법, 명예훼손, 선거법 등이 있다. 국내안보법에 따르면 정부는 기소 없이도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사람을 구금할 수 있다. 싱가포르의 모든 언론매체는 정부의 허가를 필요로 하고, 신문사의 주주 및 이사의 임면 역시 정부의 승인을 요하기 때문에, 싱가포르의 언론 매체들은 친정부 성향을 공공연히 드러낸다. 명예훼손 및 모욕 소송은 싱가포르에서도 정치지도자들에 의해 성공적으로 사용되어, 현재 싱가포르 내 정치적 표현에 대해 가장 심각한 위축효과를 초래하고 있다. 이것은 외국 언론들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이러한 양상은 사이버 공간에서도 다르지 않다. 모든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는 정부의 소유이거나 정부와 연관되어 있다. 싱가포르에는 미디어발전국이 있어, 웹사이트에 폐쇄명령을 내릴 권한을 갖는다.


2단계 검열은 정부, 특히 미디어발전국에 의해 이루어진다. 정부는 합법적으로 인터넷 사용을 감시할 수 있으며, 경찰은 영장이 없이도 모든 컴퓨터를 수색할 수 있는 반면에, 사생활보호에 관한 법률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이버상 반정부활동의 지도나, 야당 정치인에 대한 박해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3단계 검열은 내면화된 검열이다. 사람들은 정치적 견해가 감시․기록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감시의 대상이 될 수 있는 활동을 아예 기피하게 된다.




지정토론




다음 순서로 지정토론이 진행되었다. 토론에 앞서 토론자별로 중심 주제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상임이사는 의사표현의 자유를 곧 언론의 자유로 인식해온 전통적 관점이 오늘날 언론기관 외의 시민들의 정치․사회적 의사표시에 대한 규제의 한 요인이었음을 언급하였다. 따라서 일반 시민의 의사표현의 자유를 ‘커뮤니케이션의 권리’로 규정하고, 새로운 차원의 의사표현의 자유로서 주목하여야 함을 강조하였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명예훼손의 문제에 관해서는, 명예훼손이 사적 분쟁에 대해서만 적용되어야 하고, 사이버 공간의 특수성을 감안한 새로운 규범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사진 6. 지정토론중인 발제자와 토론자




최영묵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아시아권 국가들이 제도권 미디어들을 통치수단으로 여기고, 정부와 언론 간 강한 유대가 형성되어 왔음을 지적했다. 때문에 정치권력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권위주의적 지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터넷 미디어를 규제하게 되는 것이다. 아시아 국가들의 인터넷 미디어 규제 양상은 크게 모호한 내용의 법, 미디어 관련 국가기구, 시민 자신의 내부검열로 나뉜다. 이러한 정부의 억압에 대항하기 위해 정부의 권위적 규제와 대응되는 자율규제 시스템에 대한 고민, 인터넷 미디어의 특성을 고려한 정책 마련, 비판적 정보 소비자로서의 시민 개개인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언급했다.


세 번째 지정토론자인 국경없는 기자회의 뱅상 브로셀 씨는 ‘아시아에서의’ 인터넷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소개했다. 아시아에서의 인터넷은 두 가지 모델로 나뉜다. 하나는 중국을 중심으로 인터넷을 통한 경제발전과 정치적 사안에 대한 검열을 분리하는 모델이고, 다른 하나는 의견을 교류하는 장으로써의 인터넷의 자유를 보장하는 모델이다. 이것은 인터넷의 근본적인 특성을 지켜나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며, 대한민국이 중심이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모델은 완전한 인터넷 자유 모델이라고 보기 어렵다. 대한민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에서의 강력한 인터넷 통제-아동성범죄와 같은 명백히 필요한 규제 외의-는 정부에 의한 인터넷 모니터링과 같이 표현의 자유 원칙 자체를 위협하는 데 이르고 있다. 그럼에도 인터넷의 발전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이제 아시아 뿐 아니라 전세계가 통제와 검열의 모델 또는 완전한 자유가 보장되는 모델 중 하나를 선택할 기로에 놓여 있다.


마지막 지정토론자인 브레트 콜 씨는 인터넷이 범죄를 일으킨다는 일각의 우려에 대해, 전신이 도입될 때에도 같은 우려가 있었다는 점을 들어 인터넷에 대한 규제의 부당성을 주장하였다. 인터넷의 도입은 언론의 위치를 바꿔놓았다. 의문을 제기하고 진실을 밝히는 스스로의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다면 언론 역시 독자들로부터의 건전한 비판을 받게 된다는 점에서도 인터넷에 대한 과도한 규제는 바람직하지 않다.


위의 내용을 바탕으로 진행된 토론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언급은 한국의 인터넷에 대한 인식의 문제였다. 한국은 인터넷을 새로운 의사소통의 매개로서가 아니라 산업 발달을 위한 육성의 대상으로 여겨왔기 때문에 인터넷이 의사표현의 자유의 대상이라는 점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권위주의와 정부주도적 경제성장의 유물이 사이버 공간에서도 그 위력을 떨치고 있는 것이다.




질문과 답변, 특별보고관의 코멘트




다양한 참가자들의 질문이 있었다.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온 참가자가 있었다. 특별보고관의 방문 일정과 관련하여 동아일보에 특별보고관이 진보 성향의 단체들만 만나고 정작 법무부의 면담 요청은 거절하여 한국의 인권 상황이 왜곡되어 전달될 것이 우려된다는 기사가 게재된 후였기 때문에 더욱 눈길이 갔다. 그는 방송통신위원회가 ‘균형’을 유지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점과, 방송통신위원회 역시 언론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여야 한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동아일보의 위 보도가 다른 참가자의 질문에서 언급되었다. 한국에서 인권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좌파’의 것으로 인식되는 것에 대한 특별보고관의 생각을 묻는 질문이었다. 특별보고관은 인권은 좌와 우 중 어느 한 곳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사진 7. 전체참석자와 준비인원




느낀 점




우리나라 뿐 아니라 동아시아 각국이 공통적으로 모호한 인터넷 규제법의 자의적 집행, 행정기관에 의한 광범위한 인터넷 규제, 민․형사를 아우르는 명예훼손의 적극적(?) 활용,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국가의 강력한 인터넷 규제의지라는 문제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은 국가가 인터넷의 무한한 가능성을 모르거나, 전통적인 미디어와 인터넷의 차이점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국가는 인터넷의 무한한 가능성이 정부에 대한 비판으로-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 미디어에 대한 비판도-뻗어나갈 수 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인터넷에 대해 전방위적 규제를 행하고 있는 것이다. 즉, 기존의 미디어에 대해서는 권위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동반자적 관계를 확립했기 때문에 인터넷에 대해 가하는 것과 같은 강력한 규제가 불필요하다. 그러나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공간은 그 실체도 불명확하거니와 그 공간에 참여하는 사람의 수가 너무 크다. 따라서 인터넷의 가능성 내지 위험성만큼 국가의 규제의지가 강력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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