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많던 오후. 근일에 있었던 야간집회 금지 헌법불합치 판결을 이끈 주인공, 박주민 변호사를 뉴스레터 인터뷰의 첫 번째 인터뷰이로 만났다. 한사코 옥상에서 인터뷰를 하겠다는 그의 성화로 나선 것이었지만, 쪽빛 하늘을 배경으로 그의 모습을 담아 보니 ‘역시 이쪽이 나았겠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캐주얼한 차림에 성긴 머리를 휘날리는 모습이 한편 야인같으면서도, 말하는 매무새나 정연한 논리에서는 천상 심지곧은 변호사였던 박주민 변호사와의 짧은 만남. 눈만 맞춰도 들끓는 힘이 느껴지는 그에겐 숯한 만남조차 유쾌하게 만드는 노련함이 있었다.
– 야간집회 금지 헌법불합치 판결을 이끌어 내신 것, 축하드립니다. 그간 변호사님의 노력이 소기의 성과를 얻어냈다고 보는데 일단 기분이 어떠신가요?
12개월만에 결정이 났다. 예전에는 걱정도 많이 하고, 신영철 대법관이 헌법재판소장을 만났다는 풍문도 있고, 이 문제가 정치적으로 풀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좋은 소식을 예감하게 하는 몇가지 징조가 있어 기대를 했는데, 결과적으로 미흡한대로 위헌성을 확인해줬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다. 이전에도 몇가지 성과를 남기긴 했지만, 그 간의 성과 중에선 가장 의미있는 성과가 아닌가 생각한다.
– 그간의 경과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부탁합니다. 변론과정에서 가장 첨예했던 부분은 어떤 것이었는지요?
가장 큰 것은 법논리적 문제였다. 22조 2항에 의거해 현재의 규제가 헌법에 위반 된다 주장을 펼쳤는데, 상대측에서는 명기된 허가제가 행정적 허가제가 아닌 검열의 차원으로 접근해야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외국의 입법례에 대한 상반된 주장도 있었다. 상대측이 제시한 외국의 사례를 일일이 검토해보니 실제로 거의 시행하지 않고 있었다. 제시된 통계자료와 논문에 대한 검토를 거쳐 유효한 역공을 할 수 있었다. 그러한 것들이 설득력이 있었나 보다. 개인적인 자리에서 우리측 서면의 양과 질이 압도적이었다는 얘기도 전해들었다.
– 내년 6월까지 현행법을 유지하겠다는 검찰과 경찰 측의 입장 때문에 한동안 마찰을 피하기 힘들 것 같은데요, 박주민 변호사 님은 앞으로 이 사건에 대해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까?
위헌이 확인되었음에도 현행법을 유지하겠다는 주장은 공익을 수호한다는 기관이 할 짓이 아니다. 기가 찬다. 아마도 이들은 공익이 아닌 정권을 지킨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규제가 들어온다면 행정소송을 통해 싸우는 방법이 있다. 최근 효력정지 신청 소송에서 많이 이기고 있는데, 결국에 법개정 이후 무죄판결이 날 일이기 때문에 서둘러 내린 유죄판결이 무효할 것이라는 압박을 지속적으로 가할 생각이다.
– 민변 뉴스레터의 첫 번째 인터뷰이에 선정되셨습니다. 주변 분들의 많은 추천이 있었는데요, 한결같이 입을 모으시는 부분이, ‘민변에서 가장 일을 많이 하는 변호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일을 많이 한다는 생각은 안한다. 로펌일을 병행하다보니 좀 피곤해 보였나보다. 오히려 고생하시는 다른 민변 변호사님들을 보며 부끄럽고 죄송할 뿐이다.
– 박주민 변호사님의 학생시절이 궁금합니다. 그 때도 민변의 변호사로 활동하게 될 것을 예상하고 계셨나요?
물론 민변의 변호사가 되겠단 생각은 많이 했었다. 사실 법대생 시절에는 사시에 대한 생각은 없었다. 4학년 때 신도림의 철거촌에서 농성 투쟁을 한 적이있었는데, 구청장의 면담을 신청하고 10시간 넘게 눈을 맞으며 기다렸는데도 결국엔 만나지 못했다. 너무 분통이 터져, 변호사를 직위를 가지고 운동하겠다는 생각을 처음 갖게 되었다. 군에서 전역해보니 나이가 서른이었다. 때마침 IMF가 터져 부모님은 바로 취업할 것을 권했는데, 나는 1년만 시간을 달라고 부모님을 설득했다. 공부에 매진해 결국 1년 만에 1차를, 다음해에 2차를 통과했다. 애초부터 현직에 나갈 생각이 없어서 연수원 때부터 민변과 참여연대를 드나들었고 자연스럽게 민변의 변호사로 활동하게 되었다. 대체로 현재의 생활에 만족을 하고있는데 앞으로 로펌 생활과 병행해 나갈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많다.
– 곧 결혼을 앞두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먼저 진심으로 축하드리고요, 믿을만한 소식통에 의하면 아주 특별한 러브스토리를 가지고 계신다고 들었는데, 민변 뉴스레터의 독자들을 위해 조금만 들려주실 수 있으신지요?
(웃음) 회사에서 만나게 되었다. 나보다 더 열심히 사는 사람이다. 민주노총 법률원에 있다가 전교조 상근변호사로 옮겼고 일주일에서 서너번씩 날을 새가며 일한다. 내가 으스대는 꼴을 보지못하는 성격이라 늘 기가 죽어 살고 있다. 나에겐 거울과 같고, 늘 에너지를 내게 하는 사람이다. 앞으로 잘되었으면 좋겠고, 그 것을 위해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 본격적인 가을에 접어들어 연일 좋은 날씨가 계속되고 있는데요, 민변 활동 이 외에 요즘 가장 큰 관심사가 있다면 무엇이신가요?
요즘 ‘껍데기’가 되었다는 생각이다. 자꾸 뭔가를 써내기만 하고 언론과의 인터뷰만 계속 하니까, 아는 것 없는 껍데기가 되어가는 것 같다. 공부를 계속하면서 내실을 다졌으면 한다.
– 마지막으로 민변 뉴스레터 독자들을 위해 한마디해주시겠습니까?
최근 헌재의 결정 때문에 첫 번째 인터뷰 대상자가 된 듯하다. 민변의 ‘사서 고생하는’ 변호사들. 뜻깊은 고생이 될 것이라 믿고, 많이 지치만 힘내서 이런 좋은 일들이 계속되었으면 한다. 작지만 나도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
글_오대양(3기인턴/홍보)
사진_송영준(3기인턴/변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