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함께해 소중한 6개월을 마무리 하며.
-민변 노동위원회 2기 인턴 김현지
백지를 마주 앉기 전, 2기 인턴 카페 사진첩 속 사진들을 봤다. 낯섦과 설렘이 가득했던 오리엔테이션, 서툴지만 열심히 준비했던 월례회, “집에는 들어가자”던 뒤풀이 자리, 그리고 끊임없이 전화벨이 울리는 사무실에서의 하루.
찬찬히 살펴보며 어느새 웃는 날 발견한다. 이렇게 이들과 더는 함께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낯설게만 느껴진다. 마음 한구석이 아련하다. 마지막이라니.
2008년 12월 다시 돌아온 한국은 낯설었다. 바쁘고, 북적거리고, 정신없는 한국에서 나 혼자 부유했다. 이제 졸업인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고민이 들었다. 인턴 모집 공고를 보고, 망설임 없이 지원했다. 이곳이라면 문제에 대한 답을 주진 않더라도, 적어도 함께 고민해주지 않을까.
처음에는 선택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내가 하는 일들은 작고 소소했고, 사람들과의 거리는 가깝지도 멀지도 않았다. 하지만 3월 월례회가 끝나고 이어진 자리에서. 나는 내 선택이 맞았음을 확신했다. 내 주위 친구들과는 할 수 없는 이야기들. 개인의 신념과 양심, 가치와 현실의 충돌,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를 우린 얘기했다. 샛별이 뜨고 동이 틀 때까지. 그렇게 우린 매번 헤어지는 것을 그리도 아쉬워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찬찬히 보면 외모도, 개성도, 신념도 너무 다르다. 대화를 나눌수록 어쩜 이리 다른 사람들이 한곳에 모였을까 싶다. 이곳에 온 이유도 다들 다르다. 하지만 우리는 늘 즐거웠다. 누구도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려고도, 그것을 이해받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저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했다. 변호사와 간사와 인턴의 높낮이는 이곳에는 없다. 그저 진심으로 서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2009년 상반기는 대한민국 국민으로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것에 대해 고민을 하게 만든 때였다. 살고자 올라갔던 사람들이 망자가 되어 내려오고, ‘바보’라 불리던 대통령이 우리 곁을 떠났다. 경제를 살려야 한다며, 현 대통령을 뽑은 우리의 선택이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6월 10일. 그날을 잊지 못한다. 검은 옷을 차려 입고, 광화문 광장에 모인 우리는 서럽게 울었다. 그리고 탁자에 둘러앉아 말없이 술을 따랐다. 그분을 끝까지 지켜주지 못함을 죄스러워하며 우린 지금을 잊지 말자고 다짐했다. 혼자라면 감당할 수 없던 충격과 슬픔을 함께였기에 견딜 수 있었다. 지금 이때, 이곳에 이들과 함께 임을 감사했다.
분노는 누구나 가지는 감정이다. 무소불위의 권력이 휘두르는 칼에 약자가 죽어나갈 때 분노를 느낌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는 것. 분노를 가슴 한편에 묻어 놓고 행동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
이곳엔 이를 실천하는 사람이 있었다. 세상이 공권력에 의해 죽은 철거민을 잊어갈 때, ‘경찰 기록’을 공개하라 요구하는 사람들. 태안 앞바다를 뒤덮은 기름으로 가슴이 까맣게 타버린 어민들을 위해 몇 천장의 서류를 보고 또 보는 사람들. 촛불을 들었다는 이유로 국민에게 벌금을 부과하는 국가의 부당함을 밝히는 사람들. 해고는 살인이라며, 노동자도 사람이라며, 지상의 섬 평택 공장 앞에서 물을 공급하라고 외치는 사람들.
이제 수료식만 앞둔 지금, 난 내 고민에 대한 답을 찾았다.
답은 이곳에 있었다. ‘사람’을 오롯이 마주 대하는 것, 그들과 진심으로 소통하는 것, 그들과 함께 희망을 노래하는 것. 결코 좌절하거나 무릎 꿇지 않는 것.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해 “사람이 하늘” 이라는 이 명제를 잊지 않고 살아갈 것이다.
고맙습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변호사님, 간사님, 그리고 소중한 우리 2기 인턴 동기들. 당신들과 함께한 6개월은 진정 행복했습니다.
* 민변 2기 인턴 수료식은 8월 25일 화요일 저녁 6시에 진행됩니다. 6개월간 민변을 위해 기꺼이 사서 고생해준 인턴들을 위해 많은 참여와 격려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