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자전거 일주 여행기

2009-08-20 197

가족과 함께 제주도 230km 자전거 일주 여행기


[김기중 변호사]



계기


비행기 마일리지를 사용하기 위해 엉겁결에 제주도 왕복 비행기를 예약했다. 날로 커가는 아이들이 중딩만 되도 놀아주지 않는다는 사무실 선배 변호사들의 경고를 그대로 믿고, 아직 초딩인 아이들과 함께 무엇인가 특별한 경험을 해야겠다고 생각하여, 요즘 제주에서 유행하고 있다는 자전거 일주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일단 비행기부터 예약해 버렸다.


한강 고수부지로 접근하기 쉬운 곳에 살고 있어 아이들과 함께 가끔 자전거를 탔다. 아이들과 함께 꽤 먼 거리를 다녀오기도 하였으나, 그래도 고작 20km정도이다. 총 주행거리가 약230km이고, 어른들 속도로 3박 4일을 꼬박 자전거를 타야 하는 여정은 아이들에게 그렇게 만만한 거리는 아니고, 그 아이들을 챙겨야 하는 어른도 마찬가지. 그래서 놀멍쉬멍 가기로 하고, 일정을 5박6일로 넉넉하게 잡았다.


준비


제주 자전거 일주는 말 그대로 제주시에서 시작하여 서쪽 또는 동쪽으로 일주도로나 해안도로를 이용하여 한바뀌 돌아오는 여행이다. 몇 년전에 절친인 조변호사로부터 들은 적은 있으나, 실제로 정보를 검색해보니, 생각보다는 훨씬 많은 사람들이 수 년전부터 이미 제주도를 자전거로 완주하고, 그 경험담을 인터넷에 올려두고 있었다. 제주에서도 자전거도로를 확충하는 등 지원하고 있었으며, 제주시에서 자전거를 대여하는 곳만 서너곳에 달하고, 자전거 일주에 관한 정보를 교환하는 카페도 여러 개다.


대략의 여정은 아래의 제주 지도에서 섬의 둘레를 도는 굵은 도로(일주도로)를 따라가되, 군데군데의 해안도로(아래 원 표시 부분)를 경유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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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자전거여행에 관한 무척 많은 정보에 일단 안심하였으나, 문제는 대부분의 여행기가 대학생, 중고등학생들 단체들의 여행이거나, 가족여행이더라도 중고딩 자녀들과의 여행이고, 초딩 2명을 포함하는 4인 가족이 자전거 일주를 하였다는 흔적을 찾기는 어려웠다. 초딩 2명의 4인 가족이 일주를 할 때 겪게 될 어려움을 예측할 수 없으니 불안하였으나, 달리 방법은 없어, 여러 여행기를 섭렵하느라, 여행 준비에 많은 시간을 들일 수밖에 없었다. 워낙 여러 여행기를 읽다보니,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이미 여행을 다녀온 듯한 착각을 할 정도였다.


첫 번째 어려움은 ‘짐’의 크기를 줄이는 일이다. 자신의 몸으로 자전거와 짐을 운반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짐을 갖고 다닐 수는 없다. 각자 자신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 챙기고, 각자의 짐은 각자가 책임지며, 공통의 짐은 나의 몫으로 하였다. 여행기에 적혀있는 대로 매일 빨래를 하기로 하고, 각각 여벌의 옷 한 벌, 면수건과 스포츠타월 1장, 속옷와 양말 각 2벌 등이 기본적인 짐이다. 다만, 갈아입을 옷은 쉽게 마를 수 있는 얇은 옷으로 준비했다. 하지만, 미련 버리기는 쉽지 않은 일이라, 해변용 깔개, 비옷, 우산, 필기도구, 책 등 하나둘 넣다보니 4개의 가방이 빵빵하게 차버렸고, 빵빵한 가방을 자전거에 싣고 다니느라 고생했다. 미련을 버리는 것, 인생의 화두다.


두 번째 어려움은 4대의 자전거가 일렬로 차량이 다니는 도로를 주행하는 것은 위험하므로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다. 어른과 달리 아이들은 돌출행동을 할 수 있다. 위험이 가장 적은 도로를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인터넷 포털 DAUM이 제공하는 ‘로드뷰’라는 서비스를 발견했다. 제주도의 구석구석을 차량으로 촬영한 사진을 제공하는 서비스이므로, 예정된 자전거 여정길을 ‘로드뷰’로 따라가 보면서, 여행기에서 추천한 코스라도 아이들과 함께 다니기에 너무 좁은 도로인 듯하면 제외하였다. (하지만, 실제로 가보니 갓길이나 자전거용 도로가 사진보다는 훨씬 넓어 거의 문제되지는 않았다.)


세 번째 어려운 점은 지도에서는 단순해 보이는 길이라도 ‘로드뷰’로 도로를 탐색하다보니 군데군데 갈림길이 있어, 길을 헤맬 우려가 있었다. 길을 잃으면 아이들에게 체면을 구길 뿐만 아니라, 한번 잘못 간 길을 자전거로 되돌아오는 일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을 것이다. GPS가 내장된 스마트폰을 사고, 스마트폰에 설치하는 휴대용 네비게이션 소프트웨어를 구입하여 해결하였다. 비록 십 수만원의 투자비가 들었지만, 네비게이션은 정말이지 유용하게 써먹었다. (그래도 한번은 잘못 길로 접어들어 약3km를 되돌아 가야했고, 가족들의 원성은 하늘을 찔렀다.)


네 번째로 크게 고민했던 부분은 숙소 예약 여부이다. 7월 말의 성수기라 숙소를 예약하지 않고 무작정 다니다 숙소를 찾지 못할 우려가 있는 반면, 자전거 펑크, 우천으로 멀리 가지 못하는 경우 등 변수가 많은 자전거 여행의 특성상 예약한 숙소까지 예정된 시간에 도착한다는 보장이 없다. 유명한 관광지인 첫째 날의 협재해수욕장과 둘째 날의 중문관광단지 숙소만 예약하고, 이후의 숙소는 예약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적절한 선택이었다. 셋째 날 자전거에 펑크가 나고 넷째 날 폭우로 인하여, 일정이 꼬박 하루 늦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래 계획은 4박 5일만에 일주를 마치고, 마지막 1박 2일의 일정은 제주시 근처의 휴양지에서 쉬는 것이었는데, 꼬박 5박 6일을 꾸준히 전진해야만 했다.)


제주시에서 협재해수욕장(1박)까지


제주시 탑동공원 근처의 자전거 대여점에서 시작하여 용연, 용두암, 용두암 해안도로, 일주도로를 잠깐 탄 후 다시 하귀애월 해안도로를 거쳐 한림에 있는 협재해수욕장까지 가는 약40km의 일정이다. 대략 아래 지도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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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여행의 출발점인 용두암해안도로. 젋은 라이더들은 도로로 씽씽 주행하는데, 우리는 인도로 설설 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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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처음 만나는 일주도로. 일주도로는 거의 전 구간에 자전거 도로가 설치되어 있어, 주행에 어려움이 없다. 다만, 자동차에 의해 옆으로 날린 자그마한 돌, 쇠붙이 등이 편안한 주행을 방해하며, 아래 사진처럼 자동차에게는 아무 것도 아니나 자전거에게는 엄청난 오르막이 많아 아이들 불평이 하늘을 찔렀다. 위 사진도 평지처럼 보이지만, 상당한 오르막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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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아름다운 해안도로로 뽑힌 하귀애월해안도로. 우리는 일주도로 주행의 속도에 취해 해안도로 입구를 놓쳐 그냥 지나쳤다.
(이상의 ‘도로’ 사진은 네이버 카페 ‘제주도 여행 자전거로 떠나자’에서 가져왔다. 첫 날이라 사진을 거의 찍지 못했다.)


일주도로를 부지런히 달려 협재해수욕장의 숙소에 오후 4시 30분경 도착. 11시 30분경에 출발하였으니, 3시간 이내에 올 수 있는 거리를 5시간(점심시간 포함)에 걸쳐 왔다(평균시속 10km 정도).
아이들을 해수욕장에 풀어놓고, 어른들은 번갈아 아이들을 보면서 빨래와 샤워를 하며 하루를 정리했다. (빨래는 생각보다 잘 마르지 않는다. 밤새 선풍기로 말려야 했고, 그나마 양말과 속옷은 마르지 않았다. 겉옷뿐만 아니라 양말과 속옷도 면소재가 아니라 스포츠용 쿨맥스 소재로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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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비양도가 보이는 숙소에서. 협재는 석양이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하나, 구름이 잔뜩끼었다.


협재에서 중문(2박)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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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재해수욕장 숙소에서 고산, 대정의 일주도로 약30km를 거쳐 송악산, 산방산의 난코스를 지나 중문까지 약50km를 가는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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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협재-대정 사이의 일주도로에는 넓은 자전거 도로가 있다. 신나게 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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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송악산 가는 해안도로도 비록 좁은 도로지만 자전거가 다니기에 충분한 갓길이 있다. 송악산부터 성산까지 제주도 남쪽 전 구간은 올레길과 겹쳐, 올레꾼들(사진 왼쪽 걷는 사람)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O 제주자전거여행자들에게 악명높은 산방산 가는 길. 자전거를 끌고 한참을 올라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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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산방산에서 중문가는 길에는 산방산 올라가는 길과 유사한 수준의 오르막길이 2개 더 있다. 산방산길보다 경사도는 조금 낮으나 무척 긴 첫 번째 오르막길을 마친 후 쪼그려 앉아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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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문 숙소에 5시경 도착한 후 중문을 관광하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숙소에서 빨래만 하고 그냥 쉬었다. 협재에서 10시쯤 출발하였으니, 점심식사, 산방산 관광을 포함하여 7시간쯤 걸렸다.


중문(2박)에서 성산(4박)까지 2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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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문 이후부터는 서귀포시만 지나면 어려운 구간도 없고 몸이 이미 적응하여 순조롭다. 처음 이틀동안 가족들을 괴롭혔던 엉덩이 통증도 3일째부터 참을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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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문에서 주상절리대를 들르며 여유있게 관광하고 라이딩을 즐기던 중, 내 자전거에 펑크가 난 것을 뒷늦게 발견했다. 다른 라이더에게 펌프를 빌려 일단 바람을 넣고 가족을 두고 혼자 중문으로 가 펑크를 떼우고 돌아오느라, 오전이 지나가버렸다. 3일째 목표지점인 표선해수욕장까지는 무리이므로, 서귀포시 관광은 포기하고 정방폭포와 쇠소깍을 주마간산격으로 구경하고 비교적 큰 도시인 남원을 목표로 달렸으나, 남원에서 한참 못미친 쇠소깍을 지날 즈음에 거의 해가 지고 있다.


빨리 숙소를 찾아야 하는데, 그 많던 민박집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어스름한 저녁 무렵을 한참 달려 도착한 한적한 마을이 공천포다. 한적한 마을에 어울리는 허름한 민박에 자리를 잡고보니, 한적함이 참 좋고 깔끔하기도 한 올레꾼들의 숙소이다(이 날 점심은 올레꾼들 전용 점심메뉴를 개발했다는 풍림콘도에서 ‘올레정식’을 먹었다. 제주 올레길은 제주를 바꾸고 있다). 허름한 마을식당에서 허름한 저녁을 떼우고 허름한 마을길을 산책하고 용천수가 콸콸 쏟아나는 포구의 검정 모래사장을 걸으니, 참 좋다. 정해진 여정이 없이 구석구석을 다닐 수 있는 자전거 여행의 맛일 듯하다.
 
O 공천포 마을의 식당으로 저녁먹으러 가는 길


공천포에서 4일차 출발을 하고 보니 아침 8시 30분. 갈수록 출발시간이 빨라진다. 표선까지 약30km를 2시간30분만에 주파. 이제 괘도에 올랐다. 오후에 성산을 지나 세화까지 갈 수 있겠네 하며, 표선해수욕장의 아름다운 모래사장을 바라보며 즐거운 점심을 먹는데,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그것도 억수같이 쏟아진다. 하, 어쩌나. 조금 더 가면 있는 김영갑갤러리도 들어야 하는데….


그냥 비를 맞으며 가기로 했다. 가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미 중문에서 자전거 펑크 때문에 한 나절을 날렸고, 제주시 근처의 바닷물 빛깔이 예쁘다는 함덕해수욕장에 아이들을 한 나절 이상 풀어놔야 아이들의 스트레스를 풀고 돌아갈 수 있기 때문에, 적어도 성산까지 20km 이상을 가야했다.


가방을 비닐커버로 감싸고, 비옷을 입되 자전거 페달을 밟을 수 있도록 다리 부분을 잘 갈무리한 후, 출발하였다. 빗길 자전거 주행은 위험하다. 고무브레이크가 바퀴를 제대로 잡아주지 못하고, 브레이크를 잡더라도 바퀴의 타이어가 빗물에 미끄러진다. 속도를 낼 수 없다. 시속 10km 이하로 엉금엉금 빗길에, 그것도 맞바람을 받으며 달렸다. 빗물이 피부를 아프게 때리고 흘러내린 빗물이 눈을 따갑게 한다. 열심히 달렸음에도 20km도 되지 않는 거리를 가는데 4시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성산에서 중급 수준의 여관에 짐을 풀었더니, 비에 홀딱 젖은 우리를 본 마음씨 좋은 여관 아주머니는 빨래를 해 주시고, 빨래가 마르도록 방에 난방을 넣어주겠다고 한다. 여행 중 가장 고마웠던 순간. 빨래를 하고 말리지 않았다면, 다음 날 젖은 옷을 그대로 입고 가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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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차는 거의 없고 해변 경치가 좋은 표선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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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도로 옆 주택 처마에서 잠시 비를 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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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많은 물을 마시는데 비 때문에 땀을 흘리지 않으니, 계속 소변이 마렵다. 어쩔 수 없이 길가에서… (비오는 데 선글라스? 선글라스를 쓰지 않으면 바람에 날린 빗물이 눈을 때린다. 비글라스!)


성산에서 함덕(5박)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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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에서 8시에 출발하여 성산일출봉, 해녀박물관 등 여기저기 들르고 거의 해안도로로 가면서도 함덕해수욕장에 4시에 도착하여, 해변에 아이들을 풀어놓고 늦게까지 놀 수 있었다.



차가 거의 없는 아래 사진과 같은 환상적인 해안도로를 즐길 수 있는 구간이다. 다만, 50km가 채 되지 않는 구간인데, 자전거 한대가 또 펑크나는 바람에 1시간 정도 지체되었다. 다행히 근처에 자전거 대여소와 제휴한 게스트하우스가 있어, 다른 자전거로 교체하여, 쉽게 해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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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덕에서 제주시 자전거 대여소까지 마지막 날


함덕해수욕장에서 자전거 대여소까지 20여km. 놀면서 가도 되는 거리.


멋있게 보였는지 아이들이 한번 해 보자고 하던 바다 낚시를 하면서(낚시대여소가 있다), 오전을 보내고, 11시 30분쯤 출발하여 자전거 대여소에 2시쯤 도착 후 자전거 반납.


제주시 구간에서는 거의 인도로만 달리느라 시간이 오래 걸리고, 좋지 않은 인도의 바닥 상태 때문에 약간의 어려움은 있었으나, 구간이 길지 않아 그런대로 참을만하다. 그래도 대부분의 인도 구간을 자전거가 다닐 수 있도록 아스콘으로 포장하였고, 인도의 입구와 출구에 턱을 없애는 등 자전거 길에 대한 제주도의 노력이 돋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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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폼만 멋있는 가짜 태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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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무사히 완주. 큰 불평없이 잘 따라와 준 아이들과 처가 무척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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