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눈치보기로 감독 책임 내던진 금융위원회
1. 금융실명법과 특정금융거래보고법 등 현행법을 상습적으로 위반하면서 삼성그룹의 조직적인 차명비자금 관리를 주도한 삼성증권에 대해 금융위원회가 어제(3일), `기관경고`라는 솜방망이 징계를 내렸다.
금융위원회는 재벌 총수 일가의 세금포탈과 경영권 승계를 위해 중대 범죄를 저지른 삼성증권과 이에 연루된 우리은행 등 금융기관들에 대해 형식적인 경징계로 면죄부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관련 사건 형사재판의 대법원 판결이 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조치를 취하는 ‘눈치보기’ 행정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상조 한성대교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회장 백승헌 변호사), 민주주의법학연구회(회장 서경석 인하대 교수 ), 참여연대(대표 임종대 청하)는 재벌의 눈치를 보느라 본연의 임무를 저버린 금융감독 기관의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행태에 공분을 금할 수 없다.
2.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비자금 의혹 제기와 관련해 삼성특검이 삼성증권에 대한 포괄적 검사를 금융감독 당국에 요청한 것은 2008년 2월 21일이었다. 당시 금융감독원은 일주일 여의 줄다리기 끝에, 당시 삼성 측이 차명계좌임을 시인한 그룹 임원 4명 명의의 10여개 계좌만을 검사하겠다고 하여 빈축을 샀다. 삼성증권을 비롯한 금융기관의 업무 및 재산상황에 대한 검사는 법(「금융감독기구 설치 등에 관한 법률」 제37조(업무) 제1호)으로 규정된 당연한 권한임에도 불구하고, “포괄적 검사를 할 경우 특검 수사 이후 삼성이 금감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이 당시 언론보도를 통해 전해진 금감원의 해명이었다.
이후 2008년 4월17일 발표된 삼성특검의 수사결과 차명계좌로 확정된 것만 총 486명 명의의 1,199개 계좌에 달하며 그 중 상당 수가 삼성증권 계좌로 확인되면서, 삼성증권이 삼성그룹의 조직적인 차명계좌 개설⋅관리에 깊숙이 관여한 것이 분명히 드러났다. 수사기관에 의해 불법행위가 여실하게 드러난 금융기관에 대해 금융감독 당국이 검사결과와 제재조치를 확정해 발표하기까지 꼬박 1년 2개월여가 소요된 셈이다. 이는 관련 형사재판에서 대법원 확정판결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려 재판결과에 따라 제재수위를 조절하려 한 전형적인 눈치보기의 결과라고 해석될 수밖에 없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금융실명제 위반이라는 지극히 단순하고 명백한 위법행위에 대한 검사결과 발표가 지연된 이유에 대해 금감원은 “ 워낙 계좌가 많고 방대했기 때문에 검사에 시간이 많이 걸렸기 때문”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직무유기와 무책임의 결과를 무능력으로 분칠하는 금융감독 당국의 행태는 감독기관으로서의 권위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라고 밖에 달리 볼 길이 없다.
3. 징계 수위에 있어서도 금융감독 당국은 감독기관으로서의 존재 의의를 스스로 부정했다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금융위원회는 금융기관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방기한 채 지배주주의 사적 이익을 위해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범죄를 저지른 삼성증권에 대해 ‘기관경고’의 솜방망이 징계를 내리는데 그쳤다. 당연히 인가취소나 최소한 영업점 폐쇄 등 엄정한 제재조치를 통해 법령의 엄중함을 확인하고 훼손된 금융질서를 바로 잡아야 했음에도 금융감독 당국은 또 한번 삼성 앞에서 작아지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스스로 존재근거를 부정한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또 공적자금이 투입된 우리은행 등 이 사건에 연루된 다른 금융기관들이 금융기관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법령 준수의무를 저버리고 위법행위에 연루된 것에 대해서도 경징계에 그쳤다.
법령에 의해 금융기관에 대한 검사와 제재권한을 정당하게 부여받은 금융감독당국의 책무는 공평무사한 시장 감독을 통해 건전한 금융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다. 기본 책무조차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감독 당국은 최소한의 신뢰를 잃었고 금융선진화를 논의할 자격을 완전히 상실했다. 사익추구를 위해 중대 범죄를 저지른 재벌 금융계열사와 금융기관들에 대해 형식적 제재조치로 사면해 준 금융감독 당국을 시장이 어떤 근거로 신뢰할 수 있단 말인가. 금융감독 당국은 이제 한국 금융산업 선진화의 걸림돌로 전락하고 말았다.
6.5 민변 공동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