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가난을 짊어지고 망루에 오른 철거민들이 불에 타 넘어지는 망루와 함께 스러져 죽었고, 진압명령만을 수행하려 위험천만한 상황에 내 몰렸던 젊은 경찰관도 한명 죽었습니다.
안전수칙 조차 지키지 않고, 세녹스라는 인화물질에 불이 붙은 줄 뻔히 알면서도 물대포만 쏟아 부은 경찰 지휘책임자들은 단 한명도 처벌되지 않고, 심지어 서울경찰청장은 두 차례의 서면조사만으로 면죄부를 받았습니다. 반면, 망루에서 아버지를 잃은 용산4구역 철대위 이충연 위원장은 다친 몸으로 경찰에 끌려가 구속 수감되었습니다. 검찰은 사건의 실체를 밝히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편파적인 수사를 통해 오히려 사건의 진상을 덮어버렸습니다.
철거민들을 망루에 오르게 한, 근본적인 문제는 더욱 이야기 되지 않습니다. 잔인했던 용역깡패들의 폭력도, 용산4구역 재개발 사업 뒤편에 거대한 이윤을 남기면서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시공사의 잘못도 거론되지 않습니다. 결국 그들을 망루에 오르게 한 진실은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의 진상조사 보고회가 끝나지 않는 숙제의 또 다른 시작임을 알립니다.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고, 우리들의 진상조사 작업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1.
2009. 1. 20. 아침 서울 용산지역의 한 건물 옥상에서 망루농성을 하던 철거민들을 경찰이 강제진압하는 과정에서 망루에 화재가 발생하여 철거민 5명과 진압에 나선 경찰특공대원 1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인권단체연석회의,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참여연대는 ‘용산 철거민 사망사건 진상조사단’을 꾸려 진상조사활동에 들어갔다. 경찰은 강제진압과정에서 희생자가 발생하였기 때문에 그 책임을 면하기 위해 은폐조작을 시도할 것으로 예상되었고 실제 경찰의 말바꾸기와 비상식적인 발언은 계속되었다. 검찰은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자세로 진실을 파헤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경찰에 면죄부를 주는 수사결과를 내놓을 거라는 우려가 있었다. 진상조사단은 사건 초기에 신속하게 진실을 규명하고 사건의 진실이 은폐되거나 수사가 왜곡되지 않도록 감시, 견제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했다.
진상조사단은 연행된 철거민들, 현장주변 상인들, 유족들의 진술을 듣고, 시신의 상태를 확인하였으며, 각종 동영상도 세밀히 점검하였다. 이러한 조사를 통해 성급하게 진압에 나설 정도로 철거민들의 농성이 시민들의 안전에 위협적인 상황이 아니었고 농성을 풀기 위한 충분한 설득과 대화노력이 없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런데도 철거민들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아무런 안전조치없이 농성시작 하루만에 경찰이 전격적으로 강제진압에 나선 것이 대형참사를 일으킨 원인이었다고 결론지었다. 경찰은 망루안에 인화물질이 가득 들어 있었고 1차 화재가 발생하고 진화된 바 있었기 때문에 추가 화재발생위험이 높다는 사실을 명백히 인식하고서도 진압을 강행하였다. 인화물질로 인한 화재의 진압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여 화재진압효과도 없는 물대포만 쏘았을 뿐 불을 끄지 못했다. 퇴로를 차단한 채 망루안에서 토끼몰이식 진압을 할 경우 사상자가 발생하리라는 것은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경찰 스스로도 철거민들이 극단적인 행동을 할 우려가 있다는 예상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철거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최대한 고려하여야 할 업무상 주의의무를 위반한 채 무모하게 진압에 나섰다. 떼법문화청산과 법질서 확립을 부르짖으며 공안정국을 조성해온 이명박 정부아래서 국민의 생명마저 가볍게 여기는 강경한 공권력의 집행이 불러온 비극이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사용되어야 할 공권력이 오히려 국민의 생명을 빼앗아버린 흉기로 변해버린 것이다.
진상조사단은 강경진압을 승인한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을 비롯한 경찰 지휘관들을 업무상과실치사상혐의로 고발하였다. 진상조사단은 5차례의 기자회견을 갖고 진상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검찰이 사건을 축소하거나 왜곡하지 않고 철저히 수사하도록 촉구하였다. 그러나 검찰수사가 봐주기수사에 그칠 것이라는 애초의 우려가 결국 현실이 되고 말았다. 철거민들은 대부분 기소한 반면 경찰의 과잉진압에 대해서는 형사책임을 묻지 않았다. 검찰은 진상조사단이 처음부터 수사를 촉구한 용역들의 불법폭력을 무시하다가 수사막바지에 MBC PD수첩이 공개한 용역들의 불법행위 동영상을 외면할 수 없어 허둥지둥 수사발표를 연장하는 희극을 연출한 끝에 가벼운 죄목으로 기소하는데 그치고 말았다. 용역들의 불법폭력을 처벌하면서 이들의 행위를 지시하거나 묵인한 경찰의 책임은 묻지도 않았다. 앞으로 국회의 국정조사나 특별검사의 수사를 통해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을 물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하다.
진상조사단은 현장을 접근할 수 없었고 검찰이나 경찰, 소방서의 비협조로 이들 기관의 자료를 보거나 관련자들의 진술을 들을 수 없어 진상규명에 일정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그동안 조사한 내용과 모은 자료등을 담아 부족하나마 최종보고서를 내놓게 되었다. 강경 진압의 위법성과 용산참사의 정확한 원인, 검찰수사의 문제점과 남아 있는 의혹, 철거민들을 극단적으로 내모는 재개발제도의 문제점과 대책, 용역폭력과 시공사문제 등을 포함하였다. 지금은 은폐되어 있지만 언젠가 드러날 경찰의 과잉진압과 검찰의 부실수사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한 기초자료로 남기고자 한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도외시한 공권력의 행사가 어떤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지를 기록으로 남겨서 다시는 위법한 공권력의 집행으로 고귀한 생명이 희생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도 담았다. 다시 한 번 용산참사로 희생된 분들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