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은 미쇠고기 위헌확인 기각결정에 개탄한다

2008-12-26 222

이미 뉴스를 통해서 확인하셨겠지만, 헌법재판소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있어서 위헌확인에 대해 판단을 내려달라고 한 국민 96,000여명의 의견을 기각했습니다. 민변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올바른 법을 세우기 위해 노력하는 법률가 집단으로써, 그리고 이번 소송에서 많은 국민들의 지지와 함께 위헌 신청을 주도했던 변호사로써 헌재의 결정에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아래는 민변의 이번 사건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입니다. [관련 언론보도]

오늘 헌법재판소가 미국산쇠고기 위헌확인 사건에 대하여 한 기각 결정은 국민의 기본권 보장의 최후 보루인 헌재가 스스로 자신의 권한을 다하지 아니한 것으로서 심히 유감이다. 지난 6월 96,000여 명의 국민소송 청구인단은 미국산쇠고기 고시의 시행으로 인해 침해되는 국민의 건강권, 행복추구권, 국민주권과 적법절차의 원리의  침해를 바로 잡아줄 것을 바라는 마음으로 헌재의 문을 두드린 것이다.

청구인들은 농림부장관의 고시 강행으로 인해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는 국민의 기본권과 헌법질서가 헌재에 의해 온전히 회복될 수 있으리라 신뢰하였다. 그러나 헌재는 오늘 이 사건에 대하여 기각 결정으로 답함으로써 헌재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배반하였다.

#1.
헌재는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유통되는 경우 소해면상뇌증에 감염된 것이 유입되어 소비자의 생명·신체의 안전이라는 중요한 기본권적인 법익이 침해될 가능성이 있음을 전적으로 부정할 수 없다”고 보면서도 “이 사건 고시가 쇠고기 소비자인 국민의 생명ㆍ신체의 안전을 보호 할 국가의 헌법상 의무를 위반한 조치임이 명백하다고 할 만큼 전적으로 부적합하거나 매우 부족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합헌 결정을 하였다.

그러나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생명권과 신체의 안전은 인간의 존엄성과 다른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가장 핵심이 되는 권리이다. 생명권과 신체의 완전성이 보장되지 않는 한 다른 기본권 보장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는 생명권과 신체의 안전에 대한 소극적 침해금지만으로 만족하여서는 안 되며 생명권과 신체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적극적인 보호조치를 다하여야 할 헌법상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헌재는 이 사건 고시에 대한 위헌을 판단하면서 “국가가 최소한의 보호조치를 취하였는가”라는 잣대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이 사건 고시가 체감적으로 완벽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국민의 생명, 신체의 안전을 보호하기에 전적으로 부적합하거나 그 보호의무를 명백히 위반한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러나 이 사건 고시가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생명권과 신체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완벽하지 못한 것이라면 그 자체로서 위헌임을 면치 못하는 것일 뿐 합헌이라는 판단을 받을 수는 없는 것이다.

#2.
헌재의 오늘 결정은 법령 헌법소원 사건 등에서 헌재가 취하였던 일반적 절차 진행과 비교해보더라도 이례적인 것이다. 그동안 헌재는 이 사건과 같이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사건에 대하여는 공개변론을 열어 당사자, 이해관계인, 참고인의 진술을 듣는 절차를 진행하였다. 이 사건은 주지하다시피 광우병(BSE)의 위험성과 발병원인, 미국 내 육류작업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광우병 통제조치의 적절성, OIE(국제수역사무국)의 육상동물위생규약과의 관계 등 미국산 쇠고기의 안정성과 관련한 전문가들의 진술이 사건 심리를 위해 필수적인 사안이었다.

최근 보도를 통해 확인된 것처럼 이 사건 고시 시행 이후 수입된 미국산 쇠고기 검역 과정에서 미국 내 전체 작업장의 60%에 이르는 작업장이 검역불합격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이러한 결과는 미국 내 육류 작업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광우병 통제를 위한 검역조치가 지극히 미흡한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므로 헌재는 최소한 위헌 여부를 판단하기에 앞서 국내외 광우병 전문가, 국내 검역기관 및 미국내 육류작업장 운영실태에 대한 전문가 진술을 공개변론을 통해 청취함이 마땅한 것이었다.

그런데 헌재는 청구인들의 공개변론신청이 있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서면심리만으로 합헌 결정을 하였다. 이는 헌재가 이 사건에 관한 국민적 관심을 의도적으로 무시한 것이며 이 사건에 대한 충분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3.
헌재의 오늘 결정은 모든 국가 통치권은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한 것이고, 헌법재판에서 제외되어야 하는 국가작용의 분야는 있을 수 없다는 헌법 원리를 스스로 부인한 것이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헌법재판소는 단지 제한적으로만 입법자 또는 그로부터 위임받은 집행자에 의한 보호의무의 이행을 심사할 수 있는 것”이라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사건 고시는 국회의 사전적 사후적 통제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고시의 형태를 빌어 행정입법된 것이므로 사실상 이에 대한 헌법적 통제는 헌법재판소의 적극적 권한행사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헌재는 이 사건 고시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지 여부를 적극적으로 판단하여야 함에도 단순한 법인식 작용에서 단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는 형식적 법률판단에 머물렀다. 헌재가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한 최후의 기관인 점을 감안하면 오늘 헌재의 결정은 헌재 스스로 법치주의의 공백 상태를 자초한 것이다.

청구인들은 헌재의 오늘 결정으로 이 사건 고시에 대한 헌법적 쟁점이 완전히 해소되지 못하였다는 점에 주목한다. 우리는 향후 미국산 쇠고기 고시에 대한 개정 및 고시 시행으로 인하여 침해되는 국민의 건강권 보호, 검역주권의 회복 등 이 사건 고시의 위헌적 요소의 제거를 위한 행동을 계속할 것임을 천명한다.

2008년 12월 26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회장  백 승 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