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격주로 화요일마다 개최되는 공부모임에 들어갔다. 이번 주는 때가 때인 만큼 “케인즈 & 하이에크 : 시장경제를 위한 진실게임”이라는 책을 다 같이 읽은 책으로 선정하였었다. 케인즈는 1929년 대공황을 극복하고 자본주의가 번성하도록 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경제학자로 알려져 있다. 그를 경제학자라고만 정의하는 것에 대해 이견을 가진 사람도 많은 것 같은데, 그가 철학이나 정치, 인문학과 예술에도 조예가 깊은 박학다식의 표본이라 여기기 때문으로 보인다. 잘은 모르지만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점이 있다. 그리고 하이에크 역시 경제학자라는 제한된 딱지로 분류하기가 부족하다 생각될 정도로 박학다식한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역시 자본주의의 위기에 직면하여 이를 갱생하도록 하는 데 있어 커다란 역할을 했다고 하는데, 케인즈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대공황부터 2차대전을 거쳐 미국과 서유럽 중심의 자본주의가 소위 황금기를 누리던 소위 케인즈주의의 승리라고 지칭되던 시절에도 자유방임 또는 시장의 우위를 내세우는 주장을 일관되게 부르짖으면서 케인즈주의에 맞서 지속적으로 사상투쟁을 벌여왔고 결국에는 대처리즘과 레이거니즘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가 30여년간 지구를 지배할 수 있도록 하는 데 1등공신이라 여겨진다. 그런데 지금 전 세계 차원의 경제위기에 직면하여 이 두사람 중 누가 궁극적으로 옳은가, 그리고 누구의 정책을 취할 것인가가 일단의 관심을 끌고 있다.
내 친구 중에는 아주 썩 괜찮은 경제학자가 있다. 썩 괜찮다는 것은 매우 주관적이지만, 지적인 면모에서나 사람됨됨이 면에서 나로서는 따라갈 수 없는 지점에 이르러 있다는 다소 질투어린 생각이다. 흔히들 경제학자들을 두고 타칭은 별론하더라도 자칭 천재라고들 하지 않는가? 케인즈와 하이에크에 관한 책을 읽기 직전인 2주전 주말 나만 빼고는 전부 경제학도들인 이 친구와 다른 친구 2명과 함께 가까운 산에 산행을 하게 되었다. 비록 나머지 2명의 친구는 지금은 경제학과 무관한 삶을 살고 있지만 이들이 전부 경제학도들이라는 점이 경제학과는 다소 거리가 있고 공감의 영역이 적을 수밖에는 나로서는 못내 다소 불편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에 만난 철 없던 열혈학도(?)들이 이제껏 인연을 맺고 산을 같이 타고 아직도 못다 한 얘기들이 있어 한참을 재잘대는 것은 참으로 기꺼운 일이다.
산을 올라가는 도중 자연 미국발 경제위기가 주제가 되었는데 멋모르고 내가 “그것 1929년 대공황의 확대판 아냐?”라고 물었다. 내가 대공황의 확대판이라 했던 것은 요즘 떠도는 “미국에서 짐바브웨까지”라는 말에서 풍기는 것처럼 각국의 경제적인 상호의존도가 엄청나게 확대되어 1929년 대공황이 미국과 유럽 일부지역에 심각한 결과를 낳았던 것과는 달리 전 세계에 미치는 파장이 훨씬 커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염두에 두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경제학도인 내 친구는 그 물음말이 떨어지게 무섭게, 그리고 단호하게 “대공황의 축소판이지”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아마도 파장의 심도를 생각할 때 지금의 경제위기가 1929년 대공황 때의 그것에 비해 작다는 측면을 얘기하였거나, 아니면 1929년의 위기에서 배운 자본주의 각국이 몸을 사리면서 적절히 조절하는 기법을 지금은 사용할 것이라는 기대에서 나온 말이지 않을까 미루어 짐작한 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정말 조족지혈이니 어쩌랴.
그런데 며칠 전 다시 케인즈와 하이에크를 읽으면서 깨닫게 된 새로운 사실은 이들이 엄청난 가치지향적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맑스로 대표되는 것처럼 대개 자본주의에 반대하거나 그 대안을 고민하는 사람들은 무슨 엄청난 주의(ism)에 사로잡혀 그 가치나 대의를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위해 작위적으로 어떤 생각이나 방안을 만들어내는 가치중립적이지 못한, 그래서 편견과 좁은 시야를 가진 것으로 그려지고 있는 상황에서, 케인즈나 하이에크 같은 생각의 소유자들은 전혀 그렇지 않고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며, 편견과 선입관에서 벗어나 생각의 평온 속에서 자유지성을 노래하는 사람처럼 비춰지고 있었다는 것이 내 판단이었다.
그러나, 내가 이책을 통해서 본 케인즈나 하이에크는 엄청날 정도로 자본주의에 대한 집착과 수호의 열정(?)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들이 여기에서 조금만 벗어나려는 시도나 생각의 뿌리에 대해서도 강렬한 적대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들에게도 자본주의는 영원할 것이라는 사실의 예측보다는 자본주의는 영원해야 한다는 도덕률이 더 중요하게 다가왔다는 것이다. 어떤 지식이나 행동이 일정한 가치관이나 세계관과 동떨어진 것이 있을 수 없지 않은가 라는 고답을 다시 확인하는 과정의 일환이었던 셈이다.
지금의 위기에 대한 해법을 두고 다시 케인즈와 하이에크의 논쟁을 생각하고, 하이에크의 방책을 주장하던 분위기에서 슬금슬금 발을 빼 케인즈로 다시 돌아간다고 우리가 찾는 해법이 나올 것인지 나로서는 의문이다. 케인즈는 자산과 실물의 가치가 폭락하였음에도 구매자가 생기지 않는 대공황에 직면하여 그 동안 공급의 조절을 통해 공황을 피하려던 방책이 쓸모없음을 파악하고 부족한 유효수요, 곧 구매할 수 있는 소비자의 능력을 인위적으로 창출함으로써 공급과 수요의 선순환구조를 되살리고자 했다. 의학적인 표현을 도입해서 설명하자면, 심장박동이 멈춘 환자에게 강한 전기쇼크를 가하여 심장박동을 되살리는 그런 것일 게다. 그런데 그 유효수요라는 게 말이 좋아 유효수요지 결국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수요, 돈을 찍거나 작위적으로 만들어낸 노동가치의 창출일지니 일시적인 방법은 될지언정 그것이 무한정 반복될 수 있는 치료방법은 아니지 않은가?
2차 대전으로 처참하게 붕괴된 자본주의 경제를 되살리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미국과 서유럽 중심의 자본주의 사회는 내부적으로는 엄청날 정도의 경기부양책을 수시로 그리고 만성적으로 사용해 왔고, 외부적으로는 제3세계나 후진국에 대하여 많은 돈을 지원하는 원조정책을 취해왔다. 이러한 정책의 기저에는 소득의 양극화, 일상적이고 정기적으로 찾아드는 공황과 같은 자본주의의 위기현상을 모면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급속하게 성장하며 세를 확대하던 사회주의를 봉쇄하기 위한 냉전에서의 승리전략이었다. 한반도의 남쪽은 소련, 중국, 그리고 북한이라는 사회주의권과 코를 맞대고 있는 지리적 여건에서 이와 같은 시대적 상황을 등에 엎고 원조를 받으면서 경제성장의 표본으로 받아들여질 정도로 성장을 누려왔다.
그러나 미국과 서유럽의 자본주의도 1970년대 중반과 말에 이르러서는 심각한 후유증을 겪게 되었는데, 미국은 군비경쟁으로 인한 재정적자와 제조업의 붕괴로 인한 만성적인 무역적자, 그리고 달러화가 기축통화라는 잇점을 이용하여 이들 문제를 단기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취한 통화증발정책의 남발로 인한 만성적인 인플레이션과 성장의 침체가 그 징후들이었고, 아마 소련과 다른 동구의 사회주의권이 내부적인 개혁과 정비에 조기에 착수하고 소련이 미국과의 군비경쟁을 자제하며 아프간참전과 같은 바보같은 짓을 하지 않았더라면 소련이 붕괴되기 전 미국이 견디지 못하고 먼저 나가 떨어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런데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권들이 제 스스로의 무능과 부패, 비효율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버린 것이 미국이나 서구 자본주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다행스러운 것이었겠는가?
1990년 초반 소련과 동구권이 몰락하자 미국의 서구 자본주의는 그 동안 제3세계나 후진국에게 살랑대던 개꼬리를 더 이상 살랑댈 필요가 없었고, 당장 자신들의 주머니부터 챙겨야 겠다는 강한 욕망에 사로잡히기 시작하였으니 그러한 방향전환, 정책선회의 사례는 무수하다. 원조는 중단되거나 급격하게 감소되었고, 제3세계와 후진국에 어느 정도한 관대한 관세정책을 포함하고 있던 GATT체제는 곧바로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체제로 들어가 1995년에 WTO조약이 체결되었으며, 미국과 서유럽으로 이민을 막기 위한 장벽은 한층 더 높아졌다. 1995년 WTO체제가 출범하기 직전까지 원조를 받고 있던 우리나라도 곧바로 피원조국가에서 제외되었고, 서울을 비롯한 몇 개 도시에 설치되어 있으면서 각종 후원과 장학사업을 벌여왔던 미문화원이 전국에서 일거에 사라진 것도 이 무렵이다(혹자는 미문화원이 1985년과 그 이후 1980년대 말까지 몇 차례 운동권 학생들의 점거 때문에 없어진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던데, 그 진실한 배경은 그와 다르며 폐쇄시점도 바로 소련과 동구사회주의권이 무너진 직후임을 잘 새겨볼 필요가 있다). 1993년에 대통령이 된 김영삼은 OECD에 가입하면서 마치 이것이 우리에게 큰 축복인 것처럼 떠들어댔고, 세계화라는 구호가 온나라를 뒤덮기 시작했던 것도 이 무렵이니, 곧 우리는 냉전이 끝난 세상에서 새롭게 질서를 재편하려는 자본주의 열강 앞에 제발로 나서서 사냥개처럼 변죽을 맞추기 시작했던 것이다.
곧바로 미국과 서유럽자본주의는 그 동안 소련과 동구사회주의권 때문에 마음껏 드러내지 못하던 naked한 면모를 그대로 보여주기 시작하는데, 투자와 개발을 빌미로 후진국과 개발도상국으로 자본은 급속히 이동하였고 그러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강렬한 이빨과 발톱을 드러낸 것이 바로 몇 년 지나지 않아 동남아각국과 우리나라를 휩쓸고 간 외환위기였다. 그렇게 흥청망청하던 돈이 그 다음으로 이윤을 찾아간 곳은 IT였고, 거기서 재미를 빼고 재빠르게 빠져나온 자본은 이제 부동산으로 흘러들어갔으며, 규제의 완화와 철폐를 틈타 세계 곳곳에 돈놀이 마당을 만들었다. 이 과정을 보면 자본은 실제 가치가 창출되는 노동이 있는 곳에서 점차 멀어져 허황된 숫자의 증식만이 있는 곳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본다. 그리고 2001년 9-11사태가 발생하자 신자유주의의 선봉에 선 미국과 영국은 군수산업과 천연자원의 지배에서 이윤을 올리고자 혈안이 된다. 그리고 그 허황된 풍선이 이제 터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이 상황에서 몰락한 하이에크 앞에 다시 케인즈가 부활할 수 있을까? 나로서는 수긍하기 어렵다. 미국에서 논의되는 금융산업구제안, 자동차산업지원방안, 한국에서는 논의되는 건설회사 지원방안 같은 단기적인 부양책이 일시적인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지만(나는 그마저도 믿을 수 없다) 도리어 거품을 더 만들고 부풀어 오른 풍선에 더 많은 공기를 불어넣어 더 큰 규모의 폭발을 조장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게 경제학의 가나다도 모르는 내가 갖는 상식이다.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 지구의 자본주의는 탐욕의 크기만큼 비대해질대로 비대해졌고 상호의존도는 너무도 커졌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나 GM, FORD, CHRYSLER 같은 몇 개 회사의 매출이나 자산이면 웬만한 나라 수십개의 GNP와 맞먹는데, 이들 회사가 무너지는 경우 그 파장은 어떠하겠는가? 무엇보다 전 세계의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탐욕의 달리기 경주에 휩쓸려 들어가 이제는 각자도생의 길만을 찾고 있는 마당에 신자유주의정책이건 아니면 유효수요창출정책이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전해 줄 수 있을 정도로 공적인 신뢰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공부모임을 앞두고 숙제삼아 그 책을 읽으면서 부산출장을 간 김에 누이들을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도중 누이의 딸, 그러니까 나한테는 외조카가 되는 애로서 학교성적으로는 출중한 고2가 있는데, 내년 대학진학을 앞두고 여러 선택과목 중 경제를 뺐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왜?라는 물음에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경제가 지나치게 수학, 아니 산수 위주로 교재와 시험이 구성되는데, 조카는 이런 것을 싫어해서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으면서 바로 24년 전 내가 처했던 선택사항이 머리에 떠올랐다. 나 역시 공부 좀 하면 경제학과를 지망하던 그 영향 아래 있던 터라 고3때 ‘너는 무슨 과 갈래?’라는 담임선생님의 질문에 순진하게(?) ‘경제학과요’라고 답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내 몸 유전자나 호르몬의 작용인지는 모르겠으나 막상 법대로 진학하여 대학 1년 때 교양과목 필수인 경제학개론을 들으면서 그 오묘한 수요와 공급의 논리(?) 앞에 느낀 절망과 경제학을 선택하지 않았기를 잘했다는 자찬이 떠올랐던 것이다. 내 인생의 선택 중 가장 잘 한 것 중 하나를 꼽으라면 아마 대학진학시 경제학과를 가지 않은 것이 들어갈 것이다.
아무튼 지금의 경제학은 국외자인 내가 어설픈 눈으로 보기에 숫자놀음에 기울어진 경향이다. 물론 숫자를 경시하거나 무시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적어도 통계는 일정한 판단의 준거자료로 쓰임새가 남다르고, 일종의 사실(FACT)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소위 근대화 이전 사회전체적으로 이런 통계나 숫자, 그리고그에 기초한 과학을 등한시함으로서 우리가 느낀 비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할 때 과학으로서 또 통계와 수학으로서의 경제학이 가지는 의미를 마냥 내팽개칠 수는 없다.
그러나 통계나 수학, 숫자에 기초한 경제학은 인간 세계에서 사후적인 논평의 줄거리이거나 이를 뒷받침하는 FACT일 뿐 그 자체로 세상과 인간을 이해하는 법칙으로서의 과학을 말해주기에는 부족하다. 경제라는 말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추적해 보자. 경제를 지칭하는 영어단어인 Economics는 효율을 의미하는 economy에 그 어원이 있지만, 동양에서는 經世濟民, 곧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가지런 하게 한다는 문구에 그 어원이 있다. 곧 서구 자본주의는 경제를 이해함에 있어 나를 중심으로 한 어느 개인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가장 효율적인 선택이 무엇인가를 중심으로 경제학이 커온 반면, 동양에서는 나라 살림을 살찌우고 백성의 배를 불리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중심으로 경제를 생각해 왔던 것이 아닐까?
잘 모르지만, 경제학도가 되어 처음 배우는 것이 수요와 공급의 법칙 그래프 같은 미시경제학이고. 거기서 더 나아가 케인즈주의 같은 소위 거시경제학인데, 한 인간의 욕망(수요)과 이를 채워주는 것(공급)을 중심으로 경제학을 풀어나가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나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내 욕망, 너의 욕망, 또다른 제3자의 욕망…그리고 이를 채워주는 수많은 공급자들의 공급…
왜 이런 얘기를 하는가 하면 자본주의 경제학은 있는 현상에서 분석적이고 수리적인 측면을 강조한 나머지 인간 자체에 대한 탐구로 나아가지 않음으로써 스스로 뿌리를 잃었고, 그 결과는 허무맹랑한 사후적 평가나 평론만을 만들어내는 학문으로 스스로를 굴복시켰다는 생각에 이르기 때문이다. 그 반대를 생각하면, 만약 경제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이면 반드시 경제사를 공부해야 하고, 경제사를 공부하려면 반드시 인간과 세계에 대한 전체적인 통찰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최소한 정치경제학은 들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미네르바의 예측과 분석이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모양인데, 그것이 옳든 그르든 나로서는 별 관심이 없다. KOSPI지수 500, DOW지수 5,000이라는 예언은 나 스스로 어떻게 포지션을 취해야 할지 갈구하는 사람들에게 참으로 단비같은 존재이지만, 혼자만 위험을 면하려는 “나만 아니면 돼”라는 생각이 우리의 주류적인 사고인 이상 이 사회는 미래가 없다는 것이 내 예언이다.
문명이 종말을 향해 치닫고 있다는 데릭 젠슨의 주장이 예전에는 그냥 흘러지나가는 경구였지만, 이제는 살갑게 들리는 이유를 생각해 본다. 경제학은 죽었다. 아니 죽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