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여 Blind가 되어라. – 한 변호사의 희망

2008-11-09 292

‘Blind’라는 영어단어는 시각상의 장애를 나타내지만, 다른 단어와 결합할 때는 무엇에 영향을 받지 않거나, 이를 무시한다는 뜻도 가진다. 그 대표적인 예가 color-blind나 gender-blind처럼 인종이나 성(性) 등을 차별의 요소로 고려하여서는 안된다는 뜻을 나타낼 때이다.
적극적 우대조치(affirmative action)가 일정하게 자리를 잡은 시점에서 color-blind나  gender-blind와 같은 단어들이 도리어 기계적,형식적 평등논리를 강조하는 보수적 기제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차별의 요소에 눈 감으라는, 처음 이 단어에 부여된 사회적 의미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KBS 정연주 사장이 이명박 대통령의 해임처분의 부당함을 다투기 위해 취소소송을 제기하면서 취소소송 판결이 날 때까지 해임처분의 효력을 정지해 달라는 집행정지신청에 대하여 지난 8월 20일 서울행정법원은 “대통령의 해임처분이 위법하다 단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집행정지신청을 기각하였고, 또 9월 5일 서울고등법원은 이 기각결정에 대하여 항고한 사건에서 똑같은 이유로 똑같은 결정을 하였다.

서울행정법원의 기각결정이 있기 며칠 전 정사장의 집행정지신청 소식을 듣고서 같이 있던 변호사들에게 “나중에 취소소송 판결이 어찌 될지는 몰라도 집행정지는 당연히 되는 것 아냐?”라고 말했던 적이 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한 선배변호사는 “우리가 언제부터 법원을 그렇게 신뢰해왔냐?”며 핀잔 아닌 핀잔을 주었다. 그 당시만 해도 필자로서는 그 선배 변호사의 반응을 쉽사리 수긍하기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모름지기 대통령이나 정부기관의 처분은 옳고 그름이 판가름나기 전이라도 일단 효력을 발생하지만, 행정소송법 제23조 제2항은 “취소소송이 제기된 경우에 처분 등이나 그 집행 또는 절차의 속행으로 인하여 생길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긴급한 필요가 있다고 인정할 때에는 본안이 계속되고 있는 법원은 당사자의 신청 또는 직권에 의하여 처분 등의 효력이나 그 집행 또는 절차의 속행의 전부 또는 일부의 정지를 결정할 수 있다”고 하여 집행정지제도를 마련해두고 있다. 즉 , 취소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시간이 지나버리면 나중에 당사자가 제기한 취소소송에서 이겨봤자 소용없는 상태를 방지하기 위하여 긴급한 상황에서 임시적으로 처분의 효력을 정지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기실 KBS 정 사장 해임처분에 대한 집행정지가 당연한 것처럼 필자가 생각했던 데는 이러한 법 규정상뿐 아니라 법원이 이제껏 집행정지를 상대적으로 폭넓게 인정해왔던 법적용 기준과 관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필자가 아는 모 업체가 어떤 사업의 등록을 신청하는 데 필요한 서류를 허위로 만들어 제출한 것이 뒤늦게 발각되어 등록취소처분을 받았을 때, 허위서류로 사업등록을 받은 것이 확연함에도 취소처분의 부당함을 다투면서 집행정지를 신청하자 며칠 가지 않아 집행정지결정이 났었다. KBS 정사정 사건과 비슷한 사건에서도 마찬가지다. 법률의 규제를 받는 어떤 조합의 조합장이 비위문제 때문에 장관에게서 해임처분을 받자 조합장의 신분을 유지하기 위하여 해임처분의 집행정지를 신청하였을 때에도 얼마 있지 않아 집행정지결정을 받은 바 있다. 조합장의 비위사실에 대한 증거가 꽤나 많았을 뿐 아니라 나중에는 형사처벌까지 받을 정도였음에도 말이다.

비록 그리 많지는 않으나 필자가 처리했던 집행정지사건 중 이를 기각한 사례를 필자는 아직 기억하지 못한다. 행정처분에 대하여 취소소송으로 다투면서 판결이 있을때까지 행정처분의 집행정지를 신청하면, 다투는 이유가 너무도 터무니 없는 경우거나 형사소송법 제23조 제3항에 따라 집행정지를 인정할 때 공공복리에 중대한 위해가 가해질 우려가 있을 경우가 아닌 한 틀림없이 집행정지결정이 났었고, 이는 집행정지제도의 취지상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 정사장의 집행정지신청을 법원이 기각할 것이라 예상하기는 어려웠던 것이고,막상 법원의 기각결정을 듣고서는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정말 필자만의 무지때문인가?

신문에 난 기각결정의 사유를 좀 더 살펴보니, 담당재판부는 “해임처분으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긴급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지 않는다”고 했다 한다. 정말 그런가? 공영방송의 사장이 사장직에서 강제로 쫓겨났는데, 옳고 그름이 판결로 판가름 날 때까지 사장으로서의 지위와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는 것이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아니면 어떤 것이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인가? 일개 조합장의 해임처분에 대하여도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예방할 필요가 있다면서 일국의 공영방송 사장의 해임처분에 대하여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예방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정말 설득력이 있는가?

재판부는 또 “대통령의 행위가 위법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상태”라고 기각사유를 덧붙였다 한다. 이것은 법률전문가가 보면 언어도단이자, 정치적인 수사(rhetoric)다. 집행정지결정이 행정처분이 위법하다는 확신이 있을때만 내 주던 것인가? 행정처분이 위법하다는 판단이 섰다면 취소판결 전이라도 집행정기결정을 내주는 것이야 당연한 것이고, 위법한지 위법하지 않은지 단정할 수 없기때문에 장차 취소소송에서 본격적으로 따져볼 때까지 잠정적으로 행정처분의 효력을 정지하자는 것이 집행정지제도의 취지가 아니던가? 재판부의 설명대로라면 해임처분이 위법하다고 단정할 수 있을때에만 집행정지를 해주겠다는 것인데, 이는 집행정지제도를 완전히 몰각시키는 행위이자 이제껏 법원이 집행정지신청에 대하여 취해온 일반적인 태도와 관례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일탈행위임을 스스로 밝히는 셈이다.

이 즈음이면 법원이 왜 이같은 결정을 하게 되었는지 의아해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헌법 제103조가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정 사장 사건의 재판부는 정말 한점 양심에 부끄럼이 없을 정도로 독립하여 심판한 것일까? 이 사건에서 해임처분을 받은 자가 정치권력과는 무관한 일개 조합장이었다면 이 같은 결정을 하였을까? 당사자가 부잔지 빈잔지, 세도가인지 힘없는 민초인지 가려보지 않으려고 헝겊으로 눈을 가린 채 오로지 정의와 형평의 저울추에만 의지한 정의의 여신 유스티티아(Justitia)처럼, 오늘의 법관들은 정말, 정말 이 나라 최고의 권력자와 그 배후의 세력들이 한 당사자임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권력과 사리에 좌우되지 않은 blind였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속은 모른다 했으니 그 양심의 처소를 어떻게 가늠할까만은 color-blind나 gender-blind도 모자라 이제는 박물관에서나 보았으면 했던 권력의 시녀라는 옛 용어를 다시 끄집어내며 power-blind를 외쳐야 하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자연”우리가 언제부터 법원을 그렇게 신뢰해왔냐?”라고 했던 그 선배변호사의 예지가 아직도 빛나는 게 그리 썩 즐거울 리가 없다.



이 글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론 9-10월호 중 ‘황희석’ 변호사의 글을 발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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