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기고] 테러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2025. 1. 19. 서부지방법원 폭력 사태를 바라보며) / 전다운 회원
테러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 2025. 1. 19. 서부지방법원 폭력 사태를 바라보며 –
전다운 변호사(법무법인 지향)
테러(terrorism, act of terror) : 정치적인 목적 달성을 위해서 일반 사람들을 상대로 집단적으로 폭력을 행사하여 극도의 공포를 일으키는 행위 (출처: 케임브리지 영어사전).
올해 1월 19일 새벽 3시경 내란우두머리 혐의를 받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한 서울서부지방법원 결정에 반발하여, 수십명의 윤석열 지지자들이 법원을 습격, 점거하고 건물과 내부시설을 파괴하며, 관련 직원과 판사를 색출하고 이들을 진압하려는 경찰과 민간인을 무차별하게 폭행한 사건이 벌어졌다. 국가의 수장이었던 윤석열 대통령은 위 사태가 벌어지기 직전, ‘청년’ 지지자들을 향한 영상편지를 발표하며 자신의 형사범죄를 수사한 수사기관과 법원, 탄핵사건을 심리하는 헌법재판소를 모두 ‘좌파 사법 카르텔’이라고 칭하면서 자신에게 불리한 판단을 내렸다는 이유로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조장했고, 사회의 근간인 사법체계 흔들기를 반복하며 지지자들을 선동한 결과였다. 사법기관을 향한 극단적인 폭력, 테러의 장면은 전세계에 그대로 중계되었고, 정상국가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었던 초유의 테러 사건은 한국사회의 병든 단면을 전세계에 그대로 노출시켰으며, 이를 목도한 시민들 모두에게도 집단적인 충격과 트라우마를 남겼다.
놀라운 것은 이것이 단지 극단적인 지지자들에 의한 우발적인 폭력 사태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진 많은 유력 정치인들과 윤석열 지지 집회를 개최해 온 교회 목사, 윤석열의 변호인 등이 테러 현장 전후에 함께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실제 폭력 사태에 가담한 많은 수의 사람들은 젊은 남성들과 유튜버들이라고 알려졌는데, 이들은 이미 이전부터 이러한 폭력사태를 모의해왔음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자신의 범행을 당당히 유튜브에 생중계를 하며 돈을 벌었고, 자신들의 행위는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최후의 ‘저항권 행사’라고 하면서 자신들의 불처벌을 확신했다. 이들이 기대했던 것과 같이, 적지 않은 유력 인사들과 정치인들은 지금까지도 이들의 테러를 옹호하고 있다. 심지어 일부 정치인들은 이번 테러 사건을 마치 사회적 소수자들의 집회·시위와 대등한 것으로 취급하고, 테러가 민주사회의 일면인 듯 이를 정당화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이들은 테러를 정당화하기 위해 온갖 법 개념을 오용하며 권력 앞에 무력해진 법과 제도를 보란듯이 조롱하고 있다. 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법과 제도가 평등하게 적용되고 있지 않으며, 부와 권력을 가진 기득권은 법적용에 있어서 ‘편의’를 받을 것임을 알고 있는 듯 행동한다. 국가가, 특히 사법기관이 오로지 기득권의 이익에 편승하여 사회에 주지 못한 신뢰가 이번 테러의 원인에 어느 정도 기여했다는 것에 더 큰 절망감을 느낀다.
테러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를 더 고민해보아야 한다. 테러의 본질을 뒤로한 채, 마치 이를 또 하나의 정치적 견해의 표출 방법인 듯, 이들과 정치적 목적을 같이 한다는 이유에서 테러를 옹호하고 정당화하는 시도들에 대해서도 엄중한 대처가 필요하다. 최근까지도 정치적 소수자에 의한 평화로운 집회와 시위, 파업 등은 ‘선량한 시민’, ‘선량한 기업’, ‘선량한 남성’, ‘선량한 한국인’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는 이유로 차별, 혐오의 대상으로 취급되어 왔고, 빈번하게 범죄로 취급되어 경찰의 폭력적 진압이 허용되어 왔다. 이처럼 대비되는 국가기관의 대처는 누군가 동일한 폭력을 행사하더라도, 그 사람이 가진 정치적 입장이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과 기대를 확산시킨다. 이처럼 기득권에게 편향된 국가기관의 대처방식을 재고하고 바로잡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앞으로도 법률에 의한 제도와 질서가 아닌 더 많은 ‘기득권의 폭력’만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테러범들뿐 아니라 이들에 대해 암묵적으로 승인·동조하고 선동한 자들 모두에 대한 마땅한 책임과 사회적 평가를 해내지 못한다면, 사회 제도에 대한 대중의 신뢰가 무너질 것이고, 이러한 무질서와 폭력이 지배하는 공동체는 역사상 생존한 사례가 없다. 그런 사회에서는 단지 힘없는 소수자들뿐 아니라 그 누구도 생존해 낼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나아가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테러범과 그 동조자들까지 정상적인 정치세력으로 간주하며 이들까지 ‘포용’해야 한다는 태도 역시 재고되어야 한다. 폭력과 테러에 대한 승인과 포용은 민주주의가 될 수 없다. 우리 사회가 길러야 할 ‘포용’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인 여성, 장애인, 빈곤한 자, 외국인, 성소수자 등에게도 아직 충분히 닿지 못했다. 오로지 기득권에게만 베풀어지는 관용은 테러범들의 사고와 다를 바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연대와 공존을 요구해 온 소수자에 대한 평등한 대우와 평화와 비폭력에 대한 흔들림 없는 지지이고, 이는 법률이 선언하고 있는 차별과 폭력, 테러에 대한 철저한 배제와 퇴출 없이는 달성할 수 없다. 이번 서부지방법원 테러 사건으로 우리 사회가 피와 땀의 역사로 힘겹게 일궈온 결사의 자유, 집회·시위의 자유가 오로지 권력자의 독점적 무기로 전락하는 사태에 이르지 않도록, 더 많은 노력과 성찰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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