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을 지워버리는 현장, 간접고용의 그늘 –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관련 기고
– 작성: 손익찬 변호사(민변 노동위원회,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대책위원회 법률지원단)
1. 참사 개요
2024년 6월 24일 10시 30분이었다.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전곡산업단지에 위치한 리튬 일차배터리 업체인 ‘아리셀’의 3동 2층의 ‘에이징실’(에이징, 포장 공정)에 있던 배터리에서 소리와 함께 하얀 연기가 났다. 그 공간에 있던 대다수 직원들은 이러한 상황을 전혀 모른 채 계속해서 일을 했다. 몇몇 직원만 모여서 불이 옮겨붙지 않도록 배터리를 치우고 있었다. 25초 만에 두 번째 폭발이 일어났다. 누군가 소화기로 불을 끄려 했지만 막을 수 없었다. 첫 폭발 이후 42초 만에 무수한 폭발이 이어졌다. 옆 공장에서는 ‘전쟁이 나는 줄 알았다’라고 할 정도로 굉음이 들렸다. 23명이 목숨을 잃었고 8명이 부상을 입었다(중상자 2명, 경상자 6명).
시신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사람인지 알아보기도 어려울 정도의 시신도 있었다. 한 아빠는 다 타버린 딸의 시신을 사진으로 찍으려고 했다. 경찰이 막았다. 경찰도 알았을 것이다. 그 시신이야말로 참사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증거라는 사실을. 사망자는 한국인 5명, 중국인 17명(대다수가 중국동포), 라오스인이 1명이다. 사망자 중 부부는 한 쌍, 자매가 한 쌍, 이종사촌 자매도 한 쌍이 있었다. 가장 젊은 피해자는 2001년생이고, 다수가 80~90년대생 젊은이들이다.
2. 대책위 활동 현황
노동‧시민사회계는 조속히 참사 현장으로 달려가서 유가족들을 만났다. 우여곡절 끝에 사망자 20명의 유가족들이 모였다.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경기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이주노동조합,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그리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의 단체가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대책위 법률지원단에는 29명의 민변 변호사, 그리고 6명의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노노모) 회원 6명이 결합하고 있다. 단장은 신하나 변호사(민변 노동위원장)이다. 법률지원단은 대책위 진상규명팀과 피해자지원팀 활동에 결합하고 있다.
현재까지 대책위의 주요 활동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피해자 20명의 유가족들의 위임을 받아 회사와의 교섭을 진행하고 있다. 7월 5일, 1차 교섭이 진행되었으나 사측의 무시와 비협조로 인하여 아직 2차 교섭 일정이 잡히지 않은 상태이다. 교섭의 지향점은 단지 정당한 배‧보상뿐만이 아니라, 이를 포함하여 회사가 사법기관의 진상규명 활동에 성실히 임할 것, 유가족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할 것, 재발방지 대책을 내놓을 것 등을 포함한 것이다.
둘째로, 유가족의 알권리와 진상규명을 위한 활동이다. 중대재해처벌법 등으로 고소 및 고발을 하였고, 회사와 수사기관 측에 참사 원인에 관한 설명이나 수사과정에 관한 알권리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셋째로, 유가족들이 지치지 않고 함께 싸울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다. 화성시청과 경기도가 유가족들의 숙식 마련을 위해 충분한 지원을 하도록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대책위의 지향점은 다음과 같다. 대책위는 일방적으로 도움만 주는 사람들이 아니다. 민변 변호사와 노노모 노무사들도 단순한 ‘법적대리인’만은 아니다. 유가족들이 이 문제 해결을 위해서 ‘함께’ 싸울 수 있도록 연대하고 힘을 주는 것이 대책위의 지향점이다. 이러한 지향점은, 지금까지 있었던 김용균 노동자 투쟁을 비롯한 여러 산재 투쟁들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3. 법률적 쟁점
무엇보다도 불법파견 문제가 있다. 피해자들 대다수는 아리셀 소속이 아니라, 아리셀과 법인등기부등본상 같은 곳에 소재하고 있는 ‘메이셀’ 소속이라고 알려져 있다.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에서의 불법파견은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그리고 사업주로서 져야 하는 모든 책임을 피해야 하기 때문에 아리셀은 ‘파견’이 아니라 ‘도급’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대로 ‘메이셀’은 ‘모든 업무지시는 아리셀이 직접 했고 본인들은 소속 노동자들의 얼굴도 모른다’라고 발뺌을 하고 있다. 이렇게 아리셀이 실질적 사용자로서, 하다못해 파견법상 사용사업주로서의 책임도 회피하였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안전은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 것이다. 약 10년 전에 불거졌던 ‘메탄올 실명사건’의 피해자들도 모두 불법파견 구조 아래에 있었다.
둘째로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업무상과실치사와 같은 형사법적 문제이다. 안전 관련 규정 위반으로는, 리튬 취급에서의 주의사항을 지키지 않고 한 장소에 너무 많은 리튬을 보관한 점, 제대로 된 소화/방화 설비를 갖추지 않은 점, 출입구 외에 비상구를 두지 않은 점, 안전 관련 교육을 제대로 시행하지 않은 점, 제때 작업중지명령을 내리지 않은 점 등이 있다. 이러한 규정 위반이 방치되어왔다는 것은 곧 회사의 시스템이 붕괴되었다는 증거이므로,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 또한 명약관화한 것이다.
셋째로, 누구에게 책임을 지울지 문제이다. 올해 1월 27일부터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도 중대재해처벌법이 확대 적용되었다. 그런데 아리셀은 현재 약 40명 정도를 고용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경우 아리셀은 ‘반기에 1회 이상 점검해야 하는’ 중대재해처벌법상 각종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받게 된 지 아직 반년이 지나지 않았으므로 이를 이유로 처벌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할 것이 예상된다. 그러나 11개 동으로 이루어진 대규모 사업장에서, 자사 소속 고용인원을 40명 이상 50명 미만으로 유지해온 것 자체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피하기 위한 의도를 명백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아리셀의 모기업이자 96%의 지분을 가진 상장사 에스코넥에도 민형사상 책임을 지워야 하는 문제가 있다. 에스코넥과 아리셀의 대표이사는 모두 ‘박순관’으로 동일하다. 에스코넥의 홈페이지를 가더라도 아리셀은 에스코넥의 ‘전곡사업장’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이 홈페이지의 리튬 일차전지를 소개하는 코너에서는 ‘에스코넥 아리셀’이라고 병기를 하며 소개하고 있다. 향후 수사를 통하여 이곳의 안전보건을 책임져야 하는 사업주는 모회사인 에스코넥이 책임져야 한다는 점이 더 드러나야 한다.
4. 끝으로
간접고용은 현장에서 ‘사람’을 지워낸다. ‘사람’이 아니라 ‘인건비’다. ‘사람’이 아니므로 ‘누가’ 일하러 오는지 알 필요가 없고 ‘몇 명’이 오는지가 중요하다. ‘사람’이 아니므로 교육을 할 필요도 없고, 작업중지권을 보장해줄 필요도 없고, 안전에 관해서 신경 쓸 필요도 없다. 이들의 국적도, 비자도, 체류자격도 중요하지 않다. ‘사람’이 아니므로 죽은 다음에도 ‘비용’으로 처리하면 된다. 그 와중에 생기는 골치 아픈 법적 책임은 중간에 낀 회사에 떠넘기면 된다. 이 구조가 방치되는 한 또다시 참사는 반복될 수 있다. 우리는 이 구조에 주목해야 한다. 이 구조를 바꾸기 위한 투쟁에서 변호사들은 단순한 ‘대리인’이 아니다. 간접고용, 이주노동, 산업안전 문제에 관한 특단의 대책과 책임자 처벌과 반성, 유가족에 대한 정당한 배상이 있을 때까지 우리는 끝까지 싸우고 연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