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위] 당신이 다음 오사카노변단 교류회에 참가해야 하는 99가지 이유 – 민변 노동위원회-오사카 노동자 변호단 제24회 교류회 후기

2023-03-03 91

 

민변 노동위원회-오사카 노동자 변호단 제24회 교류회 후기

임예지 회원

출국 전 

2023. 2. 10.부터 2. 13.까지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 교류회로 대체된지 3년 만에, 민변 노동위원회와 오사카노동자변호단의 대면 교류회가 재개되었습니다. 2022년 민변 노동위원회 신입회원 환영회에서부터 참가를 고대하던 행사였습니다. 직장과 민변의 많은 분들의 노고와 배려로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출발 전날인 2023. 2. 9., 노변단 사무국의 야마구치 에미코 상의 메시지가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방문 기간 동안의 일기예보와 함께, “특히 내일이 아침부터 밤에 비와 함께 기온도 낮습니다. 부디 조심해 와 주세요.” 번역을 거쳐도 그대로 살아있는 다정한 말투에 서울보다 따뜻한 오사카의 온도를 벌써부터 느낄 수 있었습니다.

 

1일차: 오사카부노동위원회, 노동조합 방문, 식사회

○ 오사카부 노동위원회 방문          

첫번째 일정이었던 오사카부 노동위원회 방문에서는 일본의 노동위원회 제도, 오사카부 노동위원회의 상황, 부당노동행위 구제제도의 개요와 절차를 살펴보았습니다. 해당 일정에서는 특히, 부당노동행위 중재 과정에서 노동조합에 대한 자격심사가 별도로 이루어진다는 점에 관해 열띤 질의응답이 오갔습니다. 노동조합의 설립에 관하여 자유설립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일본과 신고주의를 취하고 있는 우리 법제의 차이 때문에 양국 변호사들의 이해의 바탕이 달랐던 것입니다. 그리고 일본 노동위원회 구제절차가 대략 550일 정도 소요된다는 점에 관해서도 열띤 토론이 이루어졌습니다. 형식적으로는 총 90일 가량이 소요되도록 되어 있는 우리의 노동위원회 구제절차와 비교했을 때, 일본의 노동위원회는 권리구제가 신속하게 되지 않는 것은 아닌지 우려와 반성의 목소리들도 있었습니다.

 

○ 노동조합 방문: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그리고 노동조합 방문을 통해 오사카전노협과 오사카교육합동조합에서 활동하고 있는 분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노동조합 사무실은 노동위원회 건물의 바로 맞은편에 있었습니다. 노동조합 사무실에서는 의료법인 측으로부터 슬랩(SLAP: Strategic Lawsuit Against Public Participation – ‘시민 참여를 배제하기 위한 소송’이나, ‘어두운 소송’, ‘괴롭힘 소송’ 등으로 번역됩니다. 주로 대기업이나 공적기관, 종교단체 등의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여유가 있는 ‘비교 강자’가 시민활동가나 저널리스트 등의 ‘비교 약자’에 의한 비판을 억압할 목적으로 ‘명예훼손’이나 ‘비방 중상’. ‘업무 방해’, ‘공모’를 이유로 제소하는 소송형태를 가리킵니다) 소송을 당한 의료법인 노동조합 조합원 분들을 만나서, 텍스트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슬랩 소송에 관한 생생한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었습니다. 수줍음 많은 어머니뻘 요양보호사 동지의 분투는 눈물겨웠고, 일본의 사정도 참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는 특히,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라는 노래를 한국어로 함께 부르던 순간이 기억에 남습니다. 저도 잘 모르는, 소리 내어 불러본 적 없는 이 노래를 일본의 노조원 분들께서 잘 알고 계신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평소 우리 나라의 법규와 판례, 그리고 실무례에 갇혀 있던 제도적 상상력이 노동위원회 및 노동조합 사무실 방문을 통해 좀 더 넓어지고 자유로워졌고, 그만큼 더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 식사회

그리고 Cheerly라는 식당에서 식사시간이 이어졌습니다. 노미호다이(飲み放題)라고 하는, 주류를 무제한으로 제공하는 형태의 식당에서 기분 좋은 사담을 실컷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운명처럼 우에바야시 에리코(上林 恵理子) 변호사님을 만났습니다. 오사카 노변단엔 젊은 변호사가 많지 않아서, 민변의 젊음을 부러워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오사카의 젊은 여성 변호사님과의 만남이 더욱 귀하게 느껴졌습니다. 3명의 젊은 여성 변호사들로 구성된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이주 관련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는 우에바야시 변호사님은 하루 서너 시간 잠을 자면서 육아와 일을 병행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제 의뢰인은 가난하기 때문에 수임료를 많이 받을 수 없어서 사건을 많이 해야합니다. 그래서 늘 잠이 부족합니다.”란 이야기를 듣고서, 변호사님과 친구가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국의 외국인보호시설은 많이 좋아졌다던데, 일본은 여전히 엉망입니다. 제가 서울에 간다면 외국인보호시설을 방문하고 보고서를 작성하고 싶습니다.” 그의 지치지 않는 열정에, 나들이 마냥 가벼운 마음으로 오사카에 온 저로서는 잠시 마음이 숙연해지기도 했습니다.

 

2일차: 세미나, 간친회

○ 마라톤 세미나: 49년차의 지구력          

2023.2. 11. 오사카의 PLP 회관에서는 민변 노동위 – 오사카노변단 정기교류회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세미나가 열렸습니다. 노조법상 사용자성 판단 기준에 관해 양국의 입법, 소송실무, 그리고 근로계약설 내지 실질적 지배력설 등 학계의 논의를 종횡무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로스쿨에서는 변호사시험 준비로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한 심도 깊은 논의였습니다.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한-일의 공부 귀신들이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고 공부하는 시간에 함께 하면서, 머리 아프고 허리 아픈 가운데, 흥분되고 재밌다는 생각이 들어 흠칫 놀라기도 했습니다.

특히, 우리 나라에서는 노조법상 사용자 판단기준으로서 실질적 지배력설을 채택한 판결로 알려져 있던 일본의 아사히방송 사건(1995. 2. 28. 최고재판소 판결)에 대해, 노변단 변호사님들은 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후퇴한 판결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중앙노동위원회 2021. 6. 2. 자 중앙2021부조14 판정은 CJ대한통운이 택배기사 노동조합과 단체교섭의무를 부담한다고 보았다는 점에서, 양국이 협력하여, 실질적 지배력설을 노조법상 사용자 개념의 판단 기준으로 하는 판결을 이끌어 내고, 더 나아가서는 우리나라의 노조법 2, 3조 개정이 이루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1975년에 변호사가 되어 올해 49년째 변호사로 활동 중인 자이마 변호사님의, “제가 공부가 부족해서”, “굉장히 공부가 되었습니다”와 같은 겸손한 말씀이었습니다. 2022년에 변호사가 되어 올해로 변호사 2년차인 저로서는 자이마 변호사님과 한 공간에서 숨쉬었다는 것만으로도 큰 귀감이 되었습니다. 의사처럼 변호사도 ‘선생님(せんせい[先生])’로 불리는 일본어의 어법을 통해서 일본에서는 여전히 변호사가 높이 존경받는 직업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변호사법 제1조에 해당하는, 인권옹호와 사회정의 실현을 삶으로 실천하는 노변단 회원 변호사님들 같은 분들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반면에, 이제 막 변호사로 일을 시작했음에도 어느 순간 일에 치여서 공부가 게을렀다는 반성과 자각이 들었습니다. 덕분에 변호사를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소명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 간친회: 이게 바로 일본의 노미카이(飲み会) 

마라톤처럼 이어진 세미나를 마치고 해방감과 함께 들이키는 생맥주(生ビール)는 그야말로 꿀맛이었습니다. 간친회에서는 자이마 변호사님이 양희은의 ‘아침이슬’을 완창하시던 장면이 기억에 남습니다. 저로서는 상상만 할 뿐인, 군부독재 시절을 함께 연대하며 보내온 양국 변호사님들 간의 우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뜻이 통한다는 사실이 무척 감동적이었습니다.

우에바야시 변호사님과의 대화도 계속 이어졌습니다. 막내뻘의 변호사님은 여러 사람들 앞에서 세 가지의 포부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특히, 대학생 시절에 한국에 여행을 와서 제암리를 방문하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감탄했습니다. 일본의 역사적 책임에 대해 일본인으로서 먼저 이야기를 꺼낸다는 것이 얼마나 드물고 귀한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 고마웠습니다. 저는 우에바야시 변호사님께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피해자에 대한 국가배상책임이 최근 한국 법원에서 인정되었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일본인으로서 자신도 힘내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에바야시 변호사님을 본받아서 우리도 베트남에 필드트립을 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민변 노동위측의 막내인 제게도 발언 기회가 주어져서 제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인으로서 일본을 생각하는 마음이 복잡한 것은 사실이다, 역사적 책임의 토대 없이 진정한 우정을 나눌 수 있을까, 우려도 했다, 그런데 여기 일본에 와서 같은 마음의 변호사 선생님들을 만나게 되어 무척 기쁘다는 취지의 이야기였습니다. 간친회가 마무리되고 귀가하려는데, 이야기 나눌 기회가 없었던 오사카 노변단의 오카모토 히데키(岡本 英機) 변호사님이 먼저 다가와 명함을 주셨습니다. “과거사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며, 관련 위원회에서 활동 중입니다. 앞으로 많은 교류가 있길 기대하며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말씀과 함께.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하던 오카모토 변호사님의 진심어린 눈빛을 잊을 수 없습니다. 제 마음도 함께 동요했습니다. 제국주의와 폭력에는 반대하지만 일본 사람들을 좋아하는 제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결국 추궁이 아니라 화해였던가 봅니다.

 

우토로평화기념관

저는 본래 우토로 평화기념관 방문 일정에는 참석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교토 여행을 즐길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우에바야시 변호사님과 오카모토 변호사님이 우토로에 함께 가겠다고 하는 말을 직접 들은 사람으로서, 함께 가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습니다. 저년차 변호사로서 일과 육아를 병행하다 보면 휴일의 일 분 일 초가 소중할 텐데, 공부와 경험을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를 위해 마음 써준 것이 무척 감동적이었습니다. “여기까지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라고 말했더니, “올 수 있게  허락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우토로에서는 니와 마사오(丹羽 勝雄) 변호사님의 설명을 통해 우토로 방화 사건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오사카 일대의 변호사님들은 그와 같은 혐오 범죄에 대해 통렬히 분개하였고, 피해자 대리로 사건에 깊이 관여하여, 검사의 구형대로 징역 4년의 판결이 선고되었다고 합니다. 니와 변호사님의 설명을 들으며, 지난밤 우에바야시 변호사님과의 대화가 떠올랐습니다. “이주 문제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외국인에게 살기 좋은 나라가 결국 일본인에게도 살기 좋은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재일조선인 문제는 우리에게는 역사이지만 일본에서는 현재이고 미래였습니다.

우토로 평화기념관 대부분 일본인들의 기부금으로 운영된다고 합니다. 우토로에서는 피해감보다는 의연함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픈 역사가 과거의 원한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미래의 치유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화창한 일요일의 우토로에서는 오카모토 변호사님의 아기도 함께 만날 수 있었습니다. 자이마, 니와 변호사님들 같은 선배 변호사님들에 더해 우에바야시, 오카모토 변호사님들과 같은 또래의 동지들이 일본에 있는 한, 우리의 전망이 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귀국 후

2년차 변호사가 되면서, 의욕과 열정만 앞세우는 것이 과연 답일까? 하는 문제의식이 생겼습니다. 많이 일하고 적게 버는 것이 아니라, 적게 일하고 많이 버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다소 게으른 생각도 했습니다. 좀 쉬어가자는 생각으로 오사카 노변단 교류회에 참가한 것이 솔직한 사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생각지 않게 뜨거운 3박 4일을 보내고 나니, 마음 속에 불이 지펴졌습니다. 겸손과 치밀함, 근성과 완벽주의 같은 일본의 미덕을 인격화한 것이 노변단 변호사님들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본받을 점 많고, 마음 통하는 변호사님들이 바다 건너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운이 납니다. 초심자의 초심을 되살려주시고, 최초의 교류회부터 지금까지 오랜 시간 양국을 오가며 우정과 역사를 쌓아주신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제 자리에서 저의 할 일을 찾아보겠습니다. 그리고 다음번 교류회를 위해 일본어 공부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 추신: 오사카에서 만난 우에바야시 에리코 변호사님 팀과 저희 법인에서 이주 노동 관련 사건을 많이 하고 있는 제 소속 팀이 양국의 외국인보호시설을 주제로 조만간 화상회의를 하기로 했습니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 갈 날들이 기대됩니다.


당신이 다음 오사카노변단 교류회에 참가해야 하는 21가지 이유

권호현 차기 교류회 준비팀장

 

  1. 다음 교류회 준비팀장이 21년 경력의 행사기획 전문 변호사다.
  2. 일본의 법률체계, 노동법제는 한국과 흡사하다.
  3. 일본의 최신 노동판결, 노동위원회 결정을 거의 실시간으로 공유 받을 수 있다(번역은 구글과 네이버가). 그 가치는 활용하는 사람의 몫
  4. 한국의 법률시장은 일본을 따라가게 된다. – 변호사업을 언제 그만 해야 할지 알 수 있을지 모른다.
  5. 노동위 변호사님들과 더욱 가까워진다.
  6. 일본어 실력이 향상되지만 굳이 공부할 필요는 없다(파파고, 구글번역이 의사소통의 장벽을 89% 무너뜨림).
  7. 일본국 국민이 아니라 일본에 사는 사람을 알게 된다.
  8. 단기 여행의 겉핥기와는 다른 차원의 일본 역사, 문화, 사람에 대한 이해의 기회가 된다.
  9. 당신이 한국을 바라보는 그 특이한 시각과 유사하게 일본을 바라보는 일본인을 만난다(여기서도 한줌 거기서도 한줌).
  10. 가기 전보다 다녀와서 더 설렌다.
  11. 나머지 9가지 이유는 위 임예지 변호사 후기 참조
  12. 다음 교류회 후기를 작성하시는 분에게는 상당한 금액의 원고료를 개인적으로 지급해드리려고 한다.
  13. 나머지 이유는 준비팀에 참여해보면 알게 된다.

 

2022. 10. 25. 23:34 귀가해 맥주를 꿀꺽 꿀꺽 하며 쌓인 텔레그램, 카톡을 읽었다. “항공권 검색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눈이 반짝이는 위원님들의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유태영 변). 한국말은 결론이 뒤에 있다고 알고 있었는데, 유 변호사님이 완전한 한국 문화권 사람이 아니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그렇게 준비팀에 들어갔다.

“언제 밥 한번 먹자”의 속 뜻은 “너랑 굳이 시간 내서 밥 먹을 일은 없다”라고 생각한다. 시간은 나는 것이 아니라 내는 것이고, 시간은 내면 난다. 일하는 사람들만 계속 일하게 되는 건 우리가 대체로 속해 있는 집단의 속성 같다. 그리고 ‘열일’하는 사람들이랑 같이 열일하면 재밌다.

그렇게 투어를 맡고, 토론을 맡았다. 이왕 하는 거 ‘빡세게’ 해야 재미도 있고 공부도 된다. 덕분에 일본노동법 실무교육 교재를 살펴보고 구글, 파파고 도움을 받아 많은 검색을 했다. 이제 일본어 스팸메일도 온다. 책을 읽어 하게 되는 공부보다 글을 쓰며 하는 공부가 더 즐겁고 기억에 남는다.

“하태승? 이분 누구지? 만나고 싶다.” 법률용어를 일본어로 번역해야 되는데 발제문 초고가 45쪽이었다(님 매너좀). 일본 변호사들의 발제문은 번역해봐야 5쪽 안팎이었다. 글로 만난 하태승을 직접 만나니 좋았다(일본 맛집 전문 변호사). 동생, 후배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즐겁다. 나의 게으름, 정체에 신선한 충격을 주기 때문이다(발제문 내용은 생략한다 – 찾아보면 다 나옴).

교류회 첫날의 전철. 사카이항을 지나쳤다. 레벨이 부족하여 아직 일본 진출을 못한 대항해시대(온라인). 게임상으로 못 가서 직접 왔다. 18년만의 오사카, 교토. 오나지다(同じだ 같다). 내가 전에 와서 좋은 기억을 남긴 곳에 다시 오는 것. 사는 게 별거 있나 싶다. 추억을 안주 삼아 기억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떠드는 시간을 많이 갖는 것. 이날의 방문으로 내 오랜 한국/일본 친구들에게 연락을 했다. 보고싶다고, 나 여기 왔다고. 그리고 또 몇 년 뒤 오사카에서 만난 변호사들과 교토에서 새롭게 만난 민변 노동위 변호사들에게 연락하겠지. 그 때 우리 즐거웠지. 요즘 어디서 뭐하니.

오사카부 노동위원회 방문. 근로기준법(노동기준법), 노동조합법(오나지다), 민법. 진짜 비슷, 유사를 넘어 흡사하다. 순서만 조금 다르지 서술구조까지 같다. 일본 판례들이 우리보다 몇 년 앞서고, 예전에는 대한민국 법원에서 일본 판례들을 많이 베꼈다. 일본 민법, 노동법을 안다는 것, 그 최신 판례경향을 안다는 것 이를 현장에서 적용하고 있는 일본 변호사들을 안다는 것은 실무적으로 이롭다. 그리고 그 가치는 활용하는 사람에 따라 무궁무진하다.

대한민국 제정법들의 상당수가 일본(또는 독일) 것을 베껴왔다. 근로기준법 제정법(1953년)도 그렇다. 그러나 다르다. 중국의 성리학이 대한민국에서 다르게 발현되었듯, 같은 우랄알타이어가 서로 알아듣기 어려운 언어가 되었듯. 노동위원회 제도를 일본에서 베껴왔는데 한국의 노동위원회 제도는 최첨단이다(할많하않).

한국과 달리 일본의 노동위원회에서는 해고등 개별근로관계의 분쟁을 다루지 않는다. 오직 노동조합 관련 분쟁, 부당노동행위에 관하여만 다룬다. 같은 법, 같은 제도가 다르게 발현된다. 이런 거 재밌다(참고로 일본은 노동심판법에 따라 노동심판위원회가 개별근로관계에서 행정청 역할을 한다-교류회 가서 알게 되었다. 세계법제정보 홈피 참조).

유태영 팀장님의 영도로 교류회 9할이 준비되었지만, 그래서 유태영 팀장님은 매일 일찍 뻗으셨다. 술자리 인솔을 할 준비팀은 나와 현아느님뿐. 3일 밤 내내 20여 명이 들어갈 1,2차 자리를 준비하는 것이 준비팀의 핵심 과업. 한국과 다른 일본문화 중 하나. 대인원이 들어갈 술집이 거의 없다. 뛴다. 올라간다. 물어본다. (100번) 하면 된다. “2층 통째로 빌려줘. 요리 별로 안해도 돼. 우리 술 많이 먹어. 콜”. “일본풍 중국집-양꼬치집-니하오. 니먼지뎬 꽌먼, 워먼 알스거런, 커이마”.

이 자리를 빌어, 이용우 위원장님, 조영선 회장님, 한택근 오야붕노오야붕님께 감사. 말은 줄이고 지갑은 여시는 분들. 후배들이 자꾸 찾아가서 말씀을 청하게 되는 분들.

9 to 18 세미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밖에 머릿속 가슴 속 깊이 남은 감동포인트들이 있다. 자이마상이 한국어로 부르는 아침이슬, 전노련(전국노동자연락협의회) 오사카지부장님이 부르는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후배들 술 사주고 싶어 줄 서 계신 선배님들. 누구 하나 전철에서 놓고 내린 거 아닌가 서로가 서로를 살피는 그 찔끔하게 하는 순간들(다 성인이고 스마트폰 있는데 이놈의 오지랖은… 그래도 좋다).

마지막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써 주신 최용근, 전민경, 정소연 변호사님께 무한 감사. 그 길고 긴 발제문, 토론문을 번역해주심.

다음 교류회 후기를 작성하시는 분에게는 상당한 금액의 원고료를 개인적으로 지급해드리려고 한다. 교류회 후기는 참석자만이 쓸 수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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