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인터뷰]
“바늘 같은 오늘을 사는 변호사”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강은희 회원 인터뷰
-인터뷰어: 김성주 (편집: 김성주, 허진선)
Q)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취약노동팀에서 일하고 있는 강은희입니다. 일 한지는 1년 조금 넘은 아직 새내기네요(웃음). 반갑습니다.
Q) ‘공감’을 모르는 회원들은 아마 거의 없을 것 같은데요(웃음). 그래도 ‘공감’은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소개 좀 부탁드릴게요.
제가 어떤 설명을 덧붙이는 것 보다, 저희 ‘공감’ 홈페이지(https://www.kpil.org)에 나와 있는 설명이 가장 정확할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베껴 왔는데요(웃음).
저희 ‘공감’은 소수자의 입장에 서서, 구체적 삶의 목소리에 응답하며, 법으로 사회 변화를 일구고자 하는 곳이예요. 2004년에 설립된 최초의 공익변호사 단체구요. 수임료를 별도로 받지 않고 시민들의 후원으로만 운영되는 곳이랍니다.
소수자 및 사회적 약자의 인권 개선을 목표로 공익소송 지원, 불합리한 법 제도 개선, 공익변호사 양성 사업 등을 진행하여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판결과 법제개선을 다수 이끌어 내고 있구요. 홈페이지에 너무 자랑거리만 적어둔 것 같네요(웃음).
Q) 취약노동팀은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요?
노동자들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더 취약한 위치에 있는 분들을 위한 일을 해보기 위해 만들어진 팀이예요. 가령 일반적인 근로계약 관계에 포섭되지 않는 분들이라든가, 여성이나 고령자라는 이유로 사회적으로 차별받는 분들에게 조금 더 포커스를 맞추고 일하는 곳이예요.
Q) 취약노동팀에는 어떻게 합류하게 되셨나요?
‘공감’에서 신입 변호사를 채용할 때 이미 공고가 그렇게 올라왔어요.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거죠(웃음). 변호사로 일하게 되면 노동 관련 이슈를 다뤄보고 싶었는데 마침 ‘공감’ 취약노동팀에서 변호사를 채용한다고 올라왔어요. 꼭 일해보고 싶었는데, 운이 좋게도 ‘공감’에서 저를 채용 해주셨네요.
Q) 이 질문 먼저 드렸어야 할 것 같네요. ‘공감’에는 어떤 경위로 합류하게 되셨나요?
로스쿨 다닐 때부터 변호사가 되면 공익전담변호사로 일하고 싶었어요. 시민단체나 공익변호사 그룹에서 공익사건을 전담해서 일하는 선배 변호사들을 보고 저도 그런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마침 작년(2021년) 5월 경 ‘공감’에서 채용 공고가 올라왔어요. 게다가 취약노동팀에서 변호사를 뽑는다길래 꼭 합류해서 일해보고 싶었죠.
특히 ‘공감’은 영리 목적으로 운영되는 법률사무소가 아니었기 때문에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일반적인 법률사무소라면 다루기 어려운 사건들을 다뤄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더구나 취약노동팀에서는 노동조합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상대적으로 더 취약한 노동자들을 만날 수 있고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해볼 수 있을 테니까요.
Q) ‘노동’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경위는 무엇인가요?
음.. 노동환경에 대한 위기 의식이 있었어요. 사회가 다변화하면서 다양한 영역에서 새로운 형태의 노동을 필요로 하는 반면, 노동 관련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드는 게 보였어요. 한편으로, 사용자들이 노동자를 상대할 때에는 어떻게 해야 노동법에 위반되지 않는지에 대한 ‘노하우’가 점점 많아지고 교묘해지는 것 같았어요. 때문에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취약한 노동자들이 더 많아질 것 같다는 위기의식이 노동 분야에 힘을 보태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진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어린 시절에 차별 받던 경험도 영향을 미쳤던 것 같아요. 저는 태어나서부터 10살 때까지 미국에서 살다가, 한국에 와서 중고등학교를 다니고 다시 미국에 가서 대학교를 졸업했거든요. 한국과 미국 양쪽에서 이방인으로 지내다보니, 어린 시절부터 어렴풋이 차별이나 소외가 ‘이런 거구나’라고 알게 되었던 것 같아요.
Q) ‘이방인’이었다는 표현이 인상적이예요. 어떤 면에서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받았나요?
우선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현지 언어에 대한 장벽이 컸던 것 같아요. 제가 미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초등학교 3학년 때 즈음 한국에 들어왔을 때 한국말을 거의 하지 못했어요. 그러다보니 선생님이 “준비물 안 가져온 사람 나와”라고 하셨는데, 그 말을 못 알아듣고 친구들이 다 우르르 나가니까 저도 같이 나가서 맞고 들어왔던 기억이 있네요. 저는 그 때 준비물 가져갔었는데(웃음).
미국에서도 동양인에 대한 소외와 차별은 은연 중에 항상 존재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곳은 나를 위한 곳이 아니구나’라는 느낌을 받으면서 학창시절을 보냈던 것 같아요.
Q) 미국에서 학부를 졸업하고 바로 한국에 와서 로스쿨에 진학하셨더라구요. 변호사를 해보겠다고 결심한 이유가 있나요?
소외 받고 차별 받는 사람들까지 다 함께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보고 싶었어요. 변호사가 되면 그런 일을 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그나마 편해 하고 할 줄 아는 게 글을 쓰는 건데요. 변호사를 하면 글을 쓰면서도 현장에 갈 수 있다고 생각했죠. 막상 변호사가 되니까 글을 쓸 기회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네요(웃음).
Q) ‘공감’ SNS 게시글에 소개된 문구가 인상적이에요. “강은희 변호사의 오늘은 바늘과 같습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어떤 분이 그러더라구요.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은 모래주머니에 바늘을 찌르는 행위와 같다구요. 한 사람이 바늘 하나를 모래주머니에 찌르면 티도 안 나요. 그런데 여러 사람이 계속 반복해서 모래주머니를 찌르고 또 찌르다보면, 어느 날 모래주머니가 터지게 되죠.
저는 ‘공감’에서 제가 하는 일이 바늘로 모래주머니 찌르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저희가 하는 일은 느리고 더뎌요. 어떤 경우에는 같은 이슈를 10년 이상 다루기도 해요. 소송에서 지는 경우도 많구요. 저희 구성원들도 사람이니까 아무래도 지칠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오늘도 나는 열심히 바늘로 모래주머니를 찌를 뿐이야. 언젠가 터지겠지.’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어쨌거나 나만 바늘로 찌르는 게 아니라, 제 주변에 함께하는 동료들이 다함께 열심히 바늘로 모래주머니를 찌르고 있으니까요. 거기서 힘을 얻고 또 열심히 해보는 거죠.
Q) ‘공감’에서 공익전담변호사로 1년 정도 활동하셨는데요. 소회가 어떠신가요?
아직 1년 차 밖에 안되었다니(웃음). 처음에는 정말 의욕도 가득했고 재미도 있었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선배들보다 부담도 덜했구요.
그런데 1년이 좀 지나니까 이제 슬슬 실수와 부족한 점들이 보이기 시작하네요. 법이 가지는 명확한 한계점들도 보이구요.
지금보다 좀 더 잘 해보고 싶어요. 어떻게 하면 지금보다 조금 더 일을 잘 해볼 수 있을까, 변호사로서 노동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아젠다를 제시해볼 수 있을까. 이런 고민들이 시작되는 시점인 것 같아요.
Q) 현재 변호사님이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노동 이슈는 무엇인가요?
저는 방송작가, 드라마 스태프 등 방송계 쪽에서 근무하고 있는 노동자들에 관심이 많아요. 얼마 전에 대법원에서 방송작가의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취지로 의미 있는 판결이 선고되었어요. 정말 뿌듯했는데요.
하지만 승소했다고 문제가 해결된 게 아니었어요. 방송사는 방송작가들을 원래의 직책으로 복직시키지 않고, ‘방송지원책’이라는 직군을 별도로 신설해서 작가들을 신설 부처에 배치시켰어요. 방송사 다른 직원들과 비교해서 적용되는 취업규칙과 근무조건도 달라요. 차별적이죠.
이 지점에서 ‘소송’이 문제의 근본을 해결 해주지 못하구나. ‘법이 다가 아니구나.’라는 걸 직접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고민이예요. 우리는 변호사니까, 법률 전문가로서 소송을 통해 계속 문제에 부딪혀가면서 해결을 시도해보는 게 맞을지. 아니면 조금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사회 제도와 법률 개정 등을 위한 운동을 해나가는 게 맞을지에 대해서요. 답을 찾기 어려운 문제인 것 같아요.
Q) 공감에 근무하면서 수행하거나 참여했던 사건 중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으신가요?
사회복무요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었는데, 노동청에서 지난 2022년 3월에 노동조합 설립신고 반려처분을 했어요. 저희 ‘공감’에서 올해 6월달에 사회복무요원들을 대리해서 행정소송을 제기했어요.
사회복무요원은 실질적으로는 복무기관에 전속돼 근로를 제공하는 노동자임에도 노동자로서 보호 받지 못하고 있어요. 특히 군대의 대체복무다보니. 직장 내 괴롭힘 문제가 계속 발생하고 있는데도 이들을 그나마 보호해주는 제도인 공익신고제도는 유명무실한 경우가 많아요. 때문에 노동조합을 통해 이들의 권리를 보호해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사회복무요원이 비록 군 대체복무라는 특수한 상황에 있다고 하더라도, 헌법상 노동자로서 보호받을 권리를 제약할 수는 없다는 것이 제 생각이에요. 당장 바로 변화하지는 않겠지만, 또 한 번 부딪혀봐야죠.
Q) ‘민변’에는 어떤 경위로 가입하셨어요?
‘공감’ 밖에서도 공익적 사건들을 경험 해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공감’ 밖에 있는 변호사님들은 어떤 의제를 가지고 활동 하는지 궁금했어요. 특히 노동사건과 관련해서, ‘공감’과 함께 고민하고 연대해서 활동하는 변호사님들과도 교류하고 싶었죠.
한편으로는 로스쿨 다닐 때부터 ‘민변’이라는 곳과 활동하는 선배들 자체가 선망의 대상이었던 것 같아요. 물론 가입 후 실제 활동하면서 ‘민변’에 대한 환상에는 금이 갔지만(웃음). 금이 간 자리들은 모두 ‘민변’에 대한 애정으로 채워가고 있습니다(웃음).
Q) ‘민변’에서는 어떤 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나요?
노동위원회, 소수자위원회, 여성인권위원회, 환경보건위원회에 가입되어 있네요. 주로 노동위원회 ‘노동자 건강권팀’, ‘직장갑질 119팀’, ‘국제노동팀’을 중심으로 활동했어요.
소수자위에는 올해 6월 경에 가입했어요. 환경보건위원회에서는 기후위기 비상행동 활동가들에 대한 집시법 위반 사건 변호단에 합류해서 활동하고 있구요. 주로 노동위원회에서 활동하다보니 다른 위원회 활동에 많이 참여 못해서 죄송한 마음이네요. 유령회원이 안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웃음).
Q) 휴식할 때 취미활동으로는 어떤 걸 주로 하시나요?
주로 독서를 하는 것 같아요. 밖에 나가면 전시를 보러 다니기도 하구요.
Q) 추천해 주실 만한 책이 있나요?
요새 정세랑 작가님의 소설 작품을 많이 읽고 있어요. 얼마 전 드라마로도 제작된 ‘보건교사 안은영’ 작품도 인상적이었어요. 룰루 밀러라는 미국 작가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책도 인상 깊었구요. 회원 분들께 추천해드립니다.
Q) 본인의 MBTI 유형을 알고 계신가요? 왠지 INFP(중재자 성격 유형) 같은데..
어떻게 아셨죠?? INFP 유형들이 자신의 성향이 들키면 굉장히 좋아하면서도 내심 싫어하는 거 아시나요..(웃음)
Q) 주변 동료&후배들한테 ‘민변’을 추천 해주신다면 어떤 말씀을 해주고 싶나요?
부담 갖지 말고 일단 가입하세요. 잠자는 회원으로 있다가도, 어느 날 필요할 때 선배들을 찾으시면 됩니다. 언제든 애정을 가지고 여러분들을 이끌어 주는 좋은 선배들이 많은 곳이랍니다.
Q) 변호사님에게 민변은 어떤 의미인가요?
가끔 다투기도 하고 가끔은 꼰대같기도 한, 하지만 너무나도 든든한 언니 같은 조직이랄까요? 민변이 있어서 다행이예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