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 7년 만에 얻은 ‘승소’
아사히글라스 법률 투쟁기
작성: 장석우 회원
[긴 투쟁의 시작]
2015년 여름 어느날, 아사히글라스 사내하청노동조합 차헌호 위원장이 빨간 투쟁 글씨가 적힌 조끼를 입고 처음 금속법률원에 찾아왔습니다. 당시 제가 구미지부 담당이라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었었죠. 노동조합을 만든지 한 달 만에 모두 해고되셨다며, 곧 금속노조 지회로 편제될 예정이니 형사문제 등과 관련한 법률지원을 요청했습니다. 또 불법파견과 부당노동행위로 원청에 대한 고용노동청 고소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까지 확보된 증거는 원청 업무 문서 몇 장과 큰 도움이 안되는 원청 직원과의 통화 녹취록. 문자 몇 개. 조합원 몇 분의 진술 뿐. 민사는 지금 당장 들어가면 백전백패니 차분히 증거부터 수집해보자고 말씀드렸습니다.
[계속된 패소와 유죄선고]
가처분과 각종 형사사건들에 대한 법률 지원을 가장 먼저 하게 되었습니다. 지회는 회사 앞 인도에 천막과 현수막 등을 설치하여 투쟁 거점으로 삼고 있었고, 회사는 수순대로 이를 막고자 철거 등 가처분을 신청합니다. 출근투쟁과 회사 앞 집회 등에서 원청직원, 경비용역들과의 충돌이 발생했고, 검찰은 조합원들을 공동주거침입, 업무방해, 상해, 모욕 등 갖가지 죄목으로 기소하여 여러 건의 형사재판들이 동시에 진행되었습니다. 천막들은 행정대집행으로 철거되었고 공무집행방해, 공용물손상 등의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패소와 유죄선고가 연이어 있었으나, 아사히 동지들은 굴하지 않았습니다. 전열을 정비하고 천막을 다시 쳤습니다. 다행히 누구도 구속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동지들은 너무나 절박했었고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습니다. 비정규직 투쟁에 대한 피고인 최후진술을 담담하게 할 때면 법정이 늘 숙연해졌었죠. 판사들도 인간인지라 그런 점이 조금이라도 반영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반격의 전기]
교착상태는 동지들의 집요함으로 뚫어냈습니다. 고소 이후 구미고용노동지청 담당 근로감독관을 거의 매일 닦달했습니다. 수많은 동지들이 고소인과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았습니다. 담당 근로감독관은 2년 동안의 조사과정에서 불법파견과 관련하여 5천 여 페이지의 수사기록을 확보했고, 대구지검 김천지청에 파견법 위반 기소의견으로 사건을 송치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이제 민사소송도 시작을 해야 할 때라는 판단이 섰습니다. 그리고 2017년 7월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에 소장을 접수합니다. 구미고용노동지청은 같은 해 8월 말 기소의견 송치와 더불어 시정조치를 내렸고, 원청이 이를 이행하지 않자 17억 8천 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하였습니다.
[또 한번의 시련]
2017년 12월 대구지검 김천지청은 구미고용노동지청의 판단을 뒤집고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불기소처분을 합니다. 이로써 수사기록에 대해 문서송부촉탁을 하더라도 검사 재량으로 개인정보, 수사기밀, 기업비밀 등 갖가지 이유를 대며 해주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그 경우 다시 정보공개청구를 하고 지청장이 거부처분을 하면 그에 대한 취소소송을 해야 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희망 한 조각]
이번에도 돌파구는 조합원들이 찾았습니다. 기자회견, 담당 검사실 방문, 전화, 무작정 뻗치기, 지청장 면담요청 등을 통해 수사기록 일부 등사를 약속받았습니다. 요청한 서류 중 4/5 정도는 문서송부촉탁을 통해 받아볼 수 있었습니다. 검토해보니 기가 막혔습니다. 원청이 작업량, 작업방법, 작업순서, 작업시기 등 작업수행과정에 개입한 각종 작업지시서류들이 버젓이 존재했습니다. 일부 업무에 대해서는 원청과 협업하여 공동작업을 하였다는 원하청 관계자들 진술도 많았습니다. 함께 검토한 김유정 변호사가 묵직하게 한마디를 던졌습니다. “장변, 불파 맞아요.” 용기를 얻어 항고장을 쓰고 국회 토론회, 기자회견을 통해 여론화를 시도했습니다. 이 때 이용우 변호사가 대리인단에 합류했습니다.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은 심정이었습니다.
[뒤집기]
사실 검찰항고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대구고검 담당검사가 이례적으로 대질신문을 한다고 했습니다. 반신반의 하면서 차헌호 지회장과 함께 대구로 향했습니다. 하청 대표, 관리자와 함께 오전 9시 반에 시작한 조사가 자정이 한참 넘어서야 끝이 났고, 총 60페이지의 조서가 만들어졌습니다. 조서 내용을 검토하며 지회장과 눈빛을 교환했습니다. ‘뒤집는다!’. 2018년 5월 재기수사명령이 떨어졌고, 김천지청에서 보완수사를 거쳐 2019년 2월 사건은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로 넘어갔습니다. 검사 측, 원하청 변호인 측, 저와 김유정 변호사의 PPT, 사전 제출 의견서에 대한 질의응답이 있었고, 당일 밤 위원회는 기소를 권고했습니다. 그로부터 이틀 후 김천지청은 원하청 회사와 대표이사를 파견법 위반으로 기소했습니다.
[승소]
1심에서는 두 번의 현장검증과 많은 원청 직원들에 대한 증인신문, PPT 변론 등을 포함하여 총 12회의 변론기일이 진행되었습니다. 회사 측 대리인이었던 김앤장은 무리하다 싶을 만큼 모르쇠로 일관했습니다. 문서제출명령을 신청하면 그런 문서를 보관하고 있지 않다거나 기업비밀이 담겨져 있어 제출할 수 없다고 거의 전부를 거부했고, 재판부는 그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증인들의 답변도 대체로 모른다거나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증인으로 나온 원청 직원과 함께 일했던 원고가 2년을 같이 일했는데 절 기억도 못하시냐고 울먹이면서 질문하자 마지못해 기억난다고 한 일도 있었습니다. 무전기를 들고 다니며 상호 업무연락을 한 것도 계속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다가 재판장이 힐난하자 그제서야 답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회사 측 변론 방향은 효과적이지 않았습니다. 1심 결과는 원고들의 완전 승소였습니다.
[또 승소]
2심에서는 한 번의 현장검증과 증인신문, PPT 변론 등 총 6회의 변론기일이 진행되었습니다. 형사 결과를 기다린다고 오랜 기간 추정이 되어 있었는데, 다행히 원하청 회사와 대표이사는 2021년 8월 형사 1심에서 파견법 위반의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증거는 다시 뭉텅이로 들어왔습니다. 회사 측 대리인은 태평양으로 교체되었는데 이들의 주된 전략은 공정별 갈라치기로서, 일부 공정만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습니다. 2심 진행 중 저는 휴직에 들어가면서 선발투수 자리에서 내려왔고, 감독 김유정 변호사는 법률원의 불법파견 에이스, 탁선호 변호사를 구원투수로 소환, 이용우 변호사와 더블 스토퍼 체제를 구축시켰습니다. 대리인단은 상대 프레임에 휘말리지 않으면서, 새롭게 확보된 증거들을 검토하여 정교하게 기존 주장을 보완하였고, 결과는 항소 기각! 드디어 아사히 동지들 복직의 길이 멀지 않았습니다.
[소회]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
아사히 동지들을 보면 종종 이 말이 떠오릅니다. 사측의 온갖 회유, 압박, 고소고발, 가처분, 손해배상청구 등에 전혀 굴하지 않고 7년 넘게 버텨냈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싸움을 하는 와중에도 전국을 다니며 힘겨운 투쟁 현장들에 든든한 연대의 힘을 보탰습니다. 이는 다시 새로운 연대들을 낳았고, 일반 시민들의 관심과 응원까지 불러일으켰습니다. 바로 이것이 아사히 동지들이 지역에 고립되지 않은 채, 지치지 않고 계속 싸울 수 있는 원동력이었을 것입니다.
또 각 고비 때마다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뚝심으로 수천 페이지의 기록을 확보하고 김천지청에 여러 차례 기소 의견 보고서를 올린 박OO, 안OO 근로감독관, 그 기록들을 머릿속에 모두 꿴 채 하청 대표이사와 담당자를 몰아붙여 뒤집기 조서를 만들어내고 재기수사 명령을 내린 장OO 검사, 보완수사를 통해 핵심 증거를 보강하고, 대검 수사심의위원회와 형사 1심 공판까지 직관한 박OO 검사. 모두 동지들의 집요함이 만들어낸 인연들입니다.
저희 대리인단도 손발이 매우 잘 맞았다고 자평합니다. 금속법률원장 김유정 변호사는 변론의 큰 방향을 설정해주고 나머지는 믿고 맡기며 끊임없이 용기를 불어넣는(No Fear!) 리더였습니다. 저와 이용우, 탁선호 변호사는 각종 서면작성과 법정 변론, 현장검증 참여, 증인신문, 기자회견, 언론기고, 토론회 참석 등 실무 역할을 분담하여 수행했습니다. 대리인단은 아사히 동지들이 현장으로 돌아가는 그 날까지 최고의 팀웍을 유지하며 뒤에서, 때로는 옆에서 조력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