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인터뷰] 소수자, 사회적 약자의 인권 확장을 위해 일하는 장서연 변호사를 만나다.

2015-11-26 67

장서연 변호사를 만나러 가는 창덕궁 돌담길은 은행잎이 따스하게 흩날렸습니다. 원서동 한 모퉁이의 소극장 건물 3층에 위치한 공감 사무실에는 대부분의 변호사님들이 외근을 나간 와중에 장서연 변호사님이 웃으면서 인터뷰팀을 맞아 주셨습니다. 햇빛이 기웃하는 사무실 입구의 티테이블에서 장서연 변호사님을 모시고 출판홍보팀의 최종연 변호사와 송연주 자원활동가가 인터뷰를 진행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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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빠 보이십니다. 오늘 오전에는 어디를 다녀오셨는지요.

 

: 오늘 오전에는 3기 국가인권정책수립계획(NAP)을 수립하는데 있어 연구과제를 맡은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성소수자 분야의견을 수렴하는 자리에 다녀왔어요.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국가인권정책수립계획에 관해 권고안을 제출하고, 정부는 정부차원의 국가인권기본계획 수립합니다. 여기에 시민사회의 의견을 수립하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어요. 오늘 주로 다룬 내용은 1, 2기 NAP 이행 여부와, 3기 NAP 수립에서의 검토할 내용들이었어요.

 

: 1, 2기 국가인권정책수립계획은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 1, 2기때 인권위에서 굉장히 여러 분야를 권고했어요. 그런데 성소수자 분야는 굉장히 미흡하게 반영되었어요. 1기에서는 동성간 성폭력 처벌(형법개정)만 반영되었고, 2기에서는 전무했죠.

 

: 3기 국가인권정책수립계획에 반영시킬 중점 사항은 어떤 부분이 있을까요.

: 저는 장기적으로 사회 변화를 위해서는 교육 분야, 특히 교육과 청소년 분야가 중요하다고 보아요.

 

: 그렇게 생각하시는 계기는 어떤 것들이 있으신지요.

 

: 저희가 지난 화요일 국가인권위 용역으로 성소수자 차별실태조사결과를 보고하는 자리가 있었어요. 2014년 하반기에 조사했던 것인데, 뒤늦게 결과발표토론을 가졌습니다. 조사 결과 중에 청소년 성소수자 5명 중 1명이 자살을 시도했다는 내용이 있어요. 이게 왜 심각하냐면 시도는 안 했지만 자살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은 훨씬 많다는 것이거든요. 학교 안에서의 비하 또는 적대적 분위기에서 정체성을 형성하기에는 성소수자가 취약한 환경이고, 학교뿐만 아니라 가정 안에서도 충분한 지지를 못 받고 있고,사회 분위기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정부 차원의 정책, 교육청 차원의 정책이 전무해요. 더 우려스러운 것은 교육부는국가 차원의 성교육 표준안 만들면서 동성애, 성적 지향 내용 넣지 말라고 하고 있는 거죠.

 

: 청소년과 성소수자 분야에 대해 변호사로서, 법조인으로서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보시나요.

 

: 2011년에 서울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도록 노력했어요. 서울학생인권조례는 무상급식과 더불어 진보교육감의 주요 공약이었고, 두발자유, 체벌금지 등 청소년인권운동의 염원이 담긴 정책이었어요. 정권이 바뀌면서 법률로 제정하기에는 입법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주민발의조례로 되었던 것인데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에 관한 차별금지와 보호의 내용도 담겨있었어요. 거기에 대해 보수진영에서 공격을 하면서, 제정이 되면 자녀들이 동성애자가 된다느니, 학교에서 항문성교를 배운다고 피켓 들면서 반대하는 경우도 있었고, 서울시 의원들한테 매일 500통씩 반대문자가 가고 그러던 상황이었어요.

 당시 민주당이 서울시 의회 다수석을 차지하고 있었는데,성소수자 관련 내용이 들어가면 조례 자체가 부결된다는 염려 때문에 차별받지 않을 권리에서 ‘성적 지향’, ‘성별정체성’을삭제하려고 했던시도들이 있어서, 학생인권조례가 원안대로 통과될 수 있도록 성소수자들과 그 지지자들이 2011. 12. 14. 서울시의원회관을점거하고 시위에 돌입했어요, 당시에 민주당 원내대표도 찾아가고 여러 각도로 설득한 끝에 민주당에서 당론으로 정해서 통과를 시켰습니다.

 그 이후에 곽노현 교육감이 물러나고 문용린 교육감이 들어서고, 이주호 장관이 무효소송을 제기하면서 학교현장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정착이 되기 힘들었는데, 조희연 교육감 당선 이후에 학생인권옹호관도 임명하고, 조례를 학교현장에 정착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저도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위원회 위원으로서 자문을 하고 있고요.

 

: 장서연 변호사님은 청소년 성소수자 인권에 대해 어떤 계기로 관심을 가지게 되셨나요.

 

: 제가 대리했던 사건 중에서 한 고등학생이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집단괴롭힘끝에 자살한 사건이 있었어요. 부모가 교육청 상대로 학교폭력에 대하여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음에 대해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였어요.

 저는 청소년 성소수자에 대해 정부 차원의 정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외국에서도 성소수자 청소년의 자살이 심각한 문제이고, 탈가정, 탈학교한 청소년의 상당수가 성소수자라는 실태조사도 있는데요, 청소년 성소수자의 자살예방이나 지원을 위한 캠페인 또는 정책을 외국에서는 많이 실시하고 있어요. 대만에서도 남학생이 여성스럽다는 이유로집단괴롭힘끝에 학교 안에서 자살한 사건이 있었는데, 대만사회는 이런 비극적인 사례를 예방하기 위해 성평등교육법을 10년 전에 제정, 시행중이에요.2년 전에 제가 대만의 퀴어퍼레이드에 갔을 때 청소년들이 직접 나와서 활동하는 것을 보고 부럽다는 생각을 했어요.그러나 한국에서는 이런 비극적인 일이 발생해도 부모가 진행하는 소송밖에 없고, 사회가 전혀 경각심을 못 느끼는 것 자체가 더 절망적인 상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 왜 한국에서는 경각심을 못 느낄까요?

 

: 한국은 청소년의 자살률이 굉장히 높잖아요. 이제는 사회가 너무 무감각해진 것이 아닌가 싶어요.

 

: 대리하셨던 청소년 성소수자 사건은 어떻게 마무리되었나요.

 

: 제가 1심부터 맡았던 건아니고, 2013년에 대법원에서 피고 측 책임을 30% 인정한 원심을 파기환송 했어요. 집단괴롭힘이 빈번하지 않고 폭력적이지 않았다면서 자살에 대한 학교 측 예견가능성이 없었다고 판단한 거에요. 그게 법률신문에 나면서 사건의 자세한 내용을 알게 되었고, 이 사건이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성 집단 괴롭힘인 것을 나중에 알게 되어서, 파기환송심 부터 개입하게 되었어요.

 사건을 진행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파기환송심은 법에 따라 대법원의 법률적 사실적 판단에 기속이 되는데,저희가 청소년 성소수자 연구자의 전문가 증언이나 자살예방전문가의 심리적 부검 결과도 제출했는데, 결국 자살 부분의 학교 책임에 대해서는 인정이 되지 않았어요.

 

: 대법원에서 결국 자살에 대해 어떤 취지였나요.

 

: 대법원은 괴롭힘이 빈번하지 않고, 물리적 신체적 폭력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중대하고 심각한 괴롭힘이 아니라는 식으로 판단했는데, 저는 대법원이 집단 괴롭힘의 특성, 성소수자 학생의 취약성을 간과했다고 봐요. 또 하나의 문제는 대법원은 법률심인데, 원심에어 인정한 사실관계를 너무 간단하게 뒤집어 버린 거죠. 주심이 김신 대법관이었데, 개인의 종교관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 의구심이 들었죠.

 

: 청소년 성소수자 문제에서 조금 주제를 바꿔서, 영화 <친구사이>에 관해 소송을 대리하셨다고 읽었습니다. 당시 변론의 중점은 무엇이었나요.

 

: 영화 <친구사이>가 청소년관람불가처분을 받아서 소송을 제기한 것이었어요. 영화 ‘친구사이?’의 제목은, 군복무중인 연우진을 애인인 이제훈이 면회하러 갔는데 면회신청서에 ‘관계’를 적을 때 ‘애인’이라고 적었다가 ‘친구’라고 적은데서 나온 건데요, 다른 영화제에서는 12세나 청소년 관람가로 상영되었고, 성소수자의 현실을 따뜻하고 밝게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는 영화였어요.

그런데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이 영화가 동성애를 주제로 하고 있고, 여관방에서 둘이 키스를 하는 장면이 있다고 선정성 때문에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준거에요.

제가 왜 <친구사이> 등급 문제를 중요하다고 보았냐면, 제가 얼마 전에 읽은 책에 앤드류 솔로몬이 쓴 <Far From The Tree>라는 책이 있었어요. 이 책의 내용이 far from trees, 즉 가족 또는 어떤 계보에서 떨어져 있다는 뜻인데, 장애인, 트렌스젠더, 게이, 영재의 경우 수평적 정체성이라고 해서, 수직적 정체성인 인종이나 가문 등에서 멀어져 수평적인 정체성을 가진 그룹을 만나야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다는 거에요.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는 사회, 문화의 영향을 받고, 그런 사회와 문화의 통념에는 소수자에 대한 편견이나 낙인이 뿌리깊기 때문에 부정적인 인식을 내면화한 상황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게 되어요. 그래서 소수자에 관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는 미디어가 굉장히 중요해요. 그래서 <친구사이>의 청소년관람불가 결정이 영화사뿐만 아니라 청소년 집단에도 중요한 이슈라고 보고 취소소송을 제기했는데, 청소년관람불가 취소소송은선례가 없고 후례도 없어요. 그 이유는 청소년관람불가가 나오면 그대로 개봉하거나 해당 장면만 삭제해서 상영하면 되는데, <친구사이>처럼 다투려면 4년이나 걸려서 대법원 판단이 나왔기 때문에 흥행이나 금전적으로 도움이 안 되는 거죠. 결국 이 소송은 김조광수 감독이 의지를 갖고 만들었던 사건이라고 볼 수 있지요.

제가 당시 서울행정법원의 첫 기일 분위기를 잊을 수 없는데, 처음에는 우배석 판사가 뭐 이런 사건을 법원에 가지고 왔지 이런 분위기였어요. 1심 재판장은 이광범 부장판사였는데, 영화를 검증한다면서 부장판사 사무실에서 <친구사이> 영화를 기자들과 같이 보았어요. 결국에 재판부는 청소년관람불가가 표현의 자유, 성소수자의 성적 자기결정권, 알 권리, 평등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1심에서 승소했어요. 그 이후에 영등위가 계속 상소했는데, 대법원에서도 승소해서 확정되었지요.

 

: 성소수자 인권문제의 경과에 있어서 작년 서울시청 점거 농성을 빼놓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당시 변호사님도 계셨던 것으로 아는데,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간단히 들을 수 있을까요.

 

: 작년에 저희는 서울시가 인권헌장이 무산되었다는 발표를 하고, 박원순 시장이목사들에게 사과하면서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힌 것에 대해 항의하기 위해서 서울시청 점거 농성을 시작했어요.

 

: 이제 거의 시청점거농성 1주년이 돌아오는데요, 지금 돌이켜보면 여러 가지 소회가 있으실 것 같습니다.

 

: 박원순 시장은 당시에 농성 대표단에게 사과를 하면서 실무적으로 성소수자 인권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보자고 해서, 서울시 혁신기획관과 인권국 차원에서 활동가들과 현장의 인권 이슈에 관해 정례적 면담을 했었어요. 그러데 서울시 행정에서도 여전히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발생하고 있고, 서울시민인권보호관에게 진정한 사건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서울시는 사회적 합의를 위해서 더 노력하겠다고 했지만 서울시민인권헌장에 관한 2015년 예산은 전혀 집행하지 않았고, 2016년에는 예산도 전혀 배정하지 않았어요.

 서울시민인권헌장 폐기 이후 도미노처럼 다른 성소수자 인권이슈에도 악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해요. 바로 그 직후인 2014. 12. 30. 성북구청에서 청소년위기지원사업 예산을 불용시켰고, 올해에는 교육부에서 성교육 표준안 문제도 그렇고, 여성가족부가 성소수자를 배제하는 것도 그렇고, 비온뒤무지개재단의 사단법인 설립 신청에 대해 법무부가 거부 처분한 것도 그래요. 저는 공직자나 정치인들이 성소수자 이슈에서 기본적인 인권 차원에서 단호하게 대응하지 못한 것이, 반대시위자들의 기를 살려줬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퀴어문화축제를 진행한지가 벌써 15, 16년째인데, 그 전에는 반대시위자들이 축제를 방해한 적은 없었는데 2014년도에는 길에 몰려나와서 몸으로 막고, 5시간 동안 행사 진행을 방해했어요. 이 사람들이 전국적으로 몰려다니며 성소수자 인권 이슈에 대해 반대를 하는데, 그것에 대해 단호하게 대응하지 않고,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니까 폭력성이 더 심해지는 것이죠.

 그래도 한편으로는,무지개농성이 있었기 때문에 2015년 퀴어문화축제를 서울시청광장에서 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어요. 당시 상황이 좋지 않았는데,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도 있었고, 퀴어문화축제를 취소하라는 압박도 있었는데도. 서울시에서는 시청광장은 신청자 누구나 사용가능하다는 원칙적 입장을 고수했기 때문에 퀴어문화축제를 진행할 수 있었죠.

 

장서연 변호사님은 시종일관 온화하고 미소짓는 표정이었지만, 그 내용 하나하나에 대해서는 굉장히 자세하고 거침없는 답을 해주었습니다. 녹음을 하고 있었지만 다 들을 자신도 없었고, 타자를 치면서도 내용을 그대로 옮기기가 버거웠습니다. 결국 주제를 살짝 전환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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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무거운 주제들에 대해서만 다루었는데, 다른 많은 인터뷰들에서도 다루었지만 과거로 돌아가 볼게요. 한영외고에 다니신 후에 법대로 진학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 법대 가는 사람들은 다 성적대로 가는 것 아닌가요 (웃음) 공감의 공채공고를 보고 지원하게 된 것은 2006년 광주지검 순천지청 근무중이었는데, 사실 저는 그동안 순응적으로 살아왔던 것 같아요. 부모님 권유대로 특목고 입시를 보았고, 법대에 진학해서 사시를 보았고, 검찰 임용이 되어서, 주류사회에 편입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지만, 제 마음속에는 제가 이방인이라는 생각이 늘 있었거든요.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제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거든요. 짝사랑이었지만 여자 선배들을 좋아했고. 그런데 대학교에 입학한 다음에 인터넷 통신을 접하면서 유니텔에 퀴어 동호회를 찾은 거에요, 거기서 다른 성소수자들을 처음 만난 거에요. 이쪽에서는 그걸 데뷔라고 하는데, 사람들과 신나게 잘 놀다가 4학년이 되니까 미래가 불안해지는 거에요, 학점은 너무 안 좋고. 마침 그때 친한 친구가 신림동에 고시공부하러 간다고 해서, 저도 같이 간다고 해서 사시공부를 시작했던 거에요. 그리고 시험이 끝나고 나서 다시 (성소수자) 커뮤니티에 나왔는데, 커뮤니티 사람들을 만날 때는 너무 좋았지만, 공감에 오기 전까지는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커뮤니티의 세계와 그렇지 않은 세계에 따라 일반, 이반 이렇게 나뉘는 삶인거죠. 커뮤니티에서는 온전한 나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장 부담스러웠던 것은 지역에서 검사로 근무하다 보니, 수도권처럼 커뮤니티도 별로 없거니와, 검사라는 신분 때문에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을 쉽게 만나고 사귈 수도 없는 노릇이었어요. 예를 들면 기업인들도 함부로 만나면 안 되고… 초임 검사 시절이라 그런 경계심이 컸었고.. 그러다보니 제 인생에서 사시공부도 너무 힘들었는데, 검사생활도 너무 불행했어요.

 

: 검사 일 자체는 성격에 맞으셨나봐요(웃음)

 

: 검사 일 자체는 좋았고 검찰청 사람들도 좋았지만 제 삶이 없는 거죠. 고민하던 차에 공감 공채를 보았고, 그 전에 제가 사법연수원에 있을 때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사법연수원에 강연을 왔었고, 정정훈 변호사가 제1회 무지개인권상 수상하며 이런 일을 하는 변호사단체도 있네 알았었거든요. 그래서 공감에 지원했는데, 와보니까 막상 성소수자 관련 업무를 별로 안 하고 있더라구요. 사실 공감에 와서 저도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이주민, 난민, HIV 감염인, 출입국단속, 외국인보호소에 대해 관심 갖게 되었어요. 그리고 2007년에는 성소수자 관련해서 법제도를 검토하고 소송을 진행할 사건이 별로 없었어요.

 

: 최근에 코리아헤럴드에서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지난 320일 모로코인 난민신청자가 본국에 강제로 송환되던 중 인천공항에서 결국 사망한 사건이 있었는데, 변호사님도 보셨는지요? 외국인 보호소나 불법체류자 인권 침해 문제가 왜 이렇게 심각한 걸까요?

 

: 최근 프랑스 파리에서 IS의 테러가 있고, 이러한 테러의 예방 명목 차원에서 이주민 또는 난민 등을 강제추방하는 사건이 발생하는 것이고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봐요. 예전에 이명박 정부에서 G20 정상회의한다고 이주민들에 대한 불심검문, 단속강화를 하겠다고 이야기했었어요. 사실은 그것이 인종차별적인 거죠. 그리고 국가 단위에서 봤을 때는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 (비국민으로서의) 외국인들인데, 제가 사실 외국인보호소나 단속문제에 관심갖게 되었던 이유는 이곳이 정말 무법지대라는 것이었어요. 적법절차라는게 전혀 없고, 구속 및 추방인데도 법원 영장도 없고, 집행기관과 조사기간 역할을 모두 출입국관리소가 담당하는 거고, 인권침해가 굉장히 심각했어요. 합법체류자였는데 부당하게 구금되는 경우도 있었고, 한국인인데도 외국인으로 오인을 받아서 단속되는경우도 있었거든요.

 

: 외국인 인권 문제에서 처음 활동을 시작한 당시보다 진보한 분야는 어떤 것이 있으신가요?

 

: 외국인보호소에 외국인을 수용할 때는 3개월마다 법무부장관의 승인을 받는 것으로 출입국관리법이 2010년에 개정되었어요. 예전에 베트남이주노동자들이 인천항 건설현장 파업으로 인해 구속된 사건이 있었어요. 그것도 경기도경 외사부에서 기획수사로 부풀린 사건이었는데, 업무방해 무죄를 받고 석방되었어요. 당시 인천지역 건설노조연맹에서 지원을 많이 해줬고 석방 이후에도 일자리를 알아봐주었고, 한국에서 베트남공동체가 결성되는 계기가 되었어요.

또 기억나는 사건은 한 중국동포가 고용허가제로 신체검사시 HIV 양성이 나와 출국명령이 떨어졌는데, 당시 생모가 한국에서 귀화해서 살던 상태였어요. 과거에만 해도 감염인은 출입국관리법상 강제퇴거, 입국금지대상이었는데, 단지 HIV 감염인이라는 이유로 강제퇴거를 시키는 것은 공중보건학적 관점에서 전혀 근거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저희가 출국명령취소소송을 했고, 국가인권위가 당시에만 해도 중요한 인권침해사건의 경우 의견서를 법원에 제출했었는데 이 사건에서도 의견을 법원에 제출해서 1심에서 승소를 하여 출국명령이 취소되었어요. UN에서도 한국 정부에 HIV 감염인에 대한 출입국통제를 폐지하라고 권고를 많이 했었고, 지금은 정책적으로 HIV 감염인이라고 강제추방하지는 않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 UN의 권고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최근의 자유권 규약 이행실태에 관한 권고도 있고, 국제인권 메커니즘에 의해 국제기구가 권고를 하면 우리 정부가 진지하게 받아들이나요?

 

: (파안대소하며) 그렇지는 않죠.

 

: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인권 메커니즘으로 문제제기를 시도하는 이유는요?

 

: (변화를 요구할) 근거가 되니까. 정부가 너무 무시하는 경향도 있기는 하지만, 법무부와 외교부도 국제사회에 나가서는 말이 다릅니다. 외국에 나가서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 노력, 연구하고 있다’ 이렇게 말하는데, 그러나 2007년 차별금지법 무산 이후 정부는 한 번도 발의한 적이 없어요. 그러나 이렇게 말이 다르다는 것은 국제사회의 입장에서 신경을 쓰고는 있다는 것이거든요. 저도 <공감>에 오기 전에는 국제인권 메커니즘에 대해 잘 몰랐어요. 정기적으로 한국에 대해 심의하는 것도 몰랐고, 의견을 내는 것도 몰랐죠. 2012년 인종차별철폐위원회에 NGO 리포트를 내고 심의에도 참여할 기회가 있었는데, 국제기구의 권고가 정부에 요구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되기 때문에 계속 노력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법을 만드는 국회는 결국 원내다수석과 다수결의 원리가 작용하는데, 인권이라는 것은 다수결의 원리에서 배제되거나 권리에서 침해되는 이슈들이 많아서, 국제사회의 인권메커니즘을 이용하는 것도 중요 수단이라고 봐요.

 

: 실제 소송에서 국제인권규약이 판결 근거가 된 경우도 있나요?

 

: 2013년에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트렌스젠더 성별정정사건에 대해 판단하면서, 결정이유에서 외국 입법례도 많이 담고 있어요. SOGI(Sexual Orientation & Gender Identity)법정책연구회라고 있어요. <희망을 만드는 법>의 한가람, 류민희 변호사도 있고 다른 LGBTI 활동가들과 연구자로 구성된 정책연구회인데, 2011년에 제가 제안하여 결성되었는데, 장애법연구회를 벤치마킹해서 만든 거에요. 여기서 성별정정에 있어서 외부성기수술을 요구하는 것을 문제제기하기로 하고, 그래서 성기성형수술을 하지 않은 사람이 이 상태에서 성별정정을 해달라는 소송하기로 했어요. 왜냐면 대법원 예규 지침에 보면 외부 성기를 포함한 신체 외관이 전환될 성별의 것과 유사해야 한다고 보고 있는데, 하지만 외국에서는 예를 들면 독일연방헌법재판소에서는 그러한 생식능력제거나 외부성기수술을 의무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신체완전성의 침해라서 위헌이라고 보고 있거든요. 시대가 변하면 그런 부당함에 대해 더 많이 공감하겠지만, 성전환자는 현대 사회에서 강제불임을 강요받는 유일한 집단인거에요. 트랜스젠더라고 모두 성전환수술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신체에 대한 위화감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의료적 처우도 각각 다르게 해야한다는 것이 의료계 입장이거든요. 호르몬만 맞더라도, 그걸 transition이라고 하는데 성전환이 이미 많이 된 상태인데, 신분증의 표시와 실제 외관이 달라서, 심지어 투표소에도 못 가고, 채용과정에서 불이익도 당하고, 은행, 병원 같은 데에서도 본인 맞냐고 물어보는 등 차별이 심각해서, 성별정정요건을 완화하는 공익소송을 한거에요. 저희는 대법원까지 갈 줄 알았는데, 다행히 당시 서울서부지법원장이었던 강영호 법원장이심문기일에서 진지하게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인용결정을 하였어요. 그 이후 기사화가 되면서 비슷한 상황에 있는 트렌스젠더분들이 정말 4-50명이 모이고, 법원에 성별정정신청을 많이 했어요.

 

: 이후에 다른 법원에서는 외부성기수술 없는 성전환자의 성별정정신청이 어떻게 되었나요?

 

: 지금 다른 곳에서도 인용되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어요. 인천지법 부천지원, 서울가정법원에서도 인용되는 경우가 있고요. 그런데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도 법원장이 바뀐 이후로 기각이 되는 경우도 있어요.

 

인터뷰 도중에 차를 빼달라는 전화가 와서 인터뷰와 녹음은 잠시 멈추어야 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전화가 온 순간부터 녹음은 중지되어 있었습니다. 차를 빼는 동안 동성결혼에 대해 송연주 활동가가 열심히 인터뷰를 나누었지만 기록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 부분은 전적인 인터뷰어의 과실으로, 나중에 장서연 변호사님이 다른 기회에 더욱 상세히 밝히실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 이제 민변으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민변 소수자인권위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계신데, 위원장으로서 위원회 활동을 자평한다면 어떠신가요?

 

답 : 민변 소수자인권위가 출범한지가 이제 5년인데요, 앞으로 민변 소수자인권위원회가 더 발전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신입위원들이 민변에 가입할 때 관심 있는 위원회로서 지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희망법도 민변 소수자위에서 만나서 결성이 되었고, 소수자위는 젊은 위원회고 앞으로 활동이 점점 더 확대되고 강화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 이런 질문을 드려도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민변의 위원회 중심적인 활동 때문에 생기는 어려움이 있을까요?

 

: 위원회 회의만으로는 실질적인 업무를 함께하기가 힘들고, 예를 들면, 동성결혼소송 변호인단처럼 팀을 구성해서 같이 일할 수 있죠. 신입변호사님들 중에서는 근무시간에는 시간을 내기 어렵고 근무 외 시간을 별도로 내야하고, 보통 보면 3년차까지 제일 바빠서 다른 활동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소수자위 활동도 그런 어려움도 있는데, 그런 부분들은 앞으로 괜찮아질 거라고 봐요.

 

: 이제 공감에 들어오신지 8년이 다 되어가시는데요, 보통 인권변호사를 지망하는 경우 공통적인 특징이 있나요? 또는 인권변호사로서 가장 오래 남는 사람의 특징이 있습니까?

 

 : 공감 변호사나 민변 변호사나 다 꾸준히 하지 않나요(웃음). 제가 보았을 때는, 민변에 가입한다는 것 자체가 인권이나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을 갖고 법조생활을 하시는 분들이기 때문에 민변에 일단 가입하라고 권유하고 싶고. 저는 사실 민변이 되게 좋은 울타리라고 생각해요. 제가 변호사 시작할 초창기에 2008년 미국소 수입 반대 촛불집회가 있었어요. 거기서 연행된 모든 사람들에게 민변 변호사들이 접견을 갔다는 것과 몇 년 후까지 사건을 지원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고요, 2009년 용산참사나 동성결혼 소송을 민변 선배들과 함께 수행하면서 그런 경험들이 굉장히 좋은 것 같아요. 그래서 신입 또는 후배들에게 권하고 싶은 것은 일단 나오시라는 거에요. 처음에는 민변 활동을 하기에 좀 어색하죠. 저도 민변 송년회 나가면 어색해요(웃음). 하지만 자주 나오다 보면 소속감도 느끼고 친근함도 느끼는 것 같아요.

 

: 잘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민변에 계시는 동료 및 선·후배 동기 분들에게 결합 요청을 하시고 싶으시거나, 또는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요?

 

: 2007년 민변에 처음 입회할 당시와 지금은 성소수자 이슈가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2014년 서울시청 무지개 농성 당시 (민변 결성을 주도한) 박원순 시장을 상대로 농성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민변에서 적극적으로 연대와 지지결정을 했었거든요. 그리고 외부적이고 정책적인 변화보다 민변 내부의 문화가 바뀌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이성애 중심적인 문화라든가… 민변 안에서도 처음만나면 결혼했는지 물어봐서 불편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민변 문화도 많이 바뀌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최근에 민변 집행위원회에서 성희롱 예방교육을 정례화한다고 해서, 제가 ‘성희롱’의 개념에 대해 여성에 대한 성적 괴롭힘 뿐만 아니라 성소수자에 대한 비하, 괴롭힘 등 인권감수성을 포괄적으로 담았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는데, 이런 작은 변화들처럼, 민변도 성소수자 및 소수자의 인권 감수성에 관해 점점 변화하고 있고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점심시간을 포함한 인터뷰 시간이 두 시간이 훌쩍 지나고, 뒤늦은 점심식사를 제안했지만 장서연 변호사님은 오후 재판일정 때문에 점심식사도 못 하고 바로 일어났습니다. 돌아오는 서울 시내의 풍경은 마냥 바쁘고 평온했지만, 장서연 변호사님의 말씀과 고민들이 계속해서 묵직하게 남아있음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말 없는 동물들과 말 못할 외국인들, 말없는 듯하지만 우리 곁에 엄연히 존재하는 소수자들의 대변을 위한 장서연 변호사님의 열정에 많은 이들이 영감을 얻고 함께했으면 합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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