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을 변호하다’ 독후감

2015-01-12 956

‘노동을 변호하다’ 독후감

– 김 진(연 28기) 회원

 

노동을 변호하다

 

1. 외람되게도 아주 먼 훗날이라면 이런 책을 쓸 수 있을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당연히 답은, 금방 나왔다. 한 눈 팔지 않고 계속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가히 노동법의 A부터 Z라 할 수 있는 이 사건들에 발가락이라도 담글 수 있을 리 없고, 설령 사건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걸 이렇게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기록할 능력이 없으며, 또 어찌어찌 기록은 한다고 하더라도, 이 책에 가득한, 일하는 사람, 노동법 그리고 역사에 대한 믿음과 경의를 담을 자신이 없다. 언뜻 첫 번째가 제일 큰 이유처럼 보이지만, 사실 제일 큰 이유는 세 번째에 있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나라면, 웬수처럼 지냈던 의뢰인들을 향해 “일상생활에서 권리를 찾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 경의를 갖지 않을 수 없다(174쪽)”거나 “활동하면서 배우고 성장하는 모습이 너무나 존경스럽다(219쪽)”고 할 수 없을 것 같고, “법원을 통해서도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있다니 정말 믿어지지 않았다(83쪽)”고 할 정도로 거듭 배반 당하면서도 “… 지루한 소송은 참으로 어렵다, 그러나 언제나 어디에나 희망은 있는 법(283쪽)”이라며 다시 일어날 용기도 없으며, “어떤 사건도 미리 포기해서는 안 되고 최선을 다하면 하늘도 감동시킬 수 있다(190쪽)”는 믿음 같은 것은 이미 개나 주어 버렸기 때문이다.

 

2. 며칠 전 다른 송년회에서 그가 “민변이 2014년을 보내며 뽑은 걸림돌 판결 10개 중 4개가 내가 관여한 것이더라, 지난 27년간 변호사로서 해 온 일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는 것 같아 절망스러웠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통상임금, 전교조 법외노조처분 판결, 철도노조 파업 대법원 판결, 교원노조법 합헌 결정 … 이 책을 보면 하나하나 사건들이 얼마나 오랜 고민과 치밀한 고민, 빈틈없는 준비를 통해 나온 것인지를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책의 곳곳에서 “우리는 항소했다(137쪽)”, “우리에게 연대동지들이 같이 해주니 더 힘이 난다(218쪽)” 라고 할 정도로, 의뢰인과 변호사를 ‘우리’로 일체화하고 당사자와 같은 심정으로 싸워 왔기에, 그 상실감이 얼마나 클 것인지 가늠이 된다. 사실 이제는 후배들이 좀 잘해서, 그렇게 힘겹게 만들어 낸 판례들을 지키고, 아니 한 발 더 나아가야 하는데, 그 노력이 부족해서 뒷걸음을 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죄송스러웠다.

 

3. 몇 년 전 어떤 변호사가 술에 취해 “변호사 생활에 롤 모델이 없어 너무 실망스럽고 혼란스럽다, 누가 나에게 이렇게만 하면 된다고 보여주면 좋겠다”고 한탄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도대체 왜? 일찌감치 김선수 선배를 롤 모델로 삼은 나는,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는 것이 힘겨운데. 늘, 정말 그랬다. 그냥 그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될 것 같다. 이제 이렇게 조심해야 할 판사 이름, 청구원인 구성과 전략(심지어 단체 규약까지 하룻밤에 뚝딱 만드는 신공!), 이길 수 있는 기술, 조정에 임하는 자세와 같이 특급 영업비밀(?)들을 소상히 책으로 써, 이제 “노동변호사의 교과서”까지 나누어 주시는데 더 바랄 것이 무엇이겠는가. 이제 수능 수석합격자들처럼 이 교과서만 보고 길을 잃지 않고 잘 따라만 가면 된다.

 

4. 평소 그렇듯, 이 책에서도 그는 낮은 목소리로 스치듯 말한다. “… 전태일이라는 청년, 그리고 그 못지않게 자신을 내놓았던 조영래라는 거목…그 커다란 나무가 있었기에 나는 지금껏 살면서 중심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23쪽)”. 시간이 흘러 천지가 개벽하고 내가 개과천선해서 이 책의 발뒤꿈치 정도 따라가는 글을 쓰게 된다면, 나는 이렇게 쓰련다. “무수한 패소판결을 받으면서도 무모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그 길에는 앞장 서 수풀을 헤쳐 길을 내고 이정표를 세우고 길찾기 리본을 달아 준 김선수라는 안내자가 있었다. 그가 비추어 준 불빛이 있었기에 나는, 비록 내 능력은 부족하더라도 노동법이 스스로 정답을 찾아갈 것임을 계속해서 믿을 수 있었다”.

첨부파일

노동을 변호하다.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