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할 나위 없는’ 시인 안도현과 함께한 민변 11월 월례회

2014-12-15 493

‘더할 나위 없는’ 시인 안도현과 함께한 민변 11월 월례회

 

-진승현 회원

11월 27일 오전

‘안도현 시인, 민변11월 월례회 11월 27일(목) 19시 / 민변’

이동화 간사님으로부터 초대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며칠 전 김용택 시인의 강의가 있다는 메시지를 받고 잊고 있다가 안도현 시인으로 변경되었다는 변경 메시지를 받고 서둘러 약속을 마치고 서점에 가 안도현 시인의 신작 ‘발견’을 사서 민변 사무실로 달려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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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안도현 ‘시인’을 만나러 가는 길이 아니라 안도현 ‘선생님’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안도현 시인은 저의 중학교 국어 선생님, 은사님이십니다. 선생님께서 전교조 해직교사로 학교를 떠나시는 장면을 목격했던 제가 예비변호사로서 민변사무실에서 선생님을 만나게 되다니 참 이런 인연이 다 있구나 하면서 설레는 맘으로 서둘렀습니다.

평소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으시는 선생님은 민변사무실을 두 번 지나치시면서 사무실로 어렵게 찾아오셨습니다. 분명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으신다면 이 정도 고생은 한두 번이 아니셨을 텐데 이런 불편을 안고 생활하시는 게 시인의 면모인가라는 생각을 하며 혼자 웃었습니다. 민변 사무실 위치를 알지 못하는 경찰관에게 물어물어 공중전화로 전화하면서 도착하신 안선생님은 김밥 한 줄을 드신지 몇 분 만에 “시적이라는 게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라는 질문으로 강의를 시작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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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선생님은 서점에서 교과서에 수록된 ‘우리는 눈발이라면’이라는 자작시에 관한 객관식 5문제를 몰래 혼자 풀어보면서 1문제를 틀렸는데 틀린 문제가 저자의 의도가 무엇인가라는 문제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참석자들은 크게 웃으면서 강의 분위기는 달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너에게 묻는다 –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반쯤 깨진 연탄

언젠가는 나도 활활 타오르고 싶을 것이다

나를 끝 닿는데 까지 한번 밀어붙여 보고 싶은 것이다

타고 왔던 트럭에 실려 다시 돌아가면

연탄, 처음으로 붙여진 나의 이름도

으깨어져 나의 존재도 까마득히 뭉개질 터이니

죽어도 여기서 찬란한 끝장을 한번 보고 싶은 것이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뜨거운 밑불위에

지금은 인정머리없는 차가운, 갈라진 내 몸을 얹고

아랫쪽부터 불이 건너와 옮겨 붙기를

시간의 바통을 내가 넘겨 받는 순간이 오기를

그리하여 서서히 온몸이 벌겋게 달아 오르기를

나도 느껴보고 싶은 것이다

나도 보고 싶은 것이다

모두들 잠든 깊은 밤에 눈에 빨갛게 불을 켜고

구들장 속이 얼마나 침침하니 손을 뻗어 보고 싶은 것이다

나로 하여 푸근한 잠 자는 처녀의 등허리를

밤새도록 슬금슬금 만져도 보고 싶은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연탄이라는 제목으로 알고 있는 ‘너에게 묻는다’는 선생님의 시 중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고 제일 유명한 시일 것입니다. 이 시로 인해 선생님은 연탄시인, 연탄재시인이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다고 불평하셨지만 표정이 밝으신 걸 보니 꾀 맘에 드신 모양입니다.

이후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는 진짜 무식한 놈이 무엇인지 알게 한 ‘무식한 놈’, 초등학생들의 시 몇 편을 소개하셨는데 ‘엄마의 런닝구’는 압권이었습니다.

 

엄마의 런닝구 -배한구

 

작은 누나가 엄마보고

엄마 런닝구 다 떨어졌다.

한 개 사라 한다.

 

엄마는 옷 입으마 안 보인다고

떨어졌는 걸 그대로 입는다.

런닝구 구멍이 콩만하게

뚫어져 있는 줄 알았는데

대지비만하게 뚫어져 있다.

 

아버지는 그걸 보고

런닝구를 쭉 쭉 쨌다.

 

엄마는

와 이카노.

너무 째마 걸레도 못 한다 한다.

 

엄마는 새걸로 갈아 입고

째진 런닝구를 보시더니

두 번 더 입을 수 있을 낀데 한다.

 

1987년도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배한권씨의 이 시는 한 사건을 필터링이 없이 담담하게 그려냈지만 감동적인 시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으면서 한편으로 아내의 ‘런닝구’를 찢는 아버지의 마음과 가족을 위해 아끼고 아끼는 어머니의 맘을 생각하면서 모두가 먹먹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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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참석자들은 선생님이 최근 평석을 쓰신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첫 구절에 집중하였습니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여러분도 아시겠나요? 원인과 결과를 뒤바꿔 쓴다면 얼마나 로맨틱한 문장이 나오는지. 이러한 패턴을 잘 사용하면 작업성 멘트를 무궁무진하게 만들어 낼 수 있겠구라고 생각하시는 감각있는 분도 분명 계실 겁니다. 다가오는 봄에 “봄이 와서 네가 예뻐졌구나.” 가 아니라 “네가 예뻐져서 봄이 왔구나.” 라는 말을 사랑하는 이에게 한다면 엄청난 감동을 안기실 겁니다. 아니면 손발이 오그라드는 민망함을 선사하실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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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며드는 것 – 안도현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느것을

한떄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끄고 잘 시간이야 …..

 

독자들이 꽃게가 불쌍해서 그렇게 좋아했던 게장을 더 이상 먹지 못하게 되었다는 불평을 하게 만든 이 시는 또 다른 먹먹함으로 우리에게 다가왔지만 시인은 짠한 마음보다는 잔잔한 마음으로 작품을 쓰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자와 독자의 생각은 이렇게 다를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저자 의도에 관한 문제를 틀리신 선생님을 다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 시들을 함께 낭독하면서 촉촉한 분위기에서 강의를 마쳤는데 선생님과의 개별사진요청으로 뒤풀이 장소로의 이동은 꽤 시간이 걸렸습니다.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선생님의 책을 가져와 사인을 받는 살가움을 보여주셨고 특히 좌세준 변호사님은 대학시절부터 간직해오던 시인의 책을 가져와 모두의 박수를 받으셨고 이후 예외없이 선생님과 함께 한 호프집으로 자리는 이어졌습니다.

 우리의 일이라는 게 주장과 근거, 원인과 결과 등 사실과 주장을 잘 버무린 논리적인 글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맘 한 구석으로는 이 글을 읽는 사람이 이 글을 쓰는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헛헛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안도현 시인은 요즘의 시를 읽을 때 속이 헛헛할 때가 많다고 하시면서 이는 ‘해독이 불가능한 건조한 문체’ 탓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우리의 글들도 건조한 논리적인 글을 넘어서 상대방의 가슴을 적시는 한 문장, 사람의 마음을 흔들리게 할 수 있는 한 문장이 되어가고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가 된다며 퍽퍽한 이 사회가 좀 더 부드러워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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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회원분 여러분들은 ‘시적인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시인은 ‘상식적이지 않는 것, 다 알고 있는 것이 아닌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시인의 말씀을 듣고 저는 우리 민변의 모습이 바로 시적인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순간적으로 하게 되었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더할 나위 없는’ 시인 안도현 선생님과 함께한 민변11월 월례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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