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만번의 트라이’ 시사회 참석 후기

2014-10-10 472

’60만번의 트라이’ 시사회 참석 후기

-변시 3회 권태윤 회원

 

영화 이야기

 

재일 조선인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영화. 이런 배경설명만 가지고 영화를 기다리면 왠지 역사공부 2시간을 버텨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런데 예상외로 카메라는 줄창 허벅지가 터질것 같은 시커먼 럭비부 아이들만 쫓아다닙니다(누군가는 허벅지 블록버스터라고 평했다지요). 역사는 너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이야기에 녹아서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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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가 오사카 조고 럭비부만 줄창 쫓아다니는데도 영상은 그야말로 한편의 영화가 됩니다. 영화의 감독님들도 아마 이렇게 극적으로 전개되는 현실을 기대하고 카메라를 들고 계시진 않았을 것 같아요. 주장이 부상당하자 팀이 삐걱거리고, 그걸 극복하고서 더 단단한 팀웍을 만들었지만 준결승을 앞두고 에이스가 부상을 당하고, 경기 중에 60만 재일동포의 응원을 담은 현수막이 펼쳐지자 아이들은 더욱 힘을 내고, 대회가 끝나고나서 다른 학교 선수들이 부상으로 출전못한 선수를 위한 경기를 열어주고…아마 극영화를 이런 대본으로 찍어서 실화에 바탕을 뒀다고 광고했다면 아마 감독이 억지 감동을 주기위해 실화를 왜곡했다고 생각했을겁니다. 분명히.

 

하지만 화면에서 보이는 모든 행동과 감정들은 연기가 아닌 현실이었고, 그래서 저로서는 쉽게 공감할 수 없는 비장함도 그냥 그들의 삶의 무게로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보면 어떻게 그런 극적인 순간들을 꼼꼼하게 잘도 담아냈는지 감독님들의 정성이 상영시간 내내 놀라웠습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장면이 있을지도 모르는 다큐촬영일텐데요.

 

여하튼 영화는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시사회가 있었던 장소는 음향시설이 영화를 보기에는 좋지가 않았던게 조금 아쉽긴 했지만요. 일본어와 북한억양이 섞인 대사들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더라구요. 덕분에 저는 이 영화를 영화관에서 한번 더 보게 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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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준 감독님과의 대화

 

역사공부 시간은 의외로 영화가 끝난 뒤에 펼쳐졌습니다. 한시간 가까이 이어진 간담회에서 김명준 감독님은 재일 조선인의 역사와 현재 상황 등을 영화의 장면들과 연결시켜서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전국 스포츠 대회에서 학생들의 성과가 일본에 재일 조선인이 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계기가 되었고, 그래서 전국재패는 단순히 경기를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니라 일본에 조선인이 살고 있다는 삶의 문제였다는 얘기는 참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럭비부 아이들은 자기 어깨에 60만의 기대를 업고 뛴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 한명이라도 나쁜 행동으로 제재를 받으면 그 학교 전체가 경기 출전권을 박탈당한다는 규정이 있어서, 감독님은 조선학교에서 담배를 피우는 학생도 본 적이 없다고 하시더군요. 어쩌면 운동부 학생들만이 아니라 조선학교의 모든 학생들은 모두 그 60만 동포의 삶의 무게를 나눠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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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열정적으로 말씀하시던 간담회 중에도 감독님이 북한과의 관계라든지 여러 오해에 대해서 굉장히 조심스러워 하시는게 느껴졌습니다. 아마도 일본에서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소외된 재일 조선인들의 삶의 무게를 감독님도 나눠지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영화를 통해서, 간담회를 통해서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다 그 무게를 아주 조금씩은 나누지 않았을까요. 앞으로 저도 어딘가에서 재일 조선인 얘기를 해야한다면 조심스럽게 한두마디는 아는척을 할테니까요.

 

 

끝나고나서

 

사실 영화가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친구가 보고 싶어서 신청한 시사회였습니다. 친구는 20대의 한 페이지를 미식축구에 오롯이 바쳤던 녀석입니다. 저는 미식축구나 럭비와 관련된걸 보면 반사적으로 그 친구에게 연락을 합니다. 뭐 워낙 우리나라에선 비인기 종목이라 이런 핑계로 연락할 일은 잘 없지만요(아, 우리나라 미식축구 국가대표에는 재일 조선인들이 주전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그 얘기를 MBC에서 ”자이니치 태극전사”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로 만들기도 했고요).

 

회사에서 갑자기 잡힌 회의일정으로 친구가 못와서 결국 혼자서 영화만 보았습니다만, 길쭉한 공을 보면 떠오를 사람이 더 생겼습니다. 관태, 용휘, 유인이는 선수로 얼마나 성장했을지, 상현이는 언제쯤 자기 식당을 낼지 궁금해 하다가, 일본에 동포가 60만이 있다는걸 떠올리겠지요. 아 어쩌면 가끔은 뒷풀이 자리에서의 김지미 변호사님과 권오훈 변호사님의 노래가 같이 떠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즈음에서, 주장 관태는 기자회견장에서 노사이드 정신이 사회에 확장돼 조선학교에도 무상화가 적용되기를 바란다고 얘기합니다. 노사이드 정신이 사회 전반에 확장되어야 할 필요가 일본에만 해당하는건 아닐겁니다. 이 영화에 대한 반응만 찾아봐도 재일 조선인에 대해 ‘조선’이라는 명칭과 조총련과의 관계 등으로 거부감을 가지는 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일본만 아니라 한국도 재일 조선인에 대해 노사이드 정신을 공유하는 사회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리고 소수자에 대한 차별에 침묵하는 사회는 일본만이 아닐겁니다.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권한’이라며 정당화하는 권력, 그리고 그 ‘권한’을 용인하는 사회의 태도는 왠지 낯설지가 않았습니다.

 

재일 조선인들은 일본 사회의 차별에 60만번을 도전해서 결국 일본사회와 스포츠로 경쟁하는 자리를 만들었고, 아이들은 60만을 어깨에 지고 그 한번의 트라이를 위해 몸을 던집니다. 그렇게 럭비부 아이들이 스포츠로 일본 사회를 변화시킨 것처럼, 이 영화도 한국 사회를 변화시키는 트라이로 성공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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