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인터뷰] 혁명을 꿈꾸던 부산사나이, 변영철 변호사

2014-09-25 1,308

 

인터뷰

민변은 현재 회원 1,000명 시대를 목전에 두고 조금은 들뜬 분위기입니다. 1,000이라는 숫자가 가지는 상징성과 더불어 이 시대에 어려운 길을 함께 가는 동지가 늘어간다는 것은 분명 고무될만한 일이지요. 그러나 규모가 커지는 만큼 회원들의 면면을 속속들이 알지 못하는 일이 많아지는 것 또한 피할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한 길을 가는 민변 회원들을 한 분 한 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이 코너가 회원 여러분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장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이번호는 부산지부 방문길에 부산 지부 변영철 변호사님을 만나 보았는데요, 구수한 사투리와 찰진 육두문자^^, 귀여운 눈웃음까지~ 말씀 듣는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현장을 그대로 전달해 드리지 못해 아쉬울 따름입니다만 그래도 생동감을 전해드리기 위해 사투리는 가급적 원문 그대로 싣기 위해 노력했답니다. 사투리 통역이 필요하신 분은 사무처로 연락 주세요~^^

 

김지미 저희 출판홍보팀이 뉴스레터에 새로이 회원인터뷰 코너를 마련해서 실질적으로 한분씩 인터뷰를 하는 건 지난번 오세범 변호사님이 처음이었어요. 그것과 더불어 지부 소식을 어떻게 전체회원들과 나눌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마침 지부방문 일정이 잡혀서 급하게 연락을 드렸는데 이렇게 인터뷰를 수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변영철 민변이 본부중심으로 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도 하고 지부도 참여율이 저조한데 이런 기획은 괜찮네요.

 

김지미 제가 변호사님의 약력을 보니 제 선배님이시더라고요. 부산대 경제학과 81학번이시죠? 저는 법대 93학번이에요(웃음). 대학 때 시기가 시기니만큼 학생운동을 열심히 하셨을 것 같아요. 제가 처음에 기본적인 약력만 봤을 때는 대학 졸업하고 고시합격하기까지 14년의 간격이 있어서 이때 뭔가를 하셨을 것이다 하는 짐작이 들었거든요..

 

변영철 노동운동했지요. 현대자동차 하청업체에 위장취업했어요.

 

김지미 전노협 산하 부산노련 조직국장, 전국조선업노조협의회 산업안전부장을 역임하셨던데요

 

변영철 현대중공업 대우조선 한진중공업 코리아타코마 등 6개 조선이 금속으로 가기 전에 업종별로 묶자 해가지고 전국조선업종노조협의회가 있었고 조선 자동차 일반금속, 이 세 개가 합쳐서 금속노조가 나온 거예요. 그렇게 활동하다가 금속노조 출범한 직후에나왔죠

 

김지미 이렇게 노동운동을 하시다가 ‘노동운동에도 전문적인 역량이 필요하다는 생각 하에 고시 공부를 시작했다’ 하고 어느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밝히신 적이 있던데요

 

변영철 아니 뭐.. 월급도 안주고 상근자 대우도 제대로 안해주고 하니까..(웃음)

 

김지미 생계곤란 때문이었군요(웃음). 경제학과를 나오셨는데 사법시험 공부를 하셨네요.

 

변영철 할 게 없더라고. 96년에 그만뒀는데 뭘 하겠다하고 그만둔 것은 아니고 일단 그만두자해서 그만뒀어요. 생계가 안되니까. 그때는 이미 결혼도 했고 그 당시만 해도 노동자들 처우는 개선이 돼 가는데 우리 생계를 해결해 줄 생각은 전혀 없고

 

김지미 여기서 ‘우리’는 노조상근자들 말씀하시는 거죠?

 

변영철 내가 92년경에 조선업종 하면서 70만원을 받았는데 그게 전국에서 제일 많이 받은 거였어요. 상근자들 임금 좀 올려 달라했더니 뭐.. ..안 올려 주더라고요 ….. 근데 그만두고 마땅히 할 게 없어.. 세월이 억울하더라고 청춘을 바쳤는데. 2, 30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 아니요?! 군대 제대하고 바로 위장취업 했으니까 87년 12월 대선 끝나고 88년 3월에 용접기능 배워가지고 현대자동차 하청업체에 들어갔죠. 88년부터 96년까지 10년 가까이.. 27, 8세 한창 나이였는데 이것을 다 날려버리는 게, 딴 걸 한다는 게 너무 화가 나더라고. 노동운동 경력을 살리면서 내가 인생을 개척해야 하지 않느냐… 생각해 본 결과 노동전문 변호사가 괜찮겠다 생각도 들고. 마침 보니까 내하고 같이 노동운동했던 서울대 출신 선배 두 명이 합격을 하더라고 내가 볼 땐 별로 똑똑하지도 않은데(웃음).. 나도 한 번 해보자 그래서 신림동으로 보따리 싸가지고 올라갔어요. 97년 5월 1일이었지 그 고시공부 시작한 날짜는 기억하잖아 왜~ 그래가지고 2000년에 합격했지 3년 했지

 

김지미 진짜 단기간에 합격하셨네요.

 

변영철 내가 무슨 팀에 들어갔어. 오세범 변호사하고 같이 운동권 고시 팀이 있었다고. 그게 나름대로 시스템이 잘 되어 있었거든. 선배들이 기출문제 찍어주고 즈그 6월달에 시험치고 돌아오면 한 한달 쉬고 와서 7,8,9를. 이 사람들 사실 최고의 감각을 가지고 있잖아 어떤 교수보다도. 막 시험친 직후에 와서 문제내고 채점해주고 계속 모니터링 해주고. 그렇게 2차 시험 6개월 남겨두고 5회독을 했으니까 그렇게 프로그램을 짜놨어. 따라가면 돼. 시험치고 또 끝나면 계속 학원에 시험 치러 다녀야 해. 기계처럼. 그 때 우리팀 6명에 3명 합격했으니까 합격률 50%지. 우리 앞에 선배님들은 더 합격률이 높았어. 프로그램이 좋아가지고 공부를 짧게 할 수 있었지

 

김지미 아까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다고 하셨는데 그 상황에서 고시공부를 시작한다는데 집에서 반대는 없으셨나요? 언제 합격할지도 모르는 일인데..

 

변영철 그렇지. 반대를 처음엔 좀 하더니 뭐 그렇다고 뭐 할 게 없잖아. 나이 36세에 그만둬가지고. 취직이 되나. 뭐 알아봐도 영업직밖에 없고 아님 노가다 하러가고. 그니까 요건 3년만 해보자 해가지고. 우리 마누라가 그 때 임시교사를 하면서 돈을 보내줬어. 한 달에 50만원씩.

 

김지미 진짜로 약속 지키셨네요 3년 딱 하신다는 약속.

 

변영철 근데 2년 쯤 되니까 편안하게 하고 싶을 대로 해라 하대 돈은 자기가 벌 테니까

 

김지미 역시 오세범 변호사님때도 느꼈지만 이 내조의 힘이 진짜 크네요

 

변영철 근데 그 유세를 너무 심하게 한다 지금까지(웃음). 지금 내가 개업 12년찬데 지금까지 울궈 먹는다. 그래가 임시교사 하다가 김대중 대통령되고 정식교사로 발령이 났어요. 우리 마누라가 부산대 사범대 출신인데 데모하다가 그래가지고 발령이 못됐거든. 정식교사 발령이 났는데…, 사법연수원 들어가고 하면서 서울 올라와가 같이 살다가 귀찮다고 때리치고. 당신이 돈 다 벌어라. 그래가 어깨가 빠~집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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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제가 찾아보니 처음에 합격하셨을 때 부산일보 인터뷰 기사가 있던데 연수원 수료하고 바로 개업을 하셨는데 민주노총 지역본부 차원에서 자문변호사로 위촉된 것은 처음이다 이런 내용이 있더라구요. 사실 부산 노동계에서는 굉장히 환영했을 것 같아요. 노동전문변호사가 드물었었죠? 그런 상황에서 현장에서 활동도 하고 전문적인 역량까지 갖추신 분이 오셨으니.. 그때 보면 변호사님이 노동 인권 환경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변론을 할 생각이다 이렇게 말씀하셨고 처음에 공부를 하셨던 목적도 그런 게 있었던 것 같아요

 

변영철 그래 해왔지. 지금까지도. 사용자 사건은 특별히 안했지.

 

김지미 제가 하셨던 사건을 찾아보니까 정말 처음에 말씀하셨던 대로 노동 인권 환경 이 관련 분야의 활약이 대단하시더라고요. 보면 노동사건은 뭐 당연히 많이 하셨을 것 같고, 환경과 관련해서도 금정산 산성마을 사건에서 금정터널 공사금지 가처분 신청도 하셨고, 석면공장 이건 여기 연산동 제일화학 사건을 지금까지도 하고 계세요?

 

변영철 피해자가 30년 후에 나온다니까 석면피해가 잠복기가 30년이야.

 

김지미 이때는 돌아가신 두 분의 유족을 대리해서 하신 거고 그 이후에 추가소송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건가요

 

변영철 계속 주민들 대리해서 하고 있어. 지금 1주일 전에 10명 냈어.

 

김지미 처음에 첫 판결 나온 게 사실은 그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이 아니라 인근 주민들에 대해서도 석면의 피해에 대해서 인정해서 의의가 있었던 것이죠?

 

변영철 직원하고 주민하고 같이 했는데 근로자들은 쉽게 인정이 되잖아요. 산재만 되면. 그때 산재 승인 됐으니까. 별로 소송할 것이 없는 거죠. 주민이 문제가 되는데 주민은 입증이 쉽지가 않잖아 어디서 석면을 들이마셨는지. 악성중피종이라는 병이 제대로 안 알려져 있었거든요 그때. 그니까 진단자체도 어렵고, 이상한 약 먹다가 죽어간 사람도 많고, 의사들도 모르니까. 악성중피종이 굉장히 희귀 질환이에요. 그래서 이게 우리도 그때 공부도 많이 했고 판사들 설득하고 시그널 튜마라고 한다더라 국제의학계에서는. 시그널 튜마가 뭐냐면 악성중피종으로 진단받으면 아 석면으로 왔구나 이 병은 석면의 시그널이다. 신호다. 이게 국제적으로 공인되어 있거든. 이래가지고 설득하고 또 2키로 넘어서까지 석면이 날아가느냐~ 다 날아간다. 그래서 대법원까지 확정됐어요. 근데 다만 근로자는 과실상계가 10%인데, 특이 체질이 있을 수 있으니까 근데 주민은 온 동네 사람들 100%가 다 걸릴 수는 없으니까. 그건 아니지 않느냐. 당신의 특이소질도 있다 그래서 과실상계를 40% 인정했지

 

김지미 배상액에서 차이가 있겠네요. 지금까지도 이후에 추가적으로 소송을 제기하신 분들도 동일한 판결이 계속 나오고 있는 거죠?

 

변영철 그렇지. 근데 피고로 일본도 걸어 놨는데. 이 석면공장 기계를 일본에서 수출을 한 거였든 니치아쓰라고…나쁜 놈 아니냐 더 나쁜 놈이다 그래서 자료수집하러 일본도 많이 갔는데 잘 안됐어. 그게 됐어야 하는데..

 

김지미 그리고 또 균도씨라고 고리원자력발전소 인근에 거주하는 발달장애인과 그 부모님이 원자력발전소에서 방출되는 방사선으로 인해 질병에 걸렸다며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는데 그 사건 변론을 맡으셨지요?

 

변영철 다행인 게 아직 선고는 안됐는데 부인의 갑상선 암은 대한직업환경의학회에서 원자력 방사선 노출하고 인관관계 있다고 감정결과가 나왔어요. 상당한 파장을 몰고 올 수 있지요.

 

김지미 균도씨는 자폐성 장애1급 발달장애이고 아버지 이진섭씨가 직장암, 어머니가 갑상선암..이렇게 일가족이 모두 원자력발전소에서 방출되는 방사선으로 인해 발병했다고 주장하신거지요?

 

변영철 그렇지. 근데 둘은 관계없고 부인은 인과관계가 있다는 감정 결과가 나온거지.

 

김지미 그게 차이가 나는 이유가 있나요?

 

변영철 갑상선은 유달시 높더라고. 2.5배 높아요.

 

김지미 원전 주변지역 거주 여성들의 갑상선암 발병률이 다른 지역에 비해 2.5배 높다 라는 결과가 있어서 그걸 받아들인 거네요. 그러면 균도씨나 균도씨 아버지는 감정결과가 인정이 안된거고 선고는 아직 안한거죠?

 

변영철 아들하고 아버지는 취하했어. 괜히 나쁜 선례만 남길까봐.

 

김지미 그럼 아직 고리 원전 주변에 사시는 분들의 추가 소송은 없는 상황인 거죠?

 

변영철 이거는 뭐 갑상선암은 좀 쓸어 모아야 되는데.. 돈 좀 벌어야 될 건데(웃음). 원전 저게 엄청난 타격을 받을 거야. 이 소송으로. 원전 주위에 사는 갑상선암 여자들 엄청 많거든. 그리고 고리만 있나. 영광도 있지..

 

김지미 영광이나 다른 지역에는 아직 이런 소송이 없는 것 같은데 이번 소송의 추이를 지켜봐야겠네요. 판결선고가 언제 예정되어 있나요?

 

변영철 10월 17일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이요. 이 소송이 고리원전 1호기 폐쇄의 큰 명분이 될 수 있을 거예요

 

김지미 환경관련해서는 4대강 사업 때 4대강 사업 중단을 촉구하면서 농성들이 꽤 있었는데, 그때 함안보에 환경운동가 두 분이 철탑에 올라가셨잖아요. 그 당시 기사 중에 ‘변영철 변호사는 철탑 중간까지 올라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라는 내용이 있어요.

 

변영철 아..그게 사실은 당시 태풍도 오고 해서 두 사람을 설득해서 내려오게 하는 걸로 얘기가 됐는데 다른 사람들이 들어가면 같이 농성 할 수 있다고 변호사만 들어갈 수 있다 하는기라.. 그냥 단순 방문하러 갔다가 갑자기 변호사 누구 없어요 하는데 내 밖에 없는기라. 누가 저 사람 변호사다 그래가지고 올라가라는데.. 다리가 덜덜덜덜~~~ 떨리가 비가 억수로 왔거든. 죽는 줄 알았다. 그라고 비 쫄딱 다 맞아가지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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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자의가 아니셨군요.(웃음) 그 이후에 이 두 분에 대해서 구속영장이 청구되고 업무방해 등으로 기소도 되고 또 공사업체에서 손해배상까지 청구를 했었죠?

 

변영철 그래서 내가 경찰 조사 때 입회도 하고 영장실질심사 들어가서 구속영장은 기각이 됐는데 업무방해 이런 거는 집행유예 선고 받고 손해배상도 적은 금액이지만 인정이 됐죠

 

김지미 그런 면에서 보면 지금 4대강 사업의 폐해가 속속 들어나고 있는 마당에 이 두 분 입장에서는 상당히 억울한 면이 있겠어요

 

변영철 함안보는 쌔리 빠야된다.

 

김지미 낙동강 녹차라떼 이야기 나왔던 것이 함안보 지역이지요?

 

변영철 엉망이라~ 녹조에다가 수위가 농경지 침수 돼가지고 펌프로 밤새 뽑아내고.. 너무 어마어마한 일을 저질렀어. 그 놈들 다 잡아 넣어야해.

 

 

김지미 인권과 관련해서 특히 여성성매매나 여성폭력과 관련한 활동도 열심히 하셨던 것 같아요. 부산사람들이 완월동이라고 하는 집창촌 토지 건물 소유자에 대해서 고발도 하시고 했는데 이런 활동이 성매매 근절에 효과가 있었나요?

 

변영철 한 500명 고발을 했는데, 등기부등본 전부 다 떼가지고. 어쨌든 계속하니까 줄었어요. 여성들도 많이 빠져나가고 장사가 안되니까. 근데 줄어든 부분들이 딴 데로 갔다는 얘기도 있더라. 소송 그렇게 해도 선불금은 없어진 것 같지 않아.

 

김지미 선불금 소송은 성매매 여성들이 사기죄로 처벌받는 경우도 꽤 많지요

 

변영철 근데 지금은 사기를 거의 인정 안하는 것 같애. 그래도 완전 탕치기 같은 거 있잖아 가지도 않고 돈만 받고 도망치는 거 그런 거는 몰라도. 일단은 하루 이틀이라도 근무하다가 나오는 거는 고의성을 잘 인정 안 해줘. 옛날에는 많이들 그래 했는데 지금은 잘 안하는 것 같아.

 

김지미 가정폭력이나 여성폭력에 또 관심이 많으신가 봐요. 강연이나 세미나에도 발제자로 가시고 하는 것 같은데 보통 남자변호사님들은 이런 문제에 관심을 잘 안가지시잖아요. 특별히 여성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요

 

변영철 이쪽에서는 유명한 사건인데 문현성당 신부 유아 성추행사건이라고 큰 사건이 있었어요. 그 사건이 검찰에서 무혐의가 돼 가지고 무혐의는 무혐의라도 손해배상을 해야 된다. 민사를 해서 전면적으로 했지. 기록도 방대하고, 밤샘회의도 하고 그러면서 여성계하고 인연을 맺었지. 그걸 좀 해달라고 와서 일을 하다가 이리저리 오라하면 가고

 

김지미 본부에도 긴급조치변호인단이라고 해서 과거사 관련한 변호단이 있는데 변호사님도 대구 10월 사건, 예전에는 대구 폭동으로 나오기도 했지만 지금은 10월 항쟁이라고까지 이야기 하는 그 과거사 사건에서 손해배상을 인정받은 첫 사건을 맡으셨죠?

 

변영철 그 건은 대법원까지 판결 확정되었어요.

 

김지미 본부에는 13개 위원회가 있는데 변호사님 같은 경우에는 본부 위원회로 따진다면 노동위 환경위 여성위 과거사위 여러 가지 걸쳐서 활동을 하시는데 이렇게 다방면의 활동을 하실 시간이 있으실지 모르겠어요.

 

변영철 지역은 아직 업무가 세분화 되어 있지 않아서 인권변호사다 하면 여러 가지 사건을 다 해야 하는 환경이지요 아직까지

 

김지미 변호사님은 민변에 언제 가입을 하신 건가요?

 

변영철 2003년에 개업하자마자 했어요. 변호사가 되면 당연히 민변에 가입한다고 생각했지. 이보다 더한 걸 내가 했는데 뭐. 혁명을 일으킬라고.(웃음)

 

김지미 민변 부산지부는 언제 처음 생긴거죠?

 

변영철 부산이 본부보다 먼저 생겼어. 우리는 그래서 좀 독특해요. 이게 먼저 생기다 보니 규약도 따로 있고 그랬어요. 그때 노무현 전 대통령, 문재인 변호사가 주축으로 활동했지요. 87년도 6월 항쟁 거치면서 그때 만든 거지.

 

김지미 부산지부의 상황은 어떤가요?

 

변영철 일단 상근자가 없어요. 사무실을 어떻게 할꺼냐 뭐 월급을 어떻게 할거냐 비용도 만만찮고.. 상근자 없이 하다보니까 조금 그렇잖아요 상근자가 있는 거하고 없는거하고가 하늘과 땅 차이이긴 한데.

 

김지미 광주지부에 지금 상근자가 계시던데, 광주분들도 상근자가 오고나서 역량이 확 늘어났다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변영철 노동조합도 그래서 상근자 내놓으라고 난리 아니야. 상근자 없으면 일을 못해. 상근자 논의를 하다 말고 하다 말고 했어. 각자 이렇게 알아서 4대강사건하고. 각자 사건을 하면서 밀양 같이 공동으로 대응할 일이 있으면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조사 입회도 하고 그렇게 하고 있지요

김지미 부산에는 부산대, 동아대 이렇게 두 곳의 로스쿨이 있잖아요. 로스쿨 출신 변호사님들이 많이 들어와서 본부도 회원수가 많이 늘었거든요. 부산지부는 로스쿨 졸업생들을 유치하기 위해서 따로 노력을 하시나요?

 

변영철 부산대하고 동아대 로스쿨 공익법학회 신청을 받아가지고 연수를 2주 동안 시켰어요. 회원 사무실에 배정해서 연수를 했는데 그게 효과가 좀 있는 것 같아요.

 

김지미 부산지부는 현재 어떤 현안에 관련해서 공동으로 대응하고 있는 사건들이 있나요?

 

변영철 밀양 송전탑이지. 부산변협 산하에 환경위원회에 우리 회원들이 위원이고 위원장도 우리 회원이고. 나도 부산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이지요. 최근에 인권위원회에서 한게 부산지방경찰청 내 모든 변호인접견실에 다 가서 직접 조사해서 변호인접견실 따로 설치하게 하고 그랬는데 그런 거를 민변에서 보자고 하면 안 보여주거든. 인권위원회를 통해서 하면 보여주니까.

 

김지미 변호사님~역사에 관심 많으시죠? 작년에 안도현 시인 국민참여재판에서 무죄 평결을 했는데 재판부에서 유죄 선고를 했을 때 한겨레신문에 배심재판의 역사에 대해 글을 기고 하셨잖아요. 또 보니까 부산의 구덕고등학교에서 인문학 강좌를 여는데 거기 강사로 가셨더라구요. 그때 강의 주제가 ‘역사 속 법률이야기’여서 아 역사에 해박한 지식이 있으신가 보다 저 나름대로 추측을 해보았어요.

 

변영철 역사에 관심 많죠.

 

김지미 구덕고등학교에서 하신 강연의 내용을 잠깐만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변영철 일리아스 트로이전쟁을 이야기 하면서 헬렌이 파리스하고 눈이 맞아서 갔느냐 아니면 납치냐 이게 중요하다. 납치면 범죄가 되는 거고 눈이 맞아서 도망간 거면 간통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납치는 아니지 않느냐. 그래서 일리아스의 요런요런요런 문구들로 봐서는 눈 맞아가 도망간 거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런 얘기를 했어.

 

김지미 남자고등학생들이 딱 좋아하는 주제 같은데요

 

변영철 별로 재미있어 하지는 않더라고.(웃음) 은퇴 후에 뭐 역사책이나 읽고 세계 법전의 역사를, 함무라비법전이다 하면 이게 어떻게 만들어져서 안에 무슨 내용이 들어있고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이후에 다른 어떤 법전이 만들어졌고 나폴레옹 법전이나 쭉 나오잖아요. 로마.. 비잔틴 황제 무슨 법전 이게 쭉 그런 법전의 역사 이런 걸 한번 정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그래서 부산대학교 역사학과 대학원에 들어갈라고 지원을 했더니 시험을 치라는 거야. 영어시험도 치고. 동양사 2개 세계사 2개 뭐 이런 걸 치라는 거야. 막 쓰고 나오니 기분 안 좋더라고. 근데 그때 지원자가 미달이어 가지고 합격했다.(웃음) 그래가 얼떨결에 2년 다녀가지고 학위를 받았는데 그 논문 제목이 ‘아테네의 사법개혁에 대하여 – 배심재판을 중심으로’였지. 그래서 안도현 시인 국민참여재판 했을 때 그래도 쎄가 빠지게 공부해 가지고 논문 다 써놓고 이때 몇 마디 좀 보태고 싶단 생각이 들더라고.

 

김지미 제가 이걸 읽어봤는데 굉장히 간결하게 딱 와닿게 쓰셨더라고요. 역시 전문가의 포스가 느껴지더라니 석사 학위까지 있으신 분인 줄 몰랐네요.

 

변영철 아테네 당시 재판하는 거 보니 재밌더라고. 너무 감동이야. 왕이 재판하고 왕이 임명한 재판관이 재판하던 기원전 300년에 배심원 500명이 토론을 거쳐서 물시계 거꾸로 해놓고 발언하고, 시간 넘으면 못 해. 토론을 통해서 누가 임명한 것이 아니고, 시민 500명이라. 배심원단을 1년에 6000명을 뽑아 선서하고. 매일 500명 딱 추첨해서 앉혀두고, 재판결과는 아무도 몰라. 불후의 명곡 배심원단 500명이야. 500명이란 숫자가 괜히 있는 것이 아니야. 인위적으로 그 결과를 조작할 수 없는 최소 규모가 500명인 것 같아. 많을 땐 1000명도 2000명도 됐는데. …..500명이 누가 될지도 모르는데, 6000명을 어떻게 다 매수해 어떻게 지시를 하고. 자기생각대로 하는 거지. 고대에 재판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권력기관에 재판을 맡긴다는 게 난 도대체 상상이 안 가더라고.

 

김지미 기본적으로 국민참여재판에 찬성하시겠네요?

 

변영철 맞지. 더 확대되어야한다. 민사든 형사든 진짜 사회적으로 쟁점 되는 사안은 500명이 되어야 한다. 비용 많이 든다는데, 웃기는 소리 하고 있네. 예측이 안 되니까 그러지. 지금도 완전히 배심원들에게 결정권을 안 줬잖아. 재판장이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해 놨잖아. 한진중공업 최강서열사 돌아가셔서 처음에 희망버스 투쟁했었고 그게 끝나고 난 뒤에 손해배상 몇 십억 하라 그래가지고또 투쟁을 했다고. 시신 운구를 방해하는 경찰과 붙었다고해가지고. 일반교통방해로 참여재판 신청했거든. 그게 전원일치 무죄 나왔지.

 

김지미 참여재판을 전략적으로 활용할 필요도 있겠네요.

 

변영철 그래서 신청했지. 갑론을박이 있었거든. 전라도는 되는데, 경상도는 안 된다 이런 식의 반대가 있었어. 그래도 믿고 해보자. 한명의 판사보다는 9명의 상식있는 시민이 분명히 나을 수 있다..

 

김지미 변호사님께서는 민변 부산지부 간사변호사를 4년 동안 하셨는데 지부입장에서 본부에 바라는 점으로 평소 생각하신 게 있을 것 같아요

 

변영철 소통이 서로 부족한 측면이 분명히 있지요. 총회 때만 만나는 게 아니라 만날 기회가 자주 있었으면 좋겠고 뭔가를 주고받는 제도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하지 않나. 민변이 긴급조치 사건을 모아서 지역별로 나눠주고 이런 거는 좋았던 것 같아요.

 

김지미 본부차원에서도 고민을 많이 하고 있는 부분인데요. 제가 지방 출신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민변 일을 하다 보니 지부와의 연대가 좀 부족하지 않는가 하는 부분이 먼저 눈에 띄었는데 이런 서울 중심의 사고는 사실 국가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지요

 

변영철 노동운동 할 때도 내가 서울중심의 사고에 대해서 많이 싸웠는데, 공장은 다 영남에 있는데 결정은 서울해서 하고. 특히 노동운동은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어느 조직을 가든 서울 중심의 문화 패권은 다 있지.

 

김지미 저희 모임 시간이 다 되어가네요. 마지막으로 민변 회원들이나 후배 법조인들에게 꼭 하고 싶으신 말씀 한마디만 해 주세요

 

변영철 쉬운 직업은 없지만 변호사는 사람을 많이 만나면서 계속 스트레스를 받는 직업이잖아. 판사 만나지, 상대방 변호사 만나지, 의뢰인 만나지. 그래서 업무와 상관없는 자기의 취미를 가지는 게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야. 열심히 잘하는 사람들 보면 나름 취미가 있는 것 같아. 등산을 간다던지 하는.. 난 취미가 독서니까. 그 중에서도 내 분야와 전혀 상관없는 그런. 전엔 역사책을 많이 읽었는데 최근에 물리학으로 바꿔가지고. <코스모스>라는 책이 있어. 칼 세이건. 이거는 대중서적이라. 유시민의 서평에 의하면 ‘가장 인문학적인 과학책이고, 가장 과학적인 인문학책이다’ 굉장히 인문학 적이야. 지구를 우리가 왜 사랑해야 하느냐. 지구에서 우리가 만들어졌기 때문이야. 우주의 일부다 우리는. 지구를 때리면 안 된다. 그러면 내를 때리는 거다. 그런 취미를 하나 가지라고 하고 싶어요. 살기 어려운 건 다 마찬가지고. 밥은 먹을 수 있겠지 뭐. 그렇잖아요. 뭐 김앤장놈들은 한 끼에 밥 두 번 먹나. 하루 여섯 끼 먹는 거 아니거든. 밥 먹고 직원들 월급주면 되지 뭐.

 

김지미 삶의 쉼표가 필요하다는 말씀이시죠?

 

변영철 자기 분야 아닌 것에도 관심을 가지고 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지 않나 그런 거지. 그래서 다음 달 우리 부산지부 월례회 때 <코스모스> 프레젠테이션을 내가 하기로 했어. 우리가 독서모임을 쭉 했었거든. 서울 공부모임에 한 번 불러 주면 내가 한 40분 정도 코스모스 피티를 할게요.

 

김지미 좋은 제안이시네요. 제가 공부모임에 제안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정말 재밌게 해 주셔서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저희는 2차가 되겠네요. 자리를 옮기셔서 못다한 얘기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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