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최근 한반도 위기상황 인식과 해결 과제1)
글_이석범 변호사2)
북한은 2012년 12월 12일 은하3호 장거리로켓을 발사하였고, 2013년 2월 12일에는 3차 핵실험을 성공리에 마쳤다. 이러한 북한의 행동에 대하여 한국과 미국은 유엔안보리 결의 1718호와 1874호 보다 제재수위를 높인 2087호와 2094호 결의를 유엔안보리에서 통과시켰다. 동시에 한미연합군은 3월 1일부터 키리졸브 훈련과 독수리 훈련을 실시하면서 핵항공모함을 참가시키고 미국의 최신예 B-52 전략폭격기로 폭격훈련을 하는가 하면 B-2 스피릿폭격기와 최첨단 F-22 스텔스전투기를 출격시켰다. 또한 핵잠수함과 첨단 구축함 그리고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조기에 탐지할 수 있는 SBX-1(해상기반 X-Band 레이더)까지 투입하면서 북한을 압박하였다.
이에 북한은 3월 5일 정전협정 백지화와 남북불가침합의의 전면폐기를 선언하고 3월 26일에는 ‘1호 전투근무태세’를 발령함으로써 “남북관계는 전시상황”에 돌입하였다.
이러한 군사적 긴장국면이 점차 고조되자 남북경협의 상징인 개성공단도 4월 3일 북한의 입경금지 조치를 시작으로 북한의 근로자들이 전원철수하고 남북간의 대화가 단절됨에 따라 마침내 5월 3일 남한의 잔류인원 7명도 최종 철수함으로써 잠정폐쇄되기에 이르렀다.
▲ 사진출처 : 연합뉴스
이러한 와중에서도 북한은 3월 31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에서 “경제건설과 핵무력 동시발전”이라는 병진노선을 채택하였다. 이에 따라 자립적 핵동력공업을 발전시켜 전력문제를 해결하고, 세계 비핵화 전까지 핵무력을 질량적으로 확대, 강화하겠다고 천명하였다. 또한 북한은 4월 1일 최고인민회의 제12기 7차 회의에서 새로이「자위적 핵보유국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 데 대하여」라는 법률을 제정하면서, “우리의 핵무력이 세계의 비핵화가 실현될 때까지 우리 공화국에 대한 침략과 공격을 억제, 격퇴하고 침략의 본거지들에 대한 섬멸적인 보복타격을 가하는데 복무한다는 것을 법화했다.”고 그 취지를 밝혔다. 이 법률은 북한이 핵보유국임을 기정사실화하면서 이를 뒷받침하는 것으로써 2012년 4월 개정된 헌법에 이어 북한의 국내법으로 자신의 핵전력과 정책을 정당화함과 동시에 핵무기가 북한의 주권과 자존심의 상징으로 격상되었다는데 그 의미가 있다.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의 사망에 따라 새로 출범한 김정은 시대에 맞추어 2012년 미국에서는 오바마 2기 정부가, 2013년 한국에서는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였다. 이 당시 많은 국민들은 이전 이명박 정부에서의 남북관계 파탄을 시정하는 뜻으로 한국과 미국이 공조하여 다소 유연한 대북정책을 시행할 것으로 예측하였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서울프로세스’의 두 정책을 대북정책의 기조로 삼겠다고 공언하였다. 이러한 예측과 전혀 다르게 현재 한반도에서는 6․25 전쟁 이후 최고조의 군사적 위기국면에 처해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도대체 어떻게 하여 이러한 위기가 발생하게 되었는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한반도 위기상황에 대한 미국, 북한, 한국, 중국의 입장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미국의 입장을 살펴보면, 첫째, 북한의 3차 핵실험은 이전의 핵실험과 달리 직접적으로 미국 본토에 위협이 될 것이라는 인식이다. 따라서 북한에 유화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오바마 정부로서는 공화당을 비롯한 보수세력의 북한에 대한 악화된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둘째, 북한의 도발에 응하여 협상을 이끌어 낸 이전의 협상과 달리 더 이상 북한에 끌려 다니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셋째, 한국 내 극우 강경파들의 핵무장 목소리를 약화시킴과 동시에 북한이 도발하지 못하도록 최첨단 전략무기들을 동원함으로써 동맹국을 방어할 것이라는 의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넷째, 한반도 위기는 필연적으로 미국의 군사력 증강을 정당화 하는데, 중국이 계속 북한의 보호자 역할을 하는 경우 북한은 향후 중국의 전략적 자산이 아니라 부담이 될 것이라는 중국에 대한 메시지이다.
다음으로 북한의 입장에서는 김정은 체제가 출범한 1년의 시점에서 성공적인 권력공고화가 진행되어 경제발전을 모색하게 되었다. 특히 로켓발사와 핵실험의 성공은 상당한 자신감을 부여하여 대내․대외적인 전략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게 하였다. 첫째, 대외 전략의 변화는 ‘선택적 병행전략’으로 나타났다. 즉, 중국의 부상이라는 객관적인 환경변화에 맞추어 이전의 대미, 대남 의존에서 벗어나 중국에게도 안보와 경제를 의존하는 ‘병행전략’을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북한의 안전보장을 미국이 확고하게 담보해 주는 것이 여전히 필요하지만 굳이 이를 위해 미국에게 안보를, 한국에 게 경제를 의존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러한 북한의 전략적 판단은 이후 대미 대결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게 되었다. 둘째, 대내 전략의 변화는 ‘지속과 변화’로 나타났다. 본질적으로 ‘북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대미 대결의 우군, 경제지원자’로서 남북관계를 유지는 하되, 북한의 체제영향력을 차단하는 방향으로의 대남정책의 변화는 필연적이다. 한국으로부터 제공받던 경제적 지원과 협력은 중국이 충분히 대체재로서 가치를 갖고 있는 만큼 북한은 남북관계에 매달리거나 저자세로 나올 필요가 없게 되었다.
한국의 입장은 박근혜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로 대표된다. 이는 남북간의 신뢰회복을 통해 한반도 갈등구조를 타파하겠다는 것으로 억지를 통한 안보와 대화를 통한 남북관계 개선을 병행한다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그러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는 불신이 축적된 남북관계에서 어떻게 신뢰가 작동될 것이며, 비핵화 포기라는 전제조건이 있는 한 대화가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문제점이 상존한다.
마지막으로 중국의 입장을 살펴보면, 한미양국은 물론 전 세계가 중국의 대북설득 및 압박에 있어 과거와 달리 중국의 역할론이 크게 대두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그런데 최근의 위기 상황을 분석해 볼 때 종전의 중국의 대북인식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그 이유로 첫째, 북한의 도발이 미국의 아시아 회귀전략을 정당화하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과 둘째, 중국 내 대북여론의 악화가 시진핑 정권의 출범 초기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은 최근의 유엔 안보리결의에 찬성함으로써 한반도의 비핵화에 동조하는 형국이다. 하지만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해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근본적인 대북정책의 변화는 없을 것이므로 당분간 위기관리 차원에서 관망의 자세를 견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같은 한반도 위기상황의 인식에 기초하여 현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출구전략 내지 해결방안은 없는 것인가? 먼저, 최근의 위기상황은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정전협정 체제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북핵 위기의 심화는 이제 북핵 자체가 아니라 ‘북한문제’와 연관되어야만 해결될 수 있는 구조가 되어 가고 있다. 따라서 현재 북한의 대미대결과 대남 위협은 한반도 평화체제의 필요성을 역설적으로 각인시키고자 하는 전략의 일환이다.
다행히 한반도 위기 상황은 4월 12일 미 국무장관 존 케리의 방한 이후 잦아들고 있다. 같은 날 한미외무장관은「공동성명」을 통해 ‘9․19 공동성명’의 약속을 상기시키며 한반도 평화체제와 북미수교, 동북아 다자안보체제와 같은 대북안전보장을 제시하였다. ‘9․19 공동성명’은 한반도비핵화를 조건으로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과 북미수교와 같은 안보와 안보의 거래를 담고 있다.
이에 대해 북한의 국방위원회 정책국은 4월 18일 “조선의 비핵화는 예나 지금이나 우리 군대와 인민의 드팀없는 의지이다.”라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이들이 밝힌 한반도 비핵화 3대 조건은 ① 대북제재결의 해제 및 적대시 정책의 중단과 사죄 ② 소극적 안전보장(NSA)의 요구 ③ 한반도와 주변지역의 비핵무기지대화 등이다. 여기서 비핵무기지대화는 “당면하여 남조선과 그 주변지역에 끌어들인 핵전쟁수단들을 전면적으로 철수하고 재투입시도를 단념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빌 클린턴 정부시절 미국무부 정책실장을 지낸 모턴 핼퍼린은 4월 13일 세미나에서 “북핵 위기를 타개하려면 동북아안보를 위한 포괄적 협정을 국제조약 방식으로 추진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즉, 그는 한국전쟁의 종료와 관계 정상화, 상시협의회 구성, 북한의 핵불능화와 비핵무기지대 조성, 대북 에너지 원조와 제재 해제 등을 담은 ‘국제조약 방식의 동북아 포괄적 안보협정’을 제안했다.
이 같은 대안제시 또는 해결방식에 비추어 볼 때 이번 한미정상회담의 결과는 매우 우려할 만하다. 박근혜 정부의 최초 외교순방인 한미정상회담이 세계의 주목을 끈 이유는 최근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과 관련하여 한미정상이 어떤 해법을 제시할 것인가에 있었다. 즉, 정상회담이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한반도의 평화의 진전을 위한 전환점 역할을 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었다.
▲ 사진출처 : 연합뉴스
그러나 이번 정상회담에서 대북정책과 관련해 오바마 대통령은 “잘못에 대해서는 대가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입각하면서도 동시에 대화의 문은 열어 놓는다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북한이 신뢰를 갖고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하길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이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 변화한다면 우리는 국제사회와 함께 지원할 용의가 있다.”는 이전 정부의 입장을 되풀이 하였다. 게다가 오바마 대통령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대해 매우 공감하며, 이는 자신이 견지해온 ‘전략적 인내’와 전혀 다르지 않다고 함으로써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는 미국의 정책을 바꿀 어떤 새로운 제안도 없다는 것을 확인시켰다.
이렇듯 한미정상은 전 세계가 희망하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해법 대신 오히려 “미국은 확장억지와 재래식 및 핵전력을 포함하는 모든 범주의 군사적 능력을 사용하여 한국에 대한 방위공약을 수행”한다거나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대한 공동의 대응노력과 함께 연합방위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갈 것임을 천명함으로써 미국의 군산복합체 이익, 미사일방어(MD)체계 실현, 한국에 대한 각종 무기의 판매 등을 통한 정전체제와 분단체제의 유지를 기도하고 있다.
평화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는 ‘실질적 조치’나 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 이때의 ‘실질적 조치’란 ‘상호위협감소’(Mutual Threat Reduction)를 의미하고, ‘상호위협감소’는 한미양국이 합동군사훈련이라는 무력시위를 잠정 중단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1992년 노태우 정부시절 팀스피리트 한미합동훈련을 잠정 중단하면서 ‘한반도비핵화 공동선언’이 가능했고, 2005년 ‘9․19 공동성명’이 개성공단을 가능케 했던 역사적 선례를 따를 필요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은 남북 간에 1972년 7․4 공동성명을 발표함으로써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라는 조국통일 3대 원칙에 합의하였다. 위 원칙과 정신은 진보와 보수의 정파를 넘어 우리의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에 담겨 노태우 정부의 남북기본합의서, 김대중 정부의 6․15 선언과 노무현 정부의 10․4 공동선언에 연면히 이어 내려오고 있다.
우리는 진정으로 또 간절한 마음으로 한반도의 평화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민족의 “대결과 분단”이 아니라 “화해와 평화”로 발전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범국민촉구행동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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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 글은 가톨릭 사목잡지 『기쁨과 희망』 제11호에 실린 글을 조금 수정한 것입니디.
2)민변 통일위원회 위원, 통일부 자문위원(남북법제추진분과), 국민대학교 법과대학원 북한법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