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랑고시랑] 여섯 번째 민선 서울시장을 기다리며 – 좌세준 변호사

2011-09-15 237


[고시랑고시랑]

                     여섯 번째 민선 서울시장을 기다리며

 


                                                                                                 글_좌세준 변호사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장안’의 화제다. 여론조사 결과에서부터 출마가 예상되는 후보들의 인물평까지. 하긴 국민 다섯 명 중 한 명이 ‘서울시민’이요, 20조 원이 넘는 1년 예산에다 차기 대권의 ‘전초전’이라는 정치적 의미까지 부여되고 있는 형국이니 어찌 ‘화제’가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여기서 퀴즈 하나? 해방 후 역대 서울시장을 거쳐 간 사람은 모두 몇 명인가? 퀴즈 둘? 역대 서울시장 중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은 모두 몇 명인가? 답이 궁금하신 분들은 서울시청 홈페이지에 가셔서 ‘서울소개-서울역사관-역대 서울시장’에 나오는 인물들의 면면을 훑어보시거나, 아니면 이 글을 끝까지 읽어보시면 된다.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서 도서관에 가지 않고도 옛날 신문기사를 읽을 수 있다. 자기가 원하는 검색어를 입력하면 1920년 4월 동아일보 창간호부터 1999년 말까지 주요 신문 기사를 인터넷 상에서 볼 수 있다. 추석 연휴 ‘서울시장’이라는 검색어로 옛 신문기사를 더듬어보니 ‘재미있는’ 내용이 너무 많다. ‘재미있는’ 기사를 혼자 보기는 아깝기도 하고, 그냥 ‘재미있다’고 지나치기에는 허전한 구석이 있어 몇 가지 소개해볼까 한다.


 


시민의 식량을 술도가로 넘긴 자 누구냐? _ 초대 서울시장 김형민


 


해방 후 첫 서울시장이 된 인물은 김형민이다. 미국 유학파인 김형민은 1946년 9월부터 1948년 12월까지 2년 남짓 재임했는데, 그가 재임 중이던 1946. 11. 21.자 경향신문은 “시민의 식량을 술도가로 넘긴 자 누구냐”라는 기사를 싣고 있다. 내용인즉, 해방 후 식량난이 가중되고 있던 상황에서 서울시가 ‘서울 시민용’으로 전라도 지역으로부터 고구마 반입을 승인했는데, 정작 그 고구마가 서울 시민의 식량으로 사용된 게 아니라 개성에 있는 고려약품주식회사의 위스키 제조연료로 반출된 것이 드러난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한 당시 서울 검사국(현재의 서울지검)의 수사결과는 이러하다.


 


“시당국이 당초부터 ‘서울시민용’으로 고구마를 반입한 것은 아니고, 고려약품주식회사로부터 양주원료로써 전라도 생산지에서 고구마 반입 허가신청을 받았으나, 1개 회사나 개인으로서는 다량의 식량반입을 허가할 수 없으므로 합법적인 반입허가를 가장하고 ‘서울시민용’이라 하여 청과회사로 하여금 생산현지로부터 매상 반입케 한 것이다.(동아일보 1946. 11. 27. 2면)


 


이와 같은 수사결과를 접한 당시 서울시민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신문기사만으로는 그 여론의 추이를 짐작할 수는 없으나, 아마도 이렇지 않았을까?


 


“우리가 먹을 식량을 술도가로 빼돌려놓고 무슨 헛소리야!”


 


당시 서울시장 김형민의 해명도 검사국의 수사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수사결과를 곧이곧대로 믿는다 하더라도 이 사건은 “서울시가 시민을 팔아서 회사의 이윤을 부조한 사건”(동아일보 1946. 11. 27. 2면)으로 형법상 허위공문서작성죄에 해당하는 사건이었다. 당시 서울시 당국의 반출승인지침에는 ‘3화차(貨車) 이상 반출금지’임에도 30화차나 반출되었고, 반출승인장에는 서울시장의 직인만 있을 뿐 반출물량의 기재조차 없었다 한다. 당시 유행했던 ‘사바사바’ 식의 뒷거래가 있었음을 짐작케 해주는 사건이다. 이 사건에 대한 처벌이 어느 수위까지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기사가 보이지 않는다. 이 사건 이후에도 김형민은 2년을 더 시장직을 수행하다가 1948년 12월에 가서야 시장직에서 물러난다. 김형민에 이어 2대 서울시장에 취임한 사람은 윤보선이었다.


 


“서울시 공무원은 모두 도둑놈” _ 카이저수염의 김상돈 시장


 


1995년 조순 시장 이전에도 서울시민이 직접 뽑은 민선 서울시장이 있었다. 4·19 혁명 이후인 1960년 12월 서울시장에 당선되어 5·16 군사쿠데타까지 서울시장으로 재임한 김상돈 시장이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실시된 서울시장 선거가 투표용지에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자 이름을 직접 적어서 투표하도록 하는 ‘기명투표제’였다는 것이다. 당시 신문들은 이 ‘기명투표제’로 인해 발생한 에피소드를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문맹자인 관계로 당시 후보자였던 장기영의 이름 중 “ㅈ을 어렵사리 적어놓고 그 밑에 ‘기영’이라고 썼으나” 무효 처리된 표, “후보자 이름 석자를 미리 적어 가지고 온 다음 기명란에 풀로 붙여놓는 정성을 보였으나” 무효 처리된 표, “김상돈이라고 적어놓고” 기명란 밖에다가 “양심적으로 하시오”라고 적거나, “김상돈씨 장기영씨 어느 쪽으로 결정할지 생각한 결과 장기영씨로 결정했읍니다. 서울시의 살림을 잘해주시오. 모 여인으로부터”라는 애틋한 하소연을 적은 관계로 무효가 된 표 등등.(경향신문, 1960. 12. 30.자, 3면)


일찍이 반민특위 부위원장을 지낸 김상돈은 17명의 후보자들이 난립한 이 선거에서 최다 득표로 당선된다. 김상돈은 이미 4대, 5대 민의원 선거에서 전국 최다득표 당선으로 지명도가 있는 인물이었으며, 특유의 카이저수염으로 유명했다. 이런 김상돈이 더욱 파란을 일으킨 것은 1961년 1월 5일 시장 취임식에서였다. 김상돈은 취임사에서 “왜정 때나 자유당 정권 밑에서 시청은 복마전으로 원성이 높았다. 내가 맡은 바에 깨끗이 숙정을 하고 말겠다. 난 무엇보다도 시청직원들의 도둑질을 막는 게 급선무라 본다”(동아일보, 1960. 1. 6.자, 1면)라고 일갈했다.


 


투표용지에까지 “양심적으로 하시오”라는 기재를 했던 서울시민들에게야 통쾌한 일갈이었을 것이나, 해방 이후 관행적으로 누적되어 온 ‘복마전’을 깨트리기에는 초대 민선시장에게 부여된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5. 16. 군사쿠데타의 ‘주역’들은 김상돈을 시장직에서 퇴임하게 하는 것도 모자라, 1962년 5월 ‘구민주당계열 반혁명음모사건’이라는 이름으로 김상돈과 그의 부인, 아들까지 구속하고 만다. 김상돈, 김대중 등 구 민주당 계열 인사들이 일부 군 세력과 연계하여 쿠데타를 모의했다는 이른바 ‘반혁명’ 사건 재판에서 김상돈은 1962년 10월 무죄 판결을 받고 석방된다.


 


여섯 번째 민선 서울시장을 기다리며!


 


이제 40여 일 후면 서울시민들은 새로운 민선 시장을 선택하게 된다. 미처 싹을 피우지 못한 카이저수염의 김상돈, 1995년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조순, 고건, 이명박, 오세훈 이렇게 4명의 민선시장을 포함하면, 여섯 번째로 맞는 민선시장이다. 역대 서울시장을 역임한 사람은 30명. 그 중에는 이승만 정권의 최후를 장식한 이기붕, ‘불도저 시장’이라는 별명을 놓고 ‘원조’ 싸움을 벌일만한 김현옥의 이름도 보인다.


 


여섯 번째 민선 서울시장을 꿈꾸는 후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최소한 앞서간 5명의 민선시장의 공과(功過)를 겸허히 살피기 바란다. 새로운 공약과 참신한 구호도 당선을 위한 필요조건일 것이나, 그보다 먼저 챙겨야 할 것은 50년 전 선거에서 ‘양심적으로 하시오’라고 투표용지에 자신의 마음을 써 전달하려 했던 시민들의 마음이다. 그들은 낮은 곳에 있다.



* 물음표 이미지 출처 : 다음 카페 ‘디지털 쓰나미’ (http://cafe.daum.net/digitaltsuna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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