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인권모니터링] 한국과 필리핀의 조선소 노동자들이 연대하는 이유

2011-04-28 220

[아시아인권모니터링]



한국과 필리핀의 조선소 노동자들이 연대하는 이유




글_국제연대위원회 6기 인턴 김다운




1. 228명의 희망퇴직, 170명의 정리해고, 그리고 174억의 배당금



  지난 4월 19일, 한국 노동자들과 필리핀 노동자들이 연대의 목소리를 냈다. 한진중공업에 의해 부당해고 된 부산 영도조선소의 노동자들과 필리핀 현지법인 한진중공업에 의해 인권탄압을 받고 있는 수빅조선소의 노동자들이 한진중공업의 만행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연 것이다. 한진중공업은 지난해부터 회사의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에 의해서라며 정리해고와 희망퇴직자신청접수를 통해 인원감축을 시도해왔으며, 결국엔 직장폐쇄를 단행하고 170명(희망퇴직자 228명을 제외한)에 이르는 영도조선소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했다. 해고의 명분은 영도조선소의 수주 물량이 없으며, 실적이 없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부당정리해고의 이면에는 한진중공업이 벌인 무리한 해외투자와 건설부문에서의 손실로 인한 ‘경영상의 실패’라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진보신당 부산시당은 지난 3월 공시된 한진중공업 감사보고서와 사업보고서를 통해 2010년 경영실적 보고서를 분석했는데, 영도조선소의 경우 정리해고가 진행되는 사업장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양호한 영업실적을 보였다는 점에 주목했다. 영도조선소의 영업실적악화가 정리해고의 원인이기보다는, 한진중공업 필리핀 법인 수빅조선소와 한진중공업 건설부문에서의 손실이 경영상의 위기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1299922444.bmp출처: 진보신당부산시당



  한진중공업은 2006년부터 필리핀의 수빅만에 세계에서 네 번째 규모의 조선소, 수빅조선소를 건설하여 대규모 투자를 해왔다. 그런데 2008년 이후 막대한 이자비용이 발생한 데에는, 수빅 등에 대한 투자비용을 회수하지 못해 발생한 차입금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고, 실제 수빅조선소를 운영하는 한진중공업 필리핀 법인의 경우 2010년 384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1340111513.bmp출처: 진보신당부산시당



  따라서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노동자들의 정리해고는 ‘투자로 인한 손실 및 경영부진에 대한 경영자들의 책임’을 고스란히 노동자들에게 전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말, 한진중공업은 주주들에게 174억 원이라는 배당금을 지급했다. 올해 2월에는 한진중공업의 모회사인 한진중공업홀딩스가 주주들에게 지급한 배당금이 약 52억 원에 이른다. 회사가 말하는 ‘위기’의 기색은 경영가, 주주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듯 보인다. 오랜 시간동안 회사를 위해 숙련된 기술로 노동에 종사했던 노동자들만이 하루아침에 ‘경영상의 위기’라는 이유로 막대한 책임과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는 것이 말도 안 되는 지금의 상황이다.



1387767777.bmp사진출처: 시사코리아




2. 필리핀 노동자들의 묘지 ‘수빅조선소’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의 노동자들뿐만이 아니다. 한진중공업 필리핀 법인 수빅조선소 노동자들도 인권유린, 처참한 노동환경 등으로 인해 악몽과 같은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지난 2007년부터 산재로 인해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이 벌써 28여명에 이른다. 수빅조선소 소속 노동자 1만9000여 명 중 상당수가 101개 하청업체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으며, 사측은 주기적인 계약변경으로 정규직 전환을 막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1284757213.bmp민주노총이 19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한진중공업 한국, 필리핀 조선소 노동조합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한진중공업의 노조 탄압을 규탄하고 있다. ⓒ양지웅 기자


사진출처: 민중의 소리



  필리핀 수빅 조선소의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환경, 인권유린, 산업재해 등으로 엄청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이러한 사태의 원인에는 기업의 편의대로 노동자들을 고용하여 마치 그들을 싼 값의 도구처럼 이용하고자 하는 ‘다단계 하도급’이라는 구조에 있다. 한진중공업은 수빅조선소 건설 당시부터 최대 5단계의 다단계 하도급의 노무관리방식으로 필리핀 현지에서 악명을 날렸고, 지금도 조선소 내에서 불법적인 근로파견의 의혹을 사는 101개의 사내하청업체를 통해 인력을 고용하고 있다. 직접고용을 하지도 않고, 간접고용의 형태로 단기간 필요에 따라 노동자를 고용하는 이러한 다단계 하도급은 노동자들의 노동권, 생존권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다단계 하도급의 구조 속에서 노동자들의 노동에 대한 인정, 인권에 대한 존중은 전혀 없다. 원청은 산재를 당한 노동자들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의 안전에 대한 교육, 안전 기준마련, 현장의 안전 확보, 관리 및 감독에 소홀하다. 하도급 업체 역시 또 다른 하도급 업체에 사업권 입찰을 붙이는 방식을 통해 이익을 챙기고, 실제 공사를 하는 업체의 경우 노동자들의 임금, 안전, 복지 등에는 소홀하다.


  실제로 이러한 다단계 하도급의 구조는 국내 건설업계나 제조업계에서도 빈번한 고용의 형태이다. 건설현장에서 산재를 당하고 심지어 죽음에 이르는 노동자들의 경우 많은 경우가 사내 하청 노동자들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원청 노동자들과의 의사소통이 없을뿐더러, 안전교육이나 위험여부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제공받지도 못한다. 불안정한 고용의 형태로 인해 노동자들은 작업안전성에 큰 위협을 받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생존을 위한 저임금 고강도 노동을 해야만 한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생존을 위한 노동을 하다가 목숨을 잃었다. 필리핀 수빅조선소에서는, 작년 12월 24일 트럭에서 철강파이프가 쏟아지는 사고로 한 노동자가 사망하고, 올해 1월 18일에는 폭발사고로 그 자리에서 두 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3월 10일에는 두 명의 노동자가 크레인에서 떨어진 철제빔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다음날인 3월 11일, 한 노동자는 지붕위에서 작업을 하다 추락하였고, 병원에서 처치를 받던 중 목숨을 잃었다. 과연 이들의 죽음의 책임은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가.



  최근 국제목공노련(BWI)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필리핀 건설연맹(NUBCW)의 조직활동가 체스터 임파로는 “노동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노동조건의 개선이며, 무엇보다 하청에 고용되는 것이 아니라, 한진중공업 필리핀 현지법인에 직접 고용되는 것을 바라고 있다”고 전했다.

3. 한국-필리핀 노동자들의 연대: ‘우리의 문제‘로 바라보기


  경영실패의 책임을 부당하게 전가 받고 정리해고된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노동자들, 다단계 하도급 구조 속에서 산재와 인권유린을 겪고 있는 한진중공업 필리핀 수빅 조선소 노동자들, 이들이 이제는 연대하여 함께 요구한다.


  “우리 양국의 노동자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동일하다. 바로 한진중공업 경영진이 노동자들을 인간으로서 그리고 노동자로서 전혀 존중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조와의 합의서와는 아랑곳 하지 않고 노동자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는 한국의 한진중공업과 노동조합 결성마저 부인하는 필리핀의 한진중공업은 우리의 정당하고도 당연한 권리인 노동권을 부정하고 있다. 우리 양국의 노동조합들은 이와 같은 한진중공업 경영진의 무책임한 행동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음을 그리고 양국 노동자들이 연대하여 우리의 노동 권리를 되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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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9일 민변의 노동위원회 권영국 변호사와 전명훈 간사, 시보, 인턴들이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 앞 한진중공업 노동자 상경투쟁 현장에 지지방문을 다녀왔다.

 




  반짝 꽃샘추위가 찾아 왔던 지난 4월, 한진중공업 부당정리해고 노동자들은 상경투쟁을 위해 서울로 올라와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 앞에 천막을 쳤다. 그들은 자신들의 숙련된 노동으로 정당하게 임금을 받고 생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마음이 절실했다. 하지만 기업은 경영상의 위기라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노동자들을 버렸다. 노동자들에게는 너무나 쉽게 정리해고를 단행하면서도, 자신들의 책임에는 무감각하고 오히려 엄청난 액수의 배당금을 챙겨가는 기업에 대해 정치적, 법적 규제가 절실히 요구된다. 노동자들을 철저하게 이윤을 위한 수단으로만 취급하는 다단계 하도급과 같은 간접고용도 사라져야한다.

  하지만 정치적, 법적 규제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노동자, 시민들의 성숙한 의식이기도 하다. 자신들의 정리해고 문제로 투쟁하는 영도조선소 노동자들은 필리핀 노동자들의 산재와 인권유린의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부당해고를 당한 정규직 노동자나 산재와 인권유린을 겪고 있는 비정규직노동자나 모두 연대하여 그들을 인간으로서, 노동자로서 제대로 대우하지 않는 기업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이제 저임금, 불안정한 고용에 시달리는 노동자의 문제는 더 이상 일부의 문제가 아니다. 정규직을 부당해고하고, 그 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채우며, ‘노동의 유연화’를 외치는 신자유주의의 시대에 ‘노동자’는 과연 누구인가. 비정규직노동자, 정리해고대상자, 외국인노동자들만이 항상 희생당하고 투쟁해야하는 노동자는 아닐 것이다.





참고자료
– 한국모바일방송, ‘
수빅조선소의 손실, 영도조선소 정리해고 강행 명분?’
(http://www.kmbnews.net/kmbnews/news/view.html?id=21846)
– 프라임경제, ‘[기자수첩] 한진중공업이 인정해야 할 ‘진리’ 한가지’
(http://www.newsprime.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5746)
– 프레시안,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죽음, 산재는 꿈도 못 꾸죠”‘
(http://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10427182836&section=03)
– 참세상, ‘필리핀 건설 노동자들이 한진중공업을 주목한다’
(http://web.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id=42964)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금속노조/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필리핀 한진중공업노조/필리핀 건설목공노동조합연맹/국제건설목공노련 공동성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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