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를 띄웁니다] 민변회장 김선수 변호사의 신년 인사

2011-01-03 163

2011년 신묘년(辛卯年) 신년사


 


  지난해는 뉴밀레니엄인 21세기 들어 10년이 되는 해였지만 우리 민족과 사회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힘든 일이 많았습니다. 6·2 지방선거 결과로 희망을 가졌지만, 애석하게도 상황은 반대방향으로 전개되었습니다. 수억 년 동안 우리 민족의 삶의 터전이 되었던 4대강은 내장이 파헤쳐지고 척추가 손상되었습니다.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에 이은 강경대응으로 남북관계는 파탄지경에 이르러 전쟁이 현실적인 위협이 되었습니다. 한미FTA는 굴욕적으로 체결되었습니다. 집회와 표현의 자유 억압, 민간인 사찰과 같은 독재시대의 망령이 되살아났습니다. 연말에는 예산안과 4대강 법률안의 날치기로 의회민주주의가 들러리로 전락했습니다. 정권 교체 3년 만에 나라꼴이 말이 아니게 되었고, 민초들의 삶은 더욱 황폐해졌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선거를 잘못하면 국민에게 어떤 불행이 닥치는지 처절하게 깨달았습니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없고, 후안무치하며, 무능하기조차 한 이 정부는 그 누구보다도 훌륭한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강은 왜 보전되어야 하는지, 평화는 왜 우리 민족의 생존조건인지, 복지는 왜 보편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선거는 왜 잘 해야 하는지 너무도 분명하게 알려주었습니다.


새해는 토끼해입니다. 토끼는 초식동물로 성대가 없어 짖지도 못하고, 연약해서 육식동물과 맹금류의 공격대상이 됩니다. 자기방어를 위해 귀가 크고, 뒷다리가 발달하였으며, 동그란 눈을 크게 뜨고(토끼눈을 하고) 경계하다가 언제라도 재빨리 도망을 갑니다(토낍니다). 종족의 생존을 위해 발정기 없이 언제나 교접하고 새끼를 많이 낳습니다. 약자이지만 종족을 보존하는 민초들의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토끼를 뜻하는 묘(卯)는 새싹이 둘로 갈라져 지상으로 뻗어나가는 형상을 표현하는 상형문자입니다. 오행 중 목(木)의 기에 해당하고 오곡을 포함한 일체의 식물을 포괄합니다. 월로는 농사가 시작되는 음력 2월을 가리키고, 시간으로는 오전 5시부터 7시까지로 달이 아직 보이나 태양이 밀고 올라오는 시간입니다. 밤과 아침이 교체하는 시간인바, 이런 관점에서 보면 새해는 암울한 수구의 시대에서 희망찬 진보의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별주부전>에서는 토끼가 피지배 민초들의 세계인 육지세계의 대표로서 정치지배 관료들의 세계를 뜻하는 용궁세계의 사자(使者)인 자라의 구변에 속아 용궁에 따라가지만, 끝내는 용궁세계를 우롱하고 육지 세계로 돌아옵니다. 이 땅 민초들이 경제성장 약속에 속아 선거를 잘못했지만, 마침내 2011년에는 기지를 발휘해서 자기 세계로 돌아올 것이라 믿습니다.


소신공양에 대한 보답으로 달 속에 영원히 살고 있는 토끼를 본받아 ‘자연과 세상을 위해 내 한 몸 수고롭게 하자’는 자세를 가다듬어 봅니다. 등고자비(登高自卑, 높이 오르려면 낮은 곳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의 자세로 밑바닥 현장에서부터 다시 시작한다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새해에는 박노해 시인의 소망대로 ‘사람이 중심’이어야 하겠습니다. 자연을 정복한다는 의미의 ‘사람 중심’이 아니라 모든 정책과 생산과 분배가 사회 구성원 모두, 특히 약자와 소수자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의미의 ‘사람 중심’이 되어야겠습니다.


새해를 맞아 모든 분들의 평화와 건강과 행복을 간곡히 바라마지 않습니다.


 



2011. 1.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김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