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임 사무총장 한택근 변호사 인터뷰

2010-12-28 233

한택근 변호사 인터뷰




이번호 뉴스레터는 민변에서 최초로 사무총장을 연임하신 한택근 변호사님을 만났습니다. 한 변호사님은 2006년 6월부터 2010년 5월까지 4년 동안 민변 사무총장으로 활동하셨습니다. 한 변호사님 임기 동안 민변은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민변은 촛불을 계기로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서게 되었고, 민변 사무처 내에 상근변호사 제도와 인턴 제도를 도입하면서 폭넓은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민변의 도약기‘를 이끌었던 한 변호사님으로부터 사무총장 시절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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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2010년 5월을 끝으로 민변 사무총장으로서 4년간의 대장정을 마치셨습니다. 임기 후에는 어떻게 지내셨나요?
A. 법무법인 동서파트너스에서 변호사로서 변론을 맡으며 지냈습니다. 일반 사건들을 수임하면서 사건 의뢰인들을 만나면서 열심히 업무를 하고 있지요. 민변 사무총장 시절보다는 확실히 시간적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그래서 못 보던 책도 읽고 아무래도 가정에 더 충실하게 되었습니다. (웃음)





민변 사무총장으로서 마주한 시국사건들

-촛불을 보면서 이것이 민주주의의 참 모습이라는 생각을 해
-한국 사회의 모순이 응집된 용산참사를 보면서 마음이 아파


Q. 사무총장 재임시절에 유난히 시국사건이 많았습니다. 많은 민변 변호사님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 촛불집회를 꼽아주셨는데요. 촛불집회를 지켜보시면서 느끼셨던 바가 궁금합니다.
A. 민변 창립 20주년 즈음 촛불집회가 터졌습니다. 저는 한미 쇠고기 협상 문제가 촛불과 같은 대규모 집회로 이어지리라곤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5월 초쯤, 촛불집회 초반에 청계광장에 나가봤는데 시위에 잔뼈가 굵은 운동가나 활동가들로 채워진 집회가 아니었습니다. 일반인, 그리고 어린학생들이 나와 자유롭게 자기 의견을 표현하면서 촛불을 드는 것을보고 감동을 느꼈죠. 이것이 민주주의의 참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유롭고 자발적인 분위기에서 의견을 개진하고, 투쟁적인 운동가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헌법 1조의 내용을 가사로 노래하면서, 우리가 우리나라의 주권자이므로 통치자들은 우리의 의사대로 정치를 했으면 좋겠다는 가장 기본적인 요구를 하는 촛불의 모습을 보면서 ‘바로 이거다!’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회의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멀리서 찾을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죠.



Q. 민변 사무처에서도 촛불에 대응하는 다양한 활동을 기획했을 것 같습니다. 어떤 활동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A. 우선 5월 말쯤부터 촛불집회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잡혀간 시민들을 접견하고 변론하는 활동을 했습니다. 또한 사후적으로 접견활동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시민을 보호하고 현장에서 인권을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인권침해 감시를 했습니다. 5월 말부터 7월, 촛불이 꺼질 때까지 거의 길에서 살다시피 했지요. 저도 당시 기억으로는 새벽에 택시를 타고 집에 간 적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민변 조끼를 입고 활동하다보면 시민들이 수고한다며 격려해주시기도 하고, 바빠서 조금 일찍 가려고 하면 벌써 가시면 어떻게 하냐며 붙잡는 시민들도 있었습니다. 시민들이 민변으로 인해 든든함을 느낀다는 것을 보고 뿌듯했습니다.
또 민변은 광우병 의심 소고기가 한미 쇠고기 협정을 통해 수입되는 것에 위헌적 요소가 있다고 봐서 헌법소원을 추진했습니다. 그런데 헌법소원 청구인을 우리 몇 명이 하는 것 보다 범국민, 범시민적으로 해보자는 의지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을 통해 미국산 쇠고기 조약 헌법소원 범국민 청구인단을 모집한다는 사실을 알리자 10만 명 정도의 시민들이 참여의사를 밝혔습니다. 민변 홈페이지에서 접수를 받는데 민변 서버 용량이 적어서 서버가 다운되는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죠. 그만큼 시민들의 호응이 컸습니다. 그런데 헌법소원 청구서에 10만 명의 시민을 청구인으로 올리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도장’이 찍힌 위임장이 필요했습니다. 인터넷으로 접수를 받은 것이어서 일일이 시민들을 찾아다니며 도장을 받아올 수가 없어서 조립식 도장으로 날인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간사님들이 수고하셨는데, 헌법소원 청구서를 내야 하는 기일이 다가오고, 날인 작업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자원봉사자를 모집했습니다. 백 명 정도 되는 자원봉사자 분들이 사흘을 철야작업하면서 수고해주신 덕분에 날인작업을 간신히 마쳤죠. 당시 자원봉사자 중에는 퇴근 후 민변사무실에 와서 밤새 도장을 찍고는 다음날 아침에 회사로 곧바로 출근하는 직장인들도 있었습니다. 사법연수원에 다니는 자원봉사자도 있었는데, 그분은 이 일을 계기로 민변 회원에 가입하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민변은 법률가 단체로서 쇠고기 협정이 국민주권을 무시한 채로 진행된다는 것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쇠고기 협정의 문제점을 알리는 언론활동을 했습니다. 송기호 변호사님이 주축이 되어서 독소조항의 문제점을 알렸죠. 촛불집회 당시에 민변에서 기자회견을 한다고 하면 민변 대회의실이 기자들로 꽉 찼습니다. 민변이 제기한 문제를 언론이 크게 보도해주곤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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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또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으시다면?
A. 용산참사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용산참사 사건 자체가 한국 사회의 모순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지요. 무자비하고 폭력적인 개발 앞에서 사람의 생명, 경찰까지 포함해서 6명의 생명이 아스라 졌습니다. 문명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죠. 사건 자체로도 느끼는 바가 많았습니다.
민변은 용산참사에 대응해서 “진상조사단”과 “용산참사 변호인단“을 조직해 두 갈래로 활동했습니다. 저는 용산참사 변호인단의 단장을 맡았습니다. 그런데 소송 진행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죠. 검사는 방대하게 사건을 수사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만 채택해서 증거로 제시합니다. 나머지 수사한 부분은 변호인단이 볼 수 없는 셈이죠. 그런데 형사소송법은 공개하지 않은 수사 자료에 대해 열람 등사를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합니다. 검찰 측에서 열람등사를 거부하면 재판부에 허용신청을 할 수 있죠.
우리 변호인단이 수사기록 3000쪽에 대해 열람등사를 청구하자, 법원에서 허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수사기록을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수사기록이 없는 상태에서 제대로 된 변호를 진행할 수가 없었는데도 당시 재판부는 재판을 강행했습니다. 재판부의 의지만 있으면 수사기록을 공개할 방법이 얼마든지 있었음에도 말이죠. 우리 변호인단은 편파적 재판부에서 재판을 받을 수 없다는 의견을 모아 재판부 기피신청을 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에서도 재판부 기피신청이 기각되었고, 변호인단 전원이 사임하기로 했습니다. 많이 안타깝습니다.






민변 유일의 연임 사무총장
-당시 민변의 재정상황으로는 상근변호사를 1명만 뽑을 상황이었지만 3명을 뽑아
-상근변호사 덕분에 민변의 활동역량이 높아져
-인턴들이 법조인이 되었을 때 민변에서의 경험이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으면


Q. 2년 동안 사무총장으로 활동하시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연임을 하셨다니 놀랍습니다. 연임을 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A. 백승헌 회장님이 연임을 결심하면서 저도 자연스럽게 연임하게 되었습니다. 회장님과 같은 배를 탔다는 이유로 또 하게 된 것이죠. 정말 생각지도 않았는데 말입니다.(웃음)



Q. 변호사님께서 민변 사무처에 상근변호사 제도를 도입하셨다고 들었습니다.
A. 네. 그런데 제가 처음으로 상근 변호사 제도를 도입한 것은 아닙니다. 민변 창립 초에 천정배 변호사님이 상근변호사로 활동한 적도 있었지만, 맥이 끊겼던 것이죠.
민변에 상근변호사가 없으면 상시적으로 법률문제에 대해 대답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또한 회원 관리 차원에서도 회원들이 전부 변호사다 보니 상근변호사가 있으면 회원을 관리하기 쉽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당시 민변의 재정상황으로는 상근변호사를 1명만 뽑았어야 했는데, 한 분만 계시면 예전처럼 단발성으로 끝날 것 같다는 우려 때문에 3분을 뽑게 되었습니다.
상근변호사 제도 도입 전후의 차이점을 꼽자면 민변이 법률 상담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시민들의 질문에 즉답이 가능한 시스템이 만들어진 것이죠. 또한 회원 관리 차원에서도 수월해졌습니다. 아무래도 민변 회장과 총장은 비상근인데 상근변호사가 사무차장직을 맡으며 상근을 하니까 조직 관리가 쉬워졌죠.
덧붙이자면 민변에 상근변호사가 없었다면 촛불정국 때 민변이 이렇게까지 폭넓은 활동을 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상근변호사들이 민변의 발전에 큰 역할을 한 셈이죠.



Q. 민변 인턴제도도 한택근 변호사님 사무총장 시절에 도입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A. 누군가 인턴을 뽑자는 아이디어를 내서 저는 대찬성했습니다. 또 기왕 도입할 거면 최대한 많이 뽑자는 주의였죠. 민변이 이렇게 많은 활동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인턴들의 도움이 큽니다. 이 뉴스레터만 해도 그렇지요. (웃음) 뿐만 아니라 각종 토론회 등에서 인턴들의 활약이 돋보입니다. 사법시험 합격자들이나 법학 전공자들이 법률 상담을 1차적으로 맡아서 해주니까 민변이 훨씬 수월하게 상담 업무를 맡을 수 있게 되었고요. 우리 민변이 인턴들로부터 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민변이 인턴들로부터 도움만 받으면 일반 기업에서 노동 착취하는 것과 다를 바 없으니까 민변도 인턴들에게 무언가 남겨줘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합니다. 인턴들 중에 상당수가 로스쿨에 진학하던데, 그들이 법조인이 되었을 때 민변에서의 경험이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야 서로 윈-윈(win-win)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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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을 향한 직언

법률가적 전문성과 인권단체의 특수성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전문성을 갖춘 싱크탱크로 거듭나야.


Q. 민변이 창립된 지 20주년이 지났고, 민변이 어떤 지향성을 가져야 할지에 대해 고민이 필요한 시기인 듯합니다. 법률가 단체이자 인권 단체인 민변이 어떤 정체성을 가진 단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A. 저는 인권단체의 성격과 법률가 단체로서의 전문성이 별개로 떨어져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결국은 전문가의 지식을 활용해 인권을 보호하는 활동을 하는 것이 우리 민변이 지향해야 할 바이기 때문이지요. 저는 민변이 지금 하는 활동 중 입법된 법률안을 비판하거나 입법이 필요한 부분들을 제언하는 ‘입법감시’활동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법원과 헌법재판소에 대해 사법감시 활동도 하고 있지요. 저는 앞으로 민변이 이런 활동들을 활성화시켜 싱크탱크(THINK TANK)로 거듭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민변의 각 위원회가 전문성을 갖춰야겠지요. 환경문제라면 민변의 환경위원회를 떠올리고, 노동문제가 있다면 민변의 노동위원회를 바로 떠올릴 정도로 민변의 위원회가 전문성을 갖춰야 합니다. 각각의 위원회가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어 성과물을 축적해나가다 보면 민변이 하나의 싱크탱크로서 감시하고 비판하는 활동은 물론 대안까지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러다보면 자연히 회원들의 먹고 사는 문제도 민변활동을 통해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지금 사무총장이신 정연순 총장님께 당부의 말씀을 하신다면?
A. 제가 조언할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웃음) 최초의 여성 총장으로서 김선수 회장님과 함께 열심히, 그리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잘 하시고 계신 듯합니다. 박수를 보냅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해주세요.
A. 일단 민변 회원으로서 열심히 민변 활동을 해야 할 것 같네요. 민변 가입할 때부터 국제연대위원회에서 활동했고 위원장을 한 적도 있기에 애착이 많이 갑니다.
제가 아직 나이가 많지는 않지만 바라건대 지금처럼 민변에서 젊은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잘 지내고 싶습니다. 지레 나이가 많아서 민변에서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하면서 틀 안에 나를 가둬두지 않았으면 합니다. 민변 회원으로서 끝까지 함께 갔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건강도 지켜야겠고, 생각도 젊게 유지해야겠네요. 꾸준히 노력해야겠습니다. 한마디로 ‘조로하지 말자!’입니다. (웃음)



Q. 마지막으로 구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민변회원들에게는 가입했던 때의 초심으로 민변에서 뜻을 함께 펼치기 위해 노력하자는 말을 남기고 싶네요.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민변활동이 부진할 수 있지만 노력해서 함께 품었던 뜻을 이루어나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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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홍연경 출판홍보팀 5기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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