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올해 12월로 민변을 떠나시는, 민변 상근변호사 송상교 변호사 인터뷰

2010-12-15 297


올해 12월로 민변을 떠나시는, 민변 상근변호사 송상교 변호사 인터뷰


2008년부터 3년 가까이 민변에서 일하시다가 2010년 12월 민변을 떠나시는 송상교 변호사님을 만났습니다. 2000년대 민변 2호 상근변호사 송상교 변호사님의 지난 2년 8개월 안에는 민변의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있었습니다.



이번 뉴스레터 인터뷰는 송상교 변호사님의 3년간의 상근변호사 생활을 통해 민변의 변천사를 돌아봅니다. 나아가 ‘서민변호사’ 송상교 변호사님이 민변 활동을 통해서 확장해나가신 문제의식을 공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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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저는 연수원 34기고, 법무법인 덕수에서 일하다가 2008년 5월부터 민변 상근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송상교입니다. 2년 반 동안 민변에서 일했는데, 내년부터는 원래 일하던 덕수로 돌아가게 되었네요. 아름다운 부인과 귀여운 아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웃음)






‘민변에서의 3년, 회고록’

Q1. 민변 상근변호사를 지원하게 된 특별한 동기가 있나요?


A. 처음 변호사 공부를 시작하고, 또 변호사가 되었을 때 저는 의사들이 큰 수술을 통해 아픈 사람을 구하듯, 법적으로 힘든 사람들을 도와주는 인권변호사가 되려는 포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연수원 졸업 후 공익 사건을 많이 맡는 사무실인 덕수를 선택했었죠. 덕수에서 3년 동안 일하면서 많은 보람을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개별 사건만 다루다보니 나무에만 집중하고 숲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내가 가진 지식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송호창 변호사로부터 민변에서 상근변호사 제도를 만들려고 하는데 해보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설립 초기와 이후 몇번 민변 상근변호사가 있었는데, 2000년대 와서 상근변호사가 없었고 민변 내부에서 역량있는 활동을 위해서 상근변호사 제도를 다시 만들자는 고민이 있었던 것이죠. 저는 제의를 받는 순간부터 해보고 싶다는 결심을 하고 상근변호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상근 변호사직을 수락했을 때는 상근변호사의 역할을 잘 몰라서, 민변에서 사회를 살펴보며 내가 앞으로 집중해야 할 인권분야를 특정해야겠다는, 어떻게 보면 조금 나이브한 포부로 민변에 들어왔던 것 같습니다


Q2. 민변에서 상근변호사로 활동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궁금합니다.


A. 제가 민변에 처음 왔을 때는, 민변이 하는 일에 비해 상근자 수가 적어서, 모든 사람이 모든 일에 뛰어들어야 했습니다. 스스로 제 역할을 찾아가야 하는 상황이었죠. 그러던 중 아시다시피 2008년 5월에 촛불집회가 터졌습니다. 시민들이 만들어가는 운동인 촛불을 바라보며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지 모르면서 지켜보고 있었죠.


촛불이 계속 번져나가면서, 초기에 가만히 있던 정부가 서서히 촛불을 협박하기 시작했습니다. 불법집회다, 법적으로 대응하겠다, 연행하겠다, 인터넷 글을 쓰거나 문자를 돌리면 처벌하겠다며 시민사회에 압박을 가했죠. 이를 보면서 우리는 위기의식을 느꼈습니다. 정부의 협박(?)을 내버려두면, 시민들이 위협감을 느끼겠다는 판단 하에 민변이 나서서 무언가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지요.


그래서 민변은 모든 역량을 동원해서 촛불집회 법률지원활동을 벌였습니다. 8월 중순까지 진행된 촛불집회에 매일, 하루 종일, 주말까지 빠짐없이 촛불집회에 참여하면서, 사람들이 연행되면 접견 활동을 계속 했습니다.


촛불집회가 지나면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민변은 시민들에게 다른 존재로 인식되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원래 민변을 몰랐지만, 촛불을 거치면서 민변이 인권침해 감시활동도 하고, 시민이 연행되면 접견도 하고, 무료변론 활동을 하자, 대중들이 민변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민변이 지금까지와는 달리, 좀 더 체계적으로 대중에게 다가가는 활동을 많이 해야겠다는 고민이 민변 안에서 시작됐습니다. 그러면서 사무처 안에서도 체계적으로 일하기 위해서 팀을 나눴고, 2009년부터 논의 끝에 지금과 같은 시스템을 세웠습니다. 그래서인지 촛불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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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3. 2009년에 민변이 사무처로 조직을 확대하고 그 안에 교육팀, 변론팀, 출판홍보팀 등을 만들면서 송변호사님께서 변론팀장을 맡으셨습니다. 민변에서 주로 어떤 업무를 맡으셨는지 궁금합니다.



A. 변론팀장을 맡게되면서 저는 민변의 변론에 관련된 전반적인 업무를 관장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민변을 찾는 시민들의 문의에 적절히 답변해주고 가능한 경우라면 민변 회원을 소개시켜줘 상담과 변론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일을 했습니다. 촛불은 끝났지만 철거민이나 일반시민들이 여전히 집회에서 연행되고 기소되는 일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사건들을 계속 접수하고, 민변에서 맡아서 변론할 것인지 고민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민변회원이 600여명인데, 많은 사람들이 짐을 나눠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많은 회원에게 변론을 나누고자 노력했습니다.


 



Q4. 사실 송변호사님께서 민변 내에 ‘상담팀‘을 제도화시키고 운영하셨습니다. 아무래도 일반시민들이 민변에게 가장 의지하는 부분이 바로 상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변론팀장으로서 민변의 상담팀이 어떤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A. 이 질문에 대답하기 머뭇거려지는 게, 민변이 공식적으로 상담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민변을 찾아 전화한 사람들에 대해서 공익, 인권관련 사건의 범위 내에서만 상담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답하는데 고민이 있네요.


최근 유명해진 사건 중 ‘최철원 맷값 폭행 사건’이 있습니다. 피해자가 도움을 받기 위해서 여러 군데에 도움을 요청했겠죠. 그러나 도움을 받지 못하던 끝에 민변 김칠준 변호사에게 연락이 닿아 김변호사님께서 그 얘기를 듣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상담, 변론에 나서셨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은 사회적 이슈가 될 수 있었고, 껍질을 벗겨보니 구조적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었죠.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상담팀의 중요한 역할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분들의 고통이 클수록, 변호사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하고, 경제적 문제에도 직면하게 됩니다. 민변의 역량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민변은 주로 큰 사건 중심으로 많이 변론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이에 대해서는 민변 내부에 여전히 고민이 있습니다. 촛불 후에 시민들의 구체적인 고통과 목소리에 답변을 해야 된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우리의 역량을 고려해 대책 없이 일을 벌일 경우 핵심 업무도 감당하지 못하게 돼 신뢰를 잃을 수도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양측 다 일리가 있는 주장입니다.


민변은 법률과 단체와 인권단체 속성을 함께 갖고 있는데, 법률가단체로서 가장 중요한 일은 민변이 어떻게 해서든 상담을 많이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민변에서 상근으로 있다 보니, 사람들이 정말 필요한 곳에 많은 변호사들이 손을 뻗지 못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민들이 힘이 없어서 자신이 당하고 있다고 느끼며 민변을 찾아오시는 분이 정말 많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사건이어서 민변이 도울 수 없었던 일이 참 많았죠. 시간과 인적자원의 한계 때문에 그 경계가 어디가 되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상담과 변론을 확대하려는 문제의식을 계속 가지고 제도를 개선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감처럼 민변 산하에 무료변론사무실을 둔다던가, 민변에 오는 사건들을 최대한 적극적으로 사무실에서 받는다던가 하는 방식들을 약간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생각해볼 수 있겠죠. 민변 내에서 상담팀을 시작한 사람으로서 상담을 시작했지만, 제대로 하지 못한 것만 같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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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5. 아쉬운 일이 있으시다면?


A. 처음 상근변호사 일을 맡으면서 고민했던 문제 중 하나가 민변의 근본적인 위기는 민변 조직이 아닌 회원에게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예전에는 민변 계열 변호사 사무실들이 있었습니다. 사무실의 모든 변호사들이 민변 회원이고, 사무실 차원에서 공익, 인권 문제를 고민하는 집단적인 분위기가 있었던 것이죠. 민변계열 사무실에 새로 들어온 신입 변호사들은 자연히 민변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인권변호사로써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곤 했죠.


그러나 지금은 민변 계열 사무실이 많이 없어졌고, 변호사 시장의 경쟁이 매우 심해지다 보니 개인적으로 아무리 공익관련 업무를 하고 싶어도, 사무실 업무와 경제적 문제에 치여서 민변활동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많은 변호사들이 여전히 민변활동을 하고 싶어 하지만 이런 구조적 문제가 생긴 것이죠.


구조적 문제는 한사람의 노력으로 바뀌긴 어렵다는 생각에 바쁜 상황에서도 공익적 업무를 맡고 싶어 하는 변호사들의 고민을 모아서 대안적인 변호사사무실에 대한 연구와 실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민변에서 상근변호사로 활동한다면 이런 고민을 가진 변호사들의 목소리를 묶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죠. 그러나 이런 고민들을 실천으로 옮기지 못한 게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말년병장‘ 송변호사님, 민변을 떠나면서

Q1. 군대로 치자면 ‘말년병장‘이신데,(웃음) 소회가 어떠신가요?


A. 사실 일하는 걸 보면 여전히 일병인 것 같네요. 시원섭섭합니다. 민변 상근변호사 생활을 쭉 돌아보면, 제가 대학시절 이후로 다른 사람들과 이렇게 밀착해서 생활했던 적이 없었습니다. 사실 사무실에서 생활할 때는 점심을 누구랑 먹을지 고민하고 홀로 서면을 쓰면서 외로움을 느낀 적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민변에서는 모든 것을 터놓고, 밀착해 지내면서 서로 싸우기도, 위로하기도 하면서 사람과 부대끼는 생활을 했었죠. 또, 힘들기도 했지만 뿌듯하고 보람을 느낄 때도 많았습니다. 당분간은 이런 생활에서 얻는 기쁨을 느끼기는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아쉽습니다. 또 먼저 떠나다 보니, 다른 상근자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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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2. 비상근 사무처장을 제안한다면 하실 건가요? (웃음)


A. 어떻게 할까요? (웃음) 제가 했던 일 중 다 못 끝낸 일이 있어서, 거기에 대한 미련과 애착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공식적 직함과는 상관없이 할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상근자로 있다 보면, 당장 오늘 오전에 해야 하는 일에 밀려서 거시적 관점에서 조망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밖에 나가서는 장기적 관점으로 잘 볼 수 있지 않을까합니다. 또한 문제에 대해서 좀 더 자유롭게 얘기하면서, 필요한 역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Q3. 후임 박지웅 변호사에게 선배로서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A. 처음에 상근변호사를 시작할 때, “민변 상근변호사 끝났을 때 ‘상근변호사가 할 만하다‘는 인식을 남기겠다.”라고 얘기했습니다. 우선, 제 약속을 지키게 해준 박지웅 변호사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웃음)


상근변호사로서 크게 두 가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관료주의에 빠지지 않고 창조적으로 고민하는 자세, 또 다른 하나는 상근자 동료들과 ‘함께’ 문제를 풀어가는 자세입니다. 기본적이지만, 참 쉽지 않은 일이죠. 두 가지를 조화롭게 풀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충분한 시간과 여유를 가지고 일을 배운다면, 워낙 아이디어도 많고 열정도 많은 박지웅 변호사기 때문에 잘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한 박지웅 변호사 이후에도 많은 분들이 상근변호사에 지원해서 상근변호사 제도가 제대로 자리를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변호사는 재판에서 변론만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전문가이기에 여러 방면에서 기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최근엔 전교조도 상근변호사를 뽑는 등 단체들 또한 상근 변호사를 많이 요구하는 상황입니다.


상근변호사는 분명 매력적인 자리입니다. 특히 민변에서의 상근변호사는 더 그렇습니다. 모든 인권과 공익적 이슈를 다룰 수 있는 위치기 때문이죠. 풍부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위치기에 젊은 변호사들이라면 상근변호사 해 보는 것이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변호사 1년 할 것도 아니고, 몇 십 년 할 거지 않습니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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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4. 향후 계획을 말씀해주세요. 민변에 처음 오실 때, 민변활동을 통해서 관심분야를 좁히고 싶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특별히 관심을 갖고 활동하고 싶은 인권분야가 있나요?


A. 민변생활 통해서 관심분야가 구체화되길 기대했는데, 아직 고민 중입니다. 정보가 많다고 해서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더라고요. (웃음) 제가 무엇을 잘하며, 어떤 일을 해야 할 지 여전히 고민입니다.


저는 인권변호사, 공익변호사가 무엇인지 어렵게 정의하고 싶지 않습니다. 인권변론, 공익변론을 많이 하는 사람이 인권변호사라고 생각합니다. 법무법인 덕수로 돌아가서 이런 사건을 많이 맡는 변호사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러나 민변에서 일하면서 든 생각은 특정 주제에 천착하는 변호사가 되어야겠다는 것보다 ‘서민’을 변호하는 법조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임금문제든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변호사들이 수백만원씩 수임료 내라고 했을 때 낼 돈이 없어서 답답해하며 변호사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서민들을 돕는 변호사가 되고 싶습니다. 서민을 집중적으로 변호할 수 있는 변호사의 모델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사무실로 돌아가도 민변일을 열심히 해야겠죠. 국제연대위는 못합니다. (웃음) 상근변호사 하면서 사법위원회와 교육위원회 일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교육위원회에서 원래 했어야 할 일을 많이 못해서 박재화 간사님께 많은 폐를 끼쳤는데, 그래서 교육위원회는 계속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합니다. 다른 위원회 활동에도 참여해 폭넓게 공부하고 싶습니다.







정리/ 홍연경 출판홍보팀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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