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서울시 교육청 감사 담당관 송병춘 변호사

2010-09-30 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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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동운동가에서 늦깎이 변호사로


1. 변호사가 되기 전 20년 넘게 운동권에 몸담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노동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전반적인 활동 모습을 말씀해주세요. 


제가 73학번입니다. 박정희 정권의 10월 유신을 겪었지요. 당시 독재에 항거하는 학생운동에 참여하게 되면서 시대의 분위기 속에서 민주화 과정에 동참하게 된 것입니다. 그때는 정말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일이 많았어요. 유신헌법에 대한 반대는 물론이고 대통령을 조금만 비방해도 처벌할 수 있도록 한 긴급조치 9호가 그 대표적인 사례지요.

 그렇게 데모를 하다가 감옥살이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 감옥생활이 오히려 더 진보적인 생각을 갖게 해주었어요. 더욱 민주화 운동에 기여해야겠다는 결심을 감옥에서 하게 된 것이죠. 감옥에서 나와 군대까지 다녀온 후 80년에 복학을 했습니다. 당시 ‘서울의 봄’이라고 해서 민주화에 대한 기대가 컸습니다. 그러나 광주항쟁이 발생했고 서울에서도 운동권 학생들을 잡아가서 몇 달씩 붙잡아 두고 그랬기 때문에 저도 집을 나와서 피신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결국에는 무사했지만 학교를 졸업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고, 노동운동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구로공단에 노동자로 취업했습니다. 3년 정도 공장 생활을 했는데 당시 ‘전민노련’(전국민주노동자연맹), ‘전민학련’(전국민주학생연맹)에 참여했다가 다시 2년 동안 감옥에 가게 되었습니다. 저의 20대는 그렇게 지나간거죠(웃음).



2. 오랜 운동권 생활을 접으시고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가 무엇입니까?


 저는 전투적 노동조합운동을 표방하는 그룹에서 노동운동을 했는데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을 지켜보면서 변혁운동의 지향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고, 대기업노조 중심의 운동의 한계를 느끼며 운동을 그만두었습니다.


 그 후엔 주간 노동자신문 기자 생활을 3년 했습니다. 그러면서 무언가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싶었는데, 제가 대학을 다니다가 말았지만 교육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그 쪽의 전문가가 되려고 생각했습니다. 또 생계를 생각해야 했고, 무엇보다 나이가 많았기 때문에 다른 일보다 공부가 수월할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97년 하반기부터 사법시험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공부하려고 민법강의 책을 사다봤는데 재밌더라구요. 재밌으니까 한 번 해볼 만하다 싶었지요.


3. 뒤늦게 사법고시를 준비하면서 겪은 어려움이 있으신가요? 있으시다면 그 어려움들을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공부 시작할 당시, 젊었을 때 제가 하고 싶었던 운동가로서의 삶, 사회를 변혁해 보겠다는 의지가 꺾이면서 겪는 좌절감이 컸습니다. 제 자신이 초지일관하지 못하였고 주변 사람들 중에서도 운동하던 사람이 변호사가 되겠다고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있었고, 제 스스로도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극복하는 것이 어려웠어요.


그러면서 ‘명상’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마음의 독을 뽑기 위해서는 명상수련이 좋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실제로 명상을 통해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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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민변 교육위원장으로서의 삶


1. 민변 활동을 하시면서 교육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법시험을 준비할 때부터 교육법, 학교법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변호사가 되겠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2차 시험을 마친 후, 그리고 연수원에 들어가서도 틈틈이 교육학 석사 과정을 이수하였고, 교육법학회에 참여하면서 전문성을 쌓았습니다. 추상적인 개념이지만 교육권, 학습권, 교육계약 이론에 대해 관심을 가졌습니다.


또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면서 집사람이 학부모 운동을 했는데 그 영향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2. 민변 교육위원장을 역임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소송 혹은 활동은 무엇입니까?


제가 맡았던 소송들은 대부분 패소했습니다(웃음). 사립학교법이 개정되기 전에 학교로부터 보복적인 재임용 탈락을 맛 본 해직 교수들의 소송을 많이 맡았고 특별법 제정을 위한 토론회 등에도 참여하면서 많은 일을 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의미 있는 일에 동참한다는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대학교원들의 신분이 일반 노동자들만큼도 보장되고 있지 못한 현실이 매우 안타깝습니다.


또 기억에 남는 소송은 금성사 역사교과서 사건을 맡은 것입니다. 1심이기는 했지만 거의 유일하게 승소하기도 했고(웃음) 변호사일 정리하기 직전에 맡은 사건이라 기억에 남을 듯 합니다.



3. 변호사님의 교육철학도 말씀해주세요.



고등 종교들은 공통적으로 만인은 평등하다고 말합니다. 모든 사람은 불성을 가지고 있다거나 신 앞에 평등하다고 말하지요. 근대 시기에 들어서서야 비로소 실질적 평등, 정치적ㆍ경제적 평등을 논하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실질적 평등을 가능케 하는 가장 유력한 수단이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개성과 재능을 발달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교육입니다. 가난한 자든 부유한 자든, 장애가 있든 없든 모든 사람에게는 성장할 권리가 있고 사회와 국가가 그 기회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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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새로운 도전, 변호사에서 행정가로


1. 현재 변호사님이 맡고 계신 감사 담당관이라는 직책이 다소 생소합니다. 전반적으로 어떤 일을 맡고 계신 것인가요?


2010. 7. 1. 시행된 ‘공공감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모든 중앙행정기관등에 자체감사기구를 두고 자체감사기구의 장을 개방형직위로 공모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자체감사기구는 비리 등을 적발하고 징계를 위한 근거 자료를 만드는 일을 합니다. 또한 산하 교육행정기관과 학교들의 행정처분과 계약이 법률에 따라서 이루어지고 있는지, 적법절차를 지키고 있는지 업무 감사를 합니다.


2. 경쟁 위주의 교육에 대한 해결 방안은 무엇이 있을까요? 


우리 교육은 획일화된 교육과정에 따라 주입식 교육을 시키고 있습니다. 머리 좋고 성실하고 조직에 잘 적응하는 인간상을 키워 내고자 하는 것이지요. 이런 유형의 인재들이 사실 근대화 과정에서 매우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한국은 그런 교육제도를 발전시켜 왔던 것입니다. 급속한 경제발전에 도움을 준 것도 사실이고요. 그러다보니 뒤떨어지는 사람들은 버리고 엘리트 위주의 교육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과거의 인재상입니다. 낡은 패러다임은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삼성 이건희 회장의 말처럼 1%의 천재가 99%를 먹여 살린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틀린 말입니다. 인재는 키우겠지만 인재가 살아갈 사회는 망가질 것입니다. 1%만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모두가 자신의 분야에서 자긍심과 열정을 갖고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곧 학습자의 학습권을 중심에 두는 교육이라 할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경쟁을 부추기며 비대해진 사교육, 사학을 규제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학 경영자들의 무소불위의 권력과 부패를 견제해야 할 것입니다. 교육 권력이 법치주의에 따라서 민주적으로 투명하게 행사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3. 감사담당관의 입장에서 민변 회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공공감사에 대한 법률은 사실 한나라당이 만든 법안입니다. 덕분에 개방형 공모를 통해 감사담당관 직을 맡게 된 것이지요. 상당수 기관에 감사원이나 검사 출신이 임용될 것으로 보입니다만, 변호사 경력이 짧은 제가 서울시 교육청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진보적인 교육감이 뽑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과거 사회운동 경력이나 변호사 시절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사학의 비리만 적발하는 것이라면 이 직책에는 검사가 가장 적합하겠지요. 그러나 감사담당관의 업무는 교육원리에 따라 학생의 학습권, 교육권 등을 중심에 놓고 교육 권력을 감시ㆍ통제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무엇보다도 인권감수성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앞으로 교육청 뿐 만 아니라 중앙행정기관, 서울시 등에 인권변호사들이 다수 진출했으면 좋겠습니다.






글/염용주 5기 인턴
인터뷰/ 염용주, 홍연경 5기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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