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 새해맞이 눈꽃산행, 계방산(桂芳山)

2010-02-01 168

[출처]김선수 변호사님의 블로그 : 민변 새해맞이 눈꽃산행, 계방산(桂芳山)|작성자 파하



일정 및 코스


서초동 출발(07:20) → 운두령(雲頭嶺, 1,089m, 11:00-11:10) → 1,166m봉 → 물푸레나무 군락지(11:28) → 쉼터(11:50) → 전망대(1,492m봉, 12:30-12:40) → 계방산 정상(1,577m, 13:00) → 뒤로 돌아 정상 직전 쉼터(점심, 13:20-14:00) → 계방산 정상(시산제, 14:20-14:35) → 주목 군락(14:47-14:57) → 옹달샘 → 삼거리 → 이승복생가터․제2야영장․오토캠핑장(16:04) → 후미 도착 및 출발(16:50) → 진부 부일식당(17:15-18:10) → 출발(18:10) → 서초동(21:00)


 


민변 새해맞이 눈꽃 산행


민변에서 지난해에 이어 새해맞이 시산제를 겸한 눈꽃 산행을 기획했다. 지난해에는 태백산을 다녀왔었다. 그 후 회원들의 요구가 있어 6월초 곰배령 야생화 산행과 가을 1박 2일의 지리산 둘레길 걷기를 성황리에 마친 바 있다.


장소로는 선자령도 물망에 올랐으나, 표재진 변호사의 강력한 추천에 의해 계방산으로 했다. 날짜는 구정 연휴 등 사정을 고려하여 1월 마지막 토요일인 30일로 잡았다.


 


실무적인 일에서 벗어날 때도 되었건만, 회원팀과 사무처에서 부탁해서 이번까지는 회원들에게 보낼 초대문을 작성하게 되었다. 눈꽃과 상고대를 노래한 시와 노래를 중심으로 초대문을 썼다. 시산제의 진행순서와 축문과 지난해의 것을 보완하여 준비했다.


 






새해맞이 눈꽃산행 초대문


 


“백호(白虎)의 해라는 2010년 경인년(庚寅年)이 노동법 날치기와 함께 막을 열었습니다. 이에 통곡이라도 하듯 정초에 엄청난 눈이 온 천하를 뒤덮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더욱 많은 한 해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고생을 자처하는 삶을 선택한 우리는 다시금 자세를 가다듬게 됩니다.


 


지난 해 모임 차원에서 정초 태백산 눈꽃산행과 가을 지리산 둘레길 걷기 등 두 번의 산행모임을 가졌습니다. 가족과 지인을 포함하여 많은 분들이 함께 하였습니다. 활력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었고, 또 아름다운 추억도 만들었습니다.


 


올해도 새해맞이 눈꽃 산행을 가고자 합니다. 해발 1,000미터 이상은 되어야 눈꽃이나 상고대[樹霜]를 볼 수 있어 산행지는 평창의 계방산(桂芳山)으로 정했습니다. 계수나무 향기가 진동하는 산이라는 의미로 봄에 야생화도 좋지만, 겨울의 눈꽃으로도 이름 높습니다.


해발 1,577m로 남한에서 다섯 번째 높지만, 출발지점이 해발 1,089m인 항상 운무(雲霧)가 넘나든다는 의미의 운두령(雲頭嶺)이고 육산이어서 산행은 큰 무리가 없습니다. 초보자도 어렵지 않게 산행을 할 수 있습니다.


 


따사로운 햇살이 두려워 볕들기 전에 꽃잎을 열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눈꽃을 구경하면서(겨울에만 피어나는/ 이 꽃은/ 따사로운 햇살이 두려워/ 볕들기 전에/ 꽃잎을 화알짝 열어/ 온 천하에/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백금가루 뿌리듯 반짝인다, 남기옥 <눈꽃> 중), 춤을 추며 내게로 날아오는 큰 축복을 누려보시기 바랍니다(휘어진 가지의 무게 봉우리마다 꿈꾸는 바람/ 내게로 날아오네 얼마나 큰 축복인가/ 휘어진 가지의 무게 봉우리마다 꿈꾸는 바람/ 춤을 추며 내게로 날아오네/ 거듭 나는 아름다움이여, 하옥이 시, 이충자 곡 <눈꽃> 중).


 


시인 남명숙은 순백의 꽃 <상고대>를 다음과 같이 노래했습니다.


“푸른 날을 다 비워낸 알몸으로/ 겨울 한가운데 놓인 잿빛하늘을 이고서야/ 순백의 꽃을 피웠다


온몸을 쓰러질 듯 휘몰아치는 바람/ 우듬지로 재우고/ 잎을 떨궈 낸, 상처 난 자리에도/ 꽃을 피우고야 마는/ 나무


뿌리가 밀어 올리는 거한 숨, 뜨거운 열정/ 얼음장 같은 날로 품어야/ 선명한 나이테 하나 더 그려내고/ 둥글게 내면을 살찌운다는 거/ 싹둑 잘려진 나무의 밑동이 보여주고 있다”


 


순백의 꽃을 피워내기 위해 푸른 날을 다 비워내 알몸이 되었고, 모진 바람에 휘몰아치는 나뭇가지는 상고대의 꽃을 피워냈으며, 뜨거운 열정을 얼음장 같은 날로 품어 둥글게 내면을 살찌웠습니다. 햇볕 들면 사라져 버릴 운명이지만 모진 시련 겪어내고 피워 올린 순백의 꽃을 보고, 옷깃을 여미고 올해 삶의 자세를 가다듬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로 보입니다.


 


새해의 각오를 다지는 의미에서 시산제(始山祭)도 지내고자 합니다. 꽃 향연에 함께 하여 1년을 지탱할 열정을 공유하고, 올해 우리에게 요구되는 일을 수행할 원기를 회복하고, 또한 우리 사회에 희망을 제시하도록 합시다.


특히 멋진 장관은 아이들에게 더 없는 좋은 체험이 될 것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하시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41명 참여


신청과 철회가 왔다 갔다 하다가 최종적으로 가족과 지인 및 아이들 포함해서 41명이 참여했다. 태백산부터 계속 참여하는 고정멤버도 생겼다. 장주영 부회장(아내와 이번에 대학에 들어간 아들과 함께 했다)과 이오영 부회장(부부가 함께 했다) 그리고 권영국 노동위원장, 우리 사무실의 전영식 변호사(이번에는 사정상 아들과 막내딸만 데려왔다), 황희석 변호사(지리산에 이어 아들을 데리고 왔다) 가족 등이 대표적이다. 우리 가족은 아내만 함께 했다. 막내를 설득해서 동의도 받아냈었지만, 최종적으로 빅뱅공연을 보러 가는 것을 선택하는 바람에 데려가지 못했다.


한택근 사무총장과 송병춘 변호사도 사정이 허락하는 한 참여하는 멤버다. 송상교 사무차장도 함께 했다. 처음 참여하는 사람도 다수 있었다. 권정호 변호사, 정종원 변호사, 충남대 법학대학원 교수로 있는 정응기 변호사 등은 부부가 함께 참여했다. 조영선 변호사, 강문대 변호사 등은 아이만 데리고 참여했다. 강문대 변호사는 가정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니 오해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했다.


이영기 변호사, 김남주 변호사 등은 혼자 참여했다. 실무수습을 받고 있는 로스쿨 학생도 두 명이 함께 했다. 간사로는 이동화, 장연희, 전명훈 간사가 실무적인 준비를 하고, 산행을 할 때는 후미를 책임져 주었다.


백승헌 회장님 가족도 참여하기로 했었는데, 아쉽게도 갑작스런 일이 생겨 당일 아침 참여하지 못한다는 전갈이 왔다.


 


계수나무 향기의 산, 계방산


계방산은 계수(桂樹)나무 향기[芳]나는 산(山)이란 뜻이다. 계수나무는 일본이 원산지인 계수나무과에 속하는 관상용 갈잎 큰키나무다. 잎이 하트 모양이고, 석양 무렵에 초롱초롱 빛을 반사하는 모습이 강렬하다. 꽃잎과 꽃받침이 없는 붉은 색의 꽃이 잎보다 먼저 핀다. 가을에 노랗게 단풍 들며, 낙엽이 지면 설탕 끓이는 달콤한 냄새가 진동한다. 서초동 법원청사 내 동관과 서관 현관으로 올라가는 인도 좌우에 일렬로 서있다.


달나라에 있다는 계수나무는 이 계수나무가 아니고 월계수나무다. 월계수나무도 잎을 비비면 향기가 난다고 한다. 계피는 이 계수나무의 껍질이 아니라 육계나무의 뿌리껍질이다. 계방산의 계수나무는 향기가 진동한다는 것을 보면 흔히 말하는 계수나무인 것 같기도 하고, 전설 등을 생각하면 달나라에 있다는 월계수나무 같기도 하다. 계방산에서 계수나무를 보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상징적인 의미인가?


 


계방산의 높이는 1,577m이다.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덕유산에 이은 남한 제5위의 봉우리다. 지리산에 중봉, 하봉 등 여러 봉우리와 설악산의 중청, 소청 등 여러 봉우리가 이보다 훨씬 높아 봉우리 기준으로 5위라고 할 수 없지만, 여러 봉우리들을 하나의 산으로 치자면 그렇다는 의미다.


 


우리 민족의 산줄기 체계


주변에 황병산(黃柄山, 1,407m), 오대산(五臺山, 1,563m), 방태산(芳臺山, 1,444m) 등 여러 고봉들이 함께 산줄기를 이루고 있다. 위 산들과 함께 태백산맥을 이루고 있다고 설명하는 책이나 글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산줄기를 지칭하는 명칭으로 ‘산맥(山脈)’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일제시대부터이고 부적절하다.


일제는 조선침략정책의 일환으로 두 차례에 걸쳐 광물탐사사업을 실시하였다. 그 학술책임자(고토 분지로)가 우리나라의 지질(地質)을 조사하고 이를 토대로 조선의 산악론, 지질구조도를 동경제국대학 논문집에 발표하면서 조선 땅에 산맥이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이후 일제는 조선 전래의 산줄기체계를 몰아내고, 이어지지 않고 단절된 지질 개념인 산맥을 강제로 도입시켜 그 후 지금까지도 우리는 산맥이라는 용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980년대 초 이우형이란 분이 서울 인사동 고서점에서 1800년대 초에 편찬된 것으로 보이는 저자 미상의 우리나라 옛 지리서인 『산경표(山經表)』를 발견했다. 『산경표』는 산은 물을 건너지 못하고 물은 산을 넘지 못한다는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의 원칙에 근거하여 우리나라 산줄기를 15개 산줄기(백두대간, 1정간, 13정맥)로 나누고 1,650여개의 지명과 1,500여개의 산과 고개를 일목요연하게 표기하고, 10대 주요 강줄기를 유역별(流域別)로 나누어 수록해 놓았다. 이는 우리민족의 전통지리서이고 당시 국가의 공인된 지리개념이었으며, 조선시대를 거치는 동안 지리의 근간으로 활약했고 논리 정연한 대 지리백과사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우형은 1985년에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의 재판을 찍어내는데 성공하고, 1986년 언론매체에 백두대간(白頭大幹)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많은 산악인들의 노력에 의하여 현재 우리의 산줄기 체계를 1대간(白頭大幹) 1정간(長白正幹) 13정맥(正脈)으로 구분하는 체계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남한에 1대간 9정맥이 있는데, 10년만에 이를 모두 종주했다는 사람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산행들머리까지


많은 인원이 움직이기 때문에 예정시간보다 늦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도 7시 20분에 서초동에서 출발할 수 있었다. 참여자들이 적극 협조하였기에 가능했다. 어린 아이들까지 제 시간에 와 주었던 것이다.


경부고속도로로 해서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했다. 영동고속도로가 용인에서 공사 중인 때문인지 많이 막혔다. 그런데 창밖으로 둥근 해가 막 떠오르고 있었다. 7시 50분이 약간 넘은 시간인데, 일출 장면을 여기에서 선사받았다. 창을 사이에 두고 사진을 찍어 보았다. 교통이 막히는 와중에도 일출 장면을 목도한 것은 좋은 징조라고 믿었다.


문막휴게소에 잠시 둘렀다. 주차장이 거의 만원이었고, 화장실은 줄을 길게 서야 할 정도였다. 많은 사람들이 산으로, 스키장으로, 또 어디론가 떠나고 있었다.


속사 인터체인지에서 빠져 나가 산행들머리인 운두령에 도착하니 11시가 넘었다. 예정보다 1시간 정도 늦었다. 운두령 정상으로 올라가는데 버스들이 내려오고 있었다. 아마도 등산객들을 내려놓고 하산지점으로 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산행코스의 선택


41명의 참석자 중 계방산을 산행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지난주에 답사를 했던 표 변호사는 다른 일행과 방태산에 갔다는 전언이다. 표 변호사는 산행코스에 대한 의견과 함께 산행 후 식사를 할 식당까지 소개해 주고 정작 본인은 참석하지 않았다.


표 변호사가 제안한 A팀과 B팀으로 구분해서, A팀은 정상에 오른 후 다시 운두령으로 내려가고, B팀은 아랫삼거리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정상까지 올라온 정도면 조금 길더라도 이승복 생가터 쪽으로 내려올 수 있다고 보고 그렇게 하자고 제안했다.


혹시 정상에 오르다가 문제가 있어 포기하고 운두령으로 다시 내려와야 하는 경우라면 모르겠으되, 정상까지 오를 수 있으면 함께 움직이자고 한 것이다. 올라온 곳으로 다시 내려간다는 것은 산악인의 자세가 아니고, 또 정상까지 올라와서 주목군락지를 못보고 간다는 것은 너무 아쉬웠기 때문이다.


결국 모두 정상까지 올라왔고, 또 모두 같은 코스로 내려왔다.


 


운두령과 물푸레나무 군락지


산행들머리는 운두령(雲頭嶺)은 항상 운무(雲霧)가 넘나든다는 의미다. 해발고도가 1,089m다. 계방산 정상까지의 표고차가 488m이고, 거리는 4.1㎞이므로 비교적 완만하다는 뜻이다.


예상했던 대로 운두령 정상은 차와 사람들로 붐볐다. 많은 등산객들이 출발하고 있었다. 날이 맑은 편이어서 전망을 잘 구경할 수 있었다. 멀리 정상 부근 능선이 새하얀 것이 눈꽃 또는 상고대의 절경을 기대하게 하였다. 하늘도 푸르러 눈꽃과의 조화가 좋을 것으로 예상됐다. 다행히 바람도 많이 불지 않았다. 이렇게 좋은 여건이니 많은 사람들이 찾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운두령을 출발해서 올라가는데 해발 1,100m대임에도 나무 가지 위에는 눈꽃이 전혀 없었다. 물푸레나무 군락지를 지났는데도, 눈꽃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물푸레나무는 가지를 잘라 물에 넣으면 물이 푸르게 변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물푸레나무는 잎이 없더라도 줄기만 보고도 알 수 있다. 둥근 형태의 흰 반점 같은 무늬가 있기 때문이다. 남부지방에는 키가 작아 6월경에 눈높이 맞춰 꽃을 피우는 종류가 있는데 쇠물푸레나무다.


재질이 워낙 단단해서, 그리스신화에서는 아킬레우스의 창을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싸리나무 회초리는 사랑의 매라고 하지만, 물푸레나무 회초리로 때리면 뼈에 이상이 가서 함부로 회초리로 쓰면 안 된다고 한다.


 


눈꽃 또는 상고대는 어디부터


눈꽃은 나뭇가지 위에 얹혀 있는 흰 눈을 말하며 설화(雪花)라고도 한다. 나뭇가지를 흔들면 그대로 떨어진다. 상고대는 나뭇가지에 눈 같이 내린 서리를 말하는데, 대기 중의 수증기가 결빙되어 달라붙은 것이다. 나뭇가지에 쌓인 눈이 녹다가 달라붙기도 한다. 수상(樹霜), 수빙(樹氷), 무빙(霧氷), 무송(霧淞) 등으로도 불리며, 상고대는 순수한 우리말이다.


쉼터를 지난 후부터 조금씩 나뭇가지 위쪽이 희어지기 시작했다. 더 오르니 나무 위에 쌓여 얼어붙은 눈의 양이 많아졌다. 해발 1,300m 이상은 되어야 제대로 된 상고대를 볼 수 있는 모양이다. 이번 겨울에는 주로 백두대간 팀을 따라 추풍령 언저리를 다녀 상고대를 제대로 보지 못했었다.


그 위로는 환상적인 상고대의 터널이 이어졌다. 눈이 쌓였다가 녹았다가 얼어붙었다가를 몇 번을 반복해서 나뭇가지 위에 층층이 쌓여 붙어 있었다. 중간 중간 그리고 가장자리에 얼음도 붙어 있다. 나뭇가지를 흔들어도 떨어지지 않았다.


어느 정도까지는 큰키나무들이 머리 위로 눈꽃을 피웠으나 1,492m 전망대 가까이 가니 나무들의 키도 작아졌다. 바로 내 눈(目) 옆에 또는 눈 아래 백색 꽃들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눈꽃으로 인해 내 눈이 호사를 누렸다.


많은 사람들이 동심으로 돌아갔다. 눈 속에 양반자세로 앉아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고, 멋진 나무 옆에는 상고대를 배경으로 해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붐볐다. 위로 올라갈수록 사람이 많았다.


저 아름다움을 시로, 노래로 표현하지 못하는 자신이 답답하기만 했다. 감탄하고 탄성을 지를 수 있으면 됐지 꼭 표현해야만 하는가 하는 생각으로 자위했다.


1,492m 전망대에 서니 동서남북 사방으로 하얀 산줄기가 뻗어나간 것이 한 눈에 들어왔다. 동쪽으로는 완만한 능선으로 연결된 계방산 정상이 다정하게 손짓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정상에 올랐다가 다시 뒤로 내려와서 점심식사


애초에는 계방산 정상에서 시산제를 지내고 점심을 먹거나, 바람이 너무 불면 더 지나 주목군락지에서 점심을 먹을 계획이었다. 전망대에서 비교적 완만한 능선의 상고대 터널을 건너 계방산 정상에 닿았다. 선두그룹이 정상에 도착한 시간은 13:00경이다.


정상에 올라오기 전까지는 바람이 거의 불지 않았는데, 정상에서는 찬바람이 세게 불었다. 정상에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고, 조그만 돌탑이 쌓여 있다. 북쪽으로 설악산과 점봉산이, 동쪽으로 오대산과 노인봉 그리고 대관령이, 서쪽으로 회기산과 태기산이 보인다고 하나, 일일이 구분할 수는 없었다. 진행해 온 방향으로 뒤돌아보니 저 아래 1,492m 전망대가 꽤 멀리 보였다.


바람 때문에 아무래도 정상에서 점심을 먹기는 무리였다. 주목군락지 방면으로 더 지나가 보니 바람은 거의 없었지만, 40명이 앉을 공간이 없었다. 좋은 자리에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뒤로 돌아 정상 직전에 있던 쉼터로 가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정상에서 5-6분 정도 내려가야 했다. 배고프고 지칠 때쯤 되었기 때문에 내리막을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올 생각을 하면 내키지 않았지만, 그래도 정상에서 떨면서 기다리는 것보다는 움직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 내려갔다.


내려가니 우리 일행이 한 명도 낙오 없이 모두 잘 올라왔다. 사무처에서는 점심으로 발열도시락을 준비했다. 마파두부밥, 짜장밥, 카레밥 등 세 가지다. 세워서 10분, 눕혀서 10분, 합계 20분이나 발열을 해서 밥을 데워야 했다. 시간이 좀 걸리는 것이 문제였지만 먹을 만했다. 발열재는 밥을 데운 후에도 그 온기가 한참 가서 하나를 가슴에 품으면 몸의 온기를 유지해 주었다.


밥이 발열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컵라면을 나누어 먹고, 막걸리를 한 잔씩 마셨다. 처음 참여한 정종원 변호사는 메고 온 배낭크기부터 달랐는데, 버너를 꺼내 라면을 끓였다. 컵라면과 끓인 라면이 천지차이라는 것은 지난주에 경험한 바 있다. 뭔가 다르다 했더니 정 변호사는 중국 북경에서 5년간 살면서 매주 가족과 함께 산에 다녔다고 한다. 배낭을 메고 나가 1달씩 산행을 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진정한 고수를 만났다.


아내와 나는 마파두부밥을 먹었다. 아침에 좀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커피를 내려오지 못해서 큰 보온병에 담아온 뜨거운 물로 커피믹스를 타 마셨다. 이것도 감지덕지이다.


 


시산제(始山祭)


점심 먹은 장소에서 시산제를 지낼까 했으나, 한택근 총장이 정상에서 지내자고 원칙론을 전개해서 그에 따랐다. 점심을 먹고 정상에 올라왔을 때는 오후 2시 20분경이 되었다. 시간이 좀 되어서 그런지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바람이 좀 불었지만 표지석과 돌탑 앞쪽에 자리를 펴고 사과와 배 그리고 북어를 놓고 소주로 제를 올렸다. 지난해의 것과 인터넷 검색을 해서 순서와 축문을 준비해 그럭저럭 형식을 갖추었다. 한택근 총장의 사회로 회장님에 참석하지 않아 내가 회장 역할을, 장주영 부회장이 등반대장 역할을 했다.


소지(燒紙)를 하는데, 가스라이터가 잘 켜지지 않고 종이에 불이 잘 붙지도 않았다. 그래서 높은 산에 오를 때는 쥐포라이터를 준비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 한참 정성을 기울여 축문을 태웠다.


 






<시산제 순서>


 


o 개회 선언


– 사회자, 지금부터 단기 4343년 서기 2010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시산제를 거행하겠습니다.



o 산악인 선서 낭독


– 사회자, 등반대장께서 산악인 선서를 낭독하겠습니다.


– 등반대장, 아래의 산악인 선서 낭독


 


산악인 선서(노산 이은상)


산악인은 무궁한 세계를 탐색한다.


산행 시엔 목적지에 이르기까지 정열과 협동으로 온갖 고난을 극복할 뿐 절망도 포기도 없다.


산악인은 대자연에 동화되어야 한다.


아무런 속임도 꾸밈도 없이 다만 자유와 평화의 참 세계를 향한 행진이 있을 따름이다.



o 강신(降神)


– 사회자, 회장님께서는 (경건한 마음으로 분향하고) 산신을 모셔주시기 바랍니다.


– 회장 아래 글 낭독 후 삼배



서기 2010년 1월 30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원들은 2010년 경인년을 맞아 부족한 정성이지만 성심을 다하여 조촐한 제물을 마련하여 계수나무 향기의 산 계방산에서 신령님께 바치오니, 신령님께서는 인간 세상에 내려 오셔서 임재하여 주시옵소서!



o 참신(參神)


– 사회자, 다 같이 재배로 산신을 맞이합시다. 일동재배!


– 모든 회원, 삼배



o 초헌(初獻)


– 사회자, 초헌! 회장님께서 산신께 첫 잔을 올리겠습니다.


– 회장, 산신께 첫 잔을 올리고 삼배.



o 독축(讀祝)


– 사회자, 독축! 회장님께서 시산제 축문을 낭독하겠습니다.


– 회장, 축문 낭독


 


o 아헌(亞獻)


– 사회자, 아헌! 등반대장께서 두 번째 잔을 올리겠습니다.


– 등반대장, 두 번째 잔 올리고 삼배



o 종헌(終獻)


– 사회자, 종헌! 부회장께서 세 번째 잔을 올리겠습니다.


– 부회장, 세 번째 잔 올리고 삼배



o 헌작(獻爵)


– 사회자, 헌작! 다음은 헌작 순서입니다. 원하는 분들 나와서 잔을 올리고 재배해 주시기 바랍니다.


– 팀을 이루어 잔을 올리고 삼배



o 소지(燒紙)


– 사회자, 등반대장께서 축문을 태워 하늘로 올려 보냅니다.



o 음복(飮福)


– 사회자, 음복! 모든 잔을 다 올렸습니다.


– 음식을 나누어 먹기 바랍니다.



o 폐회


– 사회자, 이상으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2010년 시산제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0년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시산제(始山祭) 축문(祝文)


 


유세차 단기 4343년 서기 2010년 1월 30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원 일동은 바야흐로 희망을 밝히는 찬란한 경인년(庚寅年) 새해를 맞아, 계수나무 향기의 산 계방산(桂芳山)을 찾아 천지신명님께 고하나이다.


지난해 고삐 풀린 정권의 폭주로 말미암아 온 나라와 만백성이 도탄에 빠져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로 인해 우리 회원들이 바쁘고 많은 활동을 해야 했습니다. 올해도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고, 우리 회원들의 보다 활발한 활동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세상사가 고달프고 어려울수록, 산을 찾아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자연의 섭리와 삶의 지혜를 배우고자 합니다. 날이 차고 바람이 거셀수록 아름답게 피어나는 상고대에서 꺾이지 않는 의지와 인내의 자세를 본받고자 합니다. 푸르른 하늘을 우러러 올 한 해 이 땅의 서민과 함께 고난을 헤쳐 나가고 희망과 행복을 만들어 갈 것을 다짐합니다.


우리 회원들과 가족의 안녕과 행복, 그리고 이 땅 모든 민초들의 희망과 평화, 그리고 모든 산악인들의 안전한 산행을 갈구하면서 고하노니


천지신명이시어, 이 한잔 술을 흠향(歆饗)하여 주옵소서. 


단기 4343년 서기 2010년 1월 30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원 일동


 


아이들 놀이터가 되어 버린 주목군락지와 급경사 구간


정상에서는 주차장 쪼긍로 내려가는 코스와 오토캠핑장으로 내려가는 코스로 갈린다. 오토캠핑장 쪽 방향으로 진행했다. 완만한 능선 구간을 조금 지나면 능선길을 막혀 있고 급한 내리막길이 시작됐다.


거대한 주목(朱木)이 위용을 떨치고 있었다.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이라는 주목은 나이 들면 줄기가 붉게 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말랑말랑한 열매 껍질은 선홍색이고, 가운데가 파여 있어 씨앗이 보인다. 줄기의 한쪽이 완전히 파여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주목도 있었다. 그래도 한 쪽 가장자리만으로도 생명을 유지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 고사목도 간혹 눈에 띄었다.


눈이 많이 쌓여 급경사 내리막길은 미끄러웠다. 그렇지만 아이들에게는 놀이터가 되었다. 일부러 넘어지면서 미끄럼을 탔다. 큰 소리로 깔깔 웃으면서 신나게 놀면서 내려가고 있었다. 역시 아이들은 피로 회복도 빠르고, 상황에 적응해서 놀이로 전환하는 것도 빠르다.


 


비교적 긴 계곡


급경사 구간을 내려오면 그 다음부터는 계곡 길이다. 계속 내리막이지만, 경사는 완만한 편이다. 계방산 정상에서 아랫삼거리로 내려가는 코스도 있는데, 이쪽 코스(5.4㎞)가 그쪽 코스(4.8㎞)보다 0.6㎞ 길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가 내려오는 코스로는 다른 일행의 거의 없었다. 몇몇을 제외하고는 우리 일행이 내려오는 길을 전세 내다시피 했다.


계곡 중간 중간에 뚫린 얼음 사이로 물이 흐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이들과 머리를 감아볼까, 박찬호처럼 옷 벗고 들어가 볼까 주고받으면서 내려왔다.


거의 다 내려와서는 낙엽송이 빽빽하게 서 있는 군락지가 있다. 너무 빽빽해서 가늘게 하늘로만 높이 뻗어 올라갔다. 낙엽송 군락지가 있다는 것은 도착지에 거의 다 왔다는 징조다.


조금 내려오니 등산로 입구이고, 조금 더 내려오니 이승복 생가라고 초가 한 채가 서 있었다. 뒤쪽으로는 잣나무가 푸른 잎을 달고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초가의 사진을 한 장 찍고, 반공이데올로기의 맹목성을 생각하며 쓴 웃음을 짓고 지나쳤다.


 


후미를 위해 버스를 오토캠핑장까지


운두령에서 산행을 시작하면서 버스기사에게 이승복 생가터에서 기다리라고 했었다. 그런데 오토캠핑장 밑의 넓은 광장에도 버스가 없었다. 일단 표 변호사가 소개한 식당에 연락을 했다. 미리 예약은 안 되고, 산행을 마친 후 연락을 하라고 해서 전화해서 준비해 달라고 했던 것이다. 그랬더니 기사가 연락을 했다고 했다.


아무래도 버스기사는 아랫삼거리 버스정류장에 있는 것으로 보였다. 버스기사의 휴대폰 번호를 몰라 간사들과 통화하고자 했으나 통화권 이탈인지 연결이 되지 않았다. 아스팔트길을 한참 걸어 내려와야 했다.


식당에 확인하면 버스기사의 휴대폰 번호를 알 수 있을 것이라는 장주영 부회장의 아이디어에 따라 버스기사의 휴대폰 번호를 확인했다. 그래서 버스기사에게 연락을 해서 이쪽으로 올라오라고 했는데, 그러는 사이 정류장까지 도착했다.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던 버스를 되돌려 세웠다.


아직 내려오지 않은 일행도 있고, 또 아이들의 경우 아스팔트길을 더 걸으면 너무 지칠 것 같아 버스기사에게 부탁해서 오토캠핑장까지 올라갔다. 강문대 변호사가 딸아이를 부축하면서 맨 마지막으로 도착해서 우리 일행은 모두 무사히 산행을 마쳤다. 그때가 4시 50분경이어서 예정했던 시간에 맞추었다.


 


산채정식으로 저녁 식사를


저녁식사는 표 변호사가 소개한 식당에서 했다. 진부까지 나가서 산채정식을 먹었다. 보통 산채비빔밥이나 된장찌개인데, 산채정식으로 다양한 산나물을 맛보았다. 나물이 맛있어서 그릇을 완전히 비운 후 더 달라고 해서 배불리 먹었다. 물론 소맥 세 잔의 정량을 마셨다.


 


각자의 소감


원래는 7시 정도 출발하지 않을까 예상했었는데, 6시 10분경에 출발할 수 있었다. 내려올 때 문막휴게소에서 쉰 후 운두령까지 가는 동안에 각자 소개를 했었다. 저녁을 먹고 올라오면서 잠들기 전에 각자 소감을 한 마디씩 했다.


산행에 대해서는 모두 만족해하는 듯했다. 이처럼 환상적인 상고대를 평생 처음 보았다는 사람도 있었고, 평생 가장 높은 봉우리를 올랐다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상고대는 10년 정도 만에 볼 수 있는 장관이라고 평가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아이들도 만족해하는 것 같았다. 내심 아이를 걱정했지만 아이가 무사히 완주한 것에 대견해 하면서 아이에게 박수를 유도하는 사람도 있었다. 시산제에 강한 인상을 받은 사람도 있었다.


딸의 손을 잡고 끝까지 고군분투한 강문대 변호사를 보고 아버지의 사랑에 감동해서 빨리 결혼해서 아버지가 돼야겠다고 다짐했다는 이동화 간사, 남의 도움을 받아보니 베풀어야 할 위치에 있으면서도 제대로 베풀지 못하면서 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강문대 변호사, 삶이란 별 거 아니고 역시 자연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했다는 권영국 변호사, 이런 자연을 언제까지 누릴 수 있을지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황희석 변호사, 이번 기회에 고급 카메라를 구입해야겠다고 다짐했다는 변호사, 생애 다섯 번째 산행에서 이렇게 좋은 경치를 구경하게 되었다는 로스쿨 학생 등등.


남편의 가정에 대한 불성실을 오늘로써 사면하게 되었다는 취지의 정응기 변호사 부인의 말에 회원 복지에 기여했다는 안도감을 느겼다. 사진을 찍으면서 두 번이나 뽀뽀를 했다는 권정호 변호사 부인의 말에 부부동반한 회원들은 다들 부러워했다. 오늘 너무 좋았고 아름다운 밤이라는 부인의 말에 자기가 집에 가서 걱정이라는 권영국 변호사의 말에는 공감 또는 동정의 웃음이 여기저기서 터졌다. ‘민변 Forever’라는 외침도 나왔다.


장주영 부회장은 최근에 들었다면서 우스갯소리로 자리를 즐겁게 했다. 박찬호와 박세리와 엘리자베스 여왕의 세 가지 공통점은? 첫째, 공주 출신이라는 점(박세리는 세리공주라지만 박찬호는? 충남 공주 출신이다). 둘째, 모자를 쓴다는 점, 셋째 공을 가지고 논다는 점(박세리의 골프공과 박찬호의 야구공은 이해를 하겠지만 엘리자베스 여왕은? 필립공을 가지고 논다.)



벌써 다음 산행이


마지막으로 다음의 야생화 산행을 기약했다. 벌써 기다려진다.


서초동에 도착해서 집으로 걸어오는데 법원 건물 사이로 보름달이 세상을 비추고 있다. 일출로 시작해서 보름달로 하루를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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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방산 산행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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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터에서 전망대로 오르는 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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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2m 전망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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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방산 정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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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차창 밖의 일출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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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상고대와 상고대 터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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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서 본 정상까지의 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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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서본 북쪽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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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방산 정상 표지석과 돌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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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 본 전망대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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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서 북쪽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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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능선과 신비로운 구름 그리고 파란 하늘의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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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푸레나무 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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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의 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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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송 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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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감아보라고 유혹하는 얼음 밑을 흐르는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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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복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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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건물을 배경으로 한 보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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