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가을과 책의 단상

2009-09-28 208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 했지만 실상 가을은 책 판매가 가장 적은 계절입니다. 혹자는 책 판매가 풀썩 주저앉는 가을에 매출을 올리고자 출판업자들이 만들어낸 표어라고도 합니다. 세상에는 일상에서 쉽게 깨닫지 못하는 진실이 많은가 봅니다. 그래도 책을 읽으면(물론 좋은 책을 읽으면), 숨겨진 진실을 찾는 소소한 성과를 올릴 수 있다는 것은 가을이라 다를 바 없습니다.




요즘은 산업문명이 이대로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 빠져 있습니다. 작년에 읽었던 데릭 젠슨이라는 문명비평가이자 이른바 급진적 환경운동가인 데릭 젠슨이라는 미국인이 쓴 『거짓된 진실』이라는 책에 이어 같은 저자가 쓴 『문명의 엔드게임』이라는 책 때문입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설명하면서 스무 개의 전제를 밝히는데, 앞의 몇 가지만 소개하겠습니다.




전제 1: 문명은 지속 가능하지 않으며 그렇게 될 수도 없다. 산업문명의 경우 특히 그러하다.


전제 2: 전통사회는 대체로 자기 사회가 파괴되지 않는 한 자신의 바탕이 되는 자원을 자발적으로 포기하거나 팔아치우지 않는다. 또한 그들은 다른 자원들을 채취하기 위해 자신의 토지기반을 훼손하도록 선뜻 허용하는 법이 없다.


전제 3: 우리의 생활방식은 끈질기고도 광범위한 폭력에 기반을 두고 또 이를 요구하며, 폭력이 없으면 매우 신속히 붕괴하게 된다.


전제 4: 문명은 분명히 정의되고 폭넓게 수용되면서도 뚜렷이 구별되지 않는 위계질서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 위계질서의 고위층이 하위층에게 행사하는 폭력은 거의 언제나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며, 따라서 눈에 띄지 않는다. 눈에 띄는 폭력은 완전히 합리화되어 있다. 위계질서의 하위층이 고위층에게 행사하는 폭력이란 상상할 수도 없으며, 그런 폭력이 일어나면 충격·공포로 받아들여지고 피해자는 맹목적으로 미화된다.


전제 5: 위계질서 고위층의 재산의 하위층의 목숨보다 값지다. 고위층에게는 하위층을 파멸시키거나 목숨을 빼앗아 자기가 관리하는 재산을 늘리는 일이 용인된다. 이것을 생산이라 부른다. 하위층이 고위층의 재산에 피해를 주면, 고위층은 하위층을 죽이거나 그 밖의 방법으로 하위층의 삶을 망칠 수 있다. 이것을 정의라 부른다.


전제 6: 문명은 되살릴 수 없다. 이 문명은 어떤 형태로건 건전하고 지속 가능한 생활방식으로 가기 위해 자발적인 탈바꿈을 겪으려 하지 않는다. 이에 제동을 걸지 않으면, 문명은 계속해서 절대 다수 인류를 비참하게 만들고 지구를 퇴화시켜 마침내 문명을 (그리고 아마도 지구를) 붕괴시키게 될 것이다. 이 같은 퇴화는 매우 장기간 동안 계속해서 인간과 비인간들에게 해를 끼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 책에는 이러한 전제를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사실과 지표가 수북하게, 그러나 흥미롭게 기재되어 있습니다.




이 문화에서 세계 각국 정부와 국민들은 이런 식으로 돈을 지출하고 있다. 1998년에 전 세계의 정부와 국민들은 기초교육비로 60억 달러를 지출했고, 미국은 화장품 비용으로 80억 달러를 지출했다. 전 세계는 식수 및 위생에 90억 달러를, 그리고 유럽은 아이스크림 비용으로 110억 달러를 지출했다. 세계 모든 여성의 출산비용은 120억 달러였고, 유럽과 미국은 향수에 120억 달러를 지출했다. 세계 전체의 기초보건 및 영양비 지출은 130억 달러, 유럽과 미국의 애완용 동물 사료비는 170억 달러였다. 일본의 기업접대비는 350억 달러, 유럽의 담배 구입비는 500억 달러, 유럽의 알코올음료 구입비는 1050억 달러, 전 세계의 마약 지출은 4천억 달러에 이르렀다. 그리고 전 세계의 군사비 지출은 7800억 달러였다. 이 목록의 작성자는 이렇게 주석을 달았다. “세계가 어느 항목보다도 서로 파괴하는 비용(군사비)과 스스로를 파괴하는 비용(마약, 알코올, 담배)을 더 많이 지출한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4대강 사업을 하기 위한 예산으로 어마어마한 금액이 책정되는 바람에 보건복지예산이 형편없이 줄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삽질하는 것도 생산, 다시 파묻는 것도 생산, 무기 만드는 것도 생산, 멀쩡한 도로 새로 포장하는 것도 생산, 모두 다 우리네 경제셈법 GDP에 수치로 올라가는 활동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잘 사는 것입니다. 1인당 GDP가 우리 삶의 척도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이 하위층 인간은 목마른 식물처럼 시들거리다 죽게 되고, 자연은 쓸모없는 개발과 생산의 쓰레기를 치우고 또 치우다 지쳐 인간을 포기하게 되겠지요.




척도를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 화폐로 표시되는 교환가치가 아니라, 인간에게, 자연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라는 사용가치만이 중요한 아젠더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 그것을 몸소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생각!


가을에 읽는 책은 이렇게 다가올 매서운 추위를 이겨낼 지혜를 미리 가르쳐 주는가 봅니다.

글_황희석 변호사

첨부파일

head.jpg.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