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가 아냐!! – 사이버 모욕죄

2008-12-30 131


거대여당인 한나라당이 이른바 MB악법들을 강행처리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에 민변에서는 2박 3일동안 철야농성으로 악법을 저지하려합니다. 2박 3일동안 철야농성과 함께 국민들에게 악법의 잘못된 점을 꼬집기 위해 릴레이 기고를 시작합니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나를 다른 사람과 구별하기 위하여 이름이 있듯 법률도 이런저런 법률을 구별하기 위하여 제 나름의 이름이 있다. 오렌지족, 낑깡족들이 늘어나고 온 나라가 영어광풍에 몸살이 걸리다 보니 사람이름에도 괜히 제임스니 그레이스니 영어이름이 늘고 있지만, 나라의 법 이름이나 범죄명도 예외가 아닌가 보다.


정부여당이 지금 강행처리하려는 법안 중에는 ‘사이버모욕죄’라는 죄명이 들어가 있다. 사이버라는 게 어떤 건지 대충은 알지만, 그리 잘 아는 축에는 들지 못하는 사람으로서는 법무부가 사이버모욕죄를 신설하겠다고 처음 겁줄 때 이제는 ‘사이버도 모욕하면 죄가 되는 모양이군’이라 생각했을 법하다. 그도 그럴 것이 한글문장법으로 보면 ‘사이버모욕죄’는 필경 ‘사이버를 모욕할 때의 범죄’를 뜻하기 때문이다. 사이버모욕죄라! 허 참, 사람을 모욕한다는 얘기는 들어봤어도 사이버를 모욕했다? 우리가 벌써 사이보그의 심경도 보호해야 하는 세상이 되었나?



아무튼 그 배경을 알고 보니 본디 그 뜻이 아니라 사이버에서 모욕하는 행위를 범죄로 한다는 취지였다. 아니 모욕죄가 버젓이 형법에 있고, 그 비슷한 명예훼손죄도 있는데, 무슨 또 사이버모욕죄인가? 절대왕정을 물리치고 근대 법치주의가 형성되면서 형법에 투영된 대원칙 중의 하나로 이른바 형벌의 보충성이라는 원리가 있다. 형벌은 그 자체가 목적이어서도 안될 뿐더러 필요할 경우에도 최후의 수단으로만 사용을 해야 한다는 원리다.



사이버든 사이버가 아니든 누군가 악성 댓글을 달면, 그것이 사실을 표시하여 명예를 훼손한 경우라면 형법의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사실이 아니라 거짓을 표시하여 명예를 훼손하면 형법의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죄로 처벌되고, 사이버에서 상대방을 비방할 목적까지 있으면 정보통신망법의 명예훼손죄로 형법에서의 명예훼손죄보다 더 강하게 처벌된다. 만약 명예훼손까지는 안되는 정도의 비방이나 모욕적 표현을 사용하면 형법의 모욕죄로 처벌된다.



기실 타인의 명예나 명예감정을 보호하는 분야에 관한 한 우리나라 법률은 현 정부가 그렇게 떠받들고 추종하고자 하는 미국이나 다른 어떤 선진국에서도 유례없이 완벽할 정도로,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지나칠 정도로 선진화(?)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컨대 미국의 부시 대통령을 조롱하고 비웃는 사이트는 버젓이, 그리고 당당하게 수많은 글과 사진과 삽화를 올리며 통쾌함을 주고 있지만, 우리는 인터넷에 ‘쥐박이’라는 단어조차 올리는 것을 주저하고 있을 정도이니, 이만 보더라도 우리의 실생활은 이미 모욕죄와 명예훼손죄의 울타리로 촘촘하게 둘러싸여 있는 셈이 아닌가.



이처럼 이미 존재하는 법만으로도 국민들이 입조심, 말조심하고 있는 마당에, 현 정부는 그것으로 모자라 이름까지 헛갈리게 만드는 사이버모욕죄를 신설한다고 난리니, 그 까닭은 필경 주변의 애매한 사람 겁주려는 게 틀림 없다. 게다가 영어의 ‘영’자도 모르는 시골 촌부나 무지랭이라면 이건 이름만으로도 공포 그 자체다. “무슨 모욕죄?” “사이버모욕죄요.” “사이 모욕죄?” 쯥쯥쯥…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알아듣지 못할 그 놈의 사이버모욕죄는 겁나는 존재로 남을 뿐이다. 그렇게 우리의 가슴에 뭐든지 해서는 안 될 공포의 울타리를 만들고 있다.



사이버모욕죄를 신설하는 법안을 ‘최진실법’이라 이름까지 지었다고 한다. 최진실 같은 사람이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그 목적까지 상세히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는 핑계요, 언어도단이다. 왜 그런고 하니 정부여당이 이 법안을 제안한 시점은 최진실이 자살하기 한참 전으로 네티즌을 중심으로 한 촛불시민들이 인터넷을 통해 상호 의사를 표현하고 결집하던 지난 6월경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정부여당의 법안이 사이버모욕죄를 비친고죄로 만들고 있는 것도 이 법안의 의도가 제2의 최진실을 막는 데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親告罪란 피해자가 친히 고소를 해야만 수사가 가능하고 처벌이 가능한 범죄를 말하는데, 비친고죄인 사이버모욕죄가 만들어지면 피해자가 ‘나 괜찮아요’라고 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잡아가두고 처벌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니 당초 그 목적이 개인을 보호하는 데 있지 않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셈이다.



이쯤이면 정부와 여당이 밝히고 있는 사이버모욕죄 신설의 속셈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아니 ○○○ 귀”라고 말하지 못하게 하려고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희한한 죄를 하나 만들어 애매한 사람 겁주려는 것임을.



그런데 임금님인들 어쩌랴. 오늘도 하나도 아닌 수천, 수만의 임금님 이발사들은 그 놈의 사이버에서 소리 높여 외치는 것을.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가 아냐”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가 아냐”라고. 그것이 민주주의고, 그것이 헌법이며, 그것이 사이버인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