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쓰고 말하는 자, 모두 유죄

2008-12-29 192



거대여당인 한나라당이 이른바 MB악법들을 강행처리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에 민변에서는 2박 3일동안 철야농성으로 악법을 저지하려합니다. 2박 3일동안 철야농성과 함께 국민들에게 악법의 잘못된 점을 꼬집기 위해 릴레이 기고를 시작합니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12월 28일 한나라당은 국회의장에게 85개의 법안에 대해 직권상정하여 줄 것을 요청하였다고 한다. 이 85개의 법안에는 소위 사회개혁법안이라고 하는 13개의 법안이 들어 있는데, 사회개혁이라는 말과 그리 친하지 않았던 한나라당이 ‘개혁’이라는 말을 굳이 사용하는 법안들이 과연 무엇인지 궁금하여 살펴보니, 사이버모욕죄를 신설하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복면을 착용하고 집회에 참석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것 등을 내용으로 하는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이하 “집시법”)개정안”, 집회에서 발생한 손해에 대해 집회 참가자 및 주최자에게 책임을 지우겠다는 “불법집단행위에 관한 집단소송법(이하 “집단소송법”)”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보통 구습이나 악습을 타파하고 보다 민주적인 제도를 갖추는 과정이나 행위를 일컫는 것이 개혁이기에 개인적으로 위 법률들은 개혁이 아니라 ‘개악’에 해당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만약 개악에 해당한다면 이 법안들을 추진하려는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바로 개혁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한나라당이 호기롭게 사회개혁법안이라고 부른 법안들이 과연 ‘개혁’에 해당하는지 아니면 ‘개악’에 해당하는지 집시법개정안과 집단소송법을 중심으로 살피도록 하겠다.  



집회, 이제는 꿈도 꾸지마!


한나라당의 집시법 개정안은 ‘경찰차, 소방차, 구급차 등 비상차량의 통행을 방해할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집회 및 시위를 금지하거나 교통질서 유지를 위한 조건을 붙여 제한할 수 있도록 하고, 쇠파이프 등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거나 신체에 해를 끼칠 수 있는 도구를 휴대 및 사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용할 목적으로 제조·보관·운반하는 자까지 처벌하도록 하며, 집회 또는 시위의 주최자 및 참가자가 일정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신원확인을 곤란하게 하는 가면, 마스크 등의 복면 도구를 착용하는 경우를 처벌할 수 있게 하고, 관할경찰관서장이 집회 또는 시위의 주최자에게 통보만 하면 영상촬영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며, 벌금형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벌금형의 상한액수를 증액하고 과료를 삭제하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 


먼저 도로교통소통을 위한 금지 조항을 살피면, ‘경찰차, 소방차, 구급차 등 비상차량의 통행을 방해할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라는 보다 쉽게 주장될 수 있는 사유를 집회 및 시위에 대한 제한 사유로 새롭게 규정하여 전체적으로 집회에 대한 제한가능성의 폭을 넓히고 있다. 왜냐하면 서울의 경우 평상시에도 교통혼잡 등으로 경찰차 등이 통행하기 곤란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해당 장소에 비상차량의 소통이 필요한 비상상황이 발생할 것이라는 것은 사전에 예상할 수 없는 것이어서 결국 자의적인 판단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사항인데 이를 경찰의 판단에 전적으로 일임하고 있어서, 경찰의 마음에 들지 않고서는 집회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질 수 있다.

다음으로 쇠파이프 등의 제조, 운반 등까지도 처벌하는 조항은, 집회에 대한 제한은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한 직접적인 위험이 명백하게 존재하는 경우에 한하여만 허용될 수 있음에도 단지 위험한 물건을 제조, 운반만 하여 특별한 위험이 없어도 처벌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명백, 현존하는 위험이 존재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집회에 대한 자유를 제한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물론 위험한 물건을 제조, 운반하는 경우도 위험하지 않느냐라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형법이나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의 경우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거나 사용하는 경우만을 처벌하고 있을뿐, 사용할 목적으로 제작하거나 운반하는 행위까지는 처벌하지는 않고 있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이는 과잉한 입법임이 명백하다. 또한 위험한 물건의 예로 돌덩이 등 수많은 물건이 포함될 수 있기에 과연 무엇이 위험한 물건인지도 명확하지 않아서, 이 역시 경찰의 자의적인 판단이 개입될 수밖에 없게 된다는 점도 큰 문제이다.


마스크 쓰고 말하는 자, 모두 유죄


그리고 집회현장에서 복면을 착용하면 처벌하는 조항의 경우, 복면이나 마스크 등을 사용하여 얼굴을 가리거나 숨기는 행위는 일의적으로 표현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매우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개정안은 ‘신원확인을 곤란하게 하는 가면, 마스크 등의 복면도구를 착용해서는 안된다’고만 하고 있어 처벌의 대상이 되는 행위의 범위를 명확하게 한정하지 않고 있어 명확성의 원칙에 위반되며, 복면을 착용하는 것 자체만으로 복면을 착용한 자가 구체적인 범죄행위를 하지 않아 위험성이 전혀 없더라도 이를 처벌할 수 있게 함으로써, 명백, 현존하는 위험의 원칙과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하여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마스크 등을 쓰고 현금출납기 앞에만 서도 절도죄로 처벌하는 것과 다름없다 할 것이다.

또 시위장소 촬영조항에 대하여는, 경찰이 통고만을 요건으로 하여 피촬영자의 동의없이 집회 현장에서 얼굴을 촬영하게 하는 것으로 이는 초상권에 대한 침해가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개정안은 촬영된 사진을 보관하는 시한이나 요건에 대한 규정이 없어 계속 보관할 수 있는 것처럼 규정되어 있는 바, 개인정보에 대한 자기결정권의 침해 정도가 심대하다고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형벌을 강화하는 조항의 경우, 개정안은 현행법이 가지고 있는 집회자유의 제한에 대해서는 크게 시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오히려 집회의 자유에 대한 제한을 강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집시법위반에 대한 처벌을 강화한다는 것은 집회의 자유에 대한 심대한 침해가 될 것이다.


현행 집시법이 워낙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여 정말 ‘엄마 친구의 아들’같은 집회도 하기 어려운 상황인데, 집회를 제한하는 새로운 사유를 규정하고, 기존의 제한 사유는 강화하는 한나라당의 집시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정말 집회는 꿈도 꾸지 말아야 할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집회할 거면 돈 좀 준비해 둬!


위와 같이 합법적인 집회를 하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집회를 해야 한다면 집회자에게 새로이 기다리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새로 입법되는 집단소송법에 의한 손해배상책임일 것이다. 즉, 벌금 이외에 엄청난 규모의 손해배상책임이 더해지게 되는 것이다. 



집회는 다수의 사람이 내부적 의사교환이나 친목을 다지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의사를 집회에 모인 사람의 수 등 위력을 통하여 전달하는 행위로서, 위력과 그에 따르는 불편주기가 집회의 개념적 본질에 해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헌법재판소도 집회의 자유는 헌법적 결단으로 비록 그것이 불편을 끼치더라도 수인되어야 한다고 밝힌바 있다. 그런데 집단소송법은 집회에 의한 재산권침해 또는 교통불편을 이유로 집회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게 하는 제도로 집회에 대한 ‘수인’의 영역을 인정하지 않고 있거나 상당히 좁게 보고 있다. 이는 집회의 자유가 기본권, 그것도 헌법에서 불가결한 요소로 인정하고 있을 정도로 중요한 기본권이라는 인식보다는 집회가 가지는 개념적 특징인 ‘위력행사와 그로 인한 불편주기’에만 착목한 것으로 이를 보장하기보다는 ‘터부시’하는 것이고, 집회의 자유를 그 보다 열위의 기본권인 재산권 더 나아가 기본권도 아닌 교통편의 보다 아래에 위치지우는 제도라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집단소송법은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와 시위의 자유, 더 나아가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훼손하게 될 것이고, 다양한 집회 참여를 위축시킴으로써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제도가 될 수밖에 없다.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집회 자체를 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서 집단소송법이 통과된다면 “돈이 있는 자”만이 감히 집회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집회를 두려워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길!


기능적 측면에서 집회와 시위는 표현의 수단 중에서도 자본에 포섭되기 십상인 신문매체나 사영방송매체 또는 정치권력이 호시탐탐 먹잇감으로 노리는 공영방송매체와 비교할 때, 거리와 광장에서 맨몸을 부대끼며 맨입으로 의사소통하는 방법으로서 가장 민중적이며 서민적인 원초적 표현방법이다. 따라서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한편으로는 다른 자유권적․정치적․청구권적 기본권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보충적인 기본권으로서 다른 수단과 방법이 총체적으로 가로막히는 경우 국민들이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기본권이다. 그런 점에서 그 의제가 헌정 전반으로 확산되는 경우 폭력까지 동원할 수 있는 저항권 행사로 직결될 수 있는 가능성 또한 높다. 그러나 이러한 측면은 집회와 시위 자체의 성격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의사를 무시하는 정부의 대응 여하에 따라 발현된다. 이명박 정부는 국민의 의사를 대하는 편협한 자신의 태도에 대한 성찰없이 집회가 가지는 힘에 대해서만 두려워하고 있다. 그렇기에 어떻게든 집회가 이루어지는 것 자체를 막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헌법의 전문에 기록된 단 두 사건(3.1운동, 4.19혁명)이 한국 최대의 집회사건이라는 점 등 우리나라의 헌정 역사만을 봐도 집회에 대해 폭력적으로 대응하였던 어떤 정권도 성공한 정권으로 평가받지 못했으며, 심지어 정권이 무너지기까지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이라도 이명박 정부는 집회에 대한 맹목적인 두려움에서 벗어나 국민의 의사를 존중하고, 국민과 대화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고, 그를 위해 집시법 개악안과 집단소송법의 입법을 중지, 철회하여야 할 것이다.


박주민(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