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정부와 언론은 노동탄압을 중단하라

2001-09-10 206

정부와 언론은 노동탄압을 중단하라

“혹독한 가뭄을 겪는 이 때 파업을 하는 것은 부당하다. 불법파업에 단호하게 대처하라”(김대중 대통령), “불법파업 폭력시위는 공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 엄단하겠다(이무영 경찰청장, 이팔호 서울지방경찰청장)” “파업에 멍드는 우리경제(조선일보)”, “가뭄을 핑계로 노동자의 파업을 왜곡하지 말라(전국농민회총연맹)”
노동자들의 파업을 보는 시각의 차이가 이처럼 극명하다.

민주노총은 정리해고 중심의 구조조정저지, 비정규직 차별철폐, 주5일 근무제도입, 임금단체협약 요구실현 등을 이뤄내기 위하여, 임단협 교섭이 결렬된 노조의 파업시기를 집중하는 연대파업에 돌입할 것임을 선언하고, 6월 12일부터 시기집중 공동파업을 진행하여 왔다. 이미 2개월 전, 임단협을 거쳐 부득이할 경우 6월 중순부터 연대파업에 돌입할 것임을 예고해 놓고 산하 노조들은 임금 및 단체교섭 등 그에 따른 법적 절차를 진행하여 왔다. 금속·화학·공공연맹 소속 사업장의 파업, 대한항공 조종사노조파업, 아시아나항공 노조파업, 전국보건의료 노조파업 등은 각 사업장의 사정에 따라 이 같은 절차를 거쳐 이루어졌다. 이렇게 법에 규정된 절차를 거쳐 이루어지는 파업에 대하여, 대통령을 비롯하여 법집행의 책임을 지고 있는 경찰청장에서 보수언론에 이르기까지 불법파업이라고 질타하고 있다.
한편, 지난 4월 10일 대우차 폭력진압 이후, 부당노동행위의 의혹이 짙은 효성 울산공장과 여천NCC 등의 쟁의사업장에 경찰력을 투입하고, 파업이 타결된 대한항공 조종사 간부들의 구속, 병원노조와 민주노총 간부들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 민주노총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 레미콘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한 강제 해산이 이루어졌고, 일부 언론은 “엎친 가뭄에 덮치는 총파업”이라는 제목으로 노동자들의 파업을 비난함과 동시에 파업이 타결된 사업장에 대하여는 “무원칙한 타협” 운운하며 사용자가 부당한 양보를 한 것인 양 보도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정부와 일부 보수언론의 이 같은 시각은 파업의 원인과 과정은 거두절미하고 가뭄과 경제적 어려움을 빌미로 노동현장의 요구와 목소리를 억압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리고 이 같은 정부의 태도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노동자들의 지지와 기대를 받으며 출범했던 현 정권을 보는 우리를 절망시키고 있다. 우리는 이를 민주주의의 포기로 볼 수밖에 없으며, 결국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서 정의와 형평, 특히 정당한 노동권의 행사가 사실상 금지되어 가는 현실에 깊은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와 언론은 경제주체로서의 노동자를 배제시키겠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국민의 상당수가 노동자의 신분일진대 노동자를 배제한 사회의 안정이 가능할 것이며 그것이 바람직하다고 보는 것인가. 정부나 언론이 노동자와 함께 사회를 구성해야 한다는데 동의하면서도 위와 같은 태도를 보인다면 이는 명백한 모순이다.
정부와 언론 태도의 기본적인 문제는, 첫째 노동조합의 파업을 범죄시한다는 것이다. 지난 5월 11일 유엔 사회권위원회는 “파업의 정당성(합법성) 판단에 있어 관계기관이 과도한 재량을 가지고 있고, 파업을 범죄시하는 태도는 전적으로 수용될 수 없는 것”이라며, “파업권을 행사하는 노동조합에 형사소추의 중지 및 공권력 사용의 자제”를 촉구한 바 있기도 하다. 한편, 노사 분규의 발생 건수, 분규참가자 수, 파업으로 인한 노동손실일도 전년보다 훨씬 줄었다. 그럼에도 올 6월까지의 구속 노동자는 지난 해 전체 숫자를 능가하는 109명이 구속되었고, 언론은 파업에 강경 대응하고 파업 주동자를 구속하라고 난리다. 객관적 사실과 국제적 인식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정부와 언론의 시각은 노동정책 포기를 전제하지 않는 한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둘째, 정부와 언론은 정당한 파업을 의도적으로 제한 내지 억압하고 있다. 사용자의 불성실한 단체교섭, 노동위원회의 행정지도, 단체교섭의 결렬과 파업, 불법파업으로 인한 구속으로 이어지는 시나리오 속에서 행정지도의 남발은 사용자로 하여금 불성실한 교섭을 조장하게 한다는 것은 이미 고전적인 이야기다. 또한 행정지도 후, 더 이상 단체 교섭을 진행하지 않고 파업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불법파업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이미 판례로 굳어진 것이다. 그럼에도 행정지도가 남발되고, 행정지도가 있은 후에 이루어진 파업에 대하여 그 내용을 살펴보지도 않은 채 불법파업으로 몰아침은 온당한 일인가. 더구나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 파업의 경우 사용자가 고의적으로 교섭을 기피하였음을 보여주는 자료가 확인되기도 하였다. 한편, 필수공익사업장의 경우에도 정부·언론의 태도는 동일하다. 필수공익사업장의 경우 노동위원회는 직권중재제도를 통하여 사실상 파업을 통제하고 있다. 직권중재제도의 위헌성은 이미 헌법 재판소에서 위헌론이 5대 4로 우세하여(1996. 12. 26. 선고 93헌바17) 조만간 폐지되어야 할 제도이다. 그럼에도 필수공익사업장이 파업에 돌입할 상황에 이르면 직권중재에 회부하고, 언론은 중재회부 상태의 파업은 불법이라며 강경 대응을 촉구하며 결국 노조 간부의 구속과 공권력의 투입으로 이어진다. 그러니, 사용자는 직권중재 회부와 공권력 투입만 기다리며 불성실 교섭으로 버티기만 하면 된다. 이것은 어둡지만 우리 노동현장의 현실이다. 요컨대, 행정지도에 대한 노동위원회의 잘못된 법해석과 관행, 직권중재의 남용 등은 결과적으로 사용자측의 불성실 교섭을 조장하고 노동자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세우게 되며, 끝내는 파업과 구속, 그리고 나아가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우리 헌법 제33조는 근로자의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보장하고 있다. 헌법에서 이를 보장함은 역사적 경험의 산물이며, 노동자의 권익은 물론, 산업평화 나아가 사회의 안정과 공공복리의 실현을 위한 것이다. 그러니 이것이 보장되지 않으면 반대의 효과가 나타날 수밖에 없음은 자명하다. 법의 해석과 적용은 원리원칙에 따라 일반적으로 통용되어야 한다. 법의 해석과 적용이 어느 일방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왜곡될 수 없으며, 시기적으로 부적절하다는 이유로도 곡해되거나 남용되어서는 아니 된다. 이런 점에서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파업 노동자들에 대한 일련의 구속과 공권력 투입은 적법한 법집행으로 보기 어렵다. 현 정부와 보수언론의 태도는 위험한 조급증의 산물임은 물론, 궁극적으로 국론을 분열시키고 계층간의 갈등을 부추기는 일이 될 것임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이에 우리 법학교수들과 변호사들은 다음의 사항을 촉구한다.
첫째, 정부는 구속된 노조간부들을 조속히 석방하라.
둘째, 정부는 파업사업장에 대한 경찰력의 투입과 노조간부들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 등 노동조합 활동을 탄압하는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
셋째, 정부는 국제연합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위원회의 권고사항을 이행하고, 합법적인 파업을 가로막는 관행과 법률을 개선하라.
넷째, 언론은 노동자의 파업을 범죄시하는 보도태도를 지양하고, 객관적이고 공정한 보도태도를 유지하라.

2001. 6. 25.

법학교수 62명
강경선 강성태 강현주 고영남 고호성 곽노현 국순옥 김광수 김도현 김민배 김순태 김승환 김엘림
김 욱 김인재 김재훈 김종서 김홍영 문무기 박병섭 박수근 박승룡 박홍규 백좌흠 서경석 석인선
선정원 손동원 송강직 송기춘 송석윤 신인령 오동석 오문완 이경재 이경주 이계수 이광택 이달휴
이동승 이상수 이상영 이승욱 이원우 이원희 이은희 이재승 이창호 임재홍 장덕조 정인섭 정태욱
제철웅 조경배 조 국 조승현 조시현 조용만 조임영 최영호 최홍엽 한상희

변호사 90명
강기탁 강문대 강병국 고지환 고태관 권두섭 권정호 김갑배 김기덕 김기열 김남준 김도형 김동균
김두환 김선수 김성진 김연수 김외숙 김우진 김인회 김주현 김준효 김 진 김진국 김희제 남성렬
노승익 도재형 문병호 문재인 문한성 민경한 박공우 박승대 박승옥 박 훈 설경수 성상희 소윤수
송해익 신대철 신 민 신치수 안 식 안중민 윤복남 윤영석 윤인섭 이경우 이상호 이오영 이원영
이원재 이이수 이인호 이재명 이정택 이철원 이현웅 이형범 장경욱 장광수 장동환 장훈열 전성우
전영식 전해철 정경모 정대화 정재성 정주석 정채웅 정태상 조민제 조상희 조성오 조영보 조현철
차지훈 차흥권 천낙붕 최명준 최복기 최봉태 최성주 최수영 최용석 최원식 최종모 하재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