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火) : 몹시 못마땅하거나 언짢아서 나는 성.
(관저 앞 1위 시위에 동참한 이종훈 회원)
– 이종훈 회원
화가 났다. 국가의 원수라는 자가 군대를 동원해 국회를 공격하고 나라를 접수하려고 하였다. 정쟁이야 일상 같아졌지만, 여의도에서 군 헬리콥터 소리를 듣고 국회 앞에서 계엄군을 볼 줄이야. 비상계엄 선포 당일 밤, 늦게라도 국회 앞으로 가려고 했던 것은, 이 나라와 헌정 질서를 지키겠다는 공명심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냥 화가 나서였다.
세월에 무뎌지면서 많이 누그러졌다고 생각했는데, 잠시 쉬고 있던 격노의 용량은 날이 갈수록 갱신되었다. 하루가 다르게 내란 행위의 전모가 속속들이 밝혀졌고,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준 그들의 행태를 보며, 내 상상력의 빈곤 앞에 겸허해지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이 와중에 ‘국민의힘’이라는 이름으로 뭉친 그들은 대통령 탄핵안 표결에 집단으로 불참하여 내란 수괴의 대통령직 수행을 용인하겠다고 했다. 실제 첫 번째 탄핵안 표결이 있었던 12월의 첫 토요일, 수백만 국민이 엄동설한의 거리로 나섰던 그 날, 따뜻한 국회 본회의장에서는 투표용지 200장이 회수되지 않았다.
국회 앞에 모인 국민들의 한탄은 국회를 포위했고, 분노 속에서도 그들은 침착했다. 약속이라도 한 듯이 모든 국회 출입문 앞에 삼삼오오 시민들이 모여 내란 동조세력들에 대해 조용하지만 강한 꾸짖음을 시작했다. 혹시라도 모를 경찰의 물리력 행사가 있을까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노란 조끼를 입은 채로 시민들 곁을 지키고 있는데, 속에서 무엇인가가 올라 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민변이라든지 집회・시위 인권침해감시단 변호사로서의 책무라기보다는, 그냥 하나의 인간으로서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화였다. 저들은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그래서 시민들과 함께 목 놓아 계속 외쳤다. “윤석열을 탄핵하라!”
윤석열은 국회와 헌법재판소의 절차에 따라 탄핵되어야 할 대통령이기도 했지만, 국민들 상대로 총부리를 겨눈 내란 수괴의 현행범이기도 했다. 법치주의 운운하며 노동자・민중을 상대로 강제수사관을 발동할 때는 그리도 자신만만하고 거칠 것이 없었던 저들이, 대통령조차 불소추 특권이 인정되지 않는 내란 행위에 대해서는 어찌 이리 얌전한가. 마침 선배 변호사님이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 1인시위에 발 벗고 나서주셨고, 뜻을 공유하는 변호사들이 모여, 내란수괴 윤석열에 대한 체포와 구속을 요구하는 1인시위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그래도 뭐라도 하고 있을 때는 기분이 아주 조금 나은 것 같다. 혹은 추위에 화가 식는 것이거나.
적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내란 행위를 통렬히 반성하고 국민들 앞에 용서를 빌지 않는다. 사과는 언감생심, 국회의원과 국무위원의 탈을 쓴 자들이 국민들이 아닌 자신들과 그 수괴의 안위만을 위해 행위하고 있다. 친위 쿠데타 발발이 한 달이 다 되어 가는데, 본격적인 탄핵・수사 절차의 개시를 위한 최소한의 기반인 헌법재판소 구성과 특검법 발효조차 저들의 훼방 때문에 안개 속이다. 이 터널의 이름은 문명의 역설.
순진한 소망과는 달리 일사천리는 없다. 국회의 탄핵안 의결은 힘겨운 첫 걸음에 불과했던 것 같다. 얼마나 많은 화를 표하고 또 삼켜야 할지 가늠도 되지 않는다. 동지들을 믿고 함께 가는 수밖에. 화를 힘으로 승화시키는,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언젠가는 정념에 가득 찬 이 글에도 이불킥 하는 날이 올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