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 출생신고로의 한 걸음
이진혜 회원
출생신고의 의미와 역할
출생신고는 부모의 의무이자 아동의 권리이다. 함으로써 아동은 ‘법 앞에 선 인간’으로 대우받을 수 있다. 출생신고가 되지 않아 자신의 신분을 증명할 수 없는 사람은 자연히 신분 증명이 필요한 모든 일에서 배제된다. 이름도 없고, 나이도 모른다. 부모도, 형제자매도 알 수가 없다. 학교도 가지 못하고, 의료보험이 없어 병원도 가지 못한다. 통장을 만들 수 없어 제대로 월급을 받는 일을 할 수가 없고, 휴대폰도 만들 수 없다. 결혼도 하지 못하고, 다시 아이를 낳아도 그 아이에 대해 출생신고를 할 수도 없다.
현재 출생신고는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서 이루어진다. 신고의 일차적 의무자는 부모이다. 부모가 법률혼 관계, 즉 출생 전 혼인신고를 한 사이라면 아버지가 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상태라면 어머니가 직접 해야한다. 후순위는 동거하는 친족, 분만에 관여한 의사 등이다. 실제로는 분만에 관여한 의사가 출생신고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2016년에 새롭게 도입된 제도로는 검사 또는 지자체장에 의한 출생신고가 있다. 신고의무자-즉 부모나 친족-가 1개월 내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 자녀의 복리가 위태롭게 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국가기관이 출생신고를 직권으로 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역시 제도에 대한 인식률이 낮고, ‘복리가 위태롭게 될 우려’가 발생한 경우에 한하여 출생신고 하도록 되어있어서 실제 이행은 소극적인 편이다.
출생미등록 아동의 발견
최근 감사원은 보건복지부 정기감사에서 2015년부터 2022년까지 병원에서 출생하여 신생아 예방접종을 받았으나 출생신고되지 않은 아동이 2,236명 존재하는 것을 확인하고 조사를 명령했다. 보건복지부는 그 중 전산오류를 제외한 2,123명에 대하여 전수조사를 하였고, 2023. 7. 18. 1,025명의 생존을 확인하였으며, 249명은 사망, 814명에 대해서는 경찰 수사를 의뢰하는 등 수사가 계속중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출생신고를 하지 않고 있는 사람들은 총 46명이다. 혼인관계의 문제 때문이라는 사람이 36명, 보호자 중 한명이 미등록외국인이어서 혼인신고 및 출생신고가 지연되는 경우가 5명, 미혼모로 출생신고에 대한 부담이 있어서라는 경우가 4명, 외국에 거주하고 있어서 지연된 경우는 1명이었다. 경찰 수사가 진행된 경우는 보다 심각하다. 베이비박스 등에 아동을 유기한 경우가 601명, 보호자가 연락을 거부한 경우가 232명, 출생신고 전 입양 89명, 출생사실을 부인하거나 아동의 소재파악을 못하는 경우도 173명에 달한다. ‘베이비박스’ 란 민간에서 허가 없이 운영되는 시설로, 아동을 유기하는 장소로 이용되며 유기된 아동은 지자체 아동보호시설에 인계되어 대부분이 시설보호아동으로 성장한다. 아동이 부모를 알 방법이 없게 되나, ‘안전한 유기’를 추구한다는 명목으로 계속 운영되고 있다. 입양은 친부모가 출생신고한 후 아동 양육에 적합한 양부모를 찾아 입양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이러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불법 입양한 경우가 89명에 달하는 것 역시 심각한 문제이다.
‘출생통보제’의 도입과 한계
이런 상황에 아동이 내몰리는 것을 조금이라도 막기 위해 도입하고자 한 것이 ‘출생통보제’이다. 아동이 출산한 병원 등 의료기관에서는 출생사실을 보건복지부 또는 지방자치단체에 알림으로써, 출생신고가 누락되는 것을 방지한다. 관할 지자체 등에서 1개월이 지나도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동을 쉽게 파악할 수 있고, 출산을 한 모의 정보를 토대로 방문조사, 출국 여부 등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출생미신고 아동이 발견될 수 있었던 것도, 출산 직후 B형간염 1차 예방접종을 모든 아동이 받는 과정에서 임시신생아번호를 부여받고, 이후 출생신고가 되면 해당 번호가 주민등록번호 내지 외국인등록번호로 변경된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도 산모 등의 요청으로 비급여 처리되는 경우, 질병관리청에 접종 비용을 청구하기 위해 임시신생아번호를 부여받는 병원의 입장에서는 그 필요성이 사라지므로 임시신생아번호가 부여되지 않는 출생 아동도 발생한다. 그렇기 때문에 병원에 모든 출생사실을 통보할 의무를 부여하여 누락없는 출생신고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위 감사원의 감사 결과가 보도되고 한달도 되지 않아 출생통보제는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의 방식으로 국회에서 가결되어, 내년도 시행을 앞두고 있다.
‘출생통보제’의 도입 이후의 과제
병원에서 출생한 아동의 현황을 정부가 파악함으로써 아동의 출생신고 누락을 방지할 수 있게 되어 병원 내 출산이 99% 이상인 한국 상황에서는 대부분의 아동에 대한 국가의 보호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런데 여기에 대한 반론(?)으로, 출생통보제가 시행되면 ‘병원 밖 출산’ 및 영아 유기나 살해가 증가할 것이 예상되므로, 출생통보제의 예외로서 ‘익명출산제’를 동시에 도입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김미애 의원 등이 발의한 ‘보호출산 특별법안’ 이 그 결과물이다. 산모가 원할 경우, 익명으로 출산하게 하고 아동은 출생 직후 시설 등에서 보호하며 지자체 장에 의해 가족관계등록부를 창설하고 고아로 살아가게 된다. 아동이 자라서 모의 정보를 알고 싶어도 모가 원하지 않으면 정부는 그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다.
‘익명출산제’는 아동의 부모를 알 권리, 부모에 대하여 양육을 청구할 권리, 원가정에서 양육될 권리를 침해한다. 아이를 출산한 사실을 다른 사람이 알 수 없도록 하기 위한, 부모의 사생활에 관한 권리가 과연 아동의 이러한 권리에 우선한다고 볼 것인가? 익명출산제 도입으로 영아 유기가 감소할 것인지는 다른 국가의 선례를 보더라도 명확하지 않다. 반면 익명출산으로 출생한 사람들이 정체성에 대한 고통을 호소하며 국가에 대해 제도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익명출산제’의 도입을 둘러싸고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보건복지부는 기계적으로 이를 강행 추진 중이다. 제도 도입의 필요성, 침해되는 권리의 이익 형량 등 다양한 관점에서의 검토가 선행되어야 한다.
한편, 외국인 아동에 대한 출생등록제도 역시 하루빨리 만들어지지 않으면 출생통보제에 거대한 사각지대가 발생한다. 위 감사원 감사 결과, 동 기간 외국인등록번호로 전환되지 않은 외국인아동은 4,000명에 달하였다. 한국 국적의 아동보다 두배 많은 수치이다.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에서는 출생신고를 받으면 가족관계등록부를 창설하는 방식으로 인간의 출생을 관리한다. 그 창설의 범위에 외국 국적자는 포함되지 않는다. 외국인인 아동에 대하여는 출생신고를 하여도 가족관계등록부를 만들어주지 않고, 아동은 출생사실을 증명할 공적 서류-가령 한국인이라면 기본증명서 등-를 받지 못한다. 이는 외국인 아동이 출생 이후 90일 이내에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하게되는 ‘외국인 등록’과는 다르다. 외국인에 대해서는 국적국에 출생신고를 하여야 하며, 별도의 출생등록체계는 없다. 국내에서 출생한 외국인아동 역시 우리나라가 유엔 아동권리협약의 당사국으로서 보호하여야 할 대상이며, 외국인아동이 출생통보 및 이후 조치에서 누락될 경우 한국인 부로부터 인지되지 않은 혼외자, 모의 신상이 불분명한 경우 등 여러 문제들이 발생할 것이다. 포괄적이고 보편적인 출생등록제도의 도입을 통해 한 명의 누락도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동 보호를 위한 정부의 올바른 목표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