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성출판사 고등학교 근현대사교과서 수정명령 취소소송
1. 들어가며
여권에서 제기한 교과서 좌(左)편향 논란 이후, 교육과학기술부는 금성출판사 고등학교 근현대사교과서의 내용에 대한 수정지시를 내렸는데, 이는 정치적 목적에 따라 역사교과서를 우(右)편향 교과서로 만들려는 시도가 아닌가 하는 의혹을 불러왔다.
우리나라는 헌법상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를 국시로 삼고 있으므로, 이에 반하는 역사교과서가 헌법상 허용될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이를 근거로 국가는, 국사교과서의 경우 ‘국정 교과서 제도’ 그리고 근현대사교과서는 ‘검정 교과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교과부의 검인정(檢認定)을 통해, 헌법에 반하는 내용을 가진 역사교과서가 학생들의 학습에 이용되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제도적 절차를 거친 검정교과서임에도, 여권은 돌연 좌편향 시비를 불러일으켰다.
그런 후에, 역사학계의 전문적 의견이 아닌 국방부나 대한상공회의소 등 ‘비전문가집단의 수정의견’을 반영하고, ‘실체를 알 수도 없는 전문가 협의회’를 조직하여 협의회 심의를 명목상 끼워 넣는 등, 졸속으로 교과서 수정지시를 내렸다. 수정지시의 진의가 과연 ‘헌법의 수호’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정치적 의도’에 의한 것인지를 의심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이러한 교과부의 독단적 지시에 반발하여, 해당 교과서의 저자들이 법적 분쟁에 나섰다.
2. 사건의 대강
최근 여권에서 불거진 금성출판사 근현대사교과서에 대한 좌편향시비에 따라 교과부는, 앞서 언급한 ‘비전문기관 및 정체를 알 수 없는 전문가협의회’의 의견에 따라 교과서에 대한 수정지시를 내렸고, 이에 대해 저자측은 수정을 거부했으나 출판사의 임의 수정으로 교과서가 배포되었다. 그에 따라 저자들은 ‘수정명령에 대한 취소소송’을 제기하는 한편, 금성출판사에 대한 저자들이 가지는 저작권법상 동일성 유지권 침해로 ‘손해배상소송 및 교과서배포금지청구소송’을 제기하였다.
현재 행정소송은 1심 계류 중이나,
저작권에 대한 소송은 일단 1심에서 원고승소판결이 선고되었다(서울중앙지법 2009.9.2 선고 2009가합7071).
– 행정소송에서는 주로 1) 소송요건으로서 저자들이 법률상 보호받을 이익이 존재하는지, 즉 원고적격이 인정되는지,
2) 본안요건으로서 교과부의 수정지시에 법규상 거쳐야 할 절차상 하자가 있었는지,
3) 실체적 하자로서 수정지시에 재량남용이 있었는지가 문제되었다.
– 저작권 침해소송에서는 저자들의 ‘저작물 동일성 유지권’이 법률상·계약상 제한될 것인지가 문제되었는데,
법원은 ‘제한되지 않는다’고 하여 원고의 청구를 인용하였다.
3. ‘교과부의 교과서 수정명령’ 취소소송의 변론진행과정
교과서의 저자들은 2009년 2월 24일, 서울행정법원에 수정명령 취소소송을 제기하였다.
준비서면이 오고가는 과정에서는 1) 수정명령의 근거가 된 교과용도서에관한규정 제26조 자체의 위법성, 2) 교과부의 수정명령이 위 규정의 수정의 범위를 일탈한 위법한 처분이라는 점, 3) 교과서 수정의 경우에도 역시 검정과 마찬가지로 전문가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는 점, 4) 수정할 필요가 없음에도 수정을 지시한 재량 일탈․남용의 위법이 있다는 점을 취소청구의 근거로 들었다.
이에 대해 교과부 측은, 먼저 1) 원고들이 주장하는 저작권침해는 수정명령의 근거가 되는 관련법령에 의해 제한되므로 ‘원고적격’이 인정될 수 없고, 2) 검인정과 달리 ‘수정의 경우 전문가집단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는 절차규정이 없으므로 거칠 필요가 없다’는 점, 그리고 3) 교과서 검인정은 강학상의 특허로써 행정청의 재량에 맡겨지는 영역이므로, 재량의 일탈남용이 없다면 위법하다고 볼 수 없는데, 사안은 공익상 판단에 의한 ‘재량범위 내의 결정’이라는 주장으로 항변하고 있다.
우선 ‘원고적격’의 문제는 아래에서 살펴볼 서울중앙지법 2009.9.2 선고 2009가합7071판결이 ‘관련법규 및 계약에 의해 저작권이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림에 따라, 서울행정법원에서도 이에 반하는 결정을 내리기에는 힘들다고 보인다. 그렇게 되면 근현대사교과서의 ‘수정지시가 재량일탈남용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판단이 가장 주된 쟁점이 될 것이다.
원고 측에서 제시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대체로 교과부의 수정명령이 부당하다는 취지이다. 1) 위 역사교과서는 다양한 시각을 담고 있는 훌륭한 교과서라는 점, 2) 역사교과서의 집필 및 수정의 과정은 전문가들의 판단에 맡겨져야 될 부분이며 3) 특히 정치적인 동기가 짙어 보이는 이번 수정명령은 ‘역사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요청’상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점 등을 그 근거로 든다.
이에 반박을 할만한 전문가들이라면 교과서 수정의견을 낸 ‘전문가협의회’ 소속 전문가들이 될 것이다. 민변에서는 그 ‘전문가’들이 누군지에 대한 정보를 공개할 것을 요청하였고, 이에 비공개처분이 발령되자 비공개처분취소소송을 제기했으나 1심에서 패소한바 있다(서울행정법원 2009.7.22 선고 2009구합4739). 현재 원고 측은 그들을 증인으로 세우기 위해 증인신청을 했고, 피고 측은 위 판결(2009구합4739)을 근거로 증인신청의 기각을 주장하였다. 이 ‘전문가’들은 아주 중요한 증인이라는 점에서, 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릴 것인지에 대한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몇몇 고등학생들과 학부모들은, 위 소송의 결과에 따라 법률상 이해관계가 있다고 하며 소송에 보조 참가하였다. 근현대사교과서의 수정명령이 유지될 경우, 학생의 경우 헌법상 보장되는 ‘수업권’을 침해받고, 학부모의 경우 ‘교육권’을 침해받을 거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피고 측은 법률상의 이해관계를 부정하는 의견서를 제출한 바가 있으며, 위 사안 역시 현재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4. 서울중앙지법 2009.9.2 선고 2009가합7071 판결
앞서 보았듯, 저자들은 수정명령취소소송과 더불어 ‘금성출판사에 대한 저작권침해소송’을 함께 제기하였다. 저자들은 자신들의 ‘저작물 수정거부’에도 불구하고 금성출판사가 교과부의 요청대로 교과서를 임의 수정하였으므로, 이는 저작권법 제13조의 동일성유지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손해배상 및 교과서배포금지청구를 하였다.
이 사건의 주된 쟁점은, 저자들의 동일성유지권이 법률상 또는 계약상 제한을 받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먼저 법원은, ‘공동저작물의 경우에는 공동으로 저작인격권을 행사해야한다’는 피고의 주장을, 저작권법 제129조를 근거로 ‘저작권의 침해에 대한 금지청구는 공동으로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여 배척하였다. 피고 측은 또한 ‘저작권법 제13조 제1호 또는 제3호, 교과용도서에관한규정 제26조, 금성출판사와 저자간의 출판계약’상 수정의무가 존재함 등을 근거로 원고 측의 동일성유지권 행사는 제한된다고 주장하였다. 법원은 이를, ‘각 규정의 해석상 동일성유지권의 제한규정이 될 수 없다’고 하며 전부 배척하였고, 결국 피고 측의 손해배상과 교과서의 배포금지를 명하였다.
이렇듯 법원이 ‘저자들의 저작 인격권의 행사가 적법하다’는 판결을 내림에 따라, 교과부의 수정지시에 대한 법적 공방에 있어서 저자들의 ‘원고적격 인정’이 보다 유리해졌다고 볼 수 있다.
5. 나오며
저명한 역사학자인 E.H.Carr는 그의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현재를 거울삼아 과거를 통찰하고, 과거를 거울삼아 현재를 바라보며,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를 통해 더 나은 미래를 창출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역사’라 정리한 바 있다. 즉 ‘역사’는 이를 공부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단순히 과거의 일을 기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를 바탕으로 바람직한 미래상을 세울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역사교육의 역할이 바로 그렇다.
우리나라의 역사교육은 공교육에 의해 이루어지게 되므로, 공교육이 가르치는 역사의 내용과 바람직한 미래의 제시방향이 어떠한지에 따라, 이를 배우는 수십만 학생들의 가치관에 크고 작은 영향을 줄 수 있다. 따라서 어느 한 가지 역사관만을 보여주며 이를 학습하도록 하는 방식은 학생들의 세상에 대한 시야를 편협하게 만들 수 있어 바람직하지 못하며, ‘다양한 시각을 담아내는 것’이 보다 좋은 교과서라고 할 것이다.
최근 벌어진 좌편향 시비 및 이에 따른 교과부의 교과서 수정지시는, 공식적으로는 ‘특정 시각에 물들어있는 교과서를 중립적으로 바꾸기 위함’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분단 현실은 종래의 역사교과서 속 근현대사의 서술을 매우 우편향적으로 만든 경향이 있어왔고, 미군문제나 북한의 역사, 그리고 근대화 과정에서의 어두운 부분 등이 레드컴플렉스의 영향으로 교과서에 공식 서술조차 되지 못했다. 그런 것들 역시 ‘우리의 역사’이고 우리가 함께 극복해야할 것들임에도, 애써 가려져왔던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어두운 부분의 역사도 함께 다루어 우리의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보다 다양한 관점을 실은 바람직한 역사교과서라고 할 때, 그러한 교과서가 바로 금성교과서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금성교과서가 좌편향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동안 우편향적으로 길들여졌던 그들의 눈’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 교과서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불현듯, 외눈박이 나라에 두 눈을 가진 사람이 가면 도리어 그 사람이 이상한 취급을 받는다던 설화가 떠오르는 것은, 우연일까.
– 글 / 상담변론팀 배광열 인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