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9. 23. – 25. 민변 과거사위원회 울릉도 워크샵 후기
(부제: 나의 유령회원 탈출기)
-김슬아 회원
들어가며. 민변 과거사위원회의 유령회원이었던 저는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전화 한 통으로 인해 저의 첫 과거사위원회 활동은 3박3일(1박은 서울에서 강릉을 가는 버스 안 이었습니다)을 완전 초면인 과거사위원회 소속 변호사님들과 함께 차를 타고, 배를 타고, 날씨에 따라 언제 다시 육지로 나올 수 있을지 알 수도 없는 외딴 섬(울릉도)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처음 참석하는 과거사 위원회 활동으로 울릉도를 가는 것을 선택한 제가 좀 이상한 거 같기도 합니다(이 후기는 철저하게 개인의 주관적인 관점에서 작성되었음을 읽기 전에 너그러이 양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언제나 인생의 특별한 일은 그런 방식으로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울릉도로 가는 여정의 시작. 과거사 위원회의 울릉도 위크샵은 2022. 9. 23. 서울에서 새벽 1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강릉에 도착하여 새벽 5시 반 여객선에 탑승하는 일정이었습니다. 버스는 각기 다른 장소에서 몹시 피곤해 보이는 사람들을 차례대로 태우고 한참을 달려 강릉에 도착하였고, 버스로 이동한 인원은 예정보다 너무 일찍 도착하는 바람에 강릉항 바로 앞에 있는 음식점에서 간단한 식사와 소주 등(1차 조식)으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이유진 간사님이 챙겨오신 멀미약 박스를 모두 사이 좋게 나눠 마시면서 배 멀미에 대비하였습니다(이 당시만 해도 우리는 몇 분 뒤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에 관하여 아무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여객선에 탑승한 후 저는 왜 울릉도가 지금까지 개발되기가 어려웠는지 바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탑승하기 직전 1차 조식의 격렬한 탈출을 멀미 약이, 저의 공중부양을 의자의 안전벨트가 간신히 막아주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어린 아이들을 동반한 변호사님의 가족들은 울릉도에 도착하는 그 순간까지 다음날 독도를 가는 것을 걱정하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완전 초면인 과거사위원회 소속 변호사님들의 멀미약에 취해 잠드신 모습, 1차 조식의 탈출을 경험하고 계신 모습, 아이들과 씨름하고 있는 모습, 이 모든 아비규환 중에 혼자 차분하게 독서를 하고 계신 모습 등을 보며 모두와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울릉도에서의 첫 날. 다행히 우리 모두는 살아서 울릉도 땅을 밟게 되었습니다. 울릉도에서의 일정을 책임져줄 가이드님 겸 운전기사님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셨고, 우리는 2차 조식을 울릉도에서 유명하다는 식당에서 간단히 먹으면서 자기소개를 마치고, 다시 버스에 올라 울릉도 일주를 시작했습니다. 울릉도는 조각한 것과 같은 자연 바위 절벽이 끝없이 펼쳐진 바다로 어우러진 경관을 자랑하였습니다. 우리는 울릉도의 멋진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기사님의 울릉도에 관한 설명도 들으며 간단한 오전 일주를 마쳤습니다.
점심식사 이후 오후에는 도동항에서 저동항으로 해안길트레킹을 떠났는데, 트레킹 코스는 왼쪽에는 바위 절벽을, 오른쪽에는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벗 삼아 걷는 매력적인 경험이었습니다. 우리는 한 손에 커피를 들고 비로소 여유를 가지고 이런저런 대화도 나누면서 해안길 트레킹을 즐겼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저동항에 도착하기 전에 통제 구역을 먼저 맞이하게 되었습니다(해안길 일부가 정비 중이라는 문구가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갈지 아니면 다른 길을 통해서 저동항으로 갈 지를 고민하다가, 역시나 한번 가기로 한 곳은 가야 하는 특성을 가진 과거사위원회인지라 목적지를 향해 다른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목적지로 가는 길목에는 큰 산이 하나 우리를 가로막고 있었는데, 그 순간부터 해안길 트레킹은 산행으로 바뀌었습니다. 전날 새벽부터 수면부족에 놀이공원기구를 방불케 하는 배를 타고 울릉도에 간신히 도착한 우리 모두는 정신을 차려보니 갑자기 극기훈련에 가까운 가파른 산을 등산 하고 있었습니다. 인생은 언제나 계획대로 되는 법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 상황을 원망하지 않고 묵묵하게 서로 도우며 결국 모두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저는 울릉도의 자연경관도 좋았지만, 그곳에서 함께 보낸 분들과의 시간이 더 멋진 추억으로 남았는데, 그 이유는 어렵고 힘든 순간에도 여유를 잃지 않고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특히 변호사들이 다수 모인 자리에서 이것이 얼마나 보기 드문 광경인지 알기 때문에 더 소중하고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루 일정을 마치고 무한리필 고기를 제공한다는 숙소에 모두 설레는 마음으로 도착했습니다. 정기회의를 울릉도에 함께 오지 못한 분들을 위해 온∙오프라인으로 마친 후 우리는 야외에 마련된 바베큐 장소로 향했습니다. 위 일정을 소화하여 꿀맛으로 거듭난 고기를 먹으며 과거사위원회에서 그 동안 진행됐던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갔고, 각자 어떠한 이유로 변호사가 되고, 또 민변에 가입하고, 민변 중에서도 과거사위원회 활동을 하게 되었는지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다른 분들의 다양한 스토리들은 저년 차 소속변호사로 주어진 일을 하는 것 만으로도 여유가 없어 그 동안 유령회원으로만 지냈던 저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멋진 선배들 그리고 사람들을 한꺼번에 만나게 됐다는 생각에 설명하기 어려운 기대감이 제 마음을 꽉 채우는 저녁이었습니다.
울릉도에서의 둘째 날. 안타깝게도 오후의 독도 일정은 기상으로 인해 취소되었습니다(이쯤부터 저는 과연 다음날 일정대로 모두 무사히 육지로 나갈 수 있을까를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오전 일정으로 나리분지를 먼저 방문하였는데, 바다가 아닌 또 다른 울릉도의 면모를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숲 길을 걷다가 마주한 광활한 메밀 꽃밭은 영화의 한 장면 속에 들어 온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아직 개발이 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온전히 독점하는 것과 같은 황홀한 경험이었습니다.
점심 이후 오후에는 독도 일정을 대신하여 모두 케이블카를 타고 전망대에 올라 울릉도의 가장 높은 곳에서 울릉도 전체 경관을 감상하였습니다. 이후 아름다운 바다 전망 카페 한 곳에서 여유로운 휴식 시간을 보냈는데, 조용히 혼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울릉도의 바다를 실컷 감상하니 서울에서의 복잡한 생활과 고민들이 파도에 쓸려 모두 사라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울릉도에서의 마지막 저녁은 석양을 감상하며 회를 먹을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바다 바로 앞에 작은 횟집에서 우리는 회를 먹고, 밖에서 들려오는 트로트 버스킹을 배경삼아 노을을 감상했습니다. 노을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도 하고, 저는 트로트 버스킹에 흔들흔들 춤도 추면서 울릉도에서의 마지막 일정을 낭만적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울릉도에서 다시 육지로. 모두의 걱정과 달리 날씨는 우리를 육지로 돌아 올 수 있게 허락하였습니다(바로 전날은 배가 뜨지 않았으므로 모두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다행히도 들어 올 때 강한 파도와는 달리 부드러운 파도가 우리를 편안하게 육지로 보내주어 모두 무사히 일정대로 강릉항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강력한 현지 멀미약을 구입하여 복용하여야 한다는 만장일치의견으로 울릉도에서 대량으로 구입하고 남은 멀미약이 민변 사무실 어딘가에 아직도 보관되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나오며. 울릉도를 들어갈 때와 나올 때 저는 완전 다른 사람이 된 거 같았습니다. 변호사로서 현재를 살기에 너무 바빠 과거의 일, 그리고 주어진 업무 외의 일에 대해서 잊고 살고 있었는데, 그 시간 동안에도 함께 워크샵에 참여한 다른 분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크고 작게 열심히 그런 필요한 일들을 하며 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이제는 용기를 내어 유령회원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더불어 울릉도에 들어갈 때 초면이었던 모든 분들이 나올 때는 전우같이 느껴졌습니다. 저에게 이처럼 너무나 특별한 워크샵을 선물해 주신 과거사위원회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