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민변을, 모두의 공동체를 위한 성희롱 예방교육
작성: 김은호 회원
로스쿨 재학 시절 인권센터에서 조교로 일한 적이 있다. 법에 따라 교직원들은 의무적으로 폭력 예방교육을 수강해야 했는데, 동영상 강의 이후 이어지는 퀴즈를 풀어 정답률이 일정 기준 이상 나오면 수강이 인정되는 방식이었다.
이런 교육들이 으레 그렇듯 그다지 심화되지 않은 교육 내용에 그다지 어렵지 않은 퀴즈였음에도, 의무교육 수강 기간이 되면 교육을 담당하는 인권센터에는 일주일 내내 ‘문제를 틀려 수강을 안 한 게 되었으니 다시 수강 권한을 부여해달라’는 류의 전화가 걸려왔다. 담당하는 선생님은 “왜 이런 문제를 틀리는 걸까요?” 라거나, “연차 높은 분들은 팀 내에서 누군가에게 대신 수강을 하게 하고, 그 사람이 아무거나 누르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어요.”라고 하셨다.
그 즈음부터 폭력 예방교육, 그 중에서도 반성폭력 교육의 효용에 관해 고민했다. 시대는 바뀌고 관련 쟁점은 많아지는데, 반성폭력 교육은 여전히 뻔한 내용만을 다루며 사회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 하는 것 같았다. 추측하건대, 시대가 변화하는 속도가 너무 빠르기도 하고, 사회 구성원들의 성인지 감수성 수준이 천차만별이기도 하기에 그 사이에서 적절한 교안이 마련되기 어렵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특히나 우리 사회처럼 젠더 이슈에 관해 교육 시스템을 정비하는 것의 중요성을 잘 몰라 투자를 아끼는 곳에선 더더욱 적절한 교안을 마련하기 어려우니, 더욱 새롭고 적절한 교안이 마련되기 어려울 듯 싶다.
이런 생각을 품었던 만큼 기대하며 민변 성희롱 예방교육 수강 신청을 했다. 법조인을 주 대상으로 하는 성희롱 예방교육을 수강한 적이 없어 궁금하기도 했고, 구성원들의 젠더 감수성이 타 집단보다는 높을 것으로 기대되는 민변에서의 성희롱 예방교육은 어떤 콘텐츠를 가지고 있을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수강은 결과적으로 대만족이었다. 안지희 변호사님이 진행한 성희롱 예방교육은 민변의 ‘존중과 평등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우리의 약속’을 안내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위에서 언급한 성희롱 예방교육에 대한 거부감 – 특히 현 시대의 백래쉬 문제 등 – 을 지적하며 성희롱 예방교육의 새로운 방향성에 대한 고민을 나누었다. 이후에는 ‘성인지 감수성’이 무엇인지를 정의하며 관련 판례를 꼼꼼히 살피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성인지 감수성’과 같은 용어는 어느새 자연스레 널리 쓰이는 말이 되었음에도 그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아는 이는 드물고, 때로는 ‘페미 언어’ 처럼 취급당해 이 단어를 사용하는 행위 자체를 공격하는 이들도 있기에 핵심 용어의 정의를 확실히 짚고 가는 방식이 좋았다.
특히 관련 판례를 볼 때는 피고인과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는 기초가 된 사실관계를 꼼꼼히 살피고, 관련 쟁점에 대한 고민도 나누었는데, 이는 법조인으로서 필요한 성희롱 등 사건에 대한 관점 설정에 집중한 것이라 느껴졌다. 변호사로서 관련 피해를 입은 의뢰인을 만나게 된다면 정서적 지지를 주는 것과 별개로 사건을 해결해나가기 위한 방향 설정이 고민될 것 같았기에 많은 도움을 받았고, 동시에 혼자 관련 판례를 읽고 생각하던 때보다 양질의 설명을 들으며 추가적인 판례도 함께 살피는 시간이 즐거웠다.
강의의 후반부는 민변이라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피해 입은 다른 구성원의 회복을 돕기 위해 우리가 고려할 사항 등을 언급하며 진행되었다. 무너진 피해자를 일으켜 ‘재조직화’의 과정을 무탈히 수행할 수 있도록 피해자의 심리상태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작업을 수행함으로써 단순히 “2차 가해를 하지 말자!”라기 보다, 재조직화를 위한 지지와 연대를 보낼 것을 스스로 다짐하게 되었다.
나아가 구성원 관계의 특수성이 존재하고, 사적/공적 만남도 구분하기 어려운 민변의 특성상 성희롱 예방 및 해결에 어려움이 있다는 고민도 나누었는데, 이 부분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성인지 감수성의 평균 수준이 일반 사회 구성원보다는 높을 수 있지만, 구성원 개개인의 인식 수준이 모두 동일하게 높을 수 없는 만큼 ‘민변을 믿은’ 누군가로서는 오히려 더 큰 상처를 받을 수 있다. 또한 민변을 아끼는 마음이 커서 ‘우리 조직에서 그런 일이 있을 수는 없다’며 피해자의 동의 없이 ‘민변에서 피해 상황이 있었는지’를 묻는 것은 2차 가해일 수 있는 행동이기도 한데, 조직을 애정하는 만큼 상처 받고 상처 주는 경우가 발생하기 쉬운 것이다. 안지희 변호사님도 이 부분에 대해 지속적인 고민을 하고 계신 듯했다.
이런 모호한 행위를 일괄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기준 설정과 방식 모두에서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최소한의 기준이라도 설정해야 할 터인데, 개인적으로 이럴 때는 늘 있는 것을 잘 활용하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한다. 올해에 민변에서 발간한 “존중과 평등의 공동체를 위한 안내서”를 꼼꼼히 살피고, 바쁜 날들이지만 작은 틈을 내어서라도 성희롱 예방교육을 수강하는 것이 그것이다.
강사인 안지희 변호사님의 정성이 느껴지는 교육이었던 만큼 다른 분들께도 수강을 적극적으로 권유하고 싶어 이렇게 긴- 글을 작성해보았다. 소중한 강의에 감사드리며, 수강생으로서 교육에서 배운 것을 바탕으로 민변이라는 작은 민주사회를 안전하게 일궈나가는 것에 함께할 것을 다시금 약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