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세 이하 아기가 주된 청구인… ‘아기기후소송’ 제기된다
- 탄소중립기본법 시행령 내 명시한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 40%는 위헌, 미래세대 기본권 보장 못해
- 20주 차 태아 포함 62명의 아기들과 어린이들이 청구인…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 가장 크게 입게 될 세대
5세 이하의 ‘아기’들이 주된 청구인이 된 기후소송이 제기됐다. 정부가 법령으로 정한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가장 오랜 시간 살아가야 할 ‘아기’들의 생명권, 행복추구권 등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내용이다. 전 세계적으로 정부를 상대로 한 기후소송이 증가하는 가운데, 5세 이하 아기들이 주 청구인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환경보건위원회와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 소속 변호사 등으로 구성된 ‘아기기후소송단’은 6월 13일(월) 헌법재판소에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시행령 제3조 제1항(이하 이 사건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 청구서를 제출했다.
이 사건 조항에서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2018년 대비 40%로 규정한 것이 ‘아기’들의 기본권을 침해하여 위헌이라는 게 이번 소송의 골자다.
이 사건 조항의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로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될 아기들과 어린이들 62명이 이번 소송의 직접 청구인이다. 2017년 출생 이후 5세 이하 아기들이 39명으로 대부분을 차지하며, 6세에서 10세 이하 어린이 22명도 청구인으로 참여했다. 딱따구리라는 태명의 20주 차 태아가 이번 소송의 대표 청구인이다. 헌법재판소는 “모든 인간은 헌법상 생명권의 주체이며, 형성 중인 생명의 태아에게도 생명에 대한 권리가 인정돼야 한다”며 과거 헌법소원 사건에서 태아의 헌법소원 청구인 능력을 인정한 바 있다.
소송을 대리하는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 김영희 변호사는 “아기기후소송의 청구인들 62명은 현세대 중에서 가장 어린 세대로, 허용 가능한 탄소배출량이 이미 대부분 소진됐기 때문에 그 이전 세대보다 크게 적은 양의 탄소를 배출해야 한다”며 “어린 세대가 기후변화로 인한 위험과 피해, 부담을 가장 크고 가장 강력하게 떠안게 되어있다. 이번 아기기후소송은 부모가 아닌 아기들이 직접 헌법소원 청구인이 되어 가장 어린 세대의 관점과 입장에서 국가의 온실가스감축목표가 권리와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을 항의하고, 위헌임을 확인받겠다는 것”이라고 이번 소송의 의미를 설명했다.
실제로 아기기후소송단이 청구서 내 인용한 연구에 따르면 지구 온도 상승이 1.5℃로 제한될 경우, 2017년에 태어난 사람의 탄소 배출 허용량은 1950년에 출생한 사람이 배출할 수 있었던 양에 비해 8분의 1로 줄어든다. 어린 세대일수록 미래에 지금보다 훨씬 강력하게 탄소를 감축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는 의미다. 나아가, 아기기후소송단에서는 청구서를 통해, 현재 지구상승 온도를 1.5℃ 이하로 제한하기 위해 전 지구적으로 남아있는 탄소예산 대비 한국이 연간 약 7억 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해 온 추세를 고려한다면, 한국의 탄소예산은 2024년이면 모두 소진된다고도 강조했다.
태아 딱따구리와 6세 아동 청구인의 양육자인 이동현 씨는 “20주 차인 태아가 배에서 움직일 때마다 대견하면서도, 이산화탄소를 1그램도 배출한 적이 없는 아이가 지금의 기후 위기와 재난을 견디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걸 생각하면 미안하고 안쓰럽다”면서 “개인의 실천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큰 역할과 책임이 있는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는 너무 소극적이고 무책임하게 느껴져, 아이들의 기본권을 지키기 위해 이번 아기 기후 소송에 참여했다”고 했다.
이번 아기기후소송에 청구인으로 참여한 8세와 10살 두 자녀의 양육자인 남궁수진씨는 당일 기자회견에서 “소송에 관해 묻는 아이들에게 ‘지금처럼 지구를 계속 아프게 하면 코로나19 같은 병이 또 생길 수도 있고, 우리 주변의 동식물들을 볼 수 없게 될지 몰라 걱정이 된다’고 설명했다”며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해보자’는 생각에서 참여하게 됐다”고 했다.
아기기후소송단은 당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지구를 지켜라, 아기 기후소송’이라는 메시지가 담긴 플랜카드를 들고 기자회견을 진행하며 미래세대를 위해 현세대가 책임지고 행동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지구를 상징한 파란 공 위에 ‘지구를 지켜라’라는 녹색 글자를 붙이는 퍼포먼스도 진행했다.
한편 이번 아기기후소송은 청구인을 모으고, 소송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톨릭기후행동, 녹색당, 대안교육연대, 두레생협, 정치하는엄마들, 팔당두레생협 등 6개 시민단체가 협력했다. 두레생협연합회의 박경희 상무는 “전세계 곳곳에서 폭염과 가뭄, 대형 산불이 일어나고, 그에 따른 식량위기도 심각해지는데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라며 “미래에 살아야 할 어린이들이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을 것이 자명한 상황에서, 부모가 자식에게 암울한 미래를 남겨주어선 안된다는 마음으로 아기기후소송에 함께 한다”고 했다.
당일 어린 ‘아기’들과의 연대의 의미로 기자회견장에 함께 한 60플러스기후행동의 민윤혜경 운영위원은 “작년 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녀가 태어나면서 기후위기가 우리 아이들의 일로 크게 다가왔다”며 “어른들은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지만, 국가는 더 큰 책임을 지고 기후재난으로부터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야 하는 국가의 의무를 충실하게 이행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이번 소송을 대리한 ‘아기기후소송단’에서는 “과거 4대강 관련 대법원 판결 중에서 ‘환경문제는 시차가 존재하고 환경의 자체 정화능력을 넘어서면 가속화될 뿐 아니라 심한 경우 원상회복이 어렵다는 특성을 갖는다며, 미래세대의 중요한 삶의 터전이 될 환경이 오염되거나 훼손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이미 판시한 바 있다”며 “이러한 판결 취지가 이번 아기기후소송에서도 고려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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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 헌법소원 신청서 요약본 (팩트시트)
- 기자회견 발언문
- 사진은 1시 이후 이 링크에서 다운로드 가능합니다. (출처는 아기 기후소송단 표기)
문의
- 김영희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 변호사 (02-3477-2323)
주선영 기후미디어허브 담당자 (010-4297-1907, sy.joo@climatemediahub.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