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공주’의 이수진 감독님과의 만남

2015-07-10 43

영화 <한공주>의 이수진 감독님과의 만남

– 이정선 회원

 

 영화 <한공주>는 2004년 경남 밀양에서 발생한 당시 14세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저는 당시 위 사실을 접하고 미성년 아이들의 잔인함에 분노가 치밀기도, 두렵기도 하였습니다. 그때의 기억이 너무 생생하여 이를 토대로 한 영화라는 소개만으로 도 선뜻 이 영화을 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우려했던 대로 저는 영화를 보고 난 이후 느껴지는 죄책감과 가슴 저릿한 묵직함으로 한동안 힘들었고, 이러한 느낌이 채 가시기 전에 민변에서 주최한 이 영화의 감독님이신 이수진 감독님과 만남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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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수진 감독님을 뵙기 전까지는 죄송스럽게도 당연히 여성 감독님이실 거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막상 민변 대회의실에 등장하신 이수진 감독님께서는 멋진 훈남 감독님이셨습니다.^^ 2013년 최고의 화제가 되었던 영화인 만큼 많은 변호사님들과 참석자분들의 영화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고, 감독님께서는 이번 모임이 영화 <한공주>에 대해 이야기하는 마지막 자리라며 성심성의껏 답변해 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한공주>는 영화 주인공 이름이자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입니다. 천우희 배우가 연기한 한공주는 마치 그 순간, 그 시간에 제가 그 상황에 있었던 것처럼 죄책감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집단 성폭행을 당하고 있는 공주를 못 본 척하며 자신의 아들(동윤)만 데리고 나오는 동윤 아버지의 모습에서, 왜 내 아들의 탄원서는 써 주지 않느냐며 공주가 꼬셔서 내 아들 인생을 망쳤다고 악다구니 쓰는 가해자 어머니의 모습에서, 웃는 얼굴로 가장 잔인하게 공주에게 탄원서를 받아가던 동윤 아버지의 이기적인 모습에서 소름끼치는 분노를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그랬던 적은 없었는지 반성과 두려움, 죄책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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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무엇보다 기존 성폭행을 모티브로 한 영화들과는 달리 성폭행 피해자의 2차 피해상황을 한층 깊이있는 시선으로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전 잘못이 없는데요’라는 영화 포스터 문구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공주가 가해자들을 피해 전학을 오는 것으로 시작하여 영화 내내 2차 피해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건 당시보다 사건 이후에 미성년자인 공주가 얼마나 힘들게 그 시간을 혼자 견디는 지를 보여줍니다. 돈 몇 푼에 딸에게 탄원서작성을 종용하는 아버지나 자신의 삶에 흠이 생길까 딸의 상처를 들여다 볼 마음조차 없는 어머니를 둔 공주는 결국 고스란히 혼자 그 아픔을 짊어집니다. <한공주>는 가족도, 법도, 사회도 지켜주지 못한, 아니 지켜주지 않고 외면한 공주의 상황이 너무 아프고 안타까운데, 이런 감정이 영화를 통해 너무 잘 전달되어 오히려 더 아픈 영화입니다.

 

영화에 대한 뜨거운 관심만큼이나 영화의 거의 모든 장면에 대해 이수진 감독님이 왜 그렇게 연출하셨는지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공주가 왜 수영을 배우는지, 공주는 왜 후드티를 입었는지, 산부인과에서 공주는 왜 아무런 말없이 불편한 상황을 넘겼는지 등등. 감독님께서는 성심성의껏 답변을 해 주셨고, 결국 예상했던 시간을 훌쩍 넘겨 아쉽게 자리를 마무리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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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사인을 받으며 감독님께 이 영화를 대체 몇 번이나 보셨는지 여쭈어 보았습니다. 후유증이 큰 영화를 볼때마다 갖게 되는 순수한 호기심인데, 저는 과연 이런 영화를 만드시는 감독님들은 대체 몇 번이나 이런 고통을 감수하실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됩니다. 이수진 감독님께는 ‘셀 수 없이’ 라는 답을 들었습니다. 그 순간, 마주하기 힘든 현실을 수 없이 마주하며 만들어 주신 영화 <한공주>가 새삼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현실은 이런 저런 핑계로 외면했던 많은 순간들을 반성하며, 실제로나 영화속에서나 법과 사회가, 우리가 외면한 공주에게 이제라도 용서를 구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2004년이 아닌 2015년 현재에도 ‘우리’는 공주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지금 계속 노력하고 있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말입니다. 그때가 되면 <한공주>가 아닌 <공주>라고 조금 더 당당하게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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