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둘레길 걷기

2009-10-28 169


지난 봄 1박2일로 지리산종주를 갔다왔다. 성삼재부터 새벽산행에 들어선 일행이 비를 맞고 연하천대피소에서 아침을 먹은 다음 다시 길을 재촉하며 걷다 봉우리에 올라 잠시 쉬려던 차, 여기저기서 터지는 전화를 받던 사람들이 “노대통령이 죽었다고?”하는 얘기를 듣고 ‘드디어 죽을 자가 죽었구나’하고 생각했었다. 노태우라는 이름의 노대통령을 두고 한 말이다. 사람이 죽으면 기본 예우는 차려야지 하는 평소 생각도 그 순간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되려 주어진 명을 더 해 살았다는 생각만 들 뿐. 그런데 조금 있으니 내 추측이 여지 없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생각한 그 노대통령이 아니었던 게다. 그 다음부터 이어진 산행 동안 중턱에 한참 핀 철쭉도 이쁜 줄 모르겠고, 그저 가학적으로 속도를 내어 걷기만 했다. 머리 속 생각을 비우려면 그저 육체에 고통을 가하는 것이 현명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현명했는지 알 길은 없으나 그렇게 산행을 하는 동안은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 참으로 속세를 벗어난 홀가분한 시간이었다. 저 산 아래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오감을 자극하지 못했다.
장터목산장에서 자고 일어나 천왕봉을 오른 후 중산리로 내려와서도 노대통령이 세상을 떴다는 생각이 떠오르질 않았다. 이렇게 모든 것을 까맣게 잊게 하는 걸 보면 지리산이 참으로 큰 산은 큰 산인 모양이다.



발을 어디에 딛고 있는지, 몸뚱아리를 어디다 두고 있는지에 따라 생각이 달리지듯, 상경 후 양재역에 내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들어서자 환속한 양 우울증이 밀려왔다. 시청도 가보고, 서울역도 가보고, 영결식장에도 가보았지만, 그것으로 텅빈 가슴이 채워질 리 없다. 나야 특별한 인연이 없는 사람이지만, 그나마 공감의 폭이 있는 사람의 죽음이었기에 그랬을 것이다. 나이 들어 우는 법을 잊어버린, 아니 우는 것을 금지당한 처지였지만, 울 때 울어야 한다는 새삼스런 교훈을 얻은 것도 이때다.



그런 후 울적하거나 공허해지면 자연 어디로 가려는 습벽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발목이 좋지 않아 자주, 그리고 열심히 가지는 못하지만 조금 나을 성 싶으면 밖으로 나가려는 버릇을 어찌할 수 없다. 전날의 늦은 작배로 몸이 말을 듣지 않는데도 따라 나섰던 곰배령 산행길도 그런 것이리라. 대저 준비되지 않으면 변고가 생기는 법, 곰배령 초입에서 까불다가 또 발목을 삐여 중도하차하고 말았다. 그 무렵 주변 사람들의 입에서 지리산둘레길 얘기가 들려왔는데, 조금만 잘못 디뎌도 도지는 발목이 안정되기만 하면 꼭 가봐야지 하는 욕심이 생겼다.



이래저래 지난 여름은 나에겐 가혹한 여름이었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 종주를 같이 했던 사람들을 모아 둘레길 가는 것을 꾸미기 시작했다. 등반대장인 김변호사님이 총무노릇을 맡기시는 바람에 지원자 모집과 일정과 숙식, 교통 등에 관해 산악회와의 조율을 하게 되었다. 15명에서 20명을 생각하고 둘레길에 나설 만한 사람들을 위주로 연락을 했는데, 여기저기 소식을 듣고 지원하는 사람들까지 모으니 금새 30여명에 이른다. 29인승 버스 정원을 넘어서는 숫자다. 이렇게 관심이 클 줄이야…결국 40인승 버스를 이용하기로 하고, 추가모집에 나서자 거의 40명에 육박한다. 평소 걷기 싫어하는 우리 아이는 며칠 전부터 지리산둘레길을 같이 걸으며 스스로를 시험해 보라고 꼬드긴 끝에 같이 가겠다는 응답을 받았다.



그런데 추석을 쇠고 나자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낙엽마냥 하나, 둘 ‘죄송합니다’라는 인사를 덧붙인 낙마의 메세지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급기야 떠나기 전날까지 불안불안한 35명을 유지한다. 돈도 안부쳐오고, 간다, 안간다 확답도 없는 3-4명이 불안하게 하는 것이다. 둘레길 도보 일정과 교통편 등을 맡긴 산악회에서는 35인 기준으로 350만원이라 하여 1인당 10만원이라고 비용을 공지했었는데, 35명을 채우지 못하면 그만큼 각자가 추가로 갹출을 해야 할 처지다.



떠나는 날 아침, 7시 15분에 버스가 출발할 예정이라 7시까지 양재역에 나오라고 연락을 했지만, 그 시간까지 도착한 사람은 절반이나 되려나. 수 차례 연락을 나누고, 아침에 늦게 일어난 사람을 기다린 끝에 결국 1명 모자란 34명으로 출발했다. 뒤늦게 도착한 일행을 다 태우고 버스가 출발한 시각은 7시 40분쯤. 3시간 반 가량을 달려 남원의 지리산 톨게이트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나물과 청국장으로 꾸려진 점심이 괜찮은 편이다. 채식을 하기 시작한 지 3개월이 지난 나로서는 반가운 음식들이다. 12시 가량부터 도보길이 시작되었다. 코스는 2주일 전 답사를 다녀왔다는 산악회에 맡겼다.



[1구간]


지리산둘레길의 1코스는 남원의 주천면 주천치안센터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전체 여정을 소개하면 주천면치안센터-외평마을-내송마을 간판-내송마을-개미정지-돌계단-주천운봉 이정표-구룡치-사무락다무락-느티나무 쉼터-노치마을-덕산지-가장마을-가장교-행정서교-행정마을 서어나무 숲-행정교-엄계교-양묘사업장-운봉농협사거리까지로 직선거리로 14.7km, 4-5시간 걸리는 거리라고 한다. 하지만 개미정지부터 구룡치까지는 제법 가파른 산길이라 산행길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걷거나 가는 길에 나무와 꽃, 논밭과 주변의 지형을 눈여겨보며 간다면 5-6시간을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산악회측에서 굳이 내송마을까지의 시멘트 길을 걸을 이유가 없다고 하여 우리 도보길은 내송마을부터 시작되었다. 산악회의 안내에 따라 당초 A팀은 내송마을부터 구룡치를 거쳐 끝까지 가는 길을, 아이들과 어른 중 산행경험이 적은 어른들은 느티나무 쉽터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거기서 도보길을 하기로 했었는데, 어여부영하다가 전부 A팀이 되어 버렸다. 듣자하니 서변호사는 권변호사님이 다 내리라 해서 내렸다고 하고, 권변호사는 산악회에서 다 내리라 해서 그렇게 말했다는 취지인데, 무언가 중간에서 잘못된 전달이나 곡해가 있었던 모양이다.



내송마을부터 구룡치까지는 계속 제법 힘든 산행길이 이어지자, 여기저기서 ‘속았다'(?)는 원성 아닌 원성이 터져나온다. 산행길이 없다고 내가 속였다는 것이다. 허허허. 이 정도도 오르지 않고서 어찌 지리산이겠는가. 또다른 원성은 내가 신발을 잘못 안내했다는 것이었다. 서울에서 출발하기 며칠 전 도보길을 안내하면서 산악회장이 “등산화를 신으면 발에 불나니 운동화를 권한다.”고 했던 말을 그대로 참가자들에게 알려주었는데, 이게 또다른 원성을 자아나게 했던 것이다. 직접 걷고 보니 단순한 운동화는 부적절했다. 나는 운동화도, 등산화도 아닌 일종의 야외활동화를 신었는데, 그것도 원성을 더 심하게 만들었던 모양이다. 어쩌랴! 그냥 가야지. 예서 말 수는 없는 노릇이다.



구룡치는 산악회의 소개에 따르면 백두대간이 스쳐 지나가는 산자락에 있는 고개인데, 오르기까지 제법 힘들다. 아들은 이런 산을 처음 타서인지 거듭 힘들다는 표정이지만, 구룡치 정상 가까이 이르러서는 나무 구경한다고 느리게 오는 나를 놔 두고 제 혼자 앞서 나가서는 짐짓 ‘어디까지 왔냐?’며 전화로 내 발걸음을 재촉한다.


  



 물오리나무



추석 시골 내려가는 길에 잡아 읽기 시작했던 “궁궐의 우리 나무”라는 책에 소개된 우리 나무를 지리산 둘레길에서 하나씩 찾아가며 가려니 아무래도 아이 발걸음도 쫓아가기 버거운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고향 마을 뒷산에서 자주 보던 나무지만 쓰임새는 고사하고 정작 이름조차 제대로 모르는 게 태반이고, 중간중간에 보기 드문 모양을 한 나무가 제법 있다. 



 소나무-햇빛을 두고 서로 경쟁하다 휘감는 두 소나무


 


구룡치는 특별한 것은 없는 좁은 언덕 정상길이다. 지금도 그렇듯 이 고을 저 고을을 오가는 이고 진 사람들이 힘든 산길에 짐 풀어놓고 목 축이고 바람 쏘이며 앉아 쉬는 곳이었을 것이다. 구룡치에 모여 숨 좀 돌리고 다시 길을 나서자 완만한 아래경사길이 이어지며 다리가 한결 편해진다. 그렇게 길을 내려가다보니 산악회의 안내도에 설명된 대로 왼쪽 편에 돌무더기로 둘러쌓인 한 그루의 소나무가 보인다. “사무락다무락”이라는 곳인데, 둘레에 쌓인 돌탑을 두고 하는 말이다. 어떤 일을 바란다는 뜻의 사망(事望)과 담벼락의 사투리라는 다무락이 합쳐진 말이라 한다. 돌무더기를 쌓아온 그 정성이 정겹다.


 



사무락다무락과 한 그루 소나무


 


조금 더 걸어 징검다리와 그 건너 누렇게 물든 논이 나온다. 아직 이곳은 벼농사 추수를 하지 않은 것이다.


 





느티나무 쉼터 가기 전 징검다리 지나



느티나무 쉼터에서 쉬지 않고 지나치자 마을길이 나오는데, 한순간 이정표를 찾지 못해 마을 주민에게 운봉 가는 길을 묻자 친절하게 답해준다. 지리산둘레길 중간중간 갈림길이 될 만한 곳에는 나무막대를 조각해 박아 화살표로 방향을 가르쳐 주고 있었는데, 마을길에서는 쉽게 찾기가 어려웠다. 남원에서 운봉을 거쳐 함양 마천으로 가는 길은 붉은색 화살표로, 그 반대 방향은 검정색 화살표로 구분하고 있었다. 그렇게 마을을 거치고 덕산 저수지를 지나 논둑길을 제법 걷자 저 멀리서 말로만 듣던 서어나무 숲이 보인다.



‘궁궐의 우리 나무’라는 책에서 처음 소개되는 나무가 바로 서어나무인데, 나에게는 많이 낯선 나무였지만, 이곳 지리산둘레길에서는 과장해서 발길에 걸리적거리는 것이 서어나무라고 할 정도로 여기저기서 볼 수 있었다. 그런 서어나무지만, 족히 200년은 되었을 법한 수십 그루가 한 군데 뭉쳐 숲을 이루고 있는 것은 또다른 풍치였다. 다리가 팍팍해지고 물로는 달래지 못할 정도로 목도 칼칼해져 서어나무 숲에 마을 주민이 차린 평상의 주막에 앉아 동행한 일행과 함께 막걸리를 찾았지만, 막걸리가 동이 나 할아버지께서 술도가에 사러 가셨으니 기다리라 한다. 이 행정마을 서어나무 숲은 산림청이 주관한 ‘제1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마을 숲 부문 대상을 차지했다고 한다. 막걸리를 마시는데, 주막을 차린 아주머니(할머니 같은데) 曰, “이 동네가 서어나무를 심고 나서 잘 살게 되었고, 아이들도 공부를 잘 하고 다 잘 되었다.”며 자랑하신다. 10여분 정도였을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한 걸 보니 몹시도 목이 칼칼했던 모양이다. 차에 내려 부리나케 달려오시는 할아버지가 평상에 내려놓자마자 그 자리에서 4명이 막걸리 3병을 단숨에 없앴다. 막걸리 취기가 얼큰하게 올라오며 기분을 돋군다.


 



행정마을 서어나무 숲

기운을 차리고 길을 시작해 행정교와 엄계교를 지나 걸어가는데, 서어나무 숲을 나와 지름길로 가려던 일행 중 몇몇이 중간의 람천이라는 시내길에 막혀 왔던 길을 오가려다 더 멀리 둘러서 돌아온다. 그래서 지름길이 아니라 빙 둘러가는 길을 둘레길을 삼았던 것 같다. 양묘사업장 앞에 오자 산악회 안내자가 기다리며 운봉농협 사거리까지 시멘트길이라 갈 필요 없다고 버스에 타게 한다. 그렇게 1구간이 끝난다.

글_ 황희석 변호사
원문출처 : http://blog.daum.net/withorwithout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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