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인터뷰] 다양한 ‘부캐’의 소유자, 이동준 변호사를 만나다

2021년 2월 8일 minbyun 295

 

다양한 ‘부캐’의 소유자, 이동준 변호사를 만나다. 

(부캐: ‘부(副)’와 ‘캐릭터(character)’의 합성어로 원래 캐릭터가 아닌  다른 캐릭터를 지칭하는 신조어)

 

– 인터뷰: 서성민 / 편집: 허진선

 

이동준 변호사님 만나서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민변 과거사청산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동준 변호사입니다. 변시 1회 합격하여 현재는 법무법인 피앤케이의 구성원 변호사로 재직 중에 있습니다.

 

지금 10년차 되신거죠? 바로 개업을 하신거에요? 

(변호사시험 합격하고) 첫해에 6개월 연수를 하잖아요. 지금 법인 대표님이신 김원진 변호사님의 개인사무실에서 일했어요. 그때 인연이 되어서 그 이후로 지금까지 대표님과 같이 하고 있죠. 2014년도에 함께 법인을 설립하여 현재에 이르렀는데, 사실상 첫 직장에 계속 다니고 있는거죠. 민변 가입도 변호사 시험 합격한 그 해에 했어요, 1년차인 2012년도에 가입해서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습니다.

대학이나 로스쿨에서부터 민변 활동에 관심이 있으셨는지 궁금해요

민변의 존재는 로스쿨 때도 알고 있었지만 그 시기에 민변에서 활동을 하진 않았어요. 가입 계기가 되었던 것은, 변호사를 왜 하고 싶었는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2006년도에 군대 전역 후 참여연대에서 자원활동을 했었습니다. 그 때 박원순 변호사님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면서 변호사라는 직업에 관심을 가지게 됐죠. 대학 졸업을 2008년도에 했는데, 원래는 일반대학원에 진학하려다가 진로를 틀어서 로스쿨 진학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애초에 변호사를 생각한 이유가 시민단체활동이고 박원순 변호사님이었기 때문에, 민변활동을 하게 된 것은 어찌보면 필연적인 흐름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과거사위에서 활동하신 건가요?

네. 민변 가입신청서에 관심 위원회(분야)를 체크하잖아요? 사실 그에 대한 사전정보가 전혀 없어서, 그냥 체크해서 낸거죠. 그때 과거사청산위원회와 ○○위원회 두 군데를 체크했어요. 당시에는 깊은 고민은 없었던 것 같아요. 이렇게 나가도 될지 모르겠지만…(웃음) 단순히 활동 단위의 이름만 보고서 과거사위를 선택한 이유라면, 일단 현재를 살아가고 미래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과거에서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고, 또 하나는 과거에 있었던 국가폭력 등의 문제를 해결하고 이를 바탕으로 공감대를 이뤄야 우리가 진보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가입 이전에는 과거사청산분야에 대한 깊은 관심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아요. (정말 이렇게 나가도 되려나) 그렇게 갔다가 좋은 분들을 만나고 좋은 경험들을 하게 되고, 점점 더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열심히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과거사위 활동만 하시나요?

그렇죠. 이렇게 얘기하면 ○○위에서 싫어할 수도 있는데. (웃음). 과거사위와 제가 더 코드가 맞았고요. ○○위는 솔직히 말해서 저에게 조금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역량의 범위 내에서 여러 분야를 감당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처음에는 관심 있는 분야에 체크하잖아요. 그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고… 그러다가 나중에는 자신을 옭아매게 되는데…(웃음) 신청서 양식에 문제가 있지 않나…(웃음)

저도 공감하고 있습니다 (웃음)

그런데 또 그렇게 안하면 체크를 못하겠죠? 처음에는 그냥 관심이 있어서 회의에 참석하게 되는데, 참석해보면 각 단위에서 회원들이 정말 열심히 활동을 하잖아요. 다들 열과 성을 다해서 하기 때문에 내가 가볍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정말 진지하게 문제를 접하고 활동하는 곳들이기 때문에 딱 한군데에서 열심히 활동해야지라는 생각으로 과거사위에서만 활동을 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 게, 한 단위의 활동만 해도 벅차서요. (웃음)

 

위원장이 되었을 때 다른 위원분들이 대부분 연차나 연령이 높은 편이었을텐데, 그에 따른 부담은 있거나 하지는 않으셨어요?

음, 제 생각은 ‘올 것이 왔구나’ 이런 생각이었어요. 필연적으로 하게 되겠다는 생각은 했어요. 제가 (과거사위 가입 당시) 굉장히 오랜만에 들어온 신입으로 알고 있습니다. 선배님들도 오랜만에 신입위원이 들어왔다면서 많은 환대를 해주시기도 했구요. 그 이후로는 신입 변호사님들이 많이 가입하셨지만 저 이전에 가입하신 선배님들과는 갭이 있기 때문에 갑자기 (위원장직이) ‘툭’ 내려오겠구나 했어요. 물론 생각보다 그 시기가 좀 빨리 온 것 같다는 생각은 들었죠. 지금도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지만 많은 위원님들의 배려와 응원 덕에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는 과거사위의 활동들을 잘 모르고 있었어요. 위원회의 활동 소개를 해주신다면?

과거의 일은 다 과거사위가 하느냐는 단순한 질문도 있는데요. 저희는 일제강점기부터 군사정권 시기까지의 과거 국가권력에 의하여 자행된 인권침해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피해자들의 명예와 피해의 회복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시대적으로는 일제강점기 시대부터, 언론을 통해서도 많이 접하시게 되는 강제동원 사건이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소송에서부터 전두환이나 노태우 전 대통령이 자행한 군사정권 시기의 국가 폭력까지를 대상으로 합니다.

그리고 변호사들의 활동이다보니 사법적/입법적 구제방법을 주로 기획/연구하고 있습니다. 입법분야에서 저희가 가장 중요시 했던 활동이 진화위, 즉, 진실화해위원회를 다시 출범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과거사 관련 시민단체와 유족회들과 활동을 해서 법이 개정이 되어서 현재는 다시 진화위가 활동을 개시하여 피해접수를 받고 있죠. 지금 제일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진화위의 위원회 구성이나 신청 및 홍보 작업 등에 여전히 과제가 남아있어서 저희가 조력할 수 있는 부분이 없는지 고민 중에 있습니다.

과거사와 관련된 역사 기행 역시 중요한 활동 중의 하나입니다. 글이나 사진으로 접하는 것과 현장을 방문해서 느끼는 것은 정말 큰 차이가 있어요. 우리나라 곳곳이 슬픈 역사를 안고 있고 사실상 전국이 학살지라고 생각될만큼 역사의 굴곡을 담은 곳이 많습니다. 과거사 단체들 주도 하에 한국전쟁기에 희생된 민간인들 유해발굴 사업이 진행 중에 있어서 현장을 방문하여 연대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자체적으로 광주, 여수, 경산 등지에 워크샵을 다녀왔습니다. 해외의 경우는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야겠지만, 향후 난징/상해 역사기행을 적극 검토 중에 있습니다.

2019. 과거사청산위원회 워크샵 (여수) 사진

 

위원회 활동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 지나요? 

월 1회 세 번째 화요일에 회의를 하고 있구요. 사건과 관련해서는 TF나 대리인단에서 사건을 진행하고, 위원회 차원에서 도움을 주는 형태죠. 대표적으로는 긴급조치변호단과 일본군 ‘위안부’문제대응 TF가 있고요. 고문 등 가혹행위 피해자의 권리 구제와 위법한 국가 폭력의 재발 방지를 위해 간첩조작사건으로 서훈이 취소된 관련자들의 실명을 공개하라는 ‘부적절한서훈취소정보공개거부취소TF’가 있습니다. 그리고 과거사위에 소속된 팀은 아니더라도 과거사 문제를 다루는 변호사들이나 유관단체들과 소식을 주고 받으면서 연대하여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과거사위에서 함께 활동하자’ 하신다면 어떤 분들이 좋을까요

가입신청서에 별지가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위원회 이름 자체로 많은 것들이 설명이 되기도 하는데, 이름만으로는 알기 어려운 요소들도 있다보니까 입회원서에 간단한 설명이 같이 제공 되어서 사람들이 표시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어요.

사실 어떤 사람들에게 이곳으로 와라 하고 거창하게 할 만한 말이 생각이 안나네요. (웃음) 결국은 좋아야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아요. 선배 변호사님들 활동하는 걸 보면서 느낀 게, 정말 좋아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어렵고 힘든 일도 많은 와중에 계속 저렇게 힘차게 나아가실 수 있는 건 정말 본인이 좋아야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느꼈습니다. 저도 좋아서 즐거워서 민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과거사위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살펴보시고 이 일을 하면 내가 좋을 것 같다, 기쁠 것 같다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함께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사실 또 어느 정도의 유령 회원은 있을 수 있는 거고.(웃음) 또 큰 관심은 없어도 같이 어울리기만 해도 좋은 거구요. 같은 관심을 공유한다는 것만으로도 즐겁습니다. 사회에 있어서 중요한 일을 하는 조직인 것은 사실이지만 사람 간의 모임이잖아요. 서로의 행복에 기여하기 위한 모임인 거고요. 복잡하고 깊은 생각이 아니더라도 편하게? 과거사위를 알기 위해 찾아왔다! 이런 활동들을 하는 사람과 어울리는 것만으로 즐겁겠다! 이런 게 참여 동기가 될 수도 있는 것 같고요. 말을 하다보니 두서도 없고 복잡해지고. 이런… 아무도 안 오겠는데요? (망연자실)

 

변호사님은 변호사업무 외에 다양한 활동을 하시는데, 그 중 떡믈리에는 어떻게 시작하셨어요?

떡믈리에 사이트(https://ricecake1013.com/)를 만들게 된 이유는… 어느 날 느낀건데요,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행복에 대해서는 우리가 참 소홀해요. 뭔가 대단한 것들에 대해서만 그것이 나에게 행복을 주는 요소라던가 소중히 해야 될 대상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고. 일상의 소소한 측면들을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는 말이죠. 그 어느 날, ‘이번 한 달 동안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인가’ 떠올려 보니까, 친구들과 떡볶이 먹었던 순간들이 정말 소중한 거예요. 떡볶이를 먹었던 시간들. 그때 함께 한 사람들. 그 때 나눈 이야기들. 이런 순간들을 소중히 하면 할수록 결국 그게 나의 행복을 끌어올려줄 수 있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거기서 잡은 행복의 매개체가 떡볶이였어요. 그리고 그렇게 나에게 소중한 것을 하나의 대상으로 잡고 그걸 위해 고민도 하면서 행복을 쌓고, 사이트를 찾아주는 사람들에게 그 행복을 나누고 그런 게 인생에 있어서 보람을 줄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떡믈리에’ 사이트를 만들었다고 하니, 누군가 ‘아, 인류애적인 사이트를 만들었다.’라고 하더라고요. (웃음). 그게 제가 들은 이야기 중에 가장 좋았어요. 그렇게 소소한 행복을 가꾸고 나누자는 취지에서 시작을 하게 됐습니다.

 

떡볶이의 날을 1013일로 정하고자 하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이미 떡볶이의 날 11월 11일로 하자는 시도가 있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11월 11일은 이미 선점이 되어있고 영향력도 강해서 다른 어떤 것도 이길 수 없어요. 그래서 날짜를 따로 잡을 필요가 있습니다. 괜히 승산이 없는 싸움을 할 필요가 없고 아류작 소리를 들을 필요도 없고, 그렇게 하는 것이 떡볶이를 소중하히는 일도 아닐겁니다. 그래서 생각을 해봤죠. 왜 떡볶이의 날을 11월 11월로 하려고할까? 생각해보면 결국은 떡볶이 떡과 닮아서잖아요. 그렇지만 떡볶이에 떡만 있는 게 아닙니다. 떡볶이를 맛있게 하는 요소가 뭐냐, 파가 있어야 하죠. 어묵도 있어야 하고요. 그리고 사진을 찍었을 때 맛있게 보이게 하는 계란. 그 요소들을 다 담을 수 있는 숫자들을 찾은거죠. 일단 떡볶이는 1, 파도 뭐 길쭉하니까 1로 잡고. 어묵은 어묵꼬치를 했을 때 옆에서 보면 3 같고요, 그리고 계란은 동그라니까 0. 그렇게 1, 1, 3, 0을 조합해서 괜찮은 걸로 찾은거죠.

떡볶이의 날 이미지 (출처: 떡믈리에)

 

홈페이지에 올라간 사진들은 다 직접 촬영하셨어요?

아 지인들이 자기가 가진 사진을 보내주거나 제보를 해주는 경우가 있는데 주로 제가 찍은 사진이에요. 일종의 직업병인데, 저작권이 신경쓰여서, 아무 사진을 가져올 수는 없고요. 그렇다고 하나 하나 사진을 찾아서 저작권자에게 허락받기도 번거롭고요. 만 9년 정도 변호사 일을 하면서 전국의 법원도 돌아다니고 현장도 돌아다니잖아요. 그 인근에 있는 유명한 떡볶이집을 열심히 찾아 다녔죠. 결국 시간의 산물들입니다. 처음부터 사이트를 만들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다보니 사진이 없는 곳들이 많다보니 근처를 지나다닐 때 일부러 다시 가서 사진을 찍고 돌아오기도 합니다.

떡믈리에 떡볶이 맛집 지도 (우측에 직접 찍은 사진이 보인다.)

 

총 몇군데 정도 될까요?

100군데가 조금 넘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끼리 얘긴데요(웃음) 몇 군데는 긴가민가한데도 있어요. 사진이 없는 곳들은 아 내가 갔던 데가 여긴가 저긴가 헷갈릴 때가 있더라구요. 그래서 일단 올려두고, 검증을 위해서 다시 가보고 수정한 곳들도 있어요. 특히 제가 데이터를 정리하면서 가장 최우선적으로 신경쓰는 부분이 밀떡이냐 쌀떡이냐에요. 사람들이 제일 중시하는 부분 중 하나이기 때문에 기억이 분명하지 않으면 다른 자료를 뒤져볼 수밖에 없어요. 자료 수집을 할 때 다른 사람들이 올린 후기들을 보는데 어떤 떡들은 사진만으로는 구분이 안가요. 그런 경우에는 다른 사람들이 올린 리뷰를 여러 개 찾아보고 나서야 밀떡인지 쌀떡인지 판단하죠.

 

맛있는 떡볶이 레시피는?

추천하기 어려워요. 각자의 떡볶이를 품고 사는 거예요. 인생의 떡볶이. 그 맛에 가까우면 맛있는 떡볶이에요. 그 맛에서 멀어지면 아무리 맛집이라도 아닌거고요.

 

이 근처(서초동)에서 추천한다면?

애플하우스겠죠. 떡볶이 맛집이냐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죠. 애플하우스는 ‘무침만두’에 대한 찬양? 팬덤?이 워낙 강대하기 때문에 떡볶이 맛집이 아니라 무침만두 맛집이라는 논쟁이 늘 따라다닙니다. 그런 이슈에 대해서는 떡믈리에 ‘전설의 떡볶이’ 페이지에 올린 떡볶이에 대한 에세이를 참고하시면 될 것 같아요.

(에세이) [전설의 떡볶이] 애플하우스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떡볶이 행사도 기획하셨을지?

네 사실 처음 사이트를 만들 때는 행사나 홍보 이벤트 등을 생각했습니다. 제 사비로 하는 것들이라 대단한 건 못했겠지만요. 떡볶이 담는 옥색 접시가 그나마 제 예산으로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홍보 이벤트 경품으로 제작해볼까 고민도 해봤습니다. 빨리 코로나가 종식되어서 경품 이벤트도 하고 떡볶이의 날 행사도 해보고 싶습니다.

 

떡믈리에 말고도 스타트업도 하신다구요.

네, MOVE78이라는 스타트업을 운영하고 있어요. 회사 이름부터 설명해보면. MOVE 78은 바둑에서의 78번째 수를 의미합니다. 이세돌이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승리하던 한 번의 대국에서 둔 회심의 수가 백색 78번째 수입니다. 거기서 착안했어요. 인간이 인공지능에게 승리한 마지막 한 수인 거죠. 저는 그 때 인류의 누구도 인공지능을 이기지 못하는 지금의 상황에 대해서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영화처럼 기계가 인류를 지배하는 건 아니라 해도 누군가는 인공지능을 가지게 될 거고 가지게 된 사람이 가지지 못하는 사람을 이기고 지배하게 되는 거구요. 인공지능의 사용에 대해서 방향을 잘 설정하지 않으면, 빈익빈 부익부, 권력의 비대칭이 심해지겠죠. 인공지능이 전 사회나 인류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활용되도록 준비를 해야 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법률 분야 내에서 고민을 하다가 이혼분야를 선택했고요. 최신 기술을 활용해서 누구나 쉽게 접근해서 혜택을 받게 해보자고 생각해서 만든 것이 ‘이혼의 신’ 서비스입니다(https://godofdv.com/).

이혼의신 사이트 판례검색 서비스와 시뮬레이션 서비스 캡쳐

 

제가 직접 해봤는데 시뮬레이션 과정이 굉장히 디테일해요.

변호사들이 상담을 할 때 질문을 하는 패턴을 고려해서 경우의 수를 최적화한 알고리즘을 만들었습니다. 다른 법률 상담도 그렇지만 이혼 상담을 하다보면 의뢰인들이 법률상 쟁점이 되지 않는 부분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늘어놓고는 합니다. 사실 그런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공감하면서 업무에 필요한 내용들을 잘 찾아내는 게 변호사들의 능력 중에 하나잖아요. 그치만 또 그 작업이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고 힘도 많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시뮬레이션을 통해서 문답을 한 차례 진행하고 나면 쟁점이 정리되고 필요한 하급심 판례와 서식이 제공되기 때문에 의뢰인과 변호사 모두 시간을 절약하고 업무를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게 됩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변호사의 역할을 모두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의료분야에서 인공지능이 CT나 MRI와 같은 의료 영상을 판독하는 일을 돕고 있어요. 이를 통해 의사들이 정확도를 높이고 시간을 절약하는 것처럼 법률 분야의 인공지능도 변호사들을 위한 좋은 도구가 되어 사회에 공헌할 수 있을 겁니다.

앞으로 변호사로서 해보고 싶은 공익활동이 있다면?

개개인들이 쉽게 법률안을 만들어서 국회의원들을 설득하고 입법청원을 할 수 있게 돕는 일을 해보고 싶습니다. 국민청원의 경우 악용도 되고, 큰 실익이 없다는 비난도 있지만, 목소리가 모이는 창구가 생기니까 그게 사회에 영향력을 주잖아요. 입법과 관련해서도 그런 방법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입법청원이라는 것이 존재하긴 하지만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고, 실제로 정당이나 국회의원 개개인에 대해서 별 영향력을 행사하지도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를 해결할 좋은 방법이 없을까 고민입니다.

 

, 공통질문입니다. 나에게 민변이란?

‘좋아서 함께 하는 곳’, ‘함께 해서 좋은 곳’. 둘 다요. 어렵네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