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기고] 낙태죄의 오만과 편견- 인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들

2020년 10월 30일 minbyun 154

[회원기고] 낙태죄의 오만과 편견- 인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들

– 천지선 회원

2020년 10월 8일 오전 11시,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낙태죄'개정입법예고안 규탄 기자회견에서 '낙태죄'폐지 퍼포먼스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낙태죄에 대해서는 참 오래 많이 이야기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제는 좀 소위 인권이라는 이름 아래, 평등이라는 이름 아래, 자유라는 이름 아래에서 활동하는 사람들만이라도 최소한의 합의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그 최소한의 합의는 임신종결의 비범죄화를 넘어, 안전하게 임신을 종결할 권리입니다.

변호사라면, 형벌이 최후의 수단이라는 것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죄형법정주의, 명확성의 원칙도 다들 알고 있을 것입니다. 설령 임신종결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을지라도, 이것을 형법으로 처벌할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우리 법률과 법원이 태아를 원칙적으로 사람으로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은 법률가에게는 추가적으로 할 필요가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상의 존재와 그것이 권리 주체인가, 주체라면 어떤 얼마만큼의 권리를 가지는가는 별도의 문제입니다.

심지어 낙태죄는 생명 보호에 기여하지 않습니다. 낙태죄가 엄격해질수록 비례하여 증가하는 것은 모성사망률입니다. 헌법재판소는 “여성의 안위가 곧 태아의 안위”이며 이들은 “가해자 대 피해자”의 관계가 아니라고, 대법원은 “모체의 일부인 태아”라고 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원치 않은 임신을 예방하고 낙태를 감소시킬 수 있는 사회적·제도적 여건을 마련하는 등 사전적·사후적 조치를 종합적으로 투입하는 것이 태아의 생명 보호를 위한 실효성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명시하였습니다.

임신 주수가 얼마나 불명확한 개념인지도 압니다. 사실 우리는 언제 임신했는지 아직 정확히 모릅니다. 마지막 생리일을 기준으로 짐작할 뿐입니다. 임신 주수를 기준으로 한 처벌 조항은 명확성의 원칙에 반합니다. 이에 관해서는 그리고 이 글의 다른 쟁점에 관해서도 김정혜 박사님의 「낙태죄 ’폐지’를 말하는 이유- 임신중단권 보장의 법적 쟁점과 방향」에 잘 나와 있습니다.

인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여성의 건강을 위해 후기 낙태를 금지해야 한다, 또는 여성의 숙의를 위해 상담절차를 만들어야 한다, 청소년의 보호를 위해 별도의 동의가 필요하다, 의사의 양심을 위해 거부를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등이 그렇습니다.

이쯤 되면 가부장제가 다시 떠오릅니다. 얼마나 많은 제한과 간섭과 배제와 배척이 ‘너를 위해’ 또는 ‘보호’라는 이름으로 행해져 왔는지 말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보호’가 아니라 ‘권리’입니다.

여성의 건강을 위한다면서 후기 낙태를 처벌하자는 주장이 어떻게 성립하는지 이해하기 힘듭니다. 자기상해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과로와 스트레스가 뇌심질환 및 정신질환에 미치는 해악은 의학적으로 사실에 가까울 만큼 증명되어 있습니다. 담배의 건강상 해악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아무도 본인 건강을 위해 본인 과로나 흡연을 처벌하자고 하지 않습니다. 상담절차를 주장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허울만 그럴 듯한 상담 절차 때문에 임신종결이 늦어지면 건강상의 해악은 더 커집니다. 알려지는 것이 죽기보다 싫어서 절차 밖 상담 없는 안전하지 않은 방법을 택하게 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집니다. 아시다시피 낙태죄 때문에 산부인과의사는 임신종결에 관한 교육을 정규 절차에서 받을 수 없습니다.

청소년도 마찬가지입니다. 폭력, 빈곤 등의 문제로 집을 나갔다가 재워주겠다는 말을 믿고 간 곳에서 가해자는 성매매라고 주장하는 성폭력이 있었고 임신이 된 청소년은 계단에서 굴러도 보고 친구들에게 두들겨 맞기를 청하기도 한 사례에서, 이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임신종결에 추가적인 동의가 필요할까요?

저는 노동사건의 사용자 대리 및 변호, 성범죄 피고인의 변호 및 대리를 하지 않습니다. 제 양심에 반하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임신종결시술을 하지 않는 의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양심이나 신념의 영역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법률에 명시하여 보호할 권리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낙태죄는 오만과 편견의 덩어리입니다. 헌법재판소는 낙태죄가 “국가의 인구정책 여하에 따라”“좌우되는 것”이었음을 인정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낙태죄 때문에 “임신한 여성은 임신 유지로 인한 신체적·심리적 부담, 출산과정에 수반되는 신체적 고통·위험을 감내하도록 강제당하는 것뿐만 아니라 (…) 경제적 부담, 직장 등 사회생활에서의 어려움, 학업 계속의 곤란, 경력단절 등을 포함한 각종 고통까지 겪을 것을 강제당”했다고 보았습니다.

이처럼 낙태죄는 국가가 여성의 임신 출산을 좌지우지하고 나아가 여성의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수단이었고, 헌법재판소도 인정했듯이 여성을 협박하는 도구, 이혼시 혹은 연인과 결별시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한 도구로 악용되어 왔습니다. 낙태죄는, 모자보건법은 또 어떤 신박한 핑계로 누군가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게 될까요? 아니면 이제는 드디어 우리도 한발짝 나아가 안전한 임신종결을 할 권리에 대해 이야기해 볼 수 있게 되는 걸까요?

-편집: 허진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