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기고] CJB청주방송 故 이재학 PD, 그가 남긴 숙제 / 이용우 회원

2020-09-01

CJB청주방송 이재학 PD, 그가 남긴 숙제

 

이용우 변호사 / 민변 노동위원회

(편집: 허진선)

▲ ‘청주방송 故 이재학 PD 대책위’가 5월13일 오후 3시 충북 청주시 청주방송 사옥 앞에서 이 PD를 추모하는 집회를 열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미디어오늘

1. 지금

CJB청주방송 故 이재학 피디. 고인을 생각하면 여전히 마음이 불편해지고 연거푸 한숨이 나온다. 머리가 무거워지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2. 만남

고인은 2004년부터 2018년까지 15년을 오로지 청주방송에서만 근무했다. 2018. 4. 어느 날, 고인은 장기간 동결된 동료들의 인건비 인상 등 처우개선을 요구했다. 그러나 방송사의 대응은 구태의연했다. 어디 감히 프리랜서 주제에. 당일과 그 직후 해당 국장은 고인을 담당 프로그램에서 하차시켰다. 그렇게 고인은 15년 정든 일터에서 허망하게 해고되었다. 방송현장의 소위 프리랜서 스태프들은 언제나 이런 식이다.

방송사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고인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2018. 5. 직장갑질119의 문을 두드렸고, 당시 법률스탭으로 활동했던 나와 그렇게 만났다. 몇 차례의 상담과 자료 검토를 거쳐 소송을 진행하기로 했다. 프리랜서가 아니라 노동자라는 사실을 인정받기 위해, 동료들에게 좋은 선례를 남기기 위해.

 

3. 소송

고인은 청주방송 정규직들과 동일한 방식으로 조연출과 연출 업무를 수행하였다. 오히려 고인은 정규직들의 2배 가까운 프로그램을 소화했다. 업무처리는 항상 신속했고, 능력은 출중했으며, 하는 일에 애정이 가득했던 ‘방송쟁이’였다. 더욱이 고인은 피디 고유의 업무라 하기 어려운 방송사의 대외업무, 계약 관련 업무, 보조금 업무, 각종 행정업무 등 사측의 지시가 없었다면 할 수 없거나 할 필요가 없는 업무들도 상당 부분 담당했다. 이처럼 고인은 청주방송의 노동자 그 자체였다. 1심 소송이 진행된 약 1년 반 동안 이와 같은 사실은 충실히 밝혔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법원은 사실오인, 편향적 증거판단, 방송현장에 대한 몰이해, 법리오해에 기초하여 고인의 노동자성을 부정하였다. 구정을 얼마 앞둔 올 1월의 일이다. 이번 소송과정과 판결문에서 공정과 진실을 쫓는 법원의 모습은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오히려 처음부터 사측의 손을 들어주고자 결론을 내리고 쓴 편향된 판결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고인과 나는 그와 같은 법원의 황당한 판결문을 받아든 당일 바로 항소를 제기했다.

 

4. 죽음

그러나 고인은 항소 제기 4일 뒤인 지난 2월 4일 “억울해 미치겠다”는 유서를 남긴 채 자살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사측도 법원도 진실을 외면하는 상황에서 더 이상 기댈 곳 없었던 고인의 마지막 선택이었다.

 

5. 조사 

고인의 사망 이후 나와 유족들은 2020. 2. 27. 노조(전국언론노동조합), 청주방송, ‘CJB청주방송 고 이재학 피디 대책위’가 참여하는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진상조사위는 유족, 노조, 회사, 시민
사회가 추천하는 총 10명의 위원으로 구성되었고, 2020. 3.부터 6. 1.까지 약 3개월 동안 총 9차례에 걸쳐 청주와 서울을 오가며 회의를 진행하였다. 고인의 노동자성과 해고 경위, 소송과정의 위법·부당행위, 고인 사망의 책임과 성격을 다루는 1소위와 고인의 요구였던 청주방송 비정규직 실태조사와 개선방안 마련을 다루는 2소위로 나누어 운영되었다. 청주방송 비정규직(용역, 파견, 계약직, 프리랜서 등)은 물론 임원과 정규직, 퇴사자 등 약 50여 명에 대한 면접조사, 비정규직에 대한 설문조사, 두 차례의 현장조사, 자료조사 등 짧은 시간에 상당한 정도의 치밀한 조사를 진행하였다. 면접조사를 위해서 별도의 조사지원팀을 투입하기도 했다.

이러한 지난한 과정을 거쳐 진상조사위는 고인의 노동자성과 부당해고를 확인하였고, 소송 과정에서 이와 같은 진실을 왜곡하고 은폐하기 위해 청주방송 관계자들이 자행한 위증, 고인의 동료들에 대한 협박과 진술 번복, 자료 은폐 등의 위법·부당한 행태들을 밝혔냈다. 나아가 고인의 사망은 개인의 일탈이 아닌 이와 같은 회사측의 위법·부당한 행태의 산물이라는 점을 명확히 확인하였고, 청주방송 비정규직의 고용형태, 노동조건, 직장 내 괴롭힘과 성희롱 실태를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이에 대한 개선방안을 도출하였다. 진상조사위원회는 2020. 6. 1. 이와 같은 내용과 함께 회사가 실행에 옮겨야 할 구체적인 ‘이행요구안’을 보고서 형태로 제시하였다. 이행요구안은 고인에 대한 명예회복과 유족보상, 비정규직 고용구조 및 처우개선 등 6개 분야 27개 과제로 구성되었다.

진상조사 과정은 어느 한 순간 순탄하게 진행된 적이 없었다. 고성과 격한 말들이 오갔고, 위원들간 설전도 대단했다. 회의가 있는 날은 하루를 온전히 여기에 쏟아야 했고, 끝나고 나면 녹초가 되었다. 진상조사위는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진상규명과 개선방안을 꼼꼼하게 담아낸 보고서를 완성하였다.

ⓒ매일노동뉴스

 

6. 투쟁

그러나 문제는 회사의 태도였다. 진상조사위 구성 당시의 합의와 달리 회사는 경영상 어려움 등을 이유로 보고서의 이행요구안을 수용할 수 없다고 나왔다. 유족과 대책위, 언론노조는 이와 같은 회사의 태도를 묵과할 수 없었다. 지역 투쟁을 책임져온 충북대책위의 활약은 정말 헌신적이었다. 출·퇴근 선전전, 집회와 기자회견, 천막농성 등 청주방송을 상대로 한 다양한 투쟁에 충북대책위가 중심을 잡았다. 투쟁과 연대의 기풍이 무엇인지 정확히 보여준 모범적인 사례라고 감히 평가한다. 먼 청주까지 매번 마다하지 않고 달려와준 서울 대책위 동지들, 그리고 정규직 중심의 우리나라 노동운동 풍토에서도 이번 비정규직 투쟁에 적극적이고 지속적으로 함께 결합해준 전국언론노조의 활동이 없었다면 아래와 같은 최종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을 것이다.

 

7. 합의

 

유족과 언론노조, 대책위는 투쟁과 병행하여 회사와 4자 협의를 이어갔다. 약 2개월에 걸쳐 수 차례의 협상과 논쟁을 거듭하였다. 잠정합의가 번복되기도 하였고, 이로 인해 회사 앞 끝장투쟁과 점거도 진행되었다. 결국 보고서의 이행요구안을 최대한 관철하는 아래와 같은 내용의 최종 합의를 도출하였다. 고인 사망 이후 반 년이 다 되어서다.

1. 노동자성과 부당해고, 사망 책임, 소송과정 위법·부당행위 인정/대표이사 공식사과

2. 고인에 대한 명예복직 행사, 추모(2주), 유족보상, 해고 기간 임금 지급

3. 비정규직 노동자 총 9명 정규직 전환/청소,경비 등 4명 직접고용 전환(촉탁직)/CG, 운전, 행정 등 파견직 16명 정규직 전환 관련 3개월 이내 노사 합의 처리/작가 정규직 전환 관련 고용구조 개선 TF 운영

4. 비정규직 표준계약서 마련하고 고용보장 규정 명시

5. 비정규직 임금테이블 상향, 복리후생 도입, 근무환경 개선

6. 비정규직 상생 방안 마련(노사협의회 참여 보장, 고충처리위원, 직장 내 괴롭힘 조사 기구에 비정규직 참여 보장 등)

7. 고인 사망과 소송과정 위법·부당 책임자들에 대한 해고, 중징계 등 징계 조치 확약

8. 진상조사위가 위 사항들에 대한 정기적인 이행 점검

 

8. 과제

이번 합의는 방송현장의 각 주체들과 시민사회가 함께 방송현장 비정규직 문제에 대하여 구체적인 실태조사에 근거한 종합적인 개선방안을 처음 제시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의미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과제는 분명하다. 합의가 합의로 그쳐서는 안된다. 현장에서 명확하게 실행에 옮겨져야 한다.

현재까지 회사는 합의 내용에 따라 유족에 대한 공식사과, 명예복직, 추모, 유족보상을 진행하였고, 고용구조 개선의 일환으로 비정규직 9명에 대한 단계적인 정규직 전환 확약서를 작성하였으며, 작가 고용구조 개선 TF를 구성하여 고용안정 및 처우개선 방안을 논의 중이다. 그러나 고인의 사망을 둘러싼 책임자들에 대한 징계, 고인의 항소심 문제해결, 비정규직들의 고용구조 및 처우개선 등 여타의 합의 사항들에 대한 이행이 숙제로 남아 있다. 이에 대하여는 진상조사위원회가 이행 점검의 주체로서 회사의 이행 실태를 확인하고 미진한 부분에 대하여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행을 촉구하고 대응할 것이다.

프리랜서·특수고용·플랫폼노동 등 새로운 노무제공 형태에 대하여 해석론을 통한 노동자성 판정도 가능하겠으나, 이제는 노동자 개념의 새로운 정립을 통해 이들을 노동법의 영역으로 포섭해야 한다. 이 또한 고인이 남긴 중요한 숙제이다.

 

9. 안녕

고인은 동료들이 더 이상 자신과 같은 고통과 억울함을 겪지 않게 하기 위해 용기를 내어 싸움을 시작했다. 이제 그의 빈자리, 그가 남긴 숙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이유이다. 고인의 영전에 사측이 수여한 사원증과 정규직 PD 임명장을, 언론노조가 제작한 명예조합원 위촉패를 늦게나마 바치게 되어 다행이다. 숙제는 우리의 몫으로 남겨 두고, 고인이여 이제 편히 잠드시라!

▲CJB청주방송 고 이재학 PD 대책위원회가 11일 저녁 6시 민주노총 충북본부 대회의실에서 “이재학 PD 뜻을 이어가겠다”는 매듭짓기 행사를 열었다. 사진은 행사장에 걸린 이재학 PD 걸개 그림. 사진=손가영 기자 ⓒ미디어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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