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조치변호단][논평] 긴급조치 발령, 적용, 집행의 일련의 과정에 대해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한 서울고등법원판결을 환영한다.

2020-07-17

[논평] 긴급조치 발령, 적용, 집행의 일련의 과정에 대해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한 서울고등법원판결을 환영한다.

1. 서울고등법원(제5민사부)은 2020. 7. 10. 긴급조치 위반으로 불법 체포 구금된 피해자들이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의 항소심 재심에서, 긴급조치 제1호 또는 제9호의 발령·적용·집행을 통한 국가의 불법행위가 긴급조치 제1호 또는 제9호에 근거하여 수사를 진행하거나 공소를 제기한 수사기관의 직무행위와 유죄판결을 한 법관의 직무행위 그리고 유죄판결에 따라 형을 집행한 행형당국의 직무행위로 이루어졌다고 보고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본문에 따른 국가배상책임이 있다고 판시하였다(서울고등법원 2020. 7. 10. 선고 2019나2038473호 판결).

2. 이번 판결은 그 동안 사법농단이 낳은 최악의 사법적폐로 지탄받은 종래 대법원의 판례, 즉 ‘긴급조치권의 행사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이므로 국민 전체에 대한 관계에서 정치적 책임을 질 뿐 국민 개개인에 대하여 법적 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므로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판결(대법원 2015. 3. 26. 선고 2012다48824 판결)과 ‘긴급조치가 위헌·무효로 선언되기 이전의 수사기관의 직무행위나 법관의 재판상 직무행위는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어 손해배상책임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판결(대법원 2014. 10. 27. 선고 2013다217962 판결)을 비판적으로 극복하고 국가배상책임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지금까지는 위 대법원 판결의 문제점을 지적하여 긴급조치 발령행위의 위법성을 인정한 하급심 판결이 수 차례 있었음에도 번번히 고등법원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 판결은 고등법원이 최초로 긴급조치 발령행위의 위법성을 인정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대단히 크다.

3. 이번 고등법원 판결의 내용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그 동안 법원은 긴급조치 발령, 개개의 수사와 재판, 형의 집행을 분절해서 형식논리적으로 고의·과실을 심리하여 국가책임을 부정하였다. 이번 고등법원의 판결은 긴급조치가 작동된 시스템의 본질에 입각하여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것을 알면서도 혹은 그러한 침해임을 모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위헌성을 지닌 법률을 제정하고 행정부와 사법부가 이처럼 입법된 바를 그대로 집행하거나 그것을 적용해 재판함으로써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적극적으로 침해하였다면 국민의 이러한 일련의 침해행위를 공무원의 직무집행행위로 구성하여 국가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긴급조치의 발령과 그 이후의 집행절차를 별개로 본 것이 아니라 일련의 절차로 보고 그 위법성을 판단하였다.

둘째, 지금까지 법원은 ‘악법도 법이다’라는 전제 하에 긴급조치에 따른 수사 및 재판의 직무행위에 대해 고의·과실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고등법원 판결은 ‘법령 자체의 위법성의 정도와 그로인한 국민의 기본권 침해의 정도가 그 법령의 발령 당시부터 심대하고 그 정당성의 기초가 객관적으로 상실될 정도로 규범과 정의 사이에 감내할 수 없는 충돌이 있는 예외적인 규범에 대해서는 그 준수가 마땅히 부인되어야 한다는 것이 전체 헌법 질서의 관점에서 법치주의가 요청하는 정의의 명령이다’고 하면서 긴급조치 제1호 및 제9호는 바로 그러한 예외적인 규범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즉, 긴급조치 제1호 및 제9호를 집행하고 적용한 일련의 공무집행행위들은 모두 인권존중, 권력남용금지의 원칙을 위반하여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한 것으로 판단되어 법질서 전체의 관점에서 위법하다고 판단하였다.

셋째, 이번 판결은 “긴급조치의 위헌·무효 등 형사소송법 제325조 전단에 의한 무죄사유가 없었더라면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의한 무죄사유가 있었음에 관하여 고도의 개연성이 있는 증명이 이루어진 때만이 국가기관이 수사과정에서 한 위법행위와 유죄판결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을 것이고, 그에 따라 유죄판결에 의한 복역 등에 대하여 국가의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대법원 2014. 10. 27. 선고 2013다217962 판결)”는 법리 역시 정면으로 배척하였다. 재판부는 긴급조치의 선포와 그에 따른 수사 및 재판, 형의 집행 등 일련의 국가작용에 있어 불법성의 핵심은 긴급조치 자체에 있다고 보고, “긴급조치에 따른 수사 및 재판은 법률을 기계적으로 적용한 측면이 크다. 그럼에도 오로지 일련의 국가작용의 최하단에 있는 수사기관의 고문 등 가혹행위에 대해서만 불법성을 인정하는 것은 그와 같은 불법의 근거를 마련하고 이를 지시 내지는 용인한 책임 있는 기관에 대하여 면책을 인정하는 것이어서 책임주의 원칙에도 맞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위 판결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였다.

4. 과거 사법부는 유신헌법에 의하더라도 위헌 무효였던 긴급조치를 기계적으로 적용하며 불법행위에 가세했고, 지금의 사법부는 양승태 대법원이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 청와대와 거래한 사법농단의 결과물을 기계적으로 적용해가며 다시금 2차 가해를 거듭해오고 있다. 이에 반발하여 정의를 바로 세우려는 하급심 판결들이 이어지고 있고, 이제 고등법원에서도 이번 판결을 통하여 문제 제기가 시작되었다. 이제 공은 대법원으로 넘어왔다. 대법원은 신속히 긴급조치 국가배상청구 사건을 전원합의체로 회부하여 잘못된 판결을 바로 잡고, 역사적 양심의 요청에 귀를 기울이길 촉구한다.

2020. 7. 17.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긴급조치 변호단 (단장 이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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