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정위][논평] 무분별한 패킷감청의 재개를 사실상 용인한 통신비밀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 가결을 엄중히 규탄한다.

2020년 3월 8일 minbyun 102

[논평]

무분별한 패킷감청의 재개를 사실상 용인한

통신비밀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 가결을 엄중히 규탄한다.

1. 국회는 2020. 3. 5. 본회의를 열어 통신비밀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이하 ‘개정 법률안’)을 가결했다(찬성 179명, 기권 5명). 개정 법률안은 정부가 송기헌 의원을 통해 발의한 법률안 원안의 내용을 그대로 유지한 것이다. 우리 위원회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은 위 개정 법률안이 국민의 통신비밀의 자유 보호를 외면하고 정보수사기관의 이해만을 반영한 것으로서, 처리되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개진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면밀한 검토나 공론화 과정 없이 개정 법률안을 가결한 국회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2. 인터넷회선감청(이하 ‘패킷감청’)은 인터넷 회선 자체의 패킷을 전부 수집하여 그 회선을 사용하는 불특정 다수의 광범위한 통신내용을 수집·저장하는 방식의 수사기법으로, 2011년부터 그 위헌성이 문제로 지적되었다. 국가정보원 등은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패킷감청을 수사기법으로 활용해왔고, 시민사회단체는 헌법소원심판의 청구를 통해 논란 이후 약 7년 만인 2018. 8. 30. 통제장치 없이 패킷감청을 허용하고 있는 통신비밀보호법이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는 위헌결정을 이끌어냈다(헌법재판소 2018. 8. 30. 선고 2016헌마263 결정).

 

헌법재판소는 패킷감청을 통해 국가정보원 등 정보수사기관이 수집하는 자료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함을 지적하였고, 감청의 집행 및 그 이후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정보수사기관의 권한 남용을 통제할 장치를 통신비밀보호법이 마련해 두고 있지 않은 점을 지적하며 이러한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패킷감청은 허용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즉 헌법재판소는 위 결정을 통하여 정보수사기관의 권한 남용을 실질적으로 통제할 수 있도록 하는 통신감청(패킷감청 포함) 법제의 개선을 요구한 것이다.

 

3. 그러나 개정 법률안은 헌법재판소 결정의 취지를 전혀 반영하지 않은 채 정보수사기관의 패킷감청을 사실상 폭넓게 허용하는 방향으로 마련되었다. 범죄 수사뿐만 아니라 예방의 목적으로 감청자료를 폭넓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한 통신비밀보호법 제12조는 그대로 둔 채, 감청자료 사용에 대한 법원의 형식적인 승인에 관한 조항만을 신설했을 뿐이다.

 

헌법재판소 결정이 국회에 검토를 주문했던, (1) 집행 이후의 주기적 경과보고서 제출의무, (2) 법원에 의한 봉인 절차 등은 개정 법률안에 전혀 고려되지 않았고, (3) 일본의 ‘범죄수사를 위한 통신방수에 관한 법률’ 등이 규정하고 있는 위법한 감청 및 감청자료의 활용을 통제하기 위한 감청 대상자의 청취·열람·복사의 권리 등도 보장하지 않았다.

 

이러한 느슨한 통제만을 형식적으로 규정한 법률안을 가결시킨 국회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통해 약 7년 만에 중단될 수 있었던 정보수사기관의 무분별한 패킷감청의 재개를 허용한 것과 다름없다. 더욱이 국회는 국민의 통신비밀의 자유의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번 개정 법률안을 충분한 논의와 공론화 절차 없이 그 처리를 강행하였기에 절차적 정당성 측면에서도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4. 지난 2018년, 헌법재판소는 국가정보원 등 정보수사기관의 패킷감청 뿐만 아니라 기지국 수사, 실시간 위치추적 등 통신제한조치 전반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며 국회에 실질적인 국민의 통신비밀의 보호를 요청하였다. 일련의 헌법재판소 결정들은 과거에서부터 자행되어 온 정보수사기관의 무분별한 감청 남용을 통제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했다. 하지만 국회는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한 면밀한 규범적 검토와 깊이 있는 공론화 과정은 거치지 않으면서 정보수사기관의 수사 편의만을 반영한 위 개정 법률안을 가결하였다. 사실상 정보수사기관의 감청 남용에 대한 통제를 포기하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는 국민의 통신비밀의 자유에 대한 실질적인 보호를 요청한 헌법재판소의 결정 취지를 왜곡하는 것이자,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해야할 헌법기관으로서의 의무를 포기한 것으로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우리 위원회는 개정 법률안이 헌법재판소가 결정한 헌법불합치 상황을 해소한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표명하며, 향후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통신비밀보호법의 제대로 된 개정을 촉구하는 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할 것이다. 다시 한번 국회의 개정 법률안 가결을 엄중히 규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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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 디지털정보위원회 위원장 조지훈(직인생략)